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마음

2005.04.13 19:52

조만연.조옥동 조회 수:170 추천:6

                          흔들리는  마음
                                                         조옥동

잔디밭 귀퉁이에 샛노란 양귀비 꽃 서너 송이가 봄빛에 화려한 나들이를 하고 있다. 귀를 스치는 미풍에도 긴 허리를 한들거리며 흔들리고 있다. 갓 깨인 노란 새끼 병아리들의 노니는 소리 들리는 듯 봄 뜨락이 따사롭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어린 새끼는 귀엽고 예쁘다.
  늦게 결혼한 딸 내외에게 아기가 없어 부모 된 마음이 초조해진다. 혼인 후 몇 년이 지나고 30대 중반을 넘어서도록 태기가 없으니 기다려진다. 이제 친구들의 모임에선 노년의 건강관리 다음으로 많은 수의 가정마다 노처녀 노총각 자녀들이 있어 그들의 결혼걱정이 화제의 초점이 된다. 무한경쟁시대를 사는 현대는 남녀 구별 없이 자신의 경력과 전문적 소양이 필수요건이며 최우선 과제다. 힘겨운 장거리 마라톤과 같은 인생역정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면 결혼이란 인생의 필수조건이 아니고 선택과목이 되었다. 결혼 연령은 자꾸 늦어지고 생활의 기반이 잡힌 후로 미루다 보면 40대에 첫아기를 낳게된다. 아예 출산조차 않고 둘만의 시간을 즐기려는 젊은 부부도 많아지는데 아기를 낳고싶어 하는 딸 내외가 오히려 고맙다. 인생의 고갯길을 넘어서 내리막길을 걷는 부모들 대부분은 그들이 살아 온 방식대로 자녀들이 결혼을 하고 아들 딸 낳아 키우면서 사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삶의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퇴근시간 책상 위를 정돈하고 자리에서 막 일어서려는 나를 나오꼬가 손을 잡아 앉힌다. " 나 결혼해요."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내 표정을 살핀다. "그래? 정말 축하해, 그런데 갑자기 언제 어디서 누구랑?" 나의 질문은 한꺼번에 모든 궁금증을 풀려는 듯 튀어나오고, 그리고 둘은 마주 앉아 진지하게 결혼을 얘기하느라  초저녁 어둠이 짙게 내려앉는 줄도 몰랐다.
겨우 전문의 자격을 얻자마자 떠나 와 35살의 노처녀가 된 그는 연구과정을 마치고 본국에 돌아가면 동경의 유수한 대학의 교수가 되어 강단에 서는 것은 물론 동료들을 제치고 연구소장이 되는 꿈을 지니고 우리 연구팀에 동참한 소아과 의사다. 아주 열심히 맹렬하게 리서치에 몰두해 왔다. 흔들림 없이 이 꿈이 거의 이루어져 벌써 몇 개의 대학에서 교섭이 진행되고 있었기에 가을이면 이를 떠나보낼 생각으로 벌써부터 섭섭함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결혼을 한단다. 미인은 아니지만 깨끗하고 하얀 피부가 돋보이는 그야말로 재색이 겸비한 女醫로 앞날이 촉망되는 부러운 노처녀의 결혼은 희소식이다.
등산을 하다 만나 반년을 사귀고 결혼을 결심하게 한 열살 연상의 노총각 얘기를 듣고 나니 나오꼬가 아까울 정도로 기우는 결혼이다. 해외생활이 외로워 쉽게 결혼을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어 그를 잘 감싸주지 못했나 자책감마저 들었다.

이 능력 있는 젊은 닥터의 마음을 흔들리게 한 것은 무엇일가. 그의 눈동자에서 아직도 흔들리는 마음을, 결혼이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을 읽을 수 있었다. 고국에 돌아가기만 하면 보장된 약속의 삶 대신 이곳에서 사랑이란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된 결혼을 택한 결심은 변치 않을 것 같다. 완전한 결혼의 조건은 찾기 어렵다고 오히려 나를 설득한다. 그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설명해 주고 싶어했다. 가장 선하고 고귀한 행복은 사랑이라고, 보통 가정의 평범한 생활 속에서도 얼마든지 행복이 만들어지는 방법을 곁에서 배웠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의 마음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간다. 사랑은 일생에서 가장 큰 흔들림으로 다가와, 결혼이란 쓰나미 같은 인생의 격랑을 치르며 행복과 불행이  좌우되는 것이 인생이 아닐 가.    
안개 자욱한 밤길을 운전하고 오면서 나는 그에게 말해 주고싶은 생각들을 정리했다. 평범한 행복을 위해서도 얼마나 많은 인내와 비범한 노력과 지혜를 배워야 하는 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