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양시연
2014.06.20 08:29
아는 만큼 보인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양시연
얼마 전만 해도 거리에서 길을 묻는 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호감 가는 분에게 묻자니 바쁜 걸음이 나를 멈칫거리게 하고, 젊은 분은 나의 시선을 피하며, 아이들은 모른다고 할 것 같아 무작정 배회하며 갔던 길을 가고 또 가기를 반복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요즘은 어떤가. 처음 가는 장소도 스마트폰 하나면 거뜬히 찾을 수 있어 참 편리한 시대다.
지난 5월말 목포체육관에 간 적이 있다. 목포시외버스터미널 인근 카페에서 네이버 지도를 보니, 체육관은 카페에서 4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상쾌한 날씨에 시간도 넉넉해 주변 경관도 구경할 겸 20분 정도 걸었는데, 생각지 못한 산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스마트폰에 나타난 주변 지형을 살펴보니 산을 돌아서 가는 것보다 산을 가로질러 가는 편이 훨씬 편하고 시간도 단축될 듯싶었다.
마침 토요일 오전이라, 초등학생 서너 명이 자전거를 타고 산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얘들아, 목포체육관으로 가는데 이 길로 가면 되지?”
애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 목소리로
“이 길로도 갈 수는 있는데 힘들어서 못가요, 돌아 나가셔서 택시타고 가야 돼요.”
하는 것이었다.
“시간도 충분하고 산길을 걷고 싶거든. 조금 힘든 건 괜찮고. 혹시 가면서 볼 만한 게 있을까?”
“아무것도 없어요. 어린이날 같을 땐 구경할 게 있는데 오늘 같은 날엔 아무것도 없어요. 걷기 불편한 흙길이고 그냥 산뿐이에요. 걷는 건 진짜 힘들어요.”
말하는 애들의 눈빛은 사뭇 진지했다. 돌아서 나갈까, 아니면 그냥 산길로 갈까? 망설이고 있을 때 운동복 차림의 중년 남성이 산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선생님, 죄송한데요, 목포체육관으로 가는 중인데 이 길로 가면 힘들까요?”
그 분은 한 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이 앞에 보이는 산을 돌면, 바로 체육관이에요.”
“혹시 볼거리도 있을까요?”
“네, 바로 모퉁이를 돌면 널따란 저수지가 있고, 조금 지나면 산림욕장도 있어요.”
하는 것이었다. 다시 물어본 게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며 5분을 걸었을까, 정말 그 분의 표현대로 아주 넓은 저수지가 보였다. 저수지 울타리에는 때늦은 철쭉이 봄바람을 붙잡고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고, 울창한 숲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아카시향과 산딸나무향은 오가는 이들에게 행복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초록 바람에 실려 저수지 중앙에 세워진 포토존에 섰더니 저만치 산림욕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이 훤히 보였다.
산림욕장을 걸으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내용을 물었는데 답이 다른 이유는 그들 나름대로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 장애인 업무를 담당했을 때였다. 장애관련 용어도 생소했지만 15유형으로 나누어지는 장애 유형에 따라 필요한 편의시설이며 애로사항이 몹시 달랐다. 보고 싶을 때 보고, 가고 싶을 때 가고, 마음 편히 들을 수 있는 나는 장애인들이 감수해야 할 불편함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서야 장애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원봉사활동 등을 통해 장애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가끔 실수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전부인 양 착각하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르면 핀잔을 주기도 한다. 사람마다 관심분야가 다르고 경험의 크기가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데서 오는 교만 때문이다.
초등학교는 초등학생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안내해 준 것처럼, 먼저 제3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된다면 우리 사회는 더 훈훈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2014. 6. 10.)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양시연
얼마 전만 해도 거리에서 길을 묻는 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호감 가는 분에게 묻자니 바쁜 걸음이 나를 멈칫거리게 하고, 젊은 분은 나의 시선을 피하며, 아이들은 모른다고 할 것 같아 무작정 배회하며 갔던 길을 가고 또 가기를 반복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요즘은 어떤가. 처음 가는 장소도 스마트폰 하나면 거뜬히 찾을 수 있어 참 편리한 시대다.
지난 5월말 목포체육관에 간 적이 있다. 목포시외버스터미널 인근 카페에서 네이버 지도를 보니, 체육관은 카페에서 4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상쾌한 날씨에 시간도 넉넉해 주변 경관도 구경할 겸 20분 정도 걸었는데, 생각지 못한 산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스마트폰에 나타난 주변 지형을 살펴보니 산을 돌아서 가는 것보다 산을 가로질러 가는 편이 훨씬 편하고 시간도 단축될 듯싶었다.
마침 토요일 오전이라, 초등학생 서너 명이 자전거를 타고 산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얘들아, 목포체육관으로 가는데 이 길로 가면 되지?”
애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 목소리로
“이 길로도 갈 수는 있는데 힘들어서 못가요, 돌아 나가셔서 택시타고 가야 돼요.”
하는 것이었다.
“시간도 충분하고 산길을 걷고 싶거든. 조금 힘든 건 괜찮고. 혹시 가면서 볼 만한 게 있을까?”
“아무것도 없어요. 어린이날 같을 땐 구경할 게 있는데 오늘 같은 날엔 아무것도 없어요. 걷기 불편한 흙길이고 그냥 산뿐이에요. 걷는 건 진짜 힘들어요.”
말하는 애들의 눈빛은 사뭇 진지했다. 돌아서 나갈까, 아니면 그냥 산길로 갈까? 망설이고 있을 때 운동복 차림의 중년 남성이 산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선생님, 죄송한데요, 목포체육관으로 가는 중인데 이 길로 가면 힘들까요?”
그 분은 한 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이 앞에 보이는 산을 돌면, 바로 체육관이에요.”
“혹시 볼거리도 있을까요?”
“네, 바로 모퉁이를 돌면 널따란 저수지가 있고, 조금 지나면 산림욕장도 있어요.”
하는 것이었다. 다시 물어본 게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며 5분을 걸었을까, 정말 그 분의 표현대로 아주 넓은 저수지가 보였다. 저수지 울타리에는 때늦은 철쭉이 봄바람을 붙잡고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고, 울창한 숲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아카시향과 산딸나무향은 오가는 이들에게 행복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초록 바람에 실려 저수지 중앙에 세워진 포토존에 섰더니 저만치 산림욕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이 훤히 보였다.
산림욕장을 걸으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내용을 물었는데 답이 다른 이유는 그들 나름대로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 장애인 업무를 담당했을 때였다. 장애관련 용어도 생소했지만 15유형으로 나누어지는 장애 유형에 따라 필요한 편의시설이며 애로사항이 몹시 달랐다. 보고 싶을 때 보고, 가고 싶을 때 가고, 마음 편히 들을 수 있는 나는 장애인들이 감수해야 할 불편함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서야 장애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원봉사활동 등을 통해 장애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가끔 실수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전부인 양 착각하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르면 핀잔을 주기도 한다. 사람마다 관심분야가 다르고 경험의 크기가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데서 오는 교만 때문이다.
초등학교는 초등학생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안내해 준 것처럼, 먼저 제3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된다면 우리 사회는 더 훈훈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2014.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