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별은 정말 싫다

2006.06.21 07:43

노기제 조회 수:187

                 이런 이별은 정말 싫다
                                                                        노 기제
        내가 당한 교통사고 현장에 차를 버려 두고 앰블런스로 실려가는 순간은 그저 잠간 헤어지는 것이려니 했다. 내 몸에 벌떼처럼 엄습해 오는 통증 때문에 미처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내 평생에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달리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런지를 상상조차 못 했던 것이리라.
        내 평생 차에 관해선 어떤 관심도 없다.  없으면 불편한 세상이니 그저 불편하지 않게 타고 다닐 수만 있으면 만족하는 편이다. 미국에  이민 와서 제일 처음으로 우리 소유의 차를 살 때도 남편은 내게 별 오만가지를 다 물어 왔지만, 난 그저 아무거나 자기 좋은 것으로 사라고 일관 했었다.
        1973년 7월 19일에 미국 땅을 처음 밟았으니 무슨 능력으로 비싼 차를 살 수 있었겠나. 몇 푼 꾸려온 돈 중에서 얼마를 다운하고  남편이 처음 운전 한 차는 노랑색 복스바겐 스틱 쉽 버그였다. 매번 기아를 바꿔가며 운전해야 하는 차가 가격이 낮은 편이었던 관계로 선택하면서 남편이 하던 변명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이담에 돈 벌면 비싼 스포츠카 사 줄 테니 미리 연습해서 익혀두라나. 잘은 모르지만 스포츠 카들은 모두 스틱쉽인 모양이다.
        복스바겐은 주로 남편이 타고, 미래의 스포츠카 운전자가 되기 위한  연습으로 난 가끔 운전하곤 했다.  형편이 나아지면서 두 번째로 구입한 차는 올스모빌  커트라스 수프림, 팔 기통짜리.  탱크처럼 크고 튼튼했던 기억이다.  몇 년후 상태가 아주 양호한 올스모빌은 갑자기 차가 필요해진 남편의 매형에게 드렸다.그 다음차가 볼보 740,그 다음 차가, 처음 세상에 나온 렉서스였다. 웬만하면 일제차는 타지 말자던 남편이 새로 선을 보이는 렉서스를 자동차쇼에서 본 후론 바짝 관심을 보이며 연구하더니 일제차 불매운동을 스스로 접고 말았다.
        볼보와 렉서스를 소유해서 여분으로 남게 된 복스바겐은 그냥 마스코트처럼 집 앞에 주차해 놓고 있었다. 두 식구에 차가 세 대인걸 눈치 챈 우리 집 정원사가 필요도 없는 저 복스바겐은 자기에게 팔라고  매 금요일마다 정원 손질하러 오면서 조르기 시작이다. 십만마일을 훌적 넘겼지만 마누라보다 더 애지중지 차를 보살피는 남편의 손길로 복스바겐은 누구나 탐을 내는 그럴 듯 한 차였다.
        결국 힘들게 사는 멕시코인 정원사를 도와주는 심정으로 복스바겐을 넘겨 줬다.  산에 가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남편은 스포츠 유틸리티 차를 사고 싶어 했다. 다섯번째 차로 우리에게 온 토요타 훠러너 리미티드.  스키타러 갈 때나, 산에 갈 때 꼭 필요한 차다. 물론 난 전혀 관심이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차가 속속 우리에게 왔었다.   산행을 통해 만난 산꾼 중의 한 사람이 형편이 몹시 어려워서 볼보를 그 사람에게 선물했다. 남편이 좋아서 산 렉서스는 내가 타고 다녔다.
        또 여러해가 지난 어느날, 갑작스레 한국에서 온 조카녀석 때문에 차가 필요하게 됐다. 1999년도 1월이었다. 무슨차를 사야 하나? 남편은 계속 내게 물어 오지만, 난 여전히 아무 관심도 없다. 차면 되지 무슨차가 뭔 소용인가. 자기가 타고 싶은 차로 골라서 사라고 일임 했다. 물론 내가 탈 차지만, 남편의 취향에 따르면 된다.
        남편이 며칠을 생각하며 결정한 차가 BMW다. 색갈도, 난 흰색이 좋을 거 같은데 고급차는 색이 진해야 그 품위가 더하다며 블랙으로 골랐다.  남편이 좋다면 다 내 맘에도 좋은 것이니 그대로 결정했다. 조카에게 넘겨주긴 좀 과하지만 딴 방법이 없으니 렉서스는 조카에게 물려줬다.  새차를 구입할 그 당시 내가 의미를 두었던 점은 이것이 나의 마지막 차라는 것이다.
        이민 생활 26년째에 내 능력으로 지불하는 마지막 차란 뜻이다. 앞으로 은퇴하면 경제적 여건이 만만치 않을 터이니 내가  내게 주는 최대의 대접인 셈이다. 그 때까지 살동안은 일부러 비싼차를 외면하며 살았다.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내 능력으로 한껏 호사 좀 누려 보자 생각했었다. 그래서 차 등록도 내 이름으로만 했다. 보통은 남편과 공동으로 등록을 했었지만 이 차만큼은 내 것이다. 내 것. 내 사랑스런 애마.
        우리와 함께 살다 떠나 보낸 차들은 모두 좋은 뜻을 담고 우리 곁을 떠났다. 일상생활에 차가 없으면 안되는 이민생활. 형편상 선듯 차를 구입하지 못하고 어려운 사정에 처했던 사람들에게 가느라 우리 곁을 떠났을 뿐이다.  더 값진 봉사로 더 알뜰한 마음으로 그들과 살기로 결정하고 떠났기 때문에 슬픈 마음은 없었다. 그 차들과 이별할 땐,대견하고 고맙고 사랑스런 아쉬움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내가 뭘 잘 못했단 말인가. 누가 와서 내 차를 먼저 친 것도 아니다. 정확한 이유도 모른채 네개나 되는 레인을 지그재그로 시작해서 중앙 분리대를 박고 자살해 버린 내 차. 지 몸 아끼지 않고 앞 뒤 박살을 내며 끝까지 날
지켜준 내 차. 손가락 끝하나 다치지 않게 날 보호해 주고 자신의 숨을 끊고  아무 반응이 없다.
         “이게 내 차야? 이게 내 차란 말야?”  마지막 모습을 보아야 겠다는 내 성화에 남편이 날 데리고 간 곳은 사고차량 보관소였다. 알아볼 수 없게 일그러지고 BMW의 예쁜 마크도 4EON255 번호판도 간곳 없는 흉측스런 몰골만이 말 없이 나를 맞는다.  열쇠를 꽂아도 기척이 없다. 앞 엔진 쪽 후드는 들려 허옇게 살을 드러낸 채 부끄럼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뒤쪽 트렁크는 비틀려 열리지도 않는다. 운전대에 터져나온 에어백이 자기가 세운 공로가 엄청나다는 듯 건방지게 날 바라본다.
        도저히 우린 다시 만날 수 없는 모양이다. 데려가 고치고 갈아 끼우고 어찌 해 볼 수도 없게 된 모습이다.  살며시 쓰다듬어 본다. 문을 열고 들어가 앉으니 여전히 날 태우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세다. 그런데 숨이 돌아오지 않는다. 햇볕 아래 따스한 몸체가 나를 휘감아 안아주며 속삭인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폐차하기로 결정했으니 서류에 사인하라는 보험회사 직원의 차가운 목소리가 저승사자의 작별 인사인양 내 가슴을 후빈다. 날 데려 가려고 시도 했다가 실패하고 돌아서는 화난 저승사자의 얼굴이 내 대신 죽어간 내 차에 포개진다. 반항의 몸부림도 없이 조용히 미소진 채 끌려가는, 목숨바쳐  날 사랑한 내차. 날 살린 것이 기뻐서 행복하게 떠나는 내차. 나의 애마.
삶을 마감하는 연습을 했다. 어느 누가 날 살리려 자기 목숨을 내어 놓을가. 아니 난 누굴 위하여 내 생명을 기꺼이  던질 수 있을가.  쉽게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분명 앞으로의 삶은 여지껏의 샮과는 달라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원하지 않은 이별을 고한 내 차와 함께 영원히 내 가슴에 살아  있을 질문이다.
                                                                        07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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