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둘리다

2006.08.23 11:12

오연희 조회 수:193 추천:2

휘둘리다/오연희 모난 너 그 써늘한 첫만남의 기억은 까맣게 잊었다 마구 쏟아내는 내 마음의 소리 무한정 수용하는 너 진실된 것, 헛된 것, 가증스러운 것까지 모두 담아도 침묵할 줄 아는 네가 있어 안심이다 너를 부릴 줄 아는 것이 자랑스러운 세월 낡아져 가는 내 저장기능을 탓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잠시만 홀로 두어도 창문을 닫아걸고 죽은 듯이 잠잠한 너 그 섬뜩한 토라짐에 문고리 살짝 흔들어 생존을 확인한다 한숨 길게 돌리고 나면 ‘증명하라’ 엄한 소리 서둘러 나를 입력시킨다 ‘접속권한이 없습니다. 다시 시도해 주세요’ 한치의 오차도 허용 않는 너 또박또박 나를 입력한 후 숨죽여 기다린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마다 얼만큼의 거리를 두는 결국은 모난 너에게 마냥 휘둘리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