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찾아 삼 만리

2005.11.23 15:22

정찬열 조회 수:18 추천:5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나도 어릴 때 만화를 참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엄마 찾아 삼 만리' 라는 만화는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줄거리를 기억할 만큼 무척 재미있는 책이었다. 노예로 팔려간 엄마를 찾아 나선 어린 소년이 피눈물 나는 고생 끝에 결국 엄마를 만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만화책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실제로 미국에서 발생했다. 만화에서는 소년이 엄마를 만나는 해피 앤딩으로 끝났지만 실제로 있었던 이번 사연은 엄마 얼굴도 보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가게 된 점이 다르다.
사연인즉, 미국에 먼저 밀입국해 센프란시스코에 체류하고 있는 부모를 만나려고 아홉 살과 열 한 살 짜리 한국인 남매가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발각된 것이다. 미 세관국경방어국(CBP)에 의하면 이들 남매는 지난 9월 7일 밤 다른 한국인 6명과 함께 캐나다 스포켄지역 국경을 넘다가 순찰 중이던 수비대원에게 체포되었다고 한다. 한국인으로는 부모 없이 단독으로 밀입국을 시도한 첫 케이스이며, 남매는 현재 아동보호소에 맡겨져 있으며 재판을 거쳐 본국으로 추방될 것이라 한다.
한국인이 밀입국을 시도하다 체포되었다는 보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엔 중국 동포들이 밀입국을 하려다 잡혔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그런 보도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착찹해진다. 그러나 이번 경우처럼 초등학생이 부모를 만나기 위해 캄캄한 밤에 국경을 넘어오다 잡혀서 추방된다는 기사를 보고서는 참담한 느낌을 금할 수 없다.  
미국 밀입국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물론 한국인만은 아니다.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멕시코인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여 밀입국을 시도하고 있다. 도중에 잡혀서 되돌아 간 사람도 있고, 넘어오다가 죽은 사람도 있다. 멕시코에서 트럭 밑바닥에 몰래 숨어 들어오다 열 명도 넘은 사람이 질식하여 죽은 적도 있고, 중국에서 화물선 바닥에 숨겨 들어오던 사람들이 배 바닥에 물이 차서 수장이 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도 있다.
그 때 나는, 이 나라가 과연 목숨을 걸고 넘어올 만큼 그렇게 대단한 곳인가를 생각해 보았었다. 목숨 걸고 살아가겠다는 자세라면 어디서든지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들었다.
이민을 가는 것도 결국 잘 살아보자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닐까. 국내에선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밖으로 나가 한 번 기를 펴고 살아보자, 더 나은 삶의 질을 찾아 떠나보자, 아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나라에 가서 오손도손 행복한 가정을 꾸려보자는 등,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이민을 결심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 세계는 열려있다. 좁은 땅에서 복작거리지 말고 넓은 세계를 향해 꿈을 펼쳐나가는 것은 개인은 물론 국가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일 수 있다. 이민을 떠나겠다는 뚝심과 강단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땅에 가서든 틀림없이 잘 살아갈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목적이 좋으면 수단도 정당해야 한다. 적어도 아홉 살이나 열 한 살 어린아이를 낯선 사람 틈에 끼여 캄캄한 밤중에 국경을 넘게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고 억지를 부려서는 안 된다.  
짐작이나 해 보았을까. 한 밤중 불안에 떨면서 국경을 넘어갈 어린아이의 그 막막한 심정을.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대접받아야 한다. 만화 속의 어린이로 착각해선 안 된다. 어른들이 그것을 알아야 한다.  
어릴 적, 가슴 조이며 읽었던 '엄마 찾아 삼 만리' 라는 만화책을 다시 떠 올려본다. 만화에서나 있을법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다시는 이렇게 머나먼 나라 국경 문턱에서 쫒겨 되돌아가는 어린 남매의 애절한 소식 같은 게 들려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 2003년 9월 24일 광주매일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