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리동이와 방귀 소동/양영아
2014.04.09 07:49
난리동이와 방귀 소동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양영아
겨우내 움츠렸던 흙이 한 줄기 빗물로 목을 축이더니 촉촉하고 부드러워졌다. 그새 바람이 파스텔을 칠했나 보다. 영춘화며 복수초, 개나리까지 노란 웃음이다. 연분홍 수양매화가 달콤한 향기로 벌‧나비를 부르는데 소나무 옆에서 진달래가 봉긋 입술을 내민다. 머지않아 동생이 사는 여수 영취산에도 진달래꽃이 온 산을 물들이겠다.
많은 형제자매가 있지만 바로 위아래에 있는 형제자매는 각별한 정이 있다. 내 바로 밑은 남동생이다. 동생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6‧25가 터져서 떡 아기 적부터 피난하러 다녔다. 어른들은 그 애를 ‘난리동이’라고 불렀다. 그래서인지 항상 부산하고 장난꾸러기였다. 순창여중 교장관사에서 살 때 운동장은 우리 집 마당이나 다름없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동생은 여학생들을 곯리고 나무 위로 올라가 약을 올리곤 했다. 교장 아들이라 차마 때릴 수도 없어 화만 내고 돌아간 여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던 동생이 전주로 이사 와서 사춘기를 별 탈 없이 보내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평소 어찌나 소탈하고 털털하던지 운동화가 구멍이 나도 사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루는 앞이 벌어진 운동화 속으로 금반지가 끼어들어 와 엄마에게 갖다 드린 일도 있었다. 떨어진 운동화가 효자라고 모두 웃었다.
우리 집 밥상머리교육은 매우 엄격했다. 다리를 뻗어도 안 되고, 턱을 괴고 앉아도 안 되었다. 젓가락도 엎어 놓으면 복을 엎어버린다 하여 못하게 했다. 말을 하면 침도 튀기고 밥알이 튀어나오니 조용히 먹으라고 하였다. 반찬도 뒤적이지 말고 한 번 집은 반찬은 꼭 갖다 먹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어느 날, 밥을 먹던 동생이 학교에서 시험 본 이야기를 했다. 시험 보는 도중에 방귀가 나오려고 해서 엉덩이를 이리 틀고 저리 틀며 막고 있었단다. 참다못해 터져 나온 방귀는 “뽀오-옹” 수줍은 처녀처럼 소리를 냈단다. 순간 아이들이 와하하하 웃음을 터뜨렸고, 멋쩍은 동생도 함께 따라 웃으니 “뽕뽕뽕뽕” 방귀도 웃음소리를 따라 계속 나왔단다. 밥을 먹던 식구들이 모두 박장대소를 했다. 평소 말씀이 적은 아버지도 “수선스러운 놈.” 하면서 따라 웃으셨다. 밥알이 튀었어도 야단치지 않은 특별한 날이었다.
방귀 이야기만큼 부담 없이 웃기는 이야기도 드물 것이다. 인간의 기초적 신진대사 그 생리현상이 뭐 그리 부끄러울까?
여고시절에 들었던 옛날이야기는 지금 어린이 동화책에도 나온다. 시집온 새색시가 얼굴이 노래지고 힘이 없어서 큰 병(病)이라도 난 줄 알고 염려했단다. 그런데 시부모가 어려워 방귀를 못 뀌어서 그랬다나? 시부모는 걱정하지 말고 뀌어보라고 했다. 시아버지는 기둥을 붙잡고 시어머니는 솥뚜껑을 잡으라 했다. 남편은 지붕을 붙들라고 해놓고 방귀를 마구 뀌어대니 시아버지는 기둥을 끌어안고 천정으로 올랐다가 땅바닥으로 뱅그르르, 시어머니는 아궁이로 들어갔다가 굴뚝으로 나오고, 남편은 흔들리는 집을 붙드느라 혼비백산…….
3년 동안 방귀를 참았던 며느리의 얼굴은 밝아졌지만, 집이 무너지고 난장판이 되어 결국 며느리는 시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친정으로 돌아가는 발길은 납덩이처럼 무거웠으리라. 어느 들판에서 만난 배나무 장사가 높이 달린 배를 못 따서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러자 며느리는 배나무 아래에서 신통방통한 방귀로 높이 달려 있던 배를 모두 따주었다. 장사꾼은 고마워서 비단이며 귀한 물건을 많이 주어 다시 시댁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말똥만 굴러가도 웃는다는 사춘기 소녀들을 교실 바닥에서 뒹굴며 웃게 했던 여고 시절 ㅇ 선생님이 그립다.
방귀란, 음식이 소화되는 과정에서 생성된 가스가 항문으로 배출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식사를 빨리 하거나 잘 씹지 않고 먹는 경우 공기를 많이 먹게 되어 방귀를 뀌게 된다. 성인은 하루 5∼20번을 뀌는데 한 번에 25∼100mL의 가스를 내뿜는다니 여러 명이 한꺼번에 뀌면 질식도 하겠다. 거의 모든 식품이 방귀를 유발하므로 꼭꼭 씹어 먹어야 할 것 같다. 소화가 잘 된 ‘대포방귀’는 소리만 요란하지 냄새는 그다지 독하지 않다. 하지만 소화불량으로 나오는 ‘도둑방귀’는 코를 싸쥐게 한다. 방귀도 냄새만 없다면 괜찮을 텐데 메탄가스뿐만 아니라 아주 소량의 암모니아, 인돌, 스케톨과 같은 황화수소 때문에 냄새가 난다나?
방귀를 비유한 말들도 재미있다. 말없이 나가버린 사람에게 ‘삼베팬티에서 방귀 새나가듯 나갔다.’라는 이야기. 엉덩이를 토닥이며 ‘똥꼬 여물겠다.’ 축복해주는 아기 방귀. 토끼가 제 방귀에 놀란다는 귀여운 방귀. 별로 유쾌하지 않은 비웃음을 대신하는 ‘콧방귀’. 방귀가 잦으면 똥 싸기 쉽다는 소문의 비유 등 방귀 이야기는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방귀 뀐 사람이 성낸다는 것은 순진한 사람들의 무안함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그 사람 한때 잘 나갔던 사람이야. 방귀깨나 뀌던 사람이지.”
방귀를 잘 뀌면 출세도 빠르다는 이야기인지, 출세하니 소화가 잘 되어 방귀를 뀐다는 말인지……. 행여 소화불량으로 독가스라도 뿜어댈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우리도 하늘에 대고 방귀 한 번 뀌어볼까? 하늘에서 별이라도 떨어지나 보게 말이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라는 알랑방귀는 배를 움켜쥐게 한다.
방귀를 줄여주는 식품으로 요구르트가 있다 하니 방귀가 심할 때 한 번 먹어봄직도 하겠다. 콧방귀 알랑방귀에도 특효가 있을지 누가 아는가?
그러나 방귀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수술하고 난 뒤에 나오는 방귀는 환자와 가족들을 안심시키는 반가운 가스다. 실체 없는 방귀 이야기는 이처럼 모든 이에게 즐거움을 준다. 더 많은 방귀이야기로 답답한 세상을 시원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방귀쟁이 내 동생은 지금 여수 남해화학에서 퇴직한 뒤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어른 공경 잘하고 아랫사람 사랑하는 천성은 아직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다. 아들과 딸이 낳은 손자 손녀를 사랑하는 푸근한 할아버지가 되어 행복을 가꾸고 있다. 곧 동생한테서 전화가 올 것 같다. 영취산 진달래꽃 구경 가자고…….
(2013. 03. 25.)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양영아
겨우내 움츠렸던 흙이 한 줄기 빗물로 목을 축이더니 촉촉하고 부드러워졌다. 그새 바람이 파스텔을 칠했나 보다. 영춘화며 복수초, 개나리까지 노란 웃음이다. 연분홍 수양매화가 달콤한 향기로 벌‧나비를 부르는데 소나무 옆에서 진달래가 봉긋 입술을 내민다. 머지않아 동생이 사는 여수 영취산에도 진달래꽃이 온 산을 물들이겠다.
많은 형제자매가 있지만 바로 위아래에 있는 형제자매는 각별한 정이 있다. 내 바로 밑은 남동생이다. 동생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6‧25가 터져서 떡 아기 적부터 피난하러 다녔다. 어른들은 그 애를 ‘난리동이’라고 불렀다. 그래서인지 항상 부산하고 장난꾸러기였다. 순창여중 교장관사에서 살 때 운동장은 우리 집 마당이나 다름없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동생은 여학생들을 곯리고 나무 위로 올라가 약을 올리곤 했다. 교장 아들이라 차마 때릴 수도 없어 화만 내고 돌아간 여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던 동생이 전주로 이사 와서 사춘기를 별 탈 없이 보내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평소 어찌나 소탈하고 털털하던지 운동화가 구멍이 나도 사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루는 앞이 벌어진 운동화 속으로 금반지가 끼어들어 와 엄마에게 갖다 드린 일도 있었다. 떨어진 운동화가 효자라고 모두 웃었다.
우리 집 밥상머리교육은 매우 엄격했다. 다리를 뻗어도 안 되고, 턱을 괴고 앉아도 안 되었다. 젓가락도 엎어 놓으면 복을 엎어버린다 하여 못하게 했다. 말을 하면 침도 튀기고 밥알이 튀어나오니 조용히 먹으라고 하였다. 반찬도 뒤적이지 말고 한 번 집은 반찬은 꼭 갖다 먹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어느 날, 밥을 먹던 동생이 학교에서 시험 본 이야기를 했다. 시험 보는 도중에 방귀가 나오려고 해서 엉덩이를 이리 틀고 저리 틀며 막고 있었단다. 참다못해 터져 나온 방귀는 “뽀오-옹” 수줍은 처녀처럼 소리를 냈단다. 순간 아이들이 와하하하 웃음을 터뜨렸고, 멋쩍은 동생도 함께 따라 웃으니 “뽕뽕뽕뽕” 방귀도 웃음소리를 따라 계속 나왔단다. 밥을 먹던 식구들이 모두 박장대소를 했다. 평소 말씀이 적은 아버지도 “수선스러운 놈.” 하면서 따라 웃으셨다. 밥알이 튀었어도 야단치지 않은 특별한 날이었다.
방귀 이야기만큼 부담 없이 웃기는 이야기도 드물 것이다. 인간의 기초적 신진대사 그 생리현상이 뭐 그리 부끄러울까?
여고시절에 들었던 옛날이야기는 지금 어린이 동화책에도 나온다. 시집온 새색시가 얼굴이 노래지고 힘이 없어서 큰 병(病)이라도 난 줄 알고 염려했단다. 그런데 시부모가 어려워 방귀를 못 뀌어서 그랬다나? 시부모는 걱정하지 말고 뀌어보라고 했다. 시아버지는 기둥을 붙잡고 시어머니는 솥뚜껑을 잡으라 했다. 남편은 지붕을 붙들라고 해놓고 방귀를 마구 뀌어대니 시아버지는 기둥을 끌어안고 천정으로 올랐다가 땅바닥으로 뱅그르르, 시어머니는 아궁이로 들어갔다가 굴뚝으로 나오고, 남편은 흔들리는 집을 붙드느라 혼비백산…….
3년 동안 방귀를 참았던 며느리의 얼굴은 밝아졌지만, 집이 무너지고 난장판이 되어 결국 며느리는 시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친정으로 돌아가는 발길은 납덩이처럼 무거웠으리라. 어느 들판에서 만난 배나무 장사가 높이 달린 배를 못 따서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러자 며느리는 배나무 아래에서 신통방통한 방귀로 높이 달려 있던 배를 모두 따주었다. 장사꾼은 고마워서 비단이며 귀한 물건을 많이 주어 다시 시댁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말똥만 굴러가도 웃는다는 사춘기 소녀들을 교실 바닥에서 뒹굴며 웃게 했던 여고 시절 ㅇ 선생님이 그립다.
방귀란, 음식이 소화되는 과정에서 생성된 가스가 항문으로 배출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식사를 빨리 하거나 잘 씹지 않고 먹는 경우 공기를 많이 먹게 되어 방귀를 뀌게 된다. 성인은 하루 5∼20번을 뀌는데 한 번에 25∼100mL의 가스를 내뿜는다니 여러 명이 한꺼번에 뀌면 질식도 하겠다. 거의 모든 식품이 방귀를 유발하므로 꼭꼭 씹어 먹어야 할 것 같다. 소화가 잘 된 ‘대포방귀’는 소리만 요란하지 냄새는 그다지 독하지 않다. 하지만 소화불량으로 나오는 ‘도둑방귀’는 코를 싸쥐게 한다. 방귀도 냄새만 없다면 괜찮을 텐데 메탄가스뿐만 아니라 아주 소량의 암모니아, 인돌, 스케톨과 같은 황화수소 때문에 냄새가 난다나?
방귀를 비유한 말들도 재미있다. 말없이 나가버린 사람에게 ‘삼베팬티에서 방귀 새나가듯 나갔다.’라는 이야기. 엉덩이를 토닥이며 ‘똥꼬 여물겠다.’ 축복해주는 아기 방귀. 토끼가 제 방귀에 놀란다는 귀여운 방귀. 별로 유쾌하지 않은 비웃음을 대신하는 ‘콧방귀’. 방귀가 잦으면 똥 싸기 쉽다는 소문의 비유 등 방귀 이야기는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방귀 뀐 사람이 성낸다는 것은 순진한 사람들의 무안함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그 사람 한때 잘 나갔던 사람이야. 방귀깨나 뀌던 사람이지.”
방귀를 잘 뀌면 출세도 빠르다는 이야기인지, 출세하니 소화가 잘 되어 방귀를 뀐다는 말인지……. 행여 소화불량으로 독가스라도 뿜어댈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우리도 하늘에 대고 방귀 한 번 뀌어볼까? 하늘에서 별이라도 떨어지나 보게 말이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라는 알랑방귀는 배를 움켜쥐게 한다.
방귀를 줄여주는 식품으로 요구르트가 있다 하니 방귀가 심할 때 한 번 먹어봄직도 하겠다. 콧방귀 알랑방귀에도 특효가 있을지 누가 아는가?
그러나 방귀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수술하고 난 뒤에 나오는 방귀는 환자와 가족들을 안심시키는 반가운 가스다. 실체 없는 방귀 이야기는 이처럼 모든 이에게 즐거움을 준다. 더 많은 방귀이야기로 답답한 세상을 시원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방귀쟁이 내 동생은 지금 여수 남해화학에서 퇴직한 뒤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어른 공경 잘하고 아랫사람 사랑하는 천성은 아직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다. 아들과 딸이 낳은 손자 손녀를 사랑하는 푸근한 할아버지가 되어 행복을 가꾸고 있다. 곧 동생한테서 전화가 올 것 같다. 영취산 진달래꽃 구경 가자고…….
(2013. 0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