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깊은 우리말 '비팅'/김규원
2014.09.19 06:47
아름답고 깊은 우리말 ‘바탕’
전주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규원
‘바탕’이라는 우리말처럼 재미있고 뜻 깊은 말은 아마도 세계 어느 나라 말에도 없을 것이다. ‘바탕’은 4차원의 세계까지 나타내는 말이면서, 그 뜻이 서로 이어져 웅숭깊은 맛을 품고 있다. 아마도 외국인에게는 어떤 말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먼저, ‘바탕’은 거리를 말한다. 원래 거리를 나타내는 한 바탕은 화살을 쏘아 도달하는 거리를 말하는데, 대략 120걸음 정도의 거리라고 한다. 국궁(國弓)을 쏘는 데서 과녁까지의 거리가 145m이지만, 옛날의 보통 활은 120걸음 정도 나갔던 것이 아닌가 싶다. 120걸음이면 약 100m쯤 된다. 거리를 뜻하는 ‘바탕’은 예를 들어 “감영의 선화당에서 풍남문까지는 불과 활 세 바탕 거리였다.”라고 쓴다. 또, 옛날 산에서 나무를 하던 시절에는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는 길에 “여보게, 마른 나뭇가지라 가벼우니 한 바탕 더 가서 쉬기로 하세!”라고 했다. ‘바탕’은 훌륭한 거리 단위였다. 지점에서 지점까지의 선, 즉, 1차원을 말하는 바탕이다.
다음, ‘바탕’은 마당이나 바닥이라는 뜻이다. ‘터’나 ‘판’이라는 어떤 한정된 넓이를 말하기도 한다. 입체를 구성하는데 기본인 바닥을 말하거나 평평한 공간을 말하기도 한다. 2차원인 평면을 뜻하는 ‘바탕’은 인쇄할 종이, 색을 칠하기 전의 여러 가지 바닥자료, 사람 얼굴의 본디 상태에 이르기까지 형태가 있는 여러 평면 모양의 원래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흰 바탕에 붉은 글씨를 쓰다.” “갈색 종이에 선전문을 인쇄하다.” “바탕이 예쁜 얼굴이라 얕은 화장에도 화려해 보인다.” 등으로 쓰인다.
셋째, ‘바탕’은 4차원인 시간 단위를 말하거나, 어떤 때를 말하기도 한다. ‘바탕’이라는 시간은 일정한 길이를 말하기보다는 어떤 일을 시작하여 마치는 동안을 한 바탕이라고 말한다. 흔히, “노래 한 바탕 하고 놀자.” “심심한데 씨름 한 바탕 할까?” “판소리 다섯 바탕” 등 단순한 시간 단위가 아닌 일의 시작에서 맺음까지의 시간에 행위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참으로 대단한 말의 조화가 아닌가? 바탕이라는 한 단어가 품고 있는 다양한 뜻도 그렇거니와, 한마디 말 속에 시간과 행위, 그리고 그 행위가 가져올 즐거움과 행복까지도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바탕이 어떤 때를 말하는 경우도 있다. “늙을 바탕에 쓴 소설” “병이 나을 바탕에 그 여인을 만났다.”처럼 쓰여 어떤 변화에 이르는 때를 나타낸다.
넷째, 물체의 뼈대나 틀을 이루는 부분을 말하거나, 어떤 재질이나 체질을 말하는 ‘바탕’이 있다. “건물의 바탕이 튼튼하다.” “바탕이 좋은 옷감” “바탕이 튼실한 아이라서 병 없이 잘 컸다.” 등 흔히 한자 단어로 기초(基礎)라고 표현하는 말이다. 무형의 것이 아닌, 형태의 근본을 말한다.
다섯째, 무형의 개념이나 현상, 정신세계 등에 쓰이는 ‘바탕’이 있다. 사람의 됨됨이를 말할 때 “바탕이 좋은 아이” “바탕부터 비뚤어진 인간”이라고 쓰인다. 어떤 짓이나 생각을 나타내는 바탕은 “배신의 바탕 위에 행복이 있을 수 없다.” “불교 정신에 바탕을 둔 그의 문학세계” “예의범절에서 그 사람의 바탕을 볼 수 있다.” “지역 문화의 바탕을 이루었다.” 등으로 쓰인다.
여섯째, 나무를 팰 때 바닥에 두어 도끼의 날이 상하지 않게 하고 일을 편하게 하는 나무 받침과 풀이나 잔가지를 자르는 작두의 날이 닿는 부분의 나무를 ‘바탕’이라고 한다.
‘바탕’이라는 말이 이처럼 여러 뜻으로 쓰인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깨우쳤다. ‘바탕’은 세상 모든 사물과 개념이나 현상의 밑절미이다. ‘바탕’은 본디이며 일어남이다. ‘바탕’이 없고서는 만들어질 것도, 이루어질 것도 없음은 당연하다. 아직 ‘바탕’을 이루지 못한 내 선 지식으로 감히 ‘바탕’을 말하기가 부끄럽지만, 애면글면하여 섣부르게나마 말의 쓰임새는 찾아낸 듯하다.
특히 판소리 한 바탕, 노래 한 바탕, 씨름 한 바탕 등의 뜻으로 쓰이는 ‘바탕’의 의미는 정해진 길이가 없는 시간을 뜻할 뿐 아니라, 그 시간 속에 이루어지는 움직임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즐거움까지 안으로 갈무리하고 있음을 알아낸 기쁨이 오달지다.
오늘 우연히 수필공부를 하다가 친구의 글에서 ‘바탕’이라는 말의 뜻을 찾고자 한 일이 이처럼 훌륭한 배움으로 마무리되어 고맙고 흐뭇하다. 수필이라고 하기보단 찾고 정리한 보고서(Report)이다. 급히 찾고 적어낸 글이라 내용 가운데 틀린 곳이 있을 수 있다. 누구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주면 고쳐서 바른 글로 만들 생각이다.
(2014.09.19.)
● 밑절미 : 기초가 되는 본디부터 있던 부분
* 애면글면 : 힘에 겨운 일을 이루려고 애쓰는 모양
* 오달지다 : 마음에 흐뭇하게 흡족하다.
전주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규원
‘바탕’이라는 우리말처럼 재미있고 뜻 깊은 말은 아마도 세계 어느 나라 말에도 없을 것이다. ‘바탕’은 4차원의 세계까지 나타내는 말이면서, 그 뜻이 서로 이어져 웅숭깊은 맛을 품고 있다. 아마도 외국인에게는 어떤 말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먼저, ‘바탕’은 거리를 말한다. 원래 거리를 나타내는 한 바탕은 화살을 쏘아 도달하는 거리를 말하는데, 대략 120걸음 정도의 거리라고 한다. 국궁(國弓)을 쏘는 데서 과녁까지의 거리가 145m이지만, 옛날의 보통 활은 120걸음 정도 나갔던 것이 아닌가 싶다. 120걸음이면 약 100m쯤 된다. 거리를 뜻하는 ‘바탕’은 예를 들어 “감영의 선화당에서 풍남문까지는 불과 활 세 바탕 거리였다.”라고 쓴다. 또, 옛날 산에서 나무를 하던 시절에는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는 길에 “여보게, 마른 나뭇가지라 가벼우니 한 바탕 더 가서 쉬기로 하세!”라고 했다. ‘바탕’은 훌륭한 거리 단위였다. 지점에서 지점까지의 선, 즉, 1차원을 말하는 바탕이다.
다음, ‘바탕’은 마당이나 바닥이라는 뜻이다. ‘터’나 ‘판’이라는 어떤 한정된 넓이를 말하기도 한다. 입체를 구성하는데 기본인 바닥을 말하거나 평평한 공간을 말하기도 한다. 2차원인 평면을 뜻하는 ‘바탕’은 인쇄할 종이, 색을 칠하기 전의 여러 가지 바닥자료, 사람 얼굴의 본디 상태에 이르기까지 형태가 있는 여러 평면 모양의 원래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흰 바탕에 붉은 글씨를 쓰다.” “갈색 종이에 선전문을 인쇄하다.” “바탕이 예쁜 얼굴이라 얕은 화장에도 화려해 보인다.” 등으로 쓰인다.
셋째, ‘바탕’은 4차원인 시간 단위를 말하거나, 어떤 때를 말하기도 한다. ‘바탕’이라는 시간은 일정한 길이를 말하기보다는 어떤 일을 시작하여 마치는 동안을 한 바탕이라고 말한다. 흔히, “노래 한 바탕 하고 놀자.” “심심한데 씨름 한 바탕 할까?” “판소리 다섯 바탕” 등 단순한 시간 단위가 아닌 일의 시작에서 맺음까지의 시간에 행위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참으로 대단한 말의 조화가 아닌가? 바탕이라는 한 단어가 품고 있는 다양한 뜻도 그렇거니와, 한마디 말 속에 시간과 행위, 그리고 그 행위가 가져올 즐거움과 행복까지도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바탕이 어떤 때를 말하는 경우도 있다. “늙을 바탕에 쓴 소설” “병이 나을 바탕에 그 여인을 만났다.”처럼 쓰여 어떤 변화에 이르는 때를 나타낸다.
넷째, 물체의 뼈대나 틀을 이루는 부분을 말하거나, 어떤 재질이나 체질을 말하는 ‘바탕’이 있다. “건물의 바탕이 튼튼하다.” “바탕이 좋은 옷감” “바탕이 튼실한 아이라서 병 없이 잘 컸다.” 등 흔히 한자 단어로 기초(基礎)라고 표현하는 말이다. 무형의 것이 아닌, 형태의 근본을 말한다.
다섯째, 무형의 개념이나 현상, 정신세계 등에 쓰이는 ‘바탕’이 있다. 사람의 됨됨이를 말할 때 “바탕이 좋은 아이” “바탕부터 비뚤어진 인간”이라고 쓰인다. 어떤 짓이나 생각을 나타내는 바탕은 “배신의 바탕 위에 행복이 있을 수 없다.” “불교 정신에 바탕을 둔 그의 문학세계” “예의범절에서 그 사람의 바탕을 볼 수 있다.” “지역 문화의 바탕을 이루었다.” 등으로 쓰인다.
여섯째, 나무를 팰 때 바닥에 두어 도끼의 날이 상하지 않게 하고 일을 편하게 하는 나무 받침과 풀이나 잔가지를 자르는 작두의 날이 닿는 부분의 나무를 ‘바탕’이라고 한다.
‘바탕’이라는 말이 이처럼 여러 뜻으로 쓰인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깨우쳤다. ‘바탕’은 세상 모든 사물과 개념이나 현상의 밑절미이다. ‘바탕’은 본디이며 일어남이다. ‘바탕’이 없고서는 만들어질 것도, 이루어질 것도 없음은 당연하다. 아직 ‘바탕’을 이루지 못한 내 선 지식으로 감히 ‘바탕’을 말하기가 부끄럽지만, 애면글면하여 섣부르게나마 말의 쓰임새는 찾아낸 듯하다.
특히 판소리 한 바탕, 노래 한 바탕, 씨름 한 바탕 등의 뜻으로 쓰이는 ‘바탕’의 의미는 정해진 길이가 없는 시간을 뜻할 뿐 아니라, 그 시간 속에 이루어지는 움직임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즐거움까지 안으로 갈무리하고 있음을 알아낸 기쁨이 오달지다.
오늘 우연히 수필공부를 하다가 친구의 글에서 ‘바탕’이라는 말의 뜻을 찾고자 한 일이 이처럼 훌륭한 배움으로 마무리되어 고맙고 흐뭇하다. 수필이라고 하기보단 찾고 정리한 보고서(Report)이다. 급히 찾고 적어낸 글이라 내용 가운데 틀린 곳이 있을 수 있다. 누구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주면 고쳐서 바른 글로 만들 생각이다.
(2014.09.19.)
● 밑절미 : 기초가 되는 본디부터 있던 부분
* 애면글면 : 힘에 겨운 일을 이루려고 애쓰는 모양
* 오달지다 : 마음에 흐뭇하게 흡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