시인과 정치가/정용진 시인

2012.12.17 12:19

정용진 조회 수:510

시인과 정치가
                     정용진 시인

시인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곱고 여린 사람으로 여기고 정치가 하면 야심이 강하고 저돌적인 사람으로 생각을 한다. 시인들은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하나 정치가들은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자화자찬의 야망을 강하게 부르짖기 때문이다. 시인의 손에는 붓이 들려져 있고 숱한 정치가들의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어서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시인의 붓과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정치가들의 칼의 의미가 엄청나게 다르다.
그러나 많은 세상 사람들은 궁극적으로는 붓이나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알고 있다. 그것은 아무리 강한 칼이라도 한 순간을 지나면 녹이 쓸어 낡아지나 붓이나 펜은 역사적 기록을 남겨 후대의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세계적 명문 독립선언서가 온 국민들의 가슴을 울려 그 감동과 참여로 만능의 칼이라 불리던 닙본도와 맞서 독립을 쟁취한 것만 보아도 붓의 위력을 잘 알 수 있다.
표의 문자인 한문을 보면 시인(詩人)의 시(詩)자는 말씀 언변에 절사자로 되어있다. 모름지기 시인은 절에서 참선에 잠긴 스님처럼 말을 적게 하고 사색과 명상으로 작품을 창작하라는 뜻이고, 정치인의 대명사인 권력(權力)의 역자를 보면 칼 도자 위에 손잡이가 달려있어 손으로 칼을 잡았다는 강인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지혜를 통하여 자기의 부족함을 채우려는 욕구충족의 방법과 기회를 곧잘 찾아낸다. 붓에는 힘이 없고 칼에는 사랑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연산군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무서운 권력을 자신의 손에 쥐었으면서도 밤이 되면 두려움에 쌓여 사방에 촛불을 밝히고 정신적으로는 등하불명(燈下不明)의 불안한 생을 살았다고 한다.
박. 전 두 독재정권의 때에도 그러한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가의 1번지라는 청와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은 늘 불안했고 이를 탈피하는 수단의 하나로 육영수 여사는 청록파 박목월 시인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문학 가정교사로 삼고 시를 배우고 자서전을 쓰게 하였다 하고, 전두환 시절 이순자 여사 또한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을 초청하여 나는 말당(末堂)의 시 ‘국화 옆에서’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여 만인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말은 한 뒤에 곧 잊어지기 쉽지만 글은 영존성이 있어서 한 번의 실수도 벗어나기가 퍽 힘들다. 그 예로 미당 서정주 시인의 예를 들 수 있다.
미당은 우리나라 서정시의 대가로 불리우 지만 그의 심성이 나약하여 많은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또한 일제 강점기 말에는 ‘오장(伍長) 마쓰이 송가’란 시를 써서 일본군을 찬양한 죄로 친일 백과사전에 올라야 했고, 전두환 신 군부 찬양의 실수로 숱한 질타와 외면을 받아야 했다. 이순자씨의 초청을 받고 청와대에 가서 독재자 전두환에게 ‘단군 이래 5천년 만에 만나는 미소, 라고 아부의 말을 하였고, 1986년 ’전두환 대통령각하 56회 탄신에‘ 축시를 쓴 이후 구정에는 독재정권 아래서도 지조를 끝까지 지킨 조지훈 시인의 집에는 신발을 벗어놓을 틈이 없이 하객들이 많이 몰렸으나 평소 미당을 따르던 고은 조정래씨 등이 등을 돌렸고 오장환 시인은 평생을 외면하였다고 한다. 산사람을 위하여 시를 쓰는 일은 실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인터넷에서는 미당을 ’5.18로 쓰러져간 한 시인을 생각하며,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는 노래를 계속 부르다간 미당 아닌 말당 일수밖에, 그 자신을 팔아서 그것을 글로 써서 환장한 사람이다’ 는 표현을 보면서 실로 마음이 아팠다. 살기보다 바로 살기가 이리 중요하지 아니한가. 접시꽃 당신의 도종한 시인이 민주당 국회의원이 된 것과, 몇 일전 시단에서 촉망받는 안도현 시인이 문재인 대선캠프에 합류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앞서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시인은 시속에 묻혀 살 때가 가장 행복하다.
정치가는 항상 권력을 소유하여 강한체하였고, 시인은 언어의 창조 능력을 지녔으나 힘이 부족하여 권력에 아부하였기에 역사 속에서 치욕의 그늘을 면하기가 심히 어려웠다.
서정주의 ‘마쓰이 오장(伍長)’은 죽지 않았다
‘마쓰이(松井) 오장(伍長)’을 아십니까? 가 그 한 예에 속한다.친일시인 미당 서정주의 ‘송정오장(松井伍長) 송가(頌歌)’로 세간에 알려진 ‘마쓰이(松井) 오장(伍長)’. 그는 일제 말기 조선인 가미카제 청년의 일본식 이름이다. 그의 계급 ‘오장(伍長)’은 우리말로 하면 ‘줄반장’이다. 과거에 학급에서는 분단장, 군에서는 하사를 이렇게 불렀다. (* 일제 때 중사는 ‘군조(軍曹)’, 상사는 '조장(曹長)'이라고 불렀다.) ‘마쓰이 오장’의 본명은 인재웅(印在雄), 창씨개명한 이름은 마쓰이 히데오(松井秀雄)입니다. 1924년 개성에서 출생한 그는 당시 서울 서대문구 수색동에 있던 공업고등학교를 다니다가 비행사가 되기 위해 소년비행병 제13기로 입대하였다.  그 후 특공대원으로 선발돼 야스쿠니(靖國)부대 소속 오장(하사관)으로 복무 중 1944년 11월 29일 필리핀 네그로스섬 시라이 기지에서 출격하여 레이테만(灣)에서 미국 군함에 돌진한 후 전사하였다. 그 때 그의 나이는 꽃다운 20세였으며, 전사 후 그는 2계급 특진하여 일본군 의 소위가 되었다.  ‘마쓰이 오장’은 조선인 출신 특공돌격대원(가미카제) 가운데 첫 전사자였습니다. 그의 전사 소식이 알려지자 <매일신보> 등 조선총독부 기관지를 비롯해 친일잡지들은 그를 ‘군신(軍神)’으로 추앙하며 그의 애국충혼을 선전하는 데 열을 올렸다.  첫 주자는 대표적 여류 친일시인 노천명. 노천명은 그해 12월호 <매일신보 사진판>에 ‘군신송(軍神頌)’이라는 시를 통해 그를 ‘군신(軍神)’으로 추앙했습니다. 이에 앞서 <매일신보> 12월 6일자에 실린 ‘신익(神翼)-송정오장 영전에’에서는 그의 죽음을 이렇게 찬양했다. 靑磁(청자)빛 하늘가에 보이지 않는 神翼(신익) 소리를 들으며 이천만 동포의 피가 沸騰(비등)한다 우리 지금 물끓 듯 감격함은 松井伍長(송정오장)의 壯(장)하고 嚴(엄)한 죽음이어라 11월 29일! 우리 松井伍長(송정오장)이 거룩한 죽음을 □□한 이날 해와 달이 무심했으랴 레이테灣(만)의 □□海(해)□를 □며 魚雷(어뢰)를 안고 몸소 艦艇(함정)에 부딪쳐 그대 □□처럼 떨어지다 오― □□□□□□여 그 용감한 □魂(혼)에 □□에 조선의 청소년들아 뒤를 잇자... 소위 ‘가미카제(神風)’으로 불린 이들은 일제가 미국의 군함에 육탄 돌격으로 맞선 ‘자살공격부대’를 일컫는다. 일설에는 출격하는 그들에게 귀환용 휘발유를 아예 공급하지 않아 백이면 백 모두 죽음을 강요당했다고도 한다. 그들 가운데는 ‘마쓰이 오장’처럼 일본식 이름을 단 조선인 청년들도 더러 포함돼 있었는데 그들은 출격에 앞서 마지막으로 ‘덴노 헤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를 외쳤다.  나라가 망한 백성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단순히 폭력과 차별만이 아니다. 앞날이 창창한 청춘들이 채 피어보지도 못한 채 전장에서 총알받이가 되거나 아니면 ‘마쓰이 오장’처럼 이역만리 바다에 수장돼 고혼(孤魂)으로 떠돌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를 두고 노천명은 마치 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을 불사른 충혼이라도 되는 양 ‘물 끓듯 감격’ ‘壯(장)하고 嚴(엄)한 죽음’ 운운하고 있다. 민족혼을 상실한 친일시인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다.   노천명의 시가 실린 지 3일 뒤인 12월 9일자 <매일신보>에는 한국 현대시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미당 서정주의 마쓰이 오장 찬양시가 실렸다. 제목은 ‘송정오장(松井伍長) 송가(頌歌)’. 먼저 미당의 시를 소개고 다음으로 전두환 찬양시를 보자.

마쓰이 오장 송가    
                    서정주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언덕도 산도뵈이지 않는구름만이 둥둥둥 떠서 다니는 몇천 길의 바다런가아아 레이테만은여기서 몇만 리런가......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아득한 파도소리......우리의 젊은 아우와 아들들이그 속에서 잠자는 아득한 파도소리......얼굴에 붉은 홍조를 띄우고「갔다가 오겠습니다」웃으며 가드니새와 같은 비행기가 날아서 가드니아우야 너는 다시 돌아오진 않는다

마쓰이 히데오!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17] 우리의 자랑.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구국대원구국대원의 푸른 영혼은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우리 숨 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소리 있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수백 척의 비행기와대포와 폭발탄과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그대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몇천 길의 바다런가귀 기울이면 여기서도, 역력히 들려오는아득한 파도소리......레이테만의 파도소리......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서정주
처음으로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이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 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우리 좋은 문화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이 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이 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이 힘으로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가지고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믿게 되었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홍기할 발판을 이루시고쥐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다가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모 윤숙 毛允淑

산 옆의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런 유니포옴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 였구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죽음을 통곡하며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원수가
밀려오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피 속엔 더 강한 혼이 소리쳐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과 가시 숲을
이순신(李舜臣) 같이 나폴레옹 같이 시이저 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진격!
원수를 밀어 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머나먼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같이
뻗어 가고 싶었노라

모윤숙 시인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의 시가 국군의 전당에 걸려 있었으나 후일 일본군을 찬양한 시의 발견으로 내려졌고 그의 친일시는 아래와 같다.

모윤숙(毛允淑), 1910~199

동방의 여인들

대일본제국의 서양 정복전에 협력하자
- '동방의 여인들' 발표

- 대동아 공영권의 이념을 살려 조선 여인으로 하여금 고루한 민족 관념을 버리고 일본의 서양 정복전에 협력해야 한다는 주제
- '동방의 여인들' 내용은 아래와 같음

비단 치마 모르고
연지분도 다 버린 채
동아의 새 언덕을 쌓으리다
온갖 꾸밈에서
행복을 사려던 지난 날에서
풀렸습니다
벗어났습니다

들어보세요
저 날카로운 바람 새에서
미래를 창조하는
우렁찬 고함과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산 발자욱 소리를

우리는 새날의 딸  
동방의 여인입니다

호산나 소남도
  
일본군의 싱가포르 함락을 찬양함

- '호산나 소남도' 발표 (매일신보, 1942. 2. 21)
- 싱가포르를 '소남도'로 이름 부름
- 일본군의 싱가포르 점령을 찬양
- 서구에 대한 '동방'의 단결을 강조
- 침략과 점령을 일본에 의한 해방으로 풀이
- 일제의 침략을 미화하고 서구 제국주의와의 전쟁을 예찬
-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아시아 약소 민족국가의 점령을 미화
- '호산나 소남도'의 내용은 아래와 같음

2월 15일 밤!
대아시아의 거화!
대화혼의 칼을 번득이자
사슬은 끊이고
네 몸은
한 번에 풀려 나왔다
처녀야! 소남도(昭南島)의 처녀야!

거리엔 전승의 축배가 넘치는 이 밤
환호소리 음악소리 천지를 흔든다
소남도!
대양의 심장!
문화의 중심지!
여기 너는 아세아의 인종을 담은 채
길이길이 행복되라
길이길이 잘살아라

어린 날개

날아라 맑은 하늘 사이로
억센 가슴 힘껏 내밀어
산에 들에 네 날개 쫙 펼쳐라.
꽃은 웃으리, 잎은 춤추리.

아름드리 희망에 팔을 벌리고
큰 뜻 큰 세움에 네 혼을 타올라
바다로 광야로 나는 곳마다
승리의 태양이 너를 맞으리.
고운 피에 고운 뼈에
한번 새겨진 나라의 언약
아름다운 이김에 빛나리니
적의 숨을 끊을 때까지
사막이나 열대나
솟아솟아 날아가라.

사나운 국경에도
험준한 산협에도
네가 날아가는 곳엔
꽃은 웃으리 잎은 춤추리라.

인간이 하늘을 가릴 수는 있지만 결코 손바닥으로는 가릴 수는 없다. 인간이 곧 하늘이기 때문이다. 총칼로 권력을 손에 쥐고 왕도 아닌 민주주의 시대에 18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독재자의 칼을 휘두르다가 총을 든 자는 총으로 망한다는 역사적 명언처럼 총으로 생을 마감한 그는 그의 말처럼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었다. 인간은 빵으로 사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다. 감정의 파토스를 넘어 이성의 로고스의 지배를 받는 동물임을 분명히 알아 불행한 과거에 집착을 과감히 떨쳐 버리고 본래적 자기로 되돌아오는 참 인간이 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유신을 결사반대 하던 민주투사 장준하선생 최종길 교수 등  얼마나 많은 민주 투사들이 그의 질긴 권력의 그를 아래서 희생의 제물이 되었는가? 생각만 하여도 끔직한 일이다.
걷는 자만이 앞으로 갈 수 있다. 불행하고 비굴했던 과거는 과감히 털어버리고 불상한 연민에서 벗어나 앞산위에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자.
여기에 너와나 그리고 우리 민족의 아름답고 밝은 미래가 있다.
인간은 미워하지 않아도 저지를 그의 행위를 생각하여 이글을 인터넷에서 퍼다 옮겨 놓는다. 육도삼략(六韜三略)의 저자 태공망9太公望) 강태공의 말처럼 ‘천하는 한사람의 것이 아니고 천하 사람의 천하’이다.
침묵은 악의 편이다.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독재자의 편에 서서는 절대로 안 된다.  지은 죄 앞에는 추상 같은 역사의  단죄의 칼날이 기다리고 있다.

박정희의 친일 행적 9가지..
청람 2012.02.09. 11:13

① 일제에 대한 충성심이 태동하다.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자원입학(1940년 4월 4일).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나이 23세. 입교 동기생으로 240중 조선인 12명. 15등으로 입학 성적 15등이었다.

②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일제 충성심으로 무장하다.
만주군관학교를 투철한 친일정신과 열성적 훈련으로 수석 졸업의 영광을 차지한다. 수석졸업의 영광으로 금시계를 선물로 받고 졸업생 대표로 천황찬양으로 가득한 답사를 읽었다.
당시 친일신문〈만선일보 1942. 3. 24〉기사 일부를 인용하면...
… 빛나는 우등생 오카이(日系), 고야마(日系), 다카기(鮮系-박정희) 등 5명에게 각각 은사상증의 전달이 잇고 폐식하였다.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조선인은 대략 제1기∼제7기까지 50여명 정도인데 만군 출신들은 훗날 대통령, 국회의장, 국무총리, 국방장관, 군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군사령관, 군단장, 연대장, 고급 참모 등 정부와 군의 요직에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중요 인물이 된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를 지도했던 한 일본인 장교의 말을 들어보면 다카기 마사오(박정희)가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을 철투철미 하게 일본 제국주의에 충성하고자 하였나를 알 수 있다.
매년 가을이 되면 군관학교에는 생도 전원이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행군연습을 실시했다.
박정희는 그때 내가 맡은 소대의 제1분대장이었는데, 다른 분대장과는 달리 기합이 들어 있었고, 의욕도 대단했다.
진지공격 연습 같은 때 대단히 어려운 임무가 부여 되더라도 박정희는 그 임무를 달성하려는 의욕으로 꽉 차있었다.
박정희는 말수가 적고 속에 투지를 감춘 사나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라고 진술하고 있다.

③ 완전한 일본인이 되다.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관례대로 우등생에게 주어지는 일본육사 특전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육사를 입학하려고 군관학교 시절 남들보다 철저한 황군정신으로 몸과 마음을 닦고 열심히 공부한 것이다.
일본 육사에서도 진지한 학습태도로 모범생이란 평을 받고 3등이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한다.
조선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일본 육군 대신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이로써 박정희는 완전한 일본인(다카기 마사오)이 되었다. 아니 대일본제국의 군인이 되었다.
훗날 다카기 마사오(박정희)가 10.26으로 죽었을 때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한 일본외교관은 이러한 말을 했다.
대일본제국 최후의 군인이 죽었다." 라고 하였다.

④ 항일세력의(독립군) 토벌 작전에 110회나 참가하다.
소위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본토의 마쓰야마 제 14연대에 처음 배속을 받았으나 진정한 일본군인을 참작하여 만주 제8연대의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모란강 부근의 영안으로 전출되었다가 화북지방의 열하 보병 제8군단에 배속된다.
영안지방 →간도에서 활약한 한인 독립군부대가 북만주로 이동할 때와 노령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서쪽으로 진출할 때에 주둔하던 요충지였다.
열하지구 ⇒ 일본군에 대한 항일 투쟁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다.
항일세력은 팔로군, 군부군, 광복군, 조선의용군, 소규모의 게릴라 (유격대) 등이었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이곳에 임관한지 1년만에 중위로 진급한다. 군의 편제상 소대장은 최전선에 배치된다.
여기에서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열성적으로 항일부대를 토벌했던 공로로 승진이 빨랐던 것이다.

⑤ 일본군의 특수부대(철석부대) 산하의 간도 특설대 활약
일본은 만주 서남부와 중국북부에 투입할 용맹한 부대를 선발하여 특수부대(철석부대)를 만든다.
여기에 조선인 부대인 간도특설대도 선발되는 영광(?)을 얻는데 그 속에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이주일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중국북지(열하성 만리장성 남방 평곡-북경 동북방)로 투입되어 항일 세력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여기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 소수민족들의 특수부대는 많았다.
조선인의 간도특설대, 러시아인의 찬야부대, 몽고인의 기야부대, 회교인의회교부대, 오르치온족의 공작대 등이 있었는데..간도특설대가
가장 강력했다고 한다.
한가지 예를 들면 일본군, 만주군이 못해내는 작전을 간도특설대가 가서는 거뜬히 해치우곤 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조선인 공적평가에 인색한 일본인들도 간도특설대에 대해서는 "상승의 조선인부대" 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가 소속한 특수부대(간도특설대) 요원들이 얼마만큼 항일군의 토벌에 커다란 공을 세웠는지를 대변해주는 이야기이다.

⑥ 변신의 달인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보통학교 교사에서 만주군 지원 입대..만주군관학교의 수석졸업과 금시계의 영광..3등으로 졸업한 일본육사 생활도..만주에서 관동군으로 복무하며 항일세력을 토벌하던 생활도..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날아가 버린다.
친일파 아니 일본인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1945년 8월 15일 이후에는 어떤 행동을 하였을까?
패잔병의 낭패감을 맛보며 절망에 빠진 것도 잠시였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곧바로 변신을 시도한다.
일본군복을 벗어 던지고 민간복으로 같아 입고 만주군의 부대를 탈영하여 피난민으로 가장하여 피난민 대열에 끼어 들어 북경으로 들어가 광복군에 합류한다.
우리는 여기서 유리한 상황에만 빌붙는 기생충 같은 기회주의자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이것뿐만 아니다. 후일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좌익계열의 장교가 되지만 여순 사건으로 불리해지자 천명이 넘는 동료들을 밀고하여 죽음으로 몰아 넣고 자기만 살아남는다.
또한 이후에 다시 우익장교가 된다.
그리고 다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여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주고 기회주의자란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보여 준 인물이었다.
속성이 이런 인간이니 일본 패망 후 곧 바로 광복군으로 위장하여 합류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독립 운동가들을 적극적으로 토벌하던 일본의 진짜군인 다카기 마사오(박정희)가 광복군 흉내를 낸 것이다.
구토가 나는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행동이다.

⑦ 일본군인 생활에 대한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향수
만주군관학교⇒일본육사⇒관동군으로 이어진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복무기간은 5년 정도이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나이 23세에서 28세까지의 기간이다.
하지만 이 기간동안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몸과 마음을 환골탈퇴하여 일본인 일본군인이 되어 정서체계와 사고방식 등 모두 일본놈 그 자체였다. 그 증거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나타난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뒤에도 틈만 나면 주일 대사관을 통하여 입수한 일본 사무라이 영화를 관람하고 일본 검도를 즐기는 것이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취미 생활이었다.
또한 당시 조선일보 주필 선우휘씨 등과 청와대에서 술을 마시며 일본천황의 교육칙어를 번갈아 외우는 내기나 시합을 하곤 했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지독한 향수를 엿 볼 수 있다.
그래도 이런 것은 얌전한 행위에 속했다. 다음 글을 읽어 보자 압권이다.
중앙일보. 1991. 12. 14 ..계엄선포 한 달 전쯤인가(1971. 10. 17 계엄이 선포되었다)
박대통령이 나를 불러요.(여기서 '나'는 강창성 전 보안사령관, 전민주당국회의원) 집무실에 들어갔더니 박대통령은 일본군 장교 복장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죽장화에 점퍼차림인데 말채찍을 들고 있었어요. 박대통령은 가끔 이런 복장을 즐기곤 했지요. 만주군 장교시절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다카기 마사오 중위로 정일권 대위 등과 함께 일본군으로서 말달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거죠. 박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할 때면 그분은 항상 기분이 좋은 것 같았어요..
이런 미친 인간이 18년간 우리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통치 기간 만주군관학교 출신들을 인재로 등용하여 나라를 좀먹고 민족정기를 회복할 수 없도록 망쳐 놓았다.

⑧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 5.16후 우방 각국에 친선사절을 보냈는데 제일 먼저 보낸 곳은?
답 : 일본
-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먼저 방문한 나라는?
답 : 일본
- 최초로 대외정책을 밝힌 기자회견의 주제는?
답 : 한·일 교섭의 재개
-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의 망언 일본 방문중 동경의 한 요정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여 동석했던 일본인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나는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군인이지만 명치유신 당시 일본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지사들의, 나라를 위한 정열만큼은 잘 알고 있다.
그들 지사와 같은 기분으로 해볼 생각이다..라고 말하였다. 그것도 유창한 일본어로 말이다.
1963년 12월 17일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일본의 자민당 부총재 오노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은 걸작의 말을 한다.
[..박정희 대통령과는 부자 사이 같은 관계로서 아들의 경축일을 보러 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즐겁다..」라고 하였다.
사실 자민당의 보수 세력은 박정희와 군대생활을 같이 했던 일본제국의 동료 및 상관들이었다.

⑨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2
일본군국주의 세력의 정신적 유대는 대일 굴욕회담을 (한일협정) 성사시킨다.
여기서 식민지 지배 피해에 대한 거의 모든 권리와 주장을 포기한다.
또한 1973년 서울 지하철 차량부정도입 사건을 저지른다. 일본에서 지하철차량 186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일본에서 3,204만엔하는 가격을 6,350만엔이란 두 배 정도나 비싼 가격으로 계약하였다.
이것은 만주군 출신 선배들의 로비와 정치자금의 리베이트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우주에 으뜸이나 이는 천지인(天地人)의 아름다운 조화 속에서 만이 이룩될 수 있다.
모든 생명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언젠가는 사라지는 유한적 존재다. 마치 봄에 새싹이 돋고 꽃이 피어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 속에서 성장하고, 가을에 성숙한 후 낙엽이 져서 모토로 돌아가는 낙엽귀근(落葉歸根)의 철리와 같은 것이다.
생성소멸(生成消滅)이 우주의 섭리요, 영고성쇠(榮枯盛衰)가 생명들의 운명이다. 일생일사(一生一死)는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가 없다. 적어도 죽음에 있어서는 부귀빈천(富貴貧賤)이 예외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주어진 틀 속에서 고뇌하고, 갈망하고, 방황한다. 불가에서 인생이 고해(苦海)라고 갈파한 것은 삶과 죽음의 냉엄한 통찰이다
세계적 명문장의 대한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의 친일 행적이나, 과거 고등국어에 실렸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의 모윤숙 시인이 후일 친일 행적이 발각되어  친일 인사로 기록된 것도 가슴 아픈 역사적 비극이다. 해방이후 아무리 급했더라도 옥석을 가려 장래를 기약하는 후세들에게 가르칠 교과서에서는 친일 인사들의 작품은 배제시켜야 옳았을 일이다.
정치가의 손에는 예리한 권력의 칼이 들려져 있고, 문인들에게는 날카로운 문장의 펜이 쥐어져 있다. 당장에는 칼 앞에 펜이 약할 수 있으나 역사적 긴 안목으로 보면 항상 펜이 이긴다. 손에 펜을 쥔 시인이나 문사들은 돈과 칼을 함께 거머쥔 권력자들을 칭송하거나 그 앞에 절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저두굴신(低頭屈身)은 인생의 뼈아픈 치욕이요, 비극이기 때문이다. 선거 때만 되면 이때다 기다렸다는 듯이 정치판에 뛰어드는 학자나 문인들은 사이비들로서 후일 역사적 비판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과거 박정희가 혈서를 쓰고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 한 경력이나, 명시인 미당이나 노천명 모윤숙 최남선등이 후일 칭송이 아닌 비평을 듣는 것을 거울로 삼아야 할 일이다. 분명 붓은 칼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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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 김장, 그 겨우살이 준비 김학 2012.12.13 246
637 내 글을 빛나게 해 준 분들께 보내는 감사의 편지/박세정 김학 2012.12.15 224
» 시인과 정치가/정용진 시인 정용진 2012.12.17 510
635 망자 (亡者) 앞에서... 장동만 2012.12.19 69
634 사랑이 그리운 계절/문우 여러분 기쁜 성탄과 새해를 맞이하세요/정용진 시인/ 정용진 2012.12.23 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