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꽃

2005.09.19 15:01

김영교 조회 수:208

느슨한 감성이 어떤 남자의 관심의 못에
사진을 위하여 지구를 돌고 있는 한 남자를 알고 있다.
그 남자는 여자들 틈에 끼여 한 때 사진을 배우는 팀에 속해 있기는
했지만 그의 테크닉은 이미 정상급에 도달해 있었다.
내가 그 남자를 눈여겨 본 데에는 자신의 경력과 기술에 자만하지 않고
계속 정보를 캐고 지속적인 노력을 쏟고 있는 그의 겸손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돌핀 팀장으로 그를 뽑아 세웠다. 리더십도 탁월하고 사람 경험이 많은 그 남자는 분위기 잡는데 절묘한 솜씨를 보였다.
이름하여 돌핀* 클럽에는 목사와 사모 그리고 그 남자, 나머지 9명은 모두 주부들이었다.
우리는 그의 말에 귀 기우리기를 좋아했고 그 남자를 우려먹는데 해저자원이 달아 없어지는 법이 없어 해박한 대화와 보충 실기실습은 황금어장이었다.
그 남자는 같은 물체를 보았는데 다른 표현이었다. 초점을 맞추는 안목이 출발부터 달랐고 포착하는 각도 또한 판이했다. 빛이 그리도록 그는 허락하는 것이었다. 화면을 가득 체우는 것이 아니라 가득한 화면을 계속 비우고 있었다. 사진에 관해서 그는 프로라고 나의 생각이 확고하게 모아졌다.

골수암으로 투병하는 남편을 보살피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 바람을 쏘여 주던 날 그 남자는 5명의 우리 일행에게 김춘수의 “꽃”이란 시 한편씩을 선물로 내 밀었을 때 우리 모두의 가슴은 떨렸고 그의 멋을 훔쳐보는 신비한 기분이 들었다. 집에 올 때 쯤 우리 모두는 그 시에 푹 빠져들었고 그 남자는 다 외워 자기 것으로 만들기를 숙제로
남겼다. 강준민 목사의 설교 테이프도 잊지 않고 하나씩 덤으로 안겨주었다.

오랜 세월 방치해두었던 자신을 찾아 자기개발의 시간을 가진 습작 기간이 있었다
카메라를 메고 고정관념의 들판을 헤맸고 낮게 엎드려 처다보는 사물은 다 아름다웠다. 한없는 꾸부림을 요구하는 들꽃들의 키와 흙알갱이 높이에 눈 마추느라 힘도 들었고 지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인내심도 바닥을 내보였다. 그럴때 마다 그 남자는 우리의 느슨한 감성에 정도의 망치질을 했고 리더다운 그 남자의 관심은 못으로 다가와 우리를 늘 긴장시켰다. 틈이 벌어지려는 갈등을 조여주려 똑바로 와 박혔다.
인간관계에서 노출과 거리, 명암과 구도, 각도와 선명도 등 의도된 것은 무두 다 있다가 없다가, 없다가 나타났다. 자연과 동화 될 때 행복했고 Fideld Trip을 통해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 행복이 오래오래 지속되도록 우리을 안내 해주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진작가와 없는 것을 있게 창작하는 예술가는
직관의 다리를 건너
마음의 눈으로 그리는 사진작가의 세계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었다
피사체를 눈으로 찍는 사진사보다 구도 안에 의미를 찍는 사진작가로 성장하도록 격려 내지 부추겨 주었다.
사진사가 입으로 말하는 대신 사진작가는 작품으로 말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기 마련이라고 강조하기를 잊지않았다.

아름다움을 위한 사진작가의 혼이 랜즈만 들이대면 살아나 대화하는 것처럼 반짝이기 시작 하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예술가의 기질이 뷰파인더와 샤터에 스파크로 튀고 손만 갖다 대도 감응이 되어 살아나는 것, 그것은 그 남자의 마술이었다. 어느듯 그 마술 뒤에 숨은 “꽃”이 돌핀 여행팀 토양으로 옮겨져 피어나고 있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 그에게로 가서 나는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우리 모두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 전문이다.

산(山)바람 가슴 가득 들여 마신 친구는 남편 입속에 넣어 줄 무공해 산(生)바람 간수하느라 내 옆에서 밤잠을 설쳤다. 꿈속에서도 “꽃”을 외우는 친구에게, 또 나에게 그 남자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어 그 남자의 꽃은 이렇게 피어나고 있다.

*돌핀은 엔돌핀의 줄인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