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과 낙하, 그 분기점에서

2004.10.30 14:10

강학희 조회 수:163 추천:10

비상과 낙하, 그 분기점에서 / 강학희

샌프란시스코 Fell Street 전선줄에
운동화 한 켤레
땅에서는 맞잡을 수 없던 양편 끈을 잡아 맨 채
하늘을 걸어올라 아스라이 대롱거린다

한 세상 헤매다 부르튼 이야기들 버려두고
닳은 뒷축으로 나선 탈주脫走의 곡예
빈 몸으로 바람을 밟아 줄을 탄다

꿈은 이루어지는 순간 꿈이 아닌 현실
이제 곧 아득한 낙하의 무게로
곤두박질일 현실 머지 않다 해도
아직은 비상,
또 비상을 향해 발돋움하는 저 꿈을 보라

이 길에 들어서면
스멀스멀 발가락이 간지럽다
날아오르고 싶다. 날아 오르고 싶다.

*Fell: 떨어지다 Fall의 과거형으로 샌프란시스코 진입로에 있는 길 이름.



시작 노트:

샌프란시스코 사무실로 가는 진입로에는 Fell,낙하란 이름의 길이 있다. 나는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거리의 이름을 지은 사람의 생각을 더듬어 보게 된다. 이상하게 Fell이라는 길로 들어서면 꼭 날고 싶은 Fly, 날다, 비행, 비상이란 단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 세상 누구도 떨어지는 건 원하지 않는 일, 낙하란 단어를 보는 순간 우리의 생각은 이미 하늘을 나는 비행 속에 있다. 25년 넘게 그 길을 다니며 경험한 현상이다. 그 길을 가면 길을 놓고 날고 싶어 가슴이 스멀거리고 발끝이 간지러워진다.

어느날 문득 하늘에 걸린 두 발, 결코 길 위에서는 매어질 수 없는 인연을 서로 굳게 잡고 하늘에 올랐다. 둘이 잡은 단단한 매듭으로 중심을 잡고 허공을 가른 전선줄에 발을 올렸다. 나르는 새들도 커다란 발이 이상한지 기웃거리고 짓궂은 바람, 축촉한 안개가 건드려도 끄떡도 없이 하늘 길을 놓지 않고 있다.

이미 수많은 길을 걸어 닳은 저 발은 하늘 길이 너무나 편한가보다. 어느 날 마음이 풀어져 그 맞잡은 손을 놓기 전 까지는 허공을 소유 할 것이다. 이 길 위 우리 모두가 이 길로 들어 서는 순간 닿고 싶어 근질거리던 발 대신 저 발이 하늘을 걷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저 발이 하늘에 닿은 순간 이미 비상의 꿈은 사라지고 낙하가 기다린다는 걸.

낙하 속의 비상, 비상 속의 필연의 낙하, 그들은 한 몸의 두 얼굴, 어쩌면 그 것이 바로 이 길이 보여주고 싶은 메세지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그 길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빈 하늘 아래서 나는 또 꿈을 꿀 것이다. 온 몸을 스멀거리며. 꿈은 이루어진 순간 꿈이 아닌 것, 우리는 끝 없는 꿈을 먹고 살아진다. 삶이 고난해질 수록 더 많은 발들이 저 허공으로 꿈을 던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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