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꽃 나라꽃/김효순
2014.07.29 06:19
우리 꽃 나라꽃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효순
꽤 오래된 이야기다. 1990년대 중반, 당시 국제화 바람을 타고 처음으로 교육부에서 영어교사 해외어학연수 사업이 시작되었다. 지금이야 자비이든 교육청 지원이든 영어교사라면 누구나 어학연수 한두 번은 다녀왔지만, 그때는 외국에 한 번 나가보지 못한 영어교사들이 수두룩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선발시험은 대단한 경쟁을 치러야만 했다. 가까스로 선발되어 해외에 나간다는 기쁨은 잠시였고, 홈스테이로 6주간 낯선 나라에서 영어로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과, 영어교사라는 자존심 때문에 초조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드디어 호주 브리즈번에 도착하던 날, 공항을 빠져나와 퀸즐랜드대학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처음 그 꽃을 보았다. 노란 꽃송이가 망울망울 달린 아름드리나무가 숲을 이루면서 끝없이 이어졌다. 광활한 푸른 대자연과 함께 무척 이국적이었다. 시내로 들어오니 가로수도, 주택 담장에도, 대학 캠퍼스의 운동장에도, 도서관 앞에도, 식당 앞에도 온통 그 나무였다. 얼핏 보면 아카시아와 비슷하지만. 훨씬 작고 도톰한 잎사귀마다 말미잘 촉수처럼 기다란 꽃잎들이 나풀거렸다. 멀리서 보면 나무에 황금알이 매달려 있는 듯 환상적이었다. 지금 같으면 무슨 꽃인가 당장 스마트 폰으로 찾아보련만 그때는 그저 궁금할 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꽃 이름은 ‘골든 와틀(golden wattle)'이라는 호주의 국화(國花)였다. 그러고 보니 연수반 이름이 초록(green)반과 노랑(yellow)반이었다. 대학건물 외벽과 안내판이 노랑과 초록이었고, 학교버스 노선도 초록과 노랑으로 구별했다. 운동선수의 유니폼도, 유치원생부터 중고등학생까지 교복도 대부분 노랑과 초록으로 디자인했다. 놀라웠다.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은 부분까지 호주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배어있는 나라꽃 사랑이 부러움 반 충격 반으로 다가왔다.
그때 불현듯 우리 꽃, 무궁화가 생각났다. 고백컨대, 우리 꽃 무궁화의 꽃 모양과 잎사귀가 선뜻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 어렸을 적 숨바꼭질할 때 술래가 되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고 놀았고,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을 외쳤지만 정작 무궁화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오히려 무궁화 하면 몇 가지 떠오르는 단편적인 사실이 있다. 청와대와 대통령 집무실, 국회의원 배지와 훈장에 그려진 무궁화 꽃, 무궁화 몇 개짜리 고급 호텔, 무궁화호 열차와 무궁화호 인공위성……. 그러고 보니 국가와 권력, 명예와 영광의 최고 정점에 무궁화가 있었다. 나라꽃이니 당연하겠지만, 바로 그런 고귀함과 근엄함 때문에 무궁화는 친근감보다는 오히려 긴장감을 준다면 지나친 억지일까.
그랬던 무궁화가 몇 해 전부터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답답한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봉실산 자락으로 옮긴 뒤, 어느 해 여름. 비바람과 천둥과 번개가 요란했던 밤이 지나고 맑게 갠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서, 그 꽃을 보았다. 푸른 들판을 등지고 작달막한 무궁화나무에서 하얗고 발그레한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있었다. 아니, 봉동읍에서 전주 외곽까지 2십리 길 남짓한 도로 양쪽으로 빼곡히 무궁화 길이 아닌가. 이슬을 머금고 있는 꽃송이 위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 싱그러움과 건강함이 느껴졌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하면서도 은은한 아름다움이었다. 분홍 무궁화는 봄이 되면 온 산에 피어나는 진달래를 보는 듯 반가웠고, 하얀 무궁화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흰 저고리를 보는 듯 애잔했다. 그해 여름 내내 무궁화를 심고 가꾸었을 누군가에게 감사드리며 무궁화 꽃길로 출근하는 아침이 행복했다.
원래 무궁화는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수많은 꽃송이가 끝없이 피고 지기 때문에 이름을 무궁화(無窮花)라 부르고, 은근과 강한 생명력이 역사적으로 수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살아남은 우리 민족과 같다 하여 국화(國花)로 정했다고 한다. 아침에 활짝 피었다가 저녁에는 꽃잎을 오므리고 다음날은 통째로 떨어지면서 생명을 다하지만, 그래도 무더기로 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10년 정도 자란 무궁화 한그루에서 매일 아침 20~30송이씩 새롭게 피기 때문이라 한다.
이제 8월이다. 바야흐로 무궁화의 계절이다. 올여름에도 날마다 봉동에서 전주까지 무궁화 꽃길을 달리면서 즐거운 상상에 빠져본다. 전국의 고속도로가 무궁화 꽃길이라면, 도심 곳곳에 무궁화 숲이 있다면, 집집이 무궁화 담장이 있다면, 학교마다 무궁화동산이 있다면, 우리나라 방방곡곡이 말 그대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아니겠는가. 그 옛날 낯선 땅 호주에서 그들의 나라꽃 사랑을 보면서 받았던 충격과 부러움을 추억하면서 오늘 아침도 기분 좋게 무궁화 꽃길을 달린다.
(2014.7.29.)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효순
꽤 오래된 이야기다. 1990년대 중반, 당시 국제화 바람을 타고 처음으로 교육부에서 영어교사 해외어학연수 사업이 시작되었다. 지금이야 자비이든 교육청 지원이든 영어교사라면 누구나 어학연수 한두 번은 다녀왔지만, 그때는 외국에 한 번 나가보지 못한 영어교사들이 수두룩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선발시험은 대단한 경쟁을 치러야만 했다. 가까스로 선발되어 해외에 나간다는 기쁨은 잠시였고, 홈스테이로 6주간 낯선 나라에서 영어로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과, 영어교사라는 자존심 때문에 초조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드디어 호주 브리즈번에 도착하던 날, 공항을 빠져나와 퀸즐랜드대학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처음 그 꽃을 보았다. 노란 꽃송이가 망울망울 달린 아름드리나무가 숲을 이루면서 끝없이 이어졌다. 광활한 푸른 대자연과 함께 무척 이국적이었다. 시내로 들어오니 가로수도, 주택 담장에도, 대학 캠퍼스의 운동장에도, 도서관 앞에도, 식당 앞에도 온통 그 나무였다. 얼핏 보면 아카시아와 비슷하지만. 훨씬 작고 도톰한 잎사귀마다 말미잘 촉수처럼 기다란 꽃잎들이 나풀거렸다. 멀리서 보면 나무에 황금알이 매달려 있는 듯 환상적이었다. 지금 같으면 무슨 꽃인가 당장 스마트 폰으로 찾아보련만 그때는 그저 궁금할 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꽃 이름은 ‘골든 와틀(golden wattle)'이라는 호주의 국화(國花)였다. 그러고 보니 연수반 이름이 초록(green)반과 노랑(yellow)반이었다. 대학건물 외벽과 안내판이 노랑과 초록이었고, 학교버스 노선도 초록과 노랑으로 구별했다. 운동선수의 유니폼도, 유치원생부터 중고등학생까지 교복도 대부분 노랑과 초록으로 디자인했다. 놀라웠다.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은 부분까지 호주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배어있는 나라꽃 사랑이 부러움 반 충격 반으로 다가왔다.
그때 불현듯 우리 꽃, 무궁화가 생각났다. 고백컨대, 우리 꽃 무궁화의 꽃 모양과 잎사귀가 선뜻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 어렸을 적 숨바꼭질할 때 술래가 되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고 놀았고,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을 외쳤지만 정작 무궁화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오히려 무궁화 하면 몇 가지 떠오르는 단편적인 사실이 있다. 청와대와 대통령 집무실, 국회의원 배지와 훈장에 그려진 무궁화 꽃, 무궁화 몇 개짜리 고급 호텔, 무궁화호 열차와 무궁화호 인공위성……. 그러고 보니 국가와 권력, 명예와 영광의 최고 정점에 무궁화가 있었다. 나라꽃이니 당연하겠지만, 바로 그런 고귀함과 근엄함 때문에 무궁화는 친근감보다는 오히려 긴장감을 준다면 지나친 억지일까.
그랬던 무궁화가 몇 해 전부터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답답한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봉실산 자락으로 옮긴 뒤, 어느 해 여름. 비바람과 천둥과 번개가 요란했던 밤이 지나고 맑게 갠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서, 그 꽃을 보았다. 푸른 들판을 등지고 작달막한 무궁화나무에서 하얗고 발그레한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있었다. 아니, 봉동읍에서 전주 외곽까지 2십리 길 남짓한 도로 양쪽으로 빼곡히 무궁화 길이 아닌가. 이슬을 머금고 있는 꽃송이 위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 싱그러움과 건강함이 느껴졌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하면서도 은은한 아름다움이었다. 분홍 무궁화는 봄이 되면 온 산에 피어나는 진달래를 보는 듯 반가웠고, 하얀 무궁화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흰 저고리를 보는 듯 애잔했다. 그해 여름 내내 무궁화를 심고 가꾸었을 누군가에게 감사드리며 무궁화 꽃길로 출근하는 아침이 행복했다.
원래 무궁화는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수많은 꽃송이가 끝없이 피고 지기 때문에 이름을 무궁화(無窮花)라 부르고, 은근과 강한 생명력이 역사적으로 수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살아남은 우리 민족과 같다 하여 국화(國花)로 정했다고 한다. 아침에 활짝 피었다가 저녁에는 꽃잎을 오므리고 다음날은 통째로 떨어지면서 생명을 다하지만, 그래도 무더기로 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10년 정도 자란 무궁화 한그루에서 매일 아침 20~30송이씩 새롭게 피기 때문이라 한다.
이제 8월이다. 바야흐로 무궁화의 계절이다. 올여름에도 날마다 봉동에서 전주까지 무궁화 꽃길을 달리면서 즐거운 상상에 빠져본다. 전국의 고속도로가 무궁화 꽃길이라면, 도심 곳곳에 무궁화 숲이 있다면, 집집이 무궁화 담장이 있다면, 학교마다 무궁화동산이 있다면, 우리나라 방방곡곡이 말 그대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아니겠는가. 그 옛날 낯선 땅 호주에서 그들의 나라꽃 사랑을 보면서 받았던 충격과 부러움을 추억하면서 오늘 아침도 기분 좋게 무궁화 꽃길을 달린다.
(2014.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