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지는 늦가을

2007.12.1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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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워지는 늦가을

        병이 도지나? 유난히 가슴이 춥다. 또 생각해본다. 난 왜 사는 걸까?
아니. 살고 싶지 않다. 죽어? 어떻게 죽어야 하지? 찬바람 도는 계절이 되면 찾아 드는 나만의 연중행사. 이번엔 무슨 수로 빠져 나갈 수 있으려나.
        마침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가 내게 희망을 준다. 짧은 결혼 생활을 이혼으로 마감하고 그냥 저냥 호적상 혼자로 살고 있는 작은 오빠의 음성이다.
        “어, 오빠다.” 기분 좋게 알콜이 섞인 억양이다.
        나이 30에 위암으로 떠난 큰 오빠가 없어도 그냥 오빠라 부르게 안 되는 작은오빠. 문득 내 생각나면 소주 한 잔 걸치고 내게 전화를 한다. 전할 소식 따로 없어도 작은 오빤 서울에, 난 엘에이에 떨어져 살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어찌 보면 가까이 살고 싶은 우리 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식 없이 남편과 단 둘이 사는 나도, 아무도 없이 달랑 혼자 사는 작은오빠도 외롭단 느낌은 별로 없이 살아왔다. 나름대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내 생활은 감사함과 충족함으로 행복한 삶이고, 작은오빤 오빠대로 외로움은 모르고 사는, 본성이 태평한 사람이다.
        그러나 세월에 장사 없다더니 보이는 표정은 활기차고 멀쩡한데 안 보이는 마음은 나이만큼 늙어 언젠가부터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응석을 부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 듣고 싶다는 갈망. 아무리 내 주위를 돌아 봐도 내가 응석을 받아 줘야 하고, 내가 따뜻한 위로를 해 줘야 하고, 내가 먼저 활짝 웃어야 하고, 몽땅 내가 베풀어야 할 처지다.
        가까운 남편에게도 내가 기대기보단, 남편이 기댈 수 있게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때론 이런 내가 버겁다. 나도 좀 누군가에게 편히 기대고 싶다. 아마 그래서 살기 싫다고, 죽고 싶다고 아주 가끔 생각했나 보다.
        그런데 내게도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나보다 육년이나 먼저 태어났고, 나 어릴 때 줄곧 나를 돌봐 주었던 바로 작은오빠가 살아 있지 않은가. 서울에서 혼자 사느니 미국 와서 나랑 살면 안 될까. 허긴 지난 삼십여 년 동안 몇 번이나 내가 청했던 사항이다. 그 때 마다 작은오빠의 대답은 한 결 같이 “야아, 지금 내 나이에 미국 가서 뭐 하구 사냐? 난 싫다. 말도 안 통 하구, 길도 모르고, 무슨 재미로 거길 가서 사냐? 난 한국에서 살란다.”
        그래도 모르니까 기회 있을 때 해 두자고 형제 초청 이민을 신청 했었다. 그 마저도 관광비자 받을 때 미련 없이 포기하고 잠간 다녀만 갔다. 그러니 아무리 내가 원한다 해도 작은오빠가 원치 않는 것을 어쩌겠나. 서로 나이 들어 핏줄끼리 모여 살면 좋으련만. 한 번 더 물어봐야겠다.
        “작은오빠, 안 올래? 거기서 살기 힘든데 와서 나랑 같이 살자 응?”
        “거야 네 생각이지. 매제 생각은 어떤데?”
        이렇게 작은오빠의 미국행은 슬그머니 시작 됐다. 우선은 기한 지난 여권을 다시 신청해야 한다. 카드빚 못 갚고 신용불량자 신세였던 오빠가 말소 된 주민등록을 살리는 작업부터 여권 갱신 신청을 곧 실행에 옮겼다. 받아 둔 10년짜리 비자가 아직 유효하니 여권 갱신만 되면 미국으로 오겠다고 결정 한 것이다. 삼 년 전만 해도 두 번째로 미국을 방문 했을 때, 좀 느긋하게 살아 보고, 웬만하면 주저앉겠다더니 두 주일 있다가 미련 없이 한국으로 돌아갔던 작은오빠다. 답답해서 도무지 살 수가 없다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많이 외로워서 오빠랑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자유롭게 나다니던 분이 여기 와서 어떻게 소일하며 사실 건지 물어보란다. 그런 계획 없다. 난 그저 한 가지만 생각하고 오빠를 오라고 한 것이다. 내가 외로우니까. 작은오빠도 물론 어떤 계획 같은 거 갖고 오겠다는 거 아니다. 한국에서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됐기 때문이다. 독거 인이자 신용 불량자다. 물론 벌이도 없다. 주민등록이 말소 됐으니 의료 혜택도 못 받는다. 그나마 최저 생활 보장으로 십 삼 만원의 연금이 자동 입금 된다지만 손전화비 오 만원 자동 이체 되면 팔 만원 남는단다. 다들 살기 힘드니 어디 손 벌릴 때도 이젠 없단다. 마침 동생이 오라고 하니까. 마지막 길이니 수속을 시작 한 거다.
        통화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여권이 나왔다고 밝은 소식이 왔다. 물론 말소 됐던 주민등록도 살려 놓고 여권도 나왔으니 이 달 말께 들어오겠단다. 문제는 은행에서 출국정지를 신청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비행기는 타봐야 알고 미국에 가서도 입국을 거부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늘에 맡기자. 작은오빠가 온다는 소리에 기뻐서 펑펑 울며 하나님께 감사기도까지 드렸는데, 이제 와서 비행기를 못 탈수도 있다느니, 미국까지 와서도 입국 거부를 당한다느니, 이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아니다. 이 넓은 세상에 단 남매 남아 가까이 살겠다는데 이런 걸 훼방하실 하나님은 아니실 거라는 확신으로 믿고 기도한다.
        추워지는 늦가을에 시작 되는 상실감, 엷어지는 삶의 의욕, 솟아나는 죽음의 유혹 등,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것들을 작은오빠와의 해후로 이길 수가 있는데 설마 하나님께서 이 길을 막으실 리가 없다.
        “작은오빠, 우리 가까이서 서로 의지하고 살자 응? 다 잘 될 거니까 걱정 말구. 아무것도 사오지 마. 필요한 건 하나도 없고, 오빠만 오면 돼.”
        요즘 허다한 자식들이 부모 모시길 싫어한단다. 부모가 집 사주고, 손주  들 길러준다 해도 돈도 싫고, 애 봐 주는 것도 싫고, 자기들끼리만 살겠다는 것이 현실이란다.
         그러니 자식 없는 신세타령 할 것도 없고, 내가 가진 것 나눠 먹고, 함께 쓰면서 그렇게 오순도순 따뜻하게 살고 싶다. 남편의 입장에선 불편 할 수도 싫을 수도 있을 법 한데 아내 사랑하는 맘에 흔쾌히 허락해 줬으니 아직 젊은 우리 세 사람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가족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 보리라.
        작은오빠가 무사히 내 집에 도착하는 날을 기다리며, 글쓰기 전용으로 쓰던 내 비밀스런 공간을 오빠 방으로 정리 한다. 내가 감수해야 할 작은 희생인 셈이다. 앞으론 내 창작 생활에 차질이 올 것이다. 그래도 작은오빠랑 함께 살고 싶다. 무사히 내 곁으로 와 주기만 기다리고 있다. 추어지는 늦가을에 따뜻하게 살 궁리를 한다.

        
200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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