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프라방

2019.02.23 04:30

김효순 조회 수:2

루 앙 프 라 방

 -라오스 여행기②-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효순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엔에서 한 주일을 지낸 뒤 우리는 루앙푸라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나흘 전에 서울에서 날아와 우리와 합류한 여동생과 함께 가는 여행길이었다. 올해는 나와 두 살 터울인 여동생이 회갑을 맞는 해라서 그녀의 회갑축하도 겸하는 여행이었다. 면사무소가 옆집이었던 고등학교의 졸업장 하나 손에 쥐고 올라간 서울에서 동생은 서울남자와 결혼했지만 그와의 인연의 끈은 길지 않았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서울에서 홀로 두 아들을 교사로 대기업 사원으로 키워냈다.

 자식들을 막상 품에서 날려 보내고 나니, 그 빈자리에서는 젊은 날에는 몰랐던 외로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고 했다. 가볍게 지나가는 듯 말하지만 그 속내가 오죽하랴. 언니인 나도 진즉 일손을 놓았는데 그녀가 아직도 꿀벌처럼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은 홀로 견뎌야 하는 시간을 줄이려는 궁여지책이리라. 설날 연휴에다 그 앞뒤 사나흘을 보태서 함께 놀자고 우리가 제안을 하자 동생은 반색을 했다.

 반시간 남짓 동안 비행기는 눈 아래 세상이 온통 녹색인 밀림을 넘었다. 착륙하려는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자 동화 속 마을 같은 루앙프라방이 한 눈에 들어왔다. 루앙프라방이라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문화재라더니 숲 속 푸른 나무들과 그 사이사이에 촘촘하게 박혀 있는 붉은 지붕들이 참으로 조화로웠다. 그 붉은 집들은 대부분이 사원들이었는데, 사원으로 이루어진 도시라고 불러도 과언은 아닐 성싶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을을 그린 화폭이라고나 할까? 거리를 오가는 관광객들마저도 한가로워 보였다. 오래 전에 조성된 골목길들은 우리 어릴 적 고향마을의 고샅길을 연상시켰다. 이 동네에 내리는 청량한 햇살과 맑은 하늘은 「루앙프라방」이라는 그림에 꼭 알맞은 배경색이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송테우 택시 한 대를 대절해서 꽝시 폭포에 갔다. 폭포는 한 줄기가 아니라 하얀 홑이불 여러 자락을 층층이 널어놓은 형상이었다. 떨어진 폭포수는 옥빛 연못을 여러 개 만들어 놓았는데 그 깊은 산 속 선녀탕에는 날개옷도 안 입은 서양 선녀들이 내려와 아슬아슬한 차림으로 유유자적 노닐고 있었다. 함께 간 남편은 나무꾼이 되어 그 선녀들을 향해 연신 카메라를 눌러댔다.

다음 날 새벽, 희미하게 들리는 북소리에 잠이 번쩍 깼다. 매일 새벽마다 행해진다는 스님들의 탁발의식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너무 일찍 나왔는지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그 따뜻하다는 남쪽나라에서 매운 추위가 우리를 기다렸다는 얇은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주위가 수런수런 해지는가 싶더니 저쪽에서 주황색 승복을 입은 수 십 명이나 되는 스님들이 한 줄로 걸어오고 있었다. 공양물로 드리기 위해서 구입한 찐 밥을 한 숟가락씩 퍼서 그분들의 걸망에 담아 드렸다. 건장한 청년 스님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짧은 머리가 하얀 분도 있고 열 살 안팎으로 보이는 볼이 통통한 동자승도 있었다. 나는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사탕 몇 알을 꺼내 어린 스님에게 공양을 했다.  

 탁발스님들의 행렬이 지나가는 2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 사람들이 한 줄로 앉아서 공양물을 바치는 광경은 매우 이채로웠으나 한 편으로는 씁쓸한 느낌도 들었다. 진정한 신심으로 공양물을 올리는 원주민들은 별로 없고 관광객들과 상인들이 벌이는 이벤트에 스님들이 들러리를 서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안타까웠다.

 

 어느 날 오후에 루앙프라방을 안고 흐르는 남우강-메콩강의 지류-에서 배를 탔다. 그 배는 한 시간 반 남짓 통통거리면서 꾸억동굴까지 간다. 꾸억동굴에 모셔진 여러 돌부처님 전에 지폐 몇 장 올리고 합장을 했다. 돌아 나오는 길, 아기에게 젖을 물린 채 손 바닥만한 보자기 위에 좌판을 벌여놓은 젊은 아낙과 마주쳤다. 그 여인에게서 부처님 얼굴이 그려진 달팽이 껍질 두 개를 2달러에 사서 하나는 동생에게 주었다. 남편은 작은 나무 알맹이를 꿰어서 만든 단주를 집어 들었다.

 우리를 태운 자그마한 배는 카약처럼 기다란데 난간이 높지 않아서 팔을 뻗으면 손이 강물에 닿았다. 강물이 뱃전에서 찰싹이며 살갑게 말을 걸어온다. 강물과 악수를 나눈 손을 그대로 놓아 버리기가 아쉬워 손바닥에 물을 담아보았다. 황토를 풀어놓은 것처럼 보이던 강물인데 손 안에 담긴 물은 의외로 맑았다.

 눈을 들어 강변을 바라본다. 우루루 몰려다니는 소들과 팬티 한 장만 걸친 소년들은 물속을 들락날락하며 멱을 감는다. 땡볕에서 삽 한 자루로 모래를 채취하던 남자는 지붕이 반 쯤 날아간 원두막 안에서 오수에 취해있고. 저만치 다른 무리는 펼쳐든 그물로 물고기 잡이에 여념이 없다.

 천천히 흐르는 강물은 즐비한 원시림 옆을 지나 강가까지 내려온 은모래와 포옹을 한다. 멀리 강 언덕에서 나풀거리는 옥수수 잎새와 알은 체하는 것도 잊지 않고 바쁜 기색 하나 없이 유유히 흐른다.

 얼굴을 살살 간지럽히는 강바람 덕분일까. 옆자리에 앉은 동생은 졸고 있다. 시름없이 편안해 보이는 얼굴인데 들여다보는 내 가슴 안에서는 찰랑 물살이 일어난다. 가만히 손을 잡자 눈을 뜬 동생이 말간 목소리로 ‘언니야, 지금 이 순간 너무나 편안하고 좋다.’ 고 했다. 남우강을 붉게 물들이던 석양빛이 그런 동생의 볼을 가만히 쓰다듬고 있었다.

                                                            (201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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