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시원을 찾아서

2013.10.08 12:28

김학 조회 수:625

한글의 시원을 찾아서



몽고의 파스파문자설;



세종시대에 신숙주 성삼문 등이 요동에 귀양와 있던 명나라 언어학자 황찬에게 여러번 찾아가 음운에 대해 자문을 구한 바 있다. 그 때에 황찬으로부터 파스파 문자에 대한 자료를 얻어 훈민정음에 참작했을 것이라는 설이다. 그러나 그것은 연대가 맞지 않는다.

성삼문이 집현전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시기에는 이미 훈민정음이 거의 완성된 상태였다.

성삼문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 반포에 이르기까지의 세부적인 일은 관여했을 수 있으나 창제 자체에는 아무 역할을 한 바가 없다


  


일본 신대문자설;



일본의 신대문자는 한글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래서 일본 학자들의 일부는 한글이 신대문자를 모방한 것이라는 설을 퍼뜨리기도 했으나 나중에 신대문자는 그들이 일부러 자기네 문자의 연원을 길게 잡기 위해 만들어서 전국 곳곳에 흩어놓았다는 것을 자백한 바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신대문자 자료가 이세신궁에 보관되어 있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여러차례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신궁 측에서는 그런 자료는 없다고 일언지하에 말한다.

두 가지 중 하나의 추측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오래된 신대문자라는 것은 없다-라는 것이 하나고. 실제로 이세신궁에서 그런 오래 된 신대문자를 보관하고 있다면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 것이 오히려 우리 고대문자를 빌어온 증거물이 된다고 파악이 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일본내에서도 신대문자설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그 시점은 묘하게도 한단고기가 발견된 이후다. 한단고기에는 가림토문자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 시점에서 그들이 신대문자를 훈민정음보다 오래 되었다고 주장하더라도 그 문자의 근원은 가림토문자가 되어 버린다는 것을 그들은 직시한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정작 우리나라 학자들이 가림토문자를 믿지 않는다. 아니 한단고기 전체를 믿지 않는 실정이다.

현재 역으로 외국 학자들이 연구결과가 더 많다.





한자 기원설;



한자의 근원은 환웅시대의 신지 협덕이 만든 녹도문이 그 근원이라는 설이 거의 맞아 보인다. 녹도문의 자형은 한자의 전서와 상당히 흡사하다. 즉 상형(相形)으로 시작하여 지사문자가 나왔고 그 자들이 결합하여 회의(會意)문자 그리고 형성(形聲)문자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한글의 자형은 그런 육서(六書)적인 조자 원리와는 너무나 많이 다른 것이다. 한자의 자형과 발음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되어 왔다. 은나라때 갑골문자(甲骨文字), 주나라의 대전(大篆), 진나라 무렵의 소전, 한나라의 예서(隸書)와 목간(木簡), 동진, 당나라 무렵의 해서(楷書)...급기야는 문화혁명 이후 간체자에 이르기까지 한자는 끊임없이 변해왔으며 지금도 새로운 자들이 생산되고 있다.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에서조차 그렇다. 그러나 한글은 그렇게 심한 변화를 겪지 않는다. 그렇게 크게 변할 모양 자체가 아닌 것이다.

한자는 표의 문자라 자기 문자로 표현이 않되어서 가르칠때 발음을 영어를 빌려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한글은 다르다. 한글은 표음 문자인 동시에 표의 문자인 세계 유일의 문자로

않되는 발음이 없다. 그리고 한글 자음, 모음 자체에 뜻이 의미가 숨어 있고 문자에도 각각

의미가 있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한글을 표음 문자로만 가르치는 우매함을 우리가

범하고 있으니 문제다. 분명 한글은 표의 문자인 동시에 표음문자이다.


한자도 환웅시대에 우리 조상이 만든 녹도문자를 기원으로 발전하였고, 한글은 가림토 문자 때 이미 나와 있는 것이니

그 두 문자는 뿌리가 하나다. 다만 한글이 한자에 종속된 것은 결코 아니다.

원래 옛날 4000년 전에는 우리민족은 한글을 지금 처럼 배우지 않았다.

자음 발성원리에 따라 몸을 신경을 순화시켜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깨달음을 얻는 과정으로 한글을 배웠다.

한글은 발성으로 사람의 성품을 순화시켜 주는 기능이 있는데 현재의 한글은 일제시대때 반음으로 사용되는 ㆍ △ 등 반음을

제거하여 성품을 순화시키는 기능이 상실되었다.

다시 옛날 한글 자음 모음으로 복원해야 하는데 지금컷 사용을 그리해서 습성이 되어 문제가 크다.




산스크리트어 기원설;



이 설은 상당히 유력하기는 하다.

왜냐하면 산스크리트어의 모체인 싯담어와 우리말은 일치되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산스크리트사전을 보면 우리말과 의미가 상통하는 것이 수천개는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발음은 유사하나 자형은 너무나 다르다.

샨스크리트어(범어, 범천 세계에서 쓰는 문자)는 한글과 문자 형태는 다르나 발음이 같다.

같은 뜻의 문자를 찾아 비교해 보면 발음이 정확이 같다고 한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같은 민족이 두 개의 민족으로 나뉘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샨스크리트어를 사용한 샤카족은 외모가 우리와 같다. 인도 사람 외모가 아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샨스크리트 대백과 사전에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 제자인 부루나 존자가 그린 석가모니 부처님 초상화를 보면 전형적인 우리민족 얼굴이다.

거기에 석가모니 부처님은 단군의 후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민족이 북극에서 남하하면서 3갈래로 동쪽, 중앙남쪽 서쪽으로 이동한 갈래중 서쪽으로 이동한 민족이 천축국 지역으로

간 민족중 한 갈래이기 때문이다.

한글과 샨스크리트어는 유사성을 유지하고 있으나 문자는 다른 경로로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산스크리트어는 거의 9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글은 4000년 전 무렵 가림토문자가 최초의 기록이다. 가림토 문자도 그 전 배달신시 때

사용하던 문자를 정선하여 3세 가륵단군 때 을보륵이 만들었다하니 훨씬 그 전부터 한글이

있었다는 애기이다.

한글과 샨스크리트어는 그 형상은 분명 다르다.

다만 의미가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은 서로의 문자를 통해 우리 민족의 시원을 찾아가고 사상을 추적하는 데에는 분명

큰 이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수메르문자와 우리말과의 관계도 그러하다. 수메르문자가 우리 한글의 기원이라고는 볼 수 없다.

다만 수메르는 우리 상고시대의 12연방 중의 하나인 수밀이국인 것으로 봐서 우리 민족의 한 유파였다고 보인다.

세계최초의 문자로 알려진 수메르문자, 그 것 역시 우리 민족의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영국학자 크래머 (Kraemer, 1897-) 와 일본의 우에노 (上野景福) 교수가 발표한 것을 종합 해 보면, "수메르족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자생한 민족이 절대 아니고 동방에서 이동해 왔다. 그것도 문자를 가지고 왔는데 바로 태호복희가 쓰던 팔괘부호 (八卦符號) 와 흡사한 문자를 가지고 5500 년 전에 서쪽으로 옮겨 왔다" 는 것입니다. 복희와, 수메르에서 최초로 우르 (Ur)국을 건설한 왕조나 최초의 수메르 메소포타미아에 문화국을 건설한 엔릴 (Enril) 영웅이나 거의 같은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5500 년 전에 복희문화를 가지고 동이족이 서쪽으로 갔다는 얘기가 됩니다. 무엇이 그것을 입증하는가? 수메르 말이 우리말하고 같은 것이 많이 있다는 게 최근 미국에서 연구가 돼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메르라는 말 자체가, 곧 '소머 리' 에서 나온 것입니다. 비슷한 사례로 송화강을 우수하, 음만 그대로 따면 속말수라고 부 릅니다. 소머리강이다 이거죠.

수메르어는 한글의 원류는 아니다. 자형이 다른 것이다.

김상일 교수는 한국어와 수메르어를 비교. 연구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히브리 문자 기원설;



기독교 사상에 대해서는, 먼저 이 사실부터 이야기해야 되겠습니다.

4700 년전에 나온 중국 '황제내경 소문' (黃帝內經素問) 편을 보면 동이족이 살고 있는 이 지역 즉 "동방은 이 지구가 형성될 때 최초로 문화가 발생한 곳 (東方之域天地之所始生也)" 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누가 뭐라 고 해도 지구상 문화의 최초 원산지는 동이족이 살고 있는 동방지역이라는 거죠.

그리고 기독교의 한 단면만 말하자면 법률학자인 동경 대학의 나까다 (中田薰) 교수가 '고전법에 근거한 문화동원론고 (文化東源論考)' 에서 말하기를, 모세의 5경의 출처를 조사해보니까 함무라비 법전 속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나까다 교수는, 모세하고 함무라비 사이에 500년의 연조가 있지만 모세의 5경은 함무라비 법전을 계승한 것이고, 이는 또 수메르법에서 나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수메르의 역사 시초가 지금으로부터 5500 년 전인데, 남은 과제는 수메르족은 어디서 왔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영국학자 크래머 (Kraemer, 1897-) 와 일본의 우에노 (上野景福) 교수가 발표한 것을 종합 해 보면, "수메르족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자생한 민족이 절대 아니고 동방에서 이동해 왔다. 그것도 문자를 가지고 왔는데 바로 태호복희가 쓰던 팔괘부호 (八卦符號) 와 흡사한 문자를 가지고 5500 년 전에 서쪽으로 옮겨 왔다" 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민족 동이족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조철수 박사는 히브리문자와 한글의 발음순서나 체계가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한글이 히브리문자를 모방한 것일까?

가림토 문자가 생긴 그 무렵은 이미 우리가 히브리 문자를 차용할 수 없는 시기임을 알아야한다.

히브리어는 약 3300년 전 유대인, 즉 히브리인이 쓰던 말을 뜻하였다.

가림토 문자는 4000년 이상 전이다. 세종조라고 할지라도 히브리문명과 우리는 교류의 흔적이 없다.

오히려 히브리문명이 우리의 문명을 오랜 세월 전에 모방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복희씨와 여와씨가 중국신화의 원류다.

씨-라는 호칭은 천손민족에게 붙이는 것이며 복희와 여와는 분명 우리 민족이었다.

여와 - 그 설화를 모세가 차용하여 여호와라는 호칭을 만들어냈다는 설이 있다.

우리민족 경전인 '삼일신고' 신훈 (神訓)에 나오는 "신(神)은 재무상일위 (在無上一位) 하사 유대 덕대혜대력 (有大德大慧大力) 하사 생천(生天) 하시며 주무수세계 (主無數世界) 하시고..." 하 는 것이 바로 완벽한 기독교의 일신사상 그대로입니다.

또 '참전계경' 총론에 보면 "여화신 이 흙으로 사람 형상을 만들고 혼을 불어 넣어 7일 만에 이루어 마쳤다. (女禍鍊造成而注之魂七日而成)" 하는 것은 기독교 창세기 2장 7절하고 꼭 같습니다. 여호와와 여와, 야희와 여, 희 등은 음도 같고 행적도 같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이나 수두 제단에 치외법권 지대가 있다 는 내용, 그리고 동지에 양을 잡아 붉은 피를 문설주에 바른다는 구약의

기록은 우리나라에서 동지에 붉은 팥죽을 끓여 문설주에 바르고 하는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그러한 풍속들이 여기서 건너가 전해 내려온 거죠.




가림토 문자에는 X O M P H I 등 영어의 알파벳 자모도 여러 개 보입니다.

가림토 문자는 4177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반해, 알파벳의 역사는 길게 잡아야 3000년을 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혹 알파벳도 가림토 문자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요? 차후에 연구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히브리문자 근원설은 절대 아님이다.

(ㅎ-이 들어가는 음은 극존칭에 자주 쓰인다. 할렐루야 할머니. 할아버지 훌륭한..)




고전(古篆)기원설;



고전이라는 것 역시 옛 전서(篆書), 즉 한자를 말함인데 한자와 우리 문자가 한 뿌리에서 나오기는 하였으나

그 자형과 자형이 가진 의미부여는 매우 상이한 것임을 이미 밝혔다.




파알리어 기원설;



초기불경의 서사체인 파알리어를 말함인데 산스크리트어기원설과 유사한 것이다. 서장문자기원설도 그리 다른 것은 아니다.

그 모두 글자의 형태는 판이하게 다르다.




태극사상 기원설;



정인지가 훈민정음제자해에서 자모음이 음양과 오행의 이치에 맞는다고 한 부분에서 나온 의견이다. 그 말은 이치가 있다.

단지 그 것을 태극사상이다-라고만 하기에는 맣이 부족함을 느낀다. 음양은 자모 중에 무엇과 상합하며 오행은 무엇과 일치하는가-등을 차후에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아설순치후음으로 자음의 구분이 가능하다.




문창살기원설

우리 전통의 문창살을 보고 ㄱ..ㄴ..등의 모양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하는 주장.

택도 없는 애기라 생각함.






가림토 기원설



한단고기(삼한관경본훈)에 의거. 3세 단군 가륵이 삼시랑(재상) 을보륵에게 명하여 가림토 문자를 만들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기록은 단기고사에도 나온다. 그런데 단기고사에는 을보륵이 가림토를 만들었다고 나오지 않고 2년 봄에 박사 을보륵에게

명하여 국문정음(國文正音)을 정선(精選)하였다. 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가림토 이전에도 국문은 있었다는 뜻이다.

배달국 신시 때에 이미 문자가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태백일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문자는 옛 부터 있었다. 지금 남해현 낭하리의 암벽에 신시(神市)의 고각(古刻)이 있다>

<단군 가륵 2년, 삼시랑 을보륵이 정음 38자를 만드니 이를 가림다(加臨多)라고 한다.>

(원래 자음이 110자 정도인데 38자를 정선하여(가리어 즉 간추려서 그래서 가림다)

배달국 신시 때부터 있던 문자를 3대 단군 때 수정 보완하여 만든 것이 바로 가림토 문자

이다.

당시에 새로운 문자를 창제한 사실은 <<단기고사>>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 가림토 문자를 신전(神篆)이라고도 하였는데, 조선조 세종대왕 때

이 가림토 문자를 수정 보완하여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한글을 창제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세종실록>>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0월 초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만드셨으니 그 글자는 옛 전자(篆字)를 모방한 것이다.] 즉 가림토 문자를 토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가림토 문자가 훈민정음과 70%가 일치한다.

부도지에는 천부 8음으로 자음(8개 자음)을 말하고, 불경 문수사리경에 자음과 모음에 천지 만물의 이치가 담겨 있음을

말하고 있다.



(정확히 말해 집현자 학자들이 만든 것이 아님, 한글 창제에 관여한 올바른 기록들이 속속 들어나고 있음 그 중 일부 내용을 보면 아래와 같음)




세종이 박연을 불려 음악을 정리해 보라고 지시하니까 박연이 말하길 학자인 제가 음악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대답하니 세종께서 너희 조상중 백결(박문량) 선생이 거문고를 한 음악에 조애가

깊지 않았느냐(음미~ 조상이 음악하믄 나도 음악 잘허야 것네 대왕! 이런 억지가 세상에 어딧소 너무 심허요 잉!)

그러니 너도 한번 해보아라 하여 음악정리 작업을 하던중 세종대왕께 옛 전자라고 하는 문자가 있는데, 저기 속리산 법주사에

신미대사라고 하는 스님이 한분 게시는데 그 소리 문자에 정통하시다고 하니 한번 불러서 문자 작업을 시켜보심이 어떨련지요.(지만 엄한 작업하는 것이 심통이 났남 ^&^) 그래서 세종대왕께서 신미대사를 불려드려서 집현전에 편입시키고 한글 창제

작업을 지시하여 작업이 시작되었다.

신미대사를 중심으로 세종의 자식들인 정의공주, 수양대군, 안평대군이 도와서 특히 정의공주가 많은 역할을 하였다.

신미대사께서 한글의 흔적을 찾아 옛 고조선의 땅인 지금의 중국대륙 티벳 천축국등을 돌아다니면서 9년간 자료를 수집하여

돌아와 본격적인 한글창제 작업을 세종대왕의 자식들과 같이 작업하여 복원 중창한 것이 한글이다.




<한글의 시원에 대한 현재의 일반적 시각>




약 500년 전, 조선 세종25년(1443년)에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세종28년(1446년) 반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종실록)

그리고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등 집현전 학자들이 실질적으로 어명을 받아 그 일을 완수했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 현재 학계의 입장일 것입니다.

그리고 한글의 모양은 발성기관을 본뜬 것이며(훈민정음해례) 뜻글자가 아닌 소리글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의문점




1. 한글창제 시점이 현재 인지되고 있는 시기보다 무려 최소 8년 이상 앞당겨진다는 것.




즉, 최초의 한글간행물이 용비어천가나 월인천강지곡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용비어천가는 세종 27년에 편찬되어서 28년에 간행, 원각선종석보는 세종 20년(명나라 연호로는 정통3년)에 발행되었음. 원각선종석보는 총 5권으로 된 불서(佛書)로서 원래 해인사의 일타선사가 중국의 고서점에서 구하였던 것으로 돌아가신 후 그 분의 상좌에게 전해졌음. 그 중 제 1권은 경상대 명예교수인 려증동 교수가 소장.


*나머지 네 권을 찾아내어 그 내용을 세상에 밝히는 것이 중요한 사안임.

원각선종석보 5권은 훈민정음해례본이나 용비어천가 못지않은 국보적 가치가 있다고 사료됨.




2. 집현전은 한글창제를 반대했었다는 것.

  근거 ; 세종실록에 집현전 부제학(그 당시의 집현전 최고위치) 최만리의 상소문 참고.

당시 사대부의 핵심세력이었던 집현전은 문자적 지식을 모든 사람과 공유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그들 사대부지식층의 권위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3. 훈민정음창제 공로자가 [신미대사] 라는 예상 밖의 존재라는 것.

   근거 ; [복천선원연력]이라는 속리산 복천사의 연력서에 그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 되어 있습니다.

“1446년까지 4년에 걸쳐 논의 한 끝에 신미선사는 모음, 자음, 소리글을 범서에서 착안, 범서가 모음과 자음으로 구성되었음을 참고하여 18개의 자음(子音)과 10개의 모음(母音)을 기본으로 한글을 편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한글을 마무리 짓고 시험할 때 해인사에서 장경을 간행하여(법화경, 지장경, 금강경, 반야심경 등) 토(吐)도 달아보고 번역도 하여 시험을 끝내고 우리글이 완성되었다고 세종대왕께 보고하니, 임금님은 너무 기뻐하며 1446년 9월 상달에 우리글을 훈민정음이라 공포하였다. 대왕께서 우리글이 만들어 졌으니 우리글로 노래도 한 번 지어 보라 하여 월인천강지곡과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등의 노래를 지었다.”(신미에 관한 기록 중 일부)




또한 영산 김씨의 족보에 신미가 집현전 학사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글 간행서인 수릉엄경 10권에 세조와 신미의 발문을 보면 신미가 한글서 간행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때 신미대사가 집현전 학사였으며(영산 김씨 족보 참조) 한글창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왜 당시부터 지금까지 은폐되었을까요?


당시는 엄청난 숭유억불의 시대였으며 승려로써 왕의 촉망을 받으며 문자창제를 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사대부는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왕 또 한 그 현실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자신이 한글을 창제하였노라고 직접 언명함으로써 신미대사를 보호하고 한글을 만천하에 유포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 그랬음 신미대사를 죽이려 들었을 것임)

세종대왕이 마지막으로 아들 문종에게 남긴 유촉이 신미대사에 대한 시호를 하사할 것이었음을 보면 왕이 얼마나 신미대사를 귀히 여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문종은 아버지 세종의 사후, 왕에 올라 맨 먼저 신미대사에게 시호를 내리는 일부터 시행하지만 예상대로 집현전 학사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닥칩니다. 그런 시대였습니다.

자, 그렇다면 한글은 신미대사가 최초로 고안하여 만들어낸 것일까요?




비밀에 가려진 문자-가림토




한편 한단고기 - 단군세기 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단군조선 제3대 갸륵단군 경자2년(B.C, 2181년)

" .......아직 풍속은 하나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진서(眞書)가 있다 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리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加臨多)라 하니 그 글은 다음과 같다........ "




《한단고기》의 저자 또는 전수자인 이유립은 《한단고기》를 공개하기 3년 전인 1976년 월간 《자유》 5월호에 가림토에 관한 글을 발표했습니다.


“《태백유사(太白遺史)》에는 「흉노의 조상에 모수람이라는 자가 있어 천신을 섬겼으며 (중략) 그 풍속이 사납고 맹렬하여 수렵을 좋아하고 흙을 굽고 밧줄을 꿰어 신표로 삼으니 이를 가림토라 하였다 (후략)”[1] 이에 따르면 이유립은 가림토를 흙을 굽고 밧줄을 꿰어(煉土貫索) 신표로 쓰는 문자, 즉 결승문자(結繩文字)라고 적고 있습니다.




《한단고기》에 실린 가림토의 생김새는 한글, 특히 훈민정음 창제 때 판본체의 한글과 매우 비슷합니다.

또 훈민정음 창제기록에도 예 전자를 모방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최만리 상소문에도 옛 전자를 본땄다는 구절이 나오지요.


-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속어)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이제 한글은 조선조가 아닌 단군조선까지 그, 시원에 대한 연구가 깊어져야 할 것입니다.




한편 가림토 문자에는 X O M P H I 등 영어의 알파벳 자모도 여러 개 보입니다. 가림토 문자는 4177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반해, 알파벳의 역사는 길게 잡아야 3000년을 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혹 알파벳도 가림토 문자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요? 차후에 연구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왜 세종대왕은 지금으로부터 5000여년 전인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한글의 원형인 가림토 문자가 있었으며, 훈민정음은 가림토 문자를 활용하여 재창제 되었다는 진실을 왜 당당하게 밝히지 못 했을까요?


조선조 초기는 이미 중국(명나라)의 눈치를 보던 정신적 속국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이름도 명나라 황제의 낙점으로 결정되었고, 새 임금이 등극하거나 세자의 임명 등도 명나라에 보고를 했어야 했지요.

("고조선秘史", "대변설", "도징기", "삼성밀기", "옥추경", "조대기", "지공기", "천부경" "통천록", "표훈천사"등 한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기록하고있는 책들은 이씨조선의 금서(禁書)로 지정되어 마음대로 볼 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우리민족 고대사 기록서를 명나라 사대주의에 빠져 눈치를 보면서 다수거하여 말살하였다 하니 참으로 조선시대는 민족사의 암흑기로 불행한 시기임니다.)


그러니 공자를 사모하던 유학자들이 우글거리던 이조시대에, 중국에게 문화. 문명을 전수해주었던 단군조선의 역사를 전달하기는 아마 몹시 힘들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한글 재창제 이후 세종대왕 재위시 전국에 집서령이 내려져 수거된 책들이 불태워졌고, 그 과정에서 가림토문자와 관련된 책들이 소멸되어 훈민정음의 뿌리는 알 수 없게 되었지요.

(참고서적- 한글은 단군이 만들었다-정연종 )




한단고기, 단군세기가 진실이라면 한글창제는 약 5000년 전으로 확정지어도 좋은 것일까요? 아직 의문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발해의 대야발이 AD 727에 쓴 단기고사란 책이 있는데 이 책에서도 가림토 문자이야기가 나옵니다.


3세 단군 가륵 제위 3년에 단군이 고설에게 명하여 국사를 편찬하게 하고, 산수가림다(刪修加臨多)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그 일년전 기록도 나옵니다.


「갸륵왕 재위 2년 봄에 을보륵 박사에게 국문정음(國文正音)을 정선(精選)토록 하였다.」

정선(精選)이라는 말은 자세하게 가려 뽑는다-는 말입니다.

가림토 이전에도 국문은 있었다는 뜻입니다.

단군세기에 나오듯이 진서(眞書)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것이 한글의 원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문자는 어려웠다고 하여 간추린 끝에 가림토문자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한글의 시원은 어디까지 넘어가야 그 뿌리가 시원하게 밝혀지는 것일까요?

배달국 신시 때에 이미 문자가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태백일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문자는 옛부터 있었다. 지금 남해현 낭하리의 암벽에 신시神市의고각古刻이있다]

배달국 신시 때부터 있던 문자를 3대 단군 때 수정 보완하여 만든것이 바로 가림토 문자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가림토 문자를 신전神篆이라고도 하였는데, 조선조 세종대왕 때 이 가림토 문자를 수정보완하여 신미대사가 주축이 되어 훗날의 문종, 수양대군 안평대군, 정의공주 등과 함께 한글을 창제했던 것입니다.

(신숙주 성삼문 김수온 한계희 등은 창제 이후 원활한 반포와 자료보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창제에 직접적인 공을 새운 이들은 신미대사와 왕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들이 이미 어느 정도 모아졌으며 앞으로 좀 더 확충하여 발표될 예정임.)





단기고사의 또 다른 우리 글 기록



◐ 第一篇(제1편) 前檀君朝鮮(전단군조선)

第12世 阿漢(아한) 檀帝(단제=檀君)와 유위자가 나눈 대화중에서-

유위자; 폐하께서는 백성을 선하게 다스리시어 덕이 만방에 넘치니

나라의 문명 정도가 하나라를 훨씬 초월합니다

그러나 하나라는 다음 조에 이르러서는 禮樂法度(예악법도)가 찬연히 구비될 것이며

聖賢(성현)이 배출되어 經典(경전)을 저술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또 여러 학자들이 각각 그 理想(이상)을 말하리니

문화의 향상이 전무후무하여 천하를 휩쓸 것이므로

만국이 그 문화를 仰慕(앙모)하여 다투어 그 나라에 와서 배우고 익혀

학문의 전성시대가 될 것입니다

중략-

이 후손들이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여 상대를 침략하는 전쟁만 일삼고

문화는 점점 퇴보하여 祖國文字(조국문자)는 돌보지 않고

남을 흠모하는 사상이 날로 높아져 수천년 후에는 그 나라 문물을 사모하여

이에 미친 사람이 나라 안에 가득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문자는 다 없애고 그들의 문자만 專用(전용)할 것이며

그 문자로 우리나라 國名(국명)과 王號(왕호)와 官名(관명)과 地名(지명)과 모든 물건의

이름을 번역할 것이며 이름까지 그들의 이름과 같아


우리를 그 나라 사람으로 알게 되고

마지막에는 자손들이 그 先祖(선조)를 잃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장래를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하고 심히 원통한 일입니다

엎드려 비옵기는

오직 폐하께서는 깊이 생각하시고 염려하시어 뒷일을 미리 준비 하시옵소서 하였다


임금께서 선생은 참으로 천고의 神人(신인)이로다

능히 반만년 후의 일을 추측 하도다 하시고

천하에 조서를 내려 비석을 나라의 사방 경계에 세우고

그 碑面(비면)에 우리나라 문자로 帝王(제왕)의 이름을 새겨

영원히 國文(국문)을 보전하라 하셨다.




「 九月山(구월산) 馬韓村(마한촌)에 옛 글자로 된 비석이 하나 있어

梵文(범문)과 비슷한데 후세사람이 시를 지어 말하기를

村名稱馬韓(촌명칭마한): 마을 이름은 마한이라 하는데

別有殊常石(별유수상석): 특별히 구별되는 범상한 돌이 있네

臺荒躑躅紅(대황척촉홍): 누각은 황폐하고 철쭉은 붉게 피었는데

字沒苺苔碧(자몰매태벽): 글자는 파묻히고 산딸기와 이끼만 푸르구나

生於剖判初(생어부판초): 천지가 처음 열릴 때 만들어서

立了興亡夕(입요흥망석): 나라가 흥하고 망하고 기우는 것을 세우기를 다 하였네

文獻俱無徵(문헌구무징): 문헌으로 다 고증할 수는 없으나

徜非奇氏跡(상비기씨적): 이것이 기씨의 즉 기자조선의 발자취가 아니겠는가

[상자가 없어서 같은 글자인 徜(상)자를 씀]




*長白山(장백산) 安興嶺(안흥령)에도 비석이 있다고 한다.




결론



우리 한글의 기원은 세종조 때가 아니다. 그때는 한글을 중창한 것이다. 훨씬 뒤로 3대

단군 가륵시대에 을보륵에 의해 새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때 역시 자세히 가려 뽑은, 정선(精選)한 것이다.

그 이전에 이미 우리글은 있었다.

가장 오래 된 한글에 대한 기록은 딱 잡아서 무엇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단은 추정이 가능한 것을 찾아보자면 부도지다.

부도지는 가장 오래 된 한민족 역사서다. 거기에 보면 천부의 음(音)을 말한다. 천부 8음이라고도 한다. 율려, 음, 소리, 그 것이 창조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성서에도 나온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하였으니 말씀이 곧 하나님이니라.

그것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하였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한복음-




화염경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초 우주는 광음천의 세계다. 즉 태초에 빛과 소리만 있었다. 라고 말씀 하신다.




중국 서안 지방에 대규모 피라미드가 수십게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유물의 년대가 5000년이전으로 도자기 표면에 한글의 자음 ㄱ,ㄴ, ㄷ, ㅂ 원방각(○□△)등이 표기되어 있다 한다. 피라미드 길이가 300m 정도인 전체 모양을 볼려면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야 볼 수 있다고 한다. 인공위성으로 사진 상으로도 나타난다.

돌로 쌓아서 만든것으로 중국의 흙으로 쌇은 방식과 다르고 중국황하 문명(4000년)보다 그

이전 문명으로 옛날에는 중국땅이 아닌 지역이란다.

그런데 중국에서 외부 공개를 절대하지 않는다. 촬영도 금지한다.

아니 자기들 선조 문명이면 유네스코에 등재도 하고 자랑스럽게 외부에 공개할 것인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그 파라미드는 우리민족 단군시대 때 지은 것으로 피라미드 용도는 2가지 인데

하나는 단군이 피라미드에 들어가 자연과 교감을 이룰때까지 100년 동안 나오지 않고 수련하는 장소이고, 또 하나는 무덤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한 용도로 우리민족이 사용한 것이니 그 속에서 출토된 유물에 한글이 표기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중국이 서북공정, 동북공정을 통해서 역사를 왜곡하여 자기를 역사에 편입시킬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저 한글을 어떻게

왜곡시키는냐고, 절대 불가합니다.



그것이 저들의 한계인데 우리정부나 역사 학자들이 나서서 정통사학을 회복하는데 많은 연구와 투자를 하여야 하는데

일부 정통사학자를 제외하고 뒷짐지고 식민사관에 사료잡힌 사학자들이 아직도 학교 강단에서 왜곡역사를 가르치고,

아예 지금은 수능에서도 선택 과목으로 하는 어쳐구니 없는 작태가 벌여지고 있으니, 이거 OO정부 어느 나라 정부인지.....

옛날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 명나라, 조선시대, 일제시대를 겉지면서 우리민족의 기록들이

모두 불살라 없어져 말살되고 왜곡되는 불운이 격었는데 지금이라도 바로 세워 나갑시다.




한글의 시원은 조선 세종때가 아니고 4000년 보다 휠씬 전부터 전해 온것으로 보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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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4 새해인사 [1] 최미자 2017.12.31 599
1743 부적 과 풍수지리 석류나무 2007.03.21 598
1742 정확한 시간 환산표 석류나무 2007.03.11 592
1741 맑은누리문학 신년호 원고 모집 동아줄 김태수 2016.11.26 591
1740 전주여고 72세 졸업생 윤기숙/은종삼 김학 2014.02.21 590
1739 박완서 - 영원한 어머니 김영교 2011.08.09 589
1738 [re] <수필아, 고맙다>를 읽고/장생주 김학 2010.11.09 588
1737 'ㄱ ㄴ ㄷ ㄹ ㅁ ㅂ ㅅ 우리나라 만세'/윤효숙 김학 2014.05.03 588
1736 생활인 그리고 도예가/김양수 김학 2010.04.21 586
1735 ㅈㅏ지, ㅂㅗ지는 욕 아닌 나랏말 이다 석류나무 2007.04.22 584
1734 제1회 해외문단 신인문학상 당선자 공고 김우영 2008.12.07 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