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ca 샌디아고 에덴농장 정용진 시인의 북한기행| ─*∥회원 작품 해설방
나은 길벗 | 조회 48 |추천 0 | 2009.02.22. 09:10

북한 기행

               정용진




  1) 여는 말




금년은 조국광복 60주년이 되는 기념비적 해다. 일본과의 36년 압정의 아픔을 말끔히 씻고 양국이 화해하고 선린으로서 평화를 누리기로 한 해인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갑자기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화해에 금이 가고 소란스러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한편 소련 모스코바에서는 세계 각국 정상들이  모여 2차 대전  전승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해에  엘에이 민주평통 48명은 비료 와 염소 150마리를  준비하여 중국 베이징을 거쳐 평양을 방문하기로 한 것 이다. 나도 이들과 일행이 되어 베이징에서 만리장성과 고전 원림의 으뜸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금(金)대에 건조한 290헥타르의 행궁으로 자희 태후가 거하던 이화원을 보고 솔로몬의 영화가 동양에 여인 서태후에게도 있었구나 생각하면서 베이징 공항에서 고려항공을 타고 한 시간 반 후 평양공항에 도착하여 북에서 나온 영접 객들의 환영을 받고  고려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2) 대동강의 시정(詩情)




평양은 봉화산(196미터), 대성산(270미터), 용악산(292미터) 을 주산으로 대동강과 보통강이 엄마와 딸같이 굽이굽이 흐르는 가운데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모란꽃 형상이라는 모란봉이 우뚝 솟아있고 능라도가 한 폭의 수채화 같이 아름답다. 모란봉에는 최승대. 을밀대. 부벽루가 청류벽 위에 그림처럼 곱고 강변에 대동문. 평양 종. 연광정이 일 열로 정연하게 배열되어 있다.

대동문위에는 한석봉의 친필로  “대동문에 올라 손을 뻗치면 대동강 물을 손에 잡을듯하다”는 읍호루(挹灝樓)의 현판이 고색창연 하게 걸려있다.

일 찌기 시인 常春 鄭知常은 대동강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하여 “대동강”이란 시를 이렇게 읊었다.

  

비개인 강둑엔 봄이 오고요          (雨歇長堤 草色多)

임 보내는 남포엔 이별 곡 울려난다. (送君南浦 動悲歌)

흐르는 대동강 물 언제나 다 하리    (大洞江水 何時盡)

해마다 이별의 눈물 물결 보태네.     (別淚年年 添綠波)

  

인연이 다하면 슬픔이 오고 슬픔이 지나면 흥함이 온다고 하였던 가.

(苦盡甘來 興盡非來) 버드나무가 유난히 많아서 류경이라는 별명을 가진 평양시, 저녁에 산책 겸 대동강 변을 찾았다. 사위어가는 여름달이 버드나무 가지위에 걸려있고 강 언덕 여기저기에서는 청춘남녀들이 사랑의 밀어를 빚어 밤 강물위에 띄워 보내고 있었다. 아름다운정경이 눈에 어린다. 정지상의 시처럼 과연 대동강은 사랑이 흐르는 시정과 낭만의  강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인 김황원(金黃元)은 부벽루에 올라 천하절경에 감동한 나머지  부벽루를 지난 시인 묵객들이 한수씩 적어 내건 시들이 마음에 들지 아니하여 즉석에서 부벽루 송(浮碧樓頌)을 읊었으니




긴 성의 한편으로 강물이 넘쳐 넘쳐흐르고        (長城一面 溶溶水)

너른 들판 동쪽으로는 산이 점 점 점             (大野洞頭 點點山)

  

  이라고  단 두 줄에  눈앞에 전개되는 풍광을 단숨에 읊어 놓고는 해가 지도록 다음 연을 생각 하였으나  종래 잇지 못하고 부벽루 기둥을 붙들고 울다 돌아갔다는 전설이 시인의 마음을 달군다. 넘치는 것은 약간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고사가 이래서 나온 것이 아닐까. 내가 그 뒤 두 연을 이렇게 마음속에 적었다.




황원시백은 어디로 가셨는가     (黃元詩伯 何處去)

천리강산 찾아 수봉이 왔는데    (千里江山 秀峯來)




어이된 영문인지 위 시 두 연과 “천하제일 강산”이란 현판이 연광정에 걸려있고 부벽루는 오르지 못하게 하여 멀리서 바라보며 시심을 엮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대동강




평양 벌 굽어 도는

어머니 강

대동강.




엄마 찾아

굽이굽이 맴돌다가

모녀가 만난 기쁨에

얼싸안고

춤을 추는

딸의 강 보통강.




모란봉, 최승대

을밀대, 부벽루

청류벽의 풍광에 반하여

가던 발길을 멈추고

넋을 잃은

모녀의 강.




한석봉(韓石峯). 김황원(金黃元)도

일필휘지(一筆揮之)

서경(西京) 대동문, 연광정이라

이끼 낀 천년의 세월이

어제와 같이

창창(蒼蒼)히 흐르는

류경(柳京)

대동강, 보통강.             <정용진>




3) 평양 시내관광




첫날 5월1일(일))은 초가로 안온하게 단장된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 고향집을 찾아보고 봉수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는 명칭을 들을 만큼 기독교가 일찍부터 전파된 곳이다. 많은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한 곳이요, 숭실, 숭의등 미션스쿨이 후진을 양성하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에는 봉수교회와 어려서 김일성이 예배를 드렸다는 칠곡교회 그리고 장충성당이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봉수교회를 찾아와 예배를 드렸다. 분단 조국의 조속한 통일을 기원하고, 가난으로 굶주리는 북한 동족들의 영육의 건강을 위하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진리가 하루속히 이 땅에 전파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북한 교우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빠리의 개선문보다 10메타가 더 높다는 평양의 개선문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평양냉면의 원조라는 옥류관에서 냉면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대동강 능라도를 바라보면서 먹는 쫄깃쫄깃한 냉면 맛은 과연 일품이었다.

우리  나라에는 전주  비빔밥, 수원, 일동, 갈비, 평양냉면,  함흥냉면. 개성 보쌈, 등 지역 특성에 맞는 명 음식들이 전해오고 있어서 여행객들의 입을 즐겁게 해준다.

평양시내의 중심부를 흐르는 대동강 변에는 주체사상탑과 류경 호텔이 높이 솟아있다. 주체탑이 권력과 힘의 상징이라면 류경 호텔은 경제력과 부의 상징인데 화강석으로 쌓아올린 주체탑은 윤기가 흐른 채 당당히 서있는 반면 105층의 류경 호텔은 삼각형으로 외형만 갖추고 내장은 미완성으로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서있다. 권력과 힘은 체제를 지녔으나 경제에는 실패하였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권위와 경제력이 악수를 해야 국가가 바로서는 것이다.

내가 심히 놀란 것은 동해상에서 나포되어 원산항에 억류되었던 미군 정찰 첩보선 플레블로호가 평양으로 옮겨져 대동강 변에 매여 있다는 사실이다.

점심 후에는 화강석으로 170 미터를 쌓아올린 주체사상탑을 참관하였고, 대동강 푸른 물결을 가르고 솟구치는 두 개의 거대한 분수를 바라보면서 중앙역사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그 앞이 김일성 광장이다. 대체적으로  민족문화의 유산들이 잘 보전되어 있었고 고구려 고분 벽화와 모형이 관심을 끌었다. 일부 빈자리는 서울에서 개최되고 있는 고구려 유물전시관에 출품되었다는 안내자의 설명이다. 북의 유물들이 남한에 옮겨 전시된다니 격세지감이 컸다. 계속하여 대동강 변에 대동문, 평양 종, 연광정을 찾아보았다. 오천년의 역사 속에 고도(古都)의 혼과 면모를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통일이 되어 남한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수확여행을 다니는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백두산(白頭山)




흰 모시적삼

가려입고

억년 세월

물동이를 이고서서

압록, 두만 두 젖줄로

삼천리금수강산을 적셔주는

임은

우리들의 자애로운 어머니

백두산.




천지(天池)는

정(淨)한 수(水)로 넘치는

이 나라 큰맘이요

하늘 향해 솟은

늘 푸른 소나무들은

이 민족의 기상일레.




보라

어느 누가

이 나라 이 백성을

넘보랴, 범하랴




여기는

영원무궁토록

우리의 후손들이

민족혼을 씨 뿌리고

열매 맺을 텃밭이라




우리 모두는

조상들이 물려준

이 아름다운 땅에서

경천애인, 홍익인간의

거룩한 뜻을 기리며

혼 불로 타오르리라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자궁(子宮)

백두산.                            <정용진>




4) 묘향산 보현사의 구국정기




백두산과 단군릉을 찾는다는 안내자에 말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으나 1메타가 넘게 쌓인 눈으로 인하여 백두산 등정의 꿈을 접고 백두산을 향하는 마음으로 시를 한수 적었다.

그리고 5월2일(월) 조반 후 평양을 출발하여  고속도로로 청천강을 건너면서 헐벗은 산들과 가난한 마을, 힘없어 보이는 농부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경제가 살아야 운동도 이기듯 산이 푸르고 땅이 기름져야 국민들이 주리지 아니하는데 어쩌다가 이리 되었나 싶다.

철모르는 과수원의 배꽃들과 묘향산의 벚꽃들은 흐드러지게 봄을 장식하고 있었다. 논을 가는 소도 뼈가 드러난 모습, 부인들이 못자리에 바가지로 타들어가는 어린모에 물을 뿌려주고  있었다. 몇 시간 후면 다시 마르겠는데 나도 목이 마름을 금할 수가 없었다.

평양 시내의 백 팩을 메고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웅장하게 솟은 향산 호텔을 지나  김일성에게 1945년부터 사망 때 까지 178개국에서 전한 219,370점에 달하는 선물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이 전해준 황금송아지가 눈에 들어왔다. 모택동이준 방탄열차도 있었다.

다른 나라 국가원수들이 받은 선물들을 개인 소장하는데 좀 특색이 이 있구나 생각하였다. 관람을 끝내고 김정일 선물관도 들러보았다.

묘향산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점심을 든 후 등산을 하고 시원한 비선폭포아래서 기념사진도 몇 장 찍었다.

평양으로 오는 길에 서산대사가 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묘향산 보현사(普賢寺)를 찾았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 서산대사의 제자 사명대사도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는 대열에 동참하신 분이다.

보현사는 968년 (고려 광종19년)에 탐밀(探密), 광곽(廣廓) 두 법사에 의하여 창건된 대찰이요, 호국발원의 도량이다. 전국 명산대찰을 두루 찾은 서산대사는 “금강산은 아름다우나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웅장하나 아름답지 못하며, 묘향산을 아름답고 웅장하다. (金岡山 秀而不莊, 智異山 莊而不秀, 妙香山 秀而亦莊)이라고 강산 순례의 소견을 피력하였다.

묘향산에서 파고다공원의 원각사 탑과 비슷한 13층탑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선조들이 불심이 저리 깊고 정성이 지극하였으니 서산대사가 승병을 이끌고 구국 대열에 서신 것이 결코 우연 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웅전 뒤뜰의 갈대들도 쏴아 쏴아 천년의 바람결을 가르고 있었다.

서산대사는 85세로 이 절에서 입적하면서 임게송으로




“생이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구름이 스러짐이다.

뜬구름 자체가 본시 실체가 없 것, 나고 죽고 오고 감이 다 그와 같도다.

(生也一片 浮雲起, 死也一片 浮雲滅, 浮雲自體 本無實, 生死去來 亦如然)이라고 인간 삶과 죽음의 근본을 일러 주었다.




묘향산(妙香山) 보현사(普賢寺)




천년세월

탐밀(探密), 광곽(廣廓) 스님의 설법이

오묘한 향으로 번져

풍경소리로 울리고




하늘 찌르며 솟은

청솔들도

바람이 불면

쏴아쏴아

왜구의 칼날 앞에

굳건히 나선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우국충정이

천추만세에 빛나네.




대웅전 뒤뜰의 갈대들도

사르르 사르르

잠든 민족혼을

일깨우는 이아침

겨레의 혼 불로 타오르는

거룩한 염원이여.




호국발원의 목탁소리가

이 나라 이 겨레가슴속에

영원무궁토록

함께하리라.              <정용진>




5월3일(화) 에는 조국통일 3대 공조 실현이 가지는 남북관계 북미관계에 대한 입장 설명을 들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평양 지하철을 시승하였고, 평양교예극장에서 교예 단 공연을 관람 하였다. 금강산에서도 보았지만 얼마나 많은 숙련의 과정을 거쳤으면 저런 신기에 가까운 연기를 할까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저녁에는 영화 “독도”를 감상하였다.

5월 4일(수)에는 8시에 평양을 출발하여 북한의 곡창인 사리원, 황주를 거쳐 고속도로로 2시간 만에 개성에 도착 하였다. 가는 사이에 성불사가 있는 방장산과 수량이 비교적 풍성한 예성강을 지나 개성에 닿은 것이다.

청천강과 예성강처럼 풍부한 수량과 사리원 황주 벌 같은 넓은 평야가 있는데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은 관료들이 국토 이용관리에 심혈을 기우렸다면 미연에 방지 되었을 것이 아니겠는가.




5) 분단비극의 아픔




개성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찾은 곳이 분단비극의 현장 판문점 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곳에서는 내려가야 한다는 하마비(下馬碑)를 호위병의 안내로 무사통과하고  남한에서 세운 통일각을 바라보며 통일 전망대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동포들을 눈여겨보면서  착찹한 마음으로 북측에서 세운 판문각으로 안내 되었다. 몇 개의 푸른색 건물을 세우고 휴전선을 그어 남측과 북측이 테이불을 마주 놓고  회의를 하였다는 판문점, 뼈를 깍 는 아픔이 아무리 아프다고 하여도 뼈를 깍여 본 당사자만이 그 크나큰 아픔을 절감하게 된다.

1953년 6.25 동란직후 휴전협정에 의하여 내 땅 한가운데를 155마일 금을 그어놓고 남북의 동족들은 얼마나 많은 세월을 가슴 아파하고 눈물을 흘렸던가? 조상에 묘를 북쪽 고향에 두고 망향대 에서 명절 때면 제사를 올리던 망향의 정을  이곳에 와서 절실히 느꼈다.

북측 판문각 입구에는 서울 70킬로 메터라는 싸인이 붙어 있다. 불과 30분이면 달려 갈 거리를 우리는 반세기가 넘도록 서로 가시 돋친 눈으로 바라만 봐야 했던 시간들이 너무나 아깝다.

정전회담장, 정전회담 조인장 에서 양측이 서명한 조인문서들을 보면서 철모르고 피어있는 봄꽃들의 모습과 향기가 아픔으로 져 며 왔다.

우리 민족에게는 제일 우선이 통일만이 살길이다. 동족 간에 서로 싸우고 파괴를 일삼는다면 싸움을 말리는 척 동정하면서 우리의 이웃 국가들은 속으로 좋아 할 것이다. 도와줍네 하면서 간을 빼먹는 비극을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

2000년 6월 15일 양국의 정상들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성명을 발표 하였을 때 필자는 “남과 북”이라는 시를 썼다. 여기에 옮겨 놓는다.




남과 북




전운, 눈먼 휘장에 가려

55년 분단의 세월을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였던

남과 북.




이제는

봄눈 녹는 물소리에

38선 언 땅이 갈라지고

움트는 생명의 숨결.




새천년 새 시대의 노래를

함께 부르기 위하여

너무나 오랜 세월을

우리 모두는 인내하고 아파했다.




민족의 심장에서

동록(銅綠)을 닦아내고

군사분계선을 뛰어 넘어

두 정상들이 포옹할 때

그 두 가슴의 따스한

체온을 통하여

혈맥 속으로 굽이쳐 흐르던

뜨거운 민족애.




남과 북

7천만 겨레

우리 모두는

감격했다

감동 했다

눈물을 흘렸다.




못난 과거는 이쯤에서 묻어버리자

서로가 서로의 책임을 물어

무엇 하겠느냐




우리 모두는

백의민족의 후예들....




벗어던지자

깨쳐버리자

독선과 아집

고집과 편견을

과감히 부셔버리자.




불덩어리 같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민족의 염원 앞에

무엇이 감히 버티겠느냐




남과 북이

손과 손을 마주잡고

가슴과 가슴을 얼싸안던 그날

비로서

임진강의 핏기가 가시고

한탄강 물결이 잠들어

참 평화로구나!




이제 우리

서로의 죄를 용서하고

사랑으로 화해하자

전쟁에서 평화로

분단에서 통일로




동면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반목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적대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우리의 항로

우리의 뱃길

우리의 육로로

서로 오가면서

우리끼리 하나 되자




7천만 겨레여

삼천리금수강산이여.     <정용진>




그 후 고려 성균관(고려박물관)을 참관 하였다. 도읍을 정할 때에는  먼저 사직단과 성균관을 세운이후 도읍터를 다듬은 우리 조상들의 예의가 천추만세에 길이 빛나고 아름답다. 성균(成均)이란 “인재에 이르지 못한 이들을 인재로 키우고, 풍속이 고르지 못한 이들을 풍속을 고르게 한다. (成人材之未就, 均風俗之不齊)에서 유래 하였다. 천년을 살았을 은행나무들이 우리를 반긴다.  잘 다듬어진 명당자리에 정돈된 고려의 역사를 더듬어 보기에는 넉넉하였으나 성균관의 상징인 대성전(大成殿)과 명륜당(明倫堂)의 현판이 떼어져 있음에 마음이 아팠다. 성균관대출신동문 7명이 정성을 모아 성금을 즉석에서 갹출하여 전달하기도 하였다.

개성 선죽동의  대성전은 고려 문종시대에 대명궁(大明) 을 그 후 숭문관(崇文)으로 정하였다가 1089년에 국자감, 1310년에 성균관으로 정하였고

  서울의 성균관은 고려 충선왕시대 국학을 성균관으로 개칭 하였고, 1398년(태조 7년) 오늘의 명륜동에 세웠다.




6) 선죽교의 단심(丹心)




이런들 엇더하며 저런들 엇더하료

만수산 드렁츩이 얼거진들 엇더하리

우리도 이같이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시라도 있고없고

님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이시랴.




  위의 시조는 위화도 회군을 일으키고 조민수등의 힘을 얻어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이르킨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후에 태종)이 연회석상에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마음을 떠보려고 보낸 시조요, 뒤편은 포은이 이방원에게 자신의 심정을 답한 시조다. 정몽주는 이로 인하여 이방원의 심복 조영규에게 선죽교에서 피살되었고 아직도 선죽교 에는 그의 핏자국이 선연히 나타나 있다고 전한다.

포은은 목은(牧隱) 이색(李穡). 야은(冶隱) 길재(吉再). (혹은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과 더불어 여말(麗末) 삼은으로 숭앙받는 분들이다. 이방원의 시조는 하여가(何如歌)라하고 정몽주의 시조는 단심가(丹心歌)라 하여 후세인들이 지조와 의지의 표본으로 삼는다.

학자의 붓이 무인의 칼을 넘어서는 위력과 권위가 있음을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통하여 명명백백하게 읽는다.  왜정시대 입과 붓끝을 잘못 놀려 후세에 친일파로 매도당하는 불쌍한 인사들이 있음을 바라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심(丹心)이 얼마나 고귀한줄 알았으면 하늘을 찌르는 권문세도 남원 부사 변사도의 수청을 거절한 춘향이 목숨을 걸고 “일편단심“이라고 적었겠는가.

포은이 포은 된 것은 훌륭한 어머니가 계셨음이라  포은에게 어머니께서 전해주닌 이 시한수가 만세에 귀감으로 우리의 귀를 울린다.




가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가마귀 흰빛을 새올세라

청강에 잇것 씻은 몸 더러일가 하노라     <포은의 모친>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과 더불어 우리 역사에 귀한 어머니상으로 길이 추앙을 받는 분들이다.

문충공 정몽주는 충정공 민영환과 더불어 역사에 길이 푸르러 그 삶과 죽음이 아름답다. 혈흔(血痕)과 혈죽(血竹)이 아무 곳에나 나타나며 솟아오르겠는가.




선죽교(善竹橋)




앞은

첩첩산중

뒤는

허허벌판




바라보면

가시밭길

돌아보면

회유의 물결.




“충신은 불사이군(不事二君)”

나의 지조는

일편단심(一片丹心)




선죽교 돌다리위에

혈흔(血痕)으로 남아

청사(靑史)에 길이 빛나는

문충공(文忠公)의 애국혼(愛國魂).    (정용진)




           *문충공은 포은 정몽주의 시호.  







이어서 고려의 창업주인 왕건릉을 찾았다. 좌청룡 우백호 북 현무 남 주작이 뚜렷한 길지에 웅대하게 자리 잡았다.  선인의 말씀에 복인(福人)이 봉길지(逢吉地)라 하였던 가  과연 명당자리였다.

좌우에는 범이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르며 달려 올 듯 지키고  문관 최언희. 왕유. 최지몽. 김부와 무관 유검필. 신숭겸. 백현경. 대광현이 좌우에서 호위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기로는 시인으로서 개성에 왔으면 적어도 송도삼절(松都三絶)인 서화담(徐花潭) 황진이(黃眞伊) 박연폭포(朴淵瀑布)는 찾아야하는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황진이의 무덤을 지나치니 마음이 허전 하였다. 그도 술 한 잔 못 나눈 후배 시인을 얼마나 탓하였겠는가.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엇더리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베혀내여

춘풍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날 밤이여든 굽이굽이 펴리라




  수  백년을 지났어도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명월 황진이의 명 시조 다. 아무리 기생이라 한들 이런 명시를 남길 수 있었다면 어느 누가 무었을 탓하랴. 남남북녀라고 하였던가? 북녘의 여인들이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을 어디 두고  백골만 무쳤는다

잔잡아 권하리 없으니 그를 슬허 하노라.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황진이의 무덤을 지나가다가 선비가 그저 지나칠 수 없어서 술 한 잔을 따라 놓고 지었다는 명 시조다. 지금 읽어도 가슴이 떨린다. 오늘날에는 이런 낭만과 시정이 없으니 가히 한탄할만한 시대가 되었다. 심히 가슴 아픈 일이다.

고려가 망하고 이씨조선이 등극하니 고려의 옛 선비들은 너무나 슬프고 한스러워 옛 도읍 개경을 지나면서 한수씩 감회어린 명 시조들을 남겼으니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도라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듸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길재)




백설이 자자진골에 구루미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곳에 피였는고

석양에 홀로서이서 갈곳몰라 하노라    (이색)




선인교 나린물이 자하동에 흐르르니

반천년 왕업이 물소리 뿐이로다

아희야 고국흥망을 물어 무엇하리요     ( 정도전 혹은 유응부)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에 부처시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원천석)




인간이 이익과 출세의 욕망을 따라 고개를 수시로 숙이고 몸을 낮추는 저두굴신(低頭屈身)의 삶을 엮은 비열한 모습이 어디 한둘인가? 하나 우리의 역사 속에는 두문동 120인과  사육신과 같이 생명을 내건 의인들이 계셨음에 우리 앞에 자랑스러운 오늘이 있는 것이다.

이성계가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왕조를 창업하자 고려조에 충성하던 문신 72명과 무신 48명이 그날로 만수산 두문동 산골자기로 들어가 풀뿌리로 연명 하면서 새 왕조를 인정하려하지 아니하자 이성계는 갖은 회유와 노력을 다하였으나 일체 호응하지 아니하매 마침내 크게 진노하여 만수산 사방에 불을 질러 항복을 유도하려 하였지만 이에 응하는 이 한사람도 없이 120명이 다 분사하였다고 전 한다 이에 “두문동” 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전한다. 여기서 두문동 정신이 나와 후에 높이 평가받는다.




석희박 (石希撲)이란 시인은




산촌은 옛 대론데 거리는 비어 있고     (山河依舊 市朝空)

저녁 놀 잠긴 곳에 물소리만 처량쿠나   (流水殘雲 落照中)

홀로 말 세우고 옛 자취 찾아보니       (歇馬獨來 尋往述)

한 조각 비석에 (정문충)만 남아 있네    (斷碑猶記 鄭文忠)




라는 시를 남겼고

  

김삿갓 시인은  아래와 같은 시로 옛 날을 회상해 보았다.




옛 강산에 말 멈추니 시름은 새로운데     (故國江山 立馬秋)

반천 년 왕업이 빈터만 남았구나          (半千王業 一空邱)

연기 어린 담장 가에 까마귀 슬피 울고    (煙生廢牆 寒鴉夕)

낙엽지는 페허에 기러기만 날아가네       (葉落荒臺 白雁秋)




돌로 된 짐승은 오래되어 말이 없고       (石拘年深 難轉舌)

구리대는 쓰러져 머리를 숙였구나         (銅臺隆滅 但垂頭)

둘러보아 유난히 가슴 아픈 곳은          (周觀別有 傷心處)

선죽교 개울물이 흐름없이 흐느낌이네     (善竹橋川 咽不流)




라고 흥망의 유수함을 비탄의 심정으로 읊고 지나갔다. 여말의 삼은은 물론 뜻있고 심지 깊은 시인 묵객들이 어디 옛 고려의 정감이 배인 개경을 지나면서 마음 아픈 감회가 없었으랴. 오백년의 꿈이 어제 같이 푸르다.




5월5일(목) 오전에는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주석궁에 안내 되었고, 이어서 인민대학습당(국립중앙 도서관)을 둘러보고 점심 식사 후에는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찾아보았다.  저녁에는 만경대 학생 소년궁전에서 소년소녀들의 공연을 관람하였다. 깜직 하게 잘 하는 청순한 어린이들에게 어른들의 정치사상이 주입되어 있어서 마음이 착찹 함을 금 할 수 가 없었다.

5월6일(금)에는 남포에 있는 서해갑문을 둘러보았다.  과거에는 진남포  라고 하던 곳인데 이는 청일전쟁당시 왜군들이 남포를 진압하고 평양으로 진입하였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 다시 남포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저들의 표현대로 날 바다 위에 81-86년에 길이 8킬로, 높이 45메타 29억 톤의 저수용량을 가진 대 역사였다. 가는 길에는 문선명이 기증하였다는 평화자동차공장이 눈에 띄었고 이곳에서는 자동차 휘파람과 뻐꾸기가 생산된다고 한다.

평양시는 대성산과 용악산을 주산으로 평야지대에 대동강과 보통강이 휘돌아 경치가 아름답고 깨끗한 도시였는데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이 싸리비로 거리를 쓰는 모습이 보였다. 류경 정주영 체육관과 윤이상 음악당이 보였고 체육인, 연예인, 과학인에게 제공된 아파트가 고층으로 건설되었다.

석유가 없는 탓인지 주 교통수단은 기차인 듯 하고, 전제주의. 봉건주의. 사회주의가 그러하듯 정부중심의 건물들은 웅장하고 화려하였으나 평양을 벗어난 타 지역의 서민들의 삶은 가난하고 힘겨운 상태였다.

  

정치가들이 외형적 업적 보다는 민생을 향한 기업에 일찍 관심을 돌렸으면

오늘날과 같은 가난은 면하였을 것이 아닌 가 절실히 느껴진다.

  

7) 맺는말




7박8일의 일정을 끝내고 5월7일 8시 30분 평양 공항을 떠나 베이징, 인천을 거쳐 로스엔젤레스로 돌아왔다.

“남한은 북한보고 괴뢰라 하고 북한은 남한보고 괴뢰라 하면 바다건너가 보면 두 놈다 괴뢰지” 작고하신 함석헌옹이 반공방일을 국시로 정하고 6.25로 페허가 된 국토를 재건하던 이 정권 시절 남북한의 심한 갈등을 보고 일갈한 말이다. 이로 인하여 반공법 담당 o 검사에게 구속되어 영어의 몸이 되었던 일화가 떠오른다.

북한사람들도 얼굴이 붉거나 머리에 뿔이 나지 안았지요? 선생들 우리는 같은 동족입니다. 잘 가시라요.  또 만납시다. 짙은 권 색 양복에 가슴에는 김일성 뺏지를 단 김일성대학출신 안내원의 말이다.

  

우리의 소원        

              안석주 작사, 안병원 작곡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목숨 바쳐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을 이루자




다시 만납시다




              이정술 작시, 황진영 작곡




1.    백두에서 한나로 우린 하나의 겨레

      헤어져 얼마냐 눈물 또한 얼마였던가




후렴  잘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가시라 다시 만나요

      목메여 소리 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후렴)

2.    형제여 애타게 서로 찾고 부르며

      통일아 오너라 불러 또한 몇 해던가

                 (후렴)

3.     꿈과 같이 만났다 우리 헤어져가도

       해와 별이 찬란한 통일의 날

                               다시 만나자

                 (후렴)    (4분의4박자)




우리일행의 노래에 저들의 화답이다.

조국의 통일은 우리 남북한 민족의 염원이요 신이 주신 숙제다. 이는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풀어줄 수 도 없다.  이 민족과 이 겨레에게 주워진 무거운 십자가의 숙제는 우리 민족이 스스로 풀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동족 간에 뜨거운 사랑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나는 고국에서 32년 미국에 이주해서 34년 66세의 나이로 북한을 방문하면서 나라고하는 주관을 가지고 냉정한 객관의 세계를 보려고 하였다. 얼마나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서로의 형편과 사정을 이해하면서 맺힌 매듭을 하나하나 풀려면 앞으로 퍽 오랜 시간이 필요 할 것이다. 나로서의 의견과 소신은 있지만  조국 통일을 갈망하는 한사람으로서 이를 접고, 극히 예민하고 첨예한 대립의 정치적인 문제들은 되도록 뒤로 민 채 역사적 안목과 문학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였다. 이 방대한 기행문을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통일의 그날이 속히 오기를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필자의 시 “통일의 꿈”으로  이 글의 끝을 맺는다.




통일의 꿈




통일은 꿈입니다.

희망입니다.

만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밤마다 꿈을 꿈니다.




피난길

산모롱이를 돌다

엄마를 놓친 꿈.

남포동 거리를 헤매다

누나를 만난 꿈을 꿈니다.




통일은 한(恨)입니다.

남과 북이

꿈속에서 만나

서로 부둥켜안고 울다가

깨어서도

진짜로 부둥켜안고 우는

감격의 꿈입니다.




그것을 못해서

우리 모두는 이렇게 괴롭습니다.




통일은 아픔입니다.

너의 고뇌를 내가 알아주고

나의 고통을 그대가

대신 짊어져주는




통일은

서로를 생각하는 맘입니다.

서로를 희생하는 맘입니다.




진짜 통일은

피나는 아픔을 참아가며

가지를 자르고

줄기를 자르고

마지막 남은 몸통속의

신장마저 떼어주며

서로가 나아지기를 바라는

참맘입니다.




이것이 없어서 우리는

이제껏

형제가 피투성이로 싸운

억울한 쌈꾼들이었습니다.




통일은

너도 텅 비우고 나도 텅 비워

네 속에 내가 들어가고

내속에 네가 들어옴입니다.




이제껏 우리는

헛살았습니다.

서로를 욕하다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습니다.




잘났다는 사람들의

춤사위에 놀아난

헛삶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의 비극입니다.

참으로 부끄럽고 원통 합니다.

어쩌다 이 꼴이 되었습니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배욕, 권력욕, 명예욕,

헐뜯음, 비웃음을 버린다면

통일은 이제라도 곧 옵니다.




그것을 기다리다 간

슬픈 혼들이

우리들의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습니다.




통일은  

문을 열어줌입니다.         (시인. 전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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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3 문화적 담론과 국력 <3월의 글> 안경라 씀 석류나무 2007.03.07 518
1692 오목대와 이목대/정장영 김학 2010.08.22 518
1691 제19회 국립극장 창작공모 한길수 2010.09.26 518
1690 행복한 글쓰기 김학 2013.04.27 517
1689 아주, 멋진 성묘/이수홍 김학 2010.10.24 516
» 북한기행/정용진 시인/김우영 작가방 정용진 2012.03.08 515
1687 네 가지 말로 부르는 남아공 국가 김학 2010.06.14 514
1686 연규호 소설가님께 노 기제 2010.10.01 514
1685 제8회 원종린 수필문학상 공모 김학 2012.07.10 513
1684 철학 수필모음/정용진 시인 정용진 2015.01.04 513
1683 김영교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이충렬 2010.12.27 512
1682 서평 - 하정아 수필가의 '코드블루' 이충렬 2011.10.02 512
1681 제1회 다독다독 전국 백일장 [1] file 동아줄 김태수 2016.04.29 512
1680 우리말과 글에 광복을 김영교 2011.08.15 511
1679 시인과 정치가/정용진 시인 정용진 2012.12.17 510
1678 김산 시인 <제3회 한국농촌문학상> 시조부문 특별대상 수상 박영보 2006.05.08 509
1677 다문화 인식개선을 위한 창작동화, 창작만화, UCC 공모 씽굿 2010.09.30 506
1676 문학서재 회원으로 배경음악을 사용하시는 분들께.. 미문이 2005.01.08 504
1675 문협이 해야 할 과제/성기조 김학 2010.09.29 503
1674 반 인도적 사건 정의 2006.05.23 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