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도 수상한 그녀가 있을까/김효순
2014.02.21 05:33
내 안에도 수상한 그녀가 있을까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 효 순
요즘 들어 부쩍 자주 영화관을 찾는다. 예전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지금까지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하다 퇴근하면 식사준비와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바빴고, 휴일이면 밀린 빨래와 청소에 늘 쫒기 듯 살았다. 아침이면 단 몇 분이라도 더 자고 싶어 안달했고, 쉬는 날이면 낮잠 한 번 실컷 자는 것이 오랫동안의 꿈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진정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어느덧 두 아들이 장성하여 집을 떠났고, 결혼 초부터 함께 사셨던 시아버님께서 몇 년 전 세상을 뜨신 뒤, 팔순 시어머님과 예순을 바라보는 남편, 나 이렇게 셋만 남게 되었다. 북적이던 집안이 조용해졌다. 복잡한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봉실산자락으로 들어온 뒤로는 때때로 적막하기조차 하다. 휴일에도 일이나 가족이 아닌 순수하게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음악회에 가고, 영화 보고, 책 읽고, 산책하고……. 이런 소소한 일들을 할 수 있는 꿈같은 시간들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 영화를 본 것은 여고모임에서였다. 솔직히 영화보다도 그저 같이 모여서 점심 먹고 수다나 실컷 떨어보자는데 더 마음이 끌렸다. 여럿이 모이다보니 부담 없이 웃고 떠드는 코미디 영화로 의견을 모았고, 그래서 보게 된 영화가 바로 ‘수상한 그녀’였다.
제목부터 수상했다. 왜 그녀가 수상할까. 이유는 간단했다. 외모는 20대 아가씨인데 행동이나 말씨, 식성은 영락없는 70대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욕쟁이할매 오말순 여사가 사진관에서 영정사진을 찍다가 오드리 햅번을 닮은 우아하고 예쁜 아가씨 오두리로 변한다는 설정은 발상자체가 유쾌했다. 사진관을 찾은 이유를 알면 더 통쾌하다. 남편 없이 젊어서 혼자되어 어렵게 키워낸 아들부부가 이제는 자신을 요양원으로 보내려한다는 사실을 알고 서글프기도 했지만 내심으로는 어디 나 없이 잘사나 두고 보라며 분기탱천하여 가출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20대 오두리는 노래를 잘해서 실버카페나 노래자랑에서 인기를 얻고 전성기를 누린다. 자신을 못 알아보는 손자와 방송국 피디 같은 젊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대목이나 한평생 오말순 여사를 아씨로 짝사랑하던 친구 할아버지가 뒤늦게 오두리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젊어지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대목은 상쾌하기까지 했다.
분명 분장이나 표정, 대사들이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긴다. 오두리가 노래를 부를 때면 왠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특히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옛일을……’로 시작되는 ‘하얀 나비’를 열창할 때는 더욱 그랬다. 젖먹이 아들을 등에 업고 시장바닥에서 장사하던 그녀에게도 가수가 되고 싶던 20대 시절이 있었다. 온갖 고생을 했던 지난 시절을 생각하며 애절하게 부르는 그녀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나의 어머니 오옥 여사도 그렇게 우리를 키우셨을 것이다. 5남매 중 넷째인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혼자서 자식들을 학교 보내고 시집장가 보내셨으니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생각하면 이내 가슴이 아프다. 비단 나의 어머니뿐이랴. 누구랄 것도 없이 일제 강점기와 6ㆍ25 동란을 겪으면서 그저 하루하루 밥 굶지 않고 자식 학교 보내며 사는 것에 급급했던 우리 부모 세대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 부르는 오두리의 눈에 흐르는 눈물이 나에게는 달리 보였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로 기억된다. 동네잔치에서 술을 한 잔 하시고 밤늦게 들어오신 어머니께서 기분이 좋으신지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듣는 어머니의 노래였다. 무슨 민요자락이었다. 노랫소리에 잠이 깬 나는 차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노래하는 어머니를 어쩐지 내가 보면 안 될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불 속에서 잠을 자는 척하고 들은 어머니의 노래는 구슬펐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같은 자락을 부르고 또 부르셨다.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는 노래는 한없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아 이불을 살짝 들춰보았다. 어머니는 흐느끼고 계셨다. 어머니가 왜 우시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났다. 소리 내지도 못하고 이불속에서 훌쩍이다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남편 없이 혼자 살기가 너무 고단하고 또 아버지가 너무 그리워서 우시지 않았을까 싶다. 여하튼 그때 들은 어머니의 노래 소리와 그때 본 어머니의 눈물은 그 뒤로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오두리의 노래와 눈물을 보면서 그때 그날 밤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어머니에게도 꿈 많은 20대 꽃다운 청춘이 있었을 것이다. 하고 싶던 일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았을 것이다. 어머니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부모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러나 자식들은 그 점을 너무 쉽게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더구나 손자세대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늙고 힘없는 모습으로 잔소리나 하는 존재들로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영화는 수상한 그녀, 오두리를 통하여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대신해서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크게 한 방 날리고 있었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외로움과 빈곤으로 우울한 삶을 살면서 자살을 생각하는 노인 세대들이 마지막으로 이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바로 '우리도 너희와 같은 시절이 있었노라'가 아닐까.
시대가 다르고 세태는 달라져도 우리 부모들도, 그들이 키워낸 우리도, 그리고 우리가 키워낸 자식들도, 그 자식의 자식들도 누구나 빛나는 20대 시절과 꿈도 있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좋아하는 것도 많다. 그러고 보면 우리 가슴속에는 누구나 오두리가 되고 싶은, 수상한 그녀가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시들어가는 꽃잎처럼 언젠가는 떠나야 하기에 그리 슬퍼할 것도 없을지 모른다. 꽃잎은 시들어도 씨앗을 만들고 그 씨앗이 다음해에 또 꽃으로 피어날 것이니 서러워할 것도 없을지 모른다.
그날 이후,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수상한 그녀가 돌아온 듯하다. 그 옛날 어머니가 민요자락을 부르고 또 부르셨듯이 나 역시 ‘하얀 나비’ 한 자락을 부르고 또 부르면서 나도 탱글탱글한 오두리가 되어보는 즐거운 상상 속에 빠져본다.
음~ 생각을 말아요 / 지나간 일들은 / 음~ 그리워 말아요 / 떠나갈 님~인데 / 꽃잎은 시들어요 / 슬퍼하지 말아요 / 때가 되면 / 다시 필걸 / 서러워 말아요 음음~ 음음~. (2014. 2. 20.)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 효 순
요즘 들어 부쩍 자주 영화관을 찾는다. 예전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지금까지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하다 퇴근하면 식사준비와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바빴고, 휴일이면 밀린 빨래와 청소에 늘 쫒기 듯 살았다. 아침이면 단 몇 분이라도 더 자고 싶어 안달했고, 쉬는 날이면 낮잠 한 번 실컷 자는 것이 오랫동안의 꿈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진정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어느덧 두 아들이 장성하여 집을 떠났고, 결혼 초부터 함께 사셨던 시아버님께서 몇 년 전 세상을 뜨신 뒤, 팔순 시어머님과 예순을 바라보는 남편, 나 이렇게 셋만 남게 되었다. 북적이던 집안이 조용해졌다. 복잡한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봉실산자락으로 들어온 뒤로는 때때로 적막하기조차 하다. 휴일에도 일이나 가족이 아닌 순수하게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음악회에 가고, 영화 보고, 책 읽고, 산책하고……. 이런 소소한 일들을 할 수 있는 꿈같은 시간들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 영화를 본 것은 여고모임에서였다. 솔직히 영화보다도 그저 같이 모여서 점심 먹고 수다나 실컷 떨어보자는데 더 마음이 끌렸다. 여럿이 모이다보니 부담 없이 웃고 떠드는 코미디 영화로 의견을 모았고, 그래서 보게 된 영화가 바로 ‘수상한 그녀’였다.
제목부터 수상했다. 왜 그녀가 수상할까. 이유는 간단했다. 외모는 20대 아가씨인데 행동이나 말씨, 식성은 영락없는 70대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욕쟁이할매 오말순 여사가 사진관에서 영정사진을 찍다가 오드리 햅번을 닮은 우아하고 예쁜 아가씨 오두리로 변한다는 설정은 발상자체가 유쾌했다. 사진관을 찾은 이유를 알면 더 통쾌하다. 남편 없이 젊어서 혼자되어 어렵게 키워낸 아들부부가 이제는 자신을 요양원으로 보내려한다는 사실을 알고 서글프기도 했지만 내심으로는 어디 나 없이 잘사나 두고 보라며 분기탱천하여 가출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20대 오두리는 노래를 잘해서 실버카페나 노래자랑에서 인기를 얻고 전성기를 누린다. 자신을 못 알아보는 손자와 방송국 피디 같은 젊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대목이나 한평생 오말순 여사를 아씨로 짝사랑하던 친구 할아버지가 뒤늦게 오두리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젊어지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대목은 상쾌하기까지 했다.
분명 분장이나 표정, 대사들이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긴다. 오두리가 노래를 부를 때면 왠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특히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옛일을……’로 시작되는 ‘하얀 나비’를 열창할 때는 더욱 그랬다. 젖먹이 아들을 등에 업고 시장바닥에서 장사하던 그녀에게도 가수가 되고 싶던 20대 시절이 있었다. 온갖 고생을 했던 지난 시절을 생각하며 애절하게 부르는 그녀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나의 어머니 오옥 여사도 그렇게 우리를 키우셨을 것이다. 5남매 중 넷째인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혼자서 자식들을 학교 보내고 시집장가 보내셨으니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생각하면 이내 가슴이 아프다. 비단 나의 어머니뿐이랴. 누구랄 것도 없이 일제 강점기와 6ㆍ25 동란을 겪으면서 그저 하루하루 밥 굶지 않고 자식 학교 보내며 사는 것에 급급했던 우리 부모 세대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 부르는 오두리의 눈에 흐르는 눈물이 나에게는 달리 보였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로 기억된다. 동네잔치에서 술을 한 잔 하시고 밤늦게 들어오신 어머니께서 기분이 좋으신지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듣는 어머니의 노래였다. 무슨 민요자락이었다. 노랫소리에 잠이 깬 나는 차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노래하는 어머니를 어쩐지 내가 보면 안 될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불 속에서 잠을 자는 척하고 들은 어머니의 노래는 구슬펐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같은 자락을 부르고 또 부르셨다.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는 노래는 한없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아 이불을 살짝 들춰보았다. 어머니는 흐느끼고 계셨다. 어머니가 왜 우시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났다. 소리 내지도 못하고 이불속에서 훌쩍이다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남편 없이 혼자 살기가 너무 고단하고 또 아버지가 너무 그리워서 우시지 않았을까 싶다. 여하튼 그때 들은 어머니의 노래 소리와 그때 본 어머니의 눈물은 그 뒤로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오두리의 노래와 눈물을 보면서 그때 그날 밤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어머니에게도 꿈 많은 20대 꽃다운 청춘이 있었을 것이다. 하고 싶던 일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았을 것이다. 어머니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부모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러나 자식들은 그 점을 너무 쉽게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더구나 손자세대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늙고 힘없는 모습으로 잔소리나 하는 존재들로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영화는 수상한 그녀, 오두리를 통하여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대신해서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크게 한 방 날리고 있었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외로움과 빈곤으로 우울한 삶을 살면서 자살을 생각하는 노인 세대들이 마지막으로 이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바로 '우리도 너희와 같은 시절이 있었노라'가 아닐까.
시대가 다르고 세태는 달라져도 우리 부모들도, 그들이 키워낸 우리도, 그리고 우리가 키워낸 자식들도, 그 자식의 자식들도 누구나 빛나는 20대 시절과 꿈도 있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좋아하는 것도 많다. 그러고 보면 우리 가슴속에는 누구나 오두리가 되고 싶은, 수상한 그녀가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시들어가는 꽃잎처럼 언젠가는 떠나야 하기에 그리 슬퍼할 것도 없을지 모른다. 꽃잎은 시들어도 씨앗을 만들고 그 씨앗이 다음해에 또 꽃으로 피어날 것이니 서러워할 것도 없을지 모른다.
그날 이후,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수상한 그녀가 돌아온 듯하다. 그 옛날 어머니가 민요자락을 부르고 또 부르셨듯이 나 역시 ‘하얀 나비’ 한 자락을 부르고 또 부르면서 나도 탱글탱글한 오두리가 되어보는 즐거운 상상 속에 빠져본다.
음~ 생각을 말아요 / 지나간 일들은 / 음~ 그리워 말아요 / 떠나갈 님~인데 / 꽃잎은 시들어요 / 슬퍼하지 말아요 / 때가 되면 / 다시 필걸 / 서러워 말아요 음음~ 음음~. (2014.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