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이민자를 기다리며

2005.11.23 13:27

정찬열 조회 수:81

                  
한국 외교통상부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미국 내에 거주하는 한국인 수가 2백15만7천4백98명이라고 한다. 2년 전에 비해3만 4천 명이 늘어났다고 한다. 공식 집계가 그렇다니 통계에 빠져있는 사람을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한인 인구가 늘어나고 이민연륜이 깊어지면 그만큼 미국 속의 한인사회의 경제력도 커지게 된다. 경제적 힘과 함께 투표권자가 많아지면서 정치력도 높아지고 한인들의 요구사항을 관철할 수 있는 힘도 생기게된다. 알다시피, 미국의 대학입학 학력고사에 해당하는 SATII 시험에 한국어가 외국어 과목으로 선택되었고, 우리 고유의 음식인 떡을 상온에서 판매할 수 있는 법이 통과되었다. 김밥 법안도 준비중이다.    
또 있다. L.A 한인타운 부근에 있는 샌포드 우체국의 이름을 '도산 안창호 우체국'으로 개명하는 법안이 연방하원에 제출되었다. 이 법안은 한인타운을 관할하는 '다이앤 왓슨 연방하원의원 한인 자문위원회'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현재 하원 정부 개혁위원회에 계류중이다. 이미 제퍼슨가 국민회관 근처에 '도산 안창호 광장'이 들어서 있고, 10번 프리웨이 구간의 '도산 안창호 인터체인지' 명명 결의안도 주 상원을 통과한 상태니 L.A지역에 도산의 이름을 딴 공공장소가 3곳으로 늘어나게 될 것 같다.
3억 가까운 미국 전체 인구에 비하면 한국인은 아주 작은 소수민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며 미국 속에 한인의 위상을 높혀 나가는 모습을 보면 참 흐뭇하다.  
이민으로 이루어진 나라답게 미국은 이민자들이 살아가는데 편리한 쪽으로 꾸준히 변하고 있다. 지난달엔 계약서를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작성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상품이나 서비스 구입 거래를 특정 언어로 했을 경우 계약서도 반드시 같은 언어로 작성하도록 규정한 '거래 계약서 동일언어 법안(AB309)'을 주 의회에서 의결한 것이다. 언어 때문에 불편을 겪는 이민 1세들에게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법안은 우리 한인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것은 아니며 한국어만을 대상으로 한 법안도 아니다. 이 법은 라티노, 중국계 등 이민 선배 커뮤니티가 닦아놓은 정치력의 후광이 있었기에 통과될 수 있었다. 모국어 계약서 작성의 길을 튼 것은 라티노 커뮤니티였고, 한국어, 중국어, 베트남어 등의 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한 이번 법안은 중국계인 주디 추 주하원의원이 제안했다. 이를테면 이 법안에 관한 한 우리는 무임승차를 한 셈이다.
소수민족이 이만큼의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기본권 쟁취를 위해 목숨걸고 싸워온 흑인을 비롯한 여러 민족이 꾸준히 노력해온 결과이지만, 소수민족의 요구를 수용해 나가는 미국정부의 이민문화에 대한 너그러움에서 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각기 다른 문화를 한 솥에 끓여서 독특한 미국문화를 만들자는 멜팅팟 정책 대신 각 이민사회의 개성과 문화를 존중하며 함께 어울림으로써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셀러드 볼 정책을 택한 정부의 선택이 각 소수민족 사회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배경이 되고 있다.
미국은 이민자의 권익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쪽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이민 온 사람이 살아가기에 더 좋은 나라, 기회의 나라, 그리고 희망의 나라가 되고 있다.
이 나라는 백인만의 나라가 아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나라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미국으로 건너왔으면 좋겠다. 숫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힘도 늘어난다. 넓디넓은 이 땅 어느 한쪽을 한인들이 차지하고 경제, 정치, 사회적으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며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국내 한인 숫자가 2백 몇십만이 아닌 2천 몇백만이 되었으면 좋겠다.      -2003년 9월 3일자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