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 풍경

2007.01.15 15:35

정찬열 조회 수:167

  새로 개업한 음식점에 갔더니 벽에 바가지가 여럿 걸려 있었다. 박으로 만든 바가지를 오랜만에 보면서 고향집에 온 듯 포근했다.
  박 넝쿨이 울타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던 풍경, 보름달 아래 둥그렇게 박이 익어가던 모습, 박에 금을 그은 다음 톱으로 조심스럽게 선을 따라 박을 타던 일, 박속으로 나물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던 광경이 생각났다. 어머니가 바가지로 솥 밑바닥을 훑어낼 때 들리던 그 보드라운 소리도 귓전을 통해 들려오는 듯 했다.
  바가지와 관련된 잊혀지지 않은 일이 있다. 초등학교 3,4학년 쯤 일이다. 100여 가구 되는 우리 마을에는 공동우물이 있었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그 샘물을 식수로 사용했다. 물을 길어오는 일은 주로 어머니나 누나들의 몫이었다. 물동이는 물을 나르는 중요한 도구였다. 옹기로 된 동이도 있었으나 대부분 가벼운 양철동이를 사용했다. 도시에 가보면 남자들이 물지게로 물을 길어 나르던데, 우리 마을은 물 길어오는 일을 여자가 맡아했다.
  동네 공동우물에 가서 두레박을 깊은 우물속에 던져 오른손으로 획 잡아채면 물이 담겼다. 그런다음 두 손으로 번갈아 길어 올려 동이에 담았다.
  누님은 샘에서 동이에 남실남실 물을 퍼 담은 다음 물이 출렁거려 넘치지 않도록 바가지를 물동이에 엎어 띄웠다. 고개를 뒤로 젖혀 긴 머리채를 흔들어 모은 다음 머리 위에 또아리를 먼저 얹어 한 쪽 끈을 지긋이 입으로 물었다. 그리고 물동이를 이었다. 한 손으로 물동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물동이 가상자리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쭉 훑어내어 흩뿌리며 걸어가는 누님의 모습. 석양에 긴 그림자를 만들며 물동이를 이고 잰 거름을 걷는 누님의 자태를 보면서 어린 내 가슴은 쿵쿵 뛰었다. 누님이 걸을 때마다 바가지는 물동이 안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투둥 툭 소리를 냈다.
  어느 날, 허리에 책보를 질끈 매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에게 동네 형이 자그마한 쪽지를 주며 물동이를 이고 걸어오는 누나를 가리키며 전해달라고 했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아무개 형이 전해달라고 하더라며 그 누나에게 편지를 불쑥 내밀었다. 아, 그 편지를 받은 순간 발갛게 달아오르던 누나의 얼굴, 그리고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던 그 누나의 표정이라니. 그 모습을 보면서 어린 나는 얼떨떨하고 미안했다. 심부름을 잘 못 한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한 동안 안절부절 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갑자기 병석에 눕게 되시어 진학을 못하고 농사를 짓게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 또래 동네 아가씨가 나를 만나면 얼굴을 붉히며 어색해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물동이를 이고 오는 그녀와 고삿길에서 딱 마주치게 되었다. 홍당무가 된 그녀의 얼굴, 그리고 어쩔줄 몰라 하던 그녀의 표정에서 내가 어릴 적 편지를 전해 주었던 그 누나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어쩌면 그때 그 누나의 표정과 저렇게 비슷할 수 있을까. 그것이 첫 사랑의 얼굴이라는 것을 그 때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시선을 애써 피하며 바삐 걸어가는 그녀의 물동이 에서도 투두둥 툭 바가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날 저녁 동네 뒷산에 있는 한적한 산소 앞에서 만나기로 그녀와 약속을 했다. 이를테면 첫 데이트였다. 동네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나려면 다른 장소가 마땅히 없었다. 어둠이 깔리는 시각 약속 장소에 나갔다. 눈발이 날렸다. 그녀와 나는 묘 앞 상석의 한 귀퉁이씩을 차지하고 앉았다. 대화는커녕 무슨 말인가 해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마음대로 되어주지가 않았다. 소나무 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만 또렷했다. 눈보라치는 캄캄한 밤, 찬 돌 위에 앉아 오돌오돌 한 참을 그렇게 떨며 앉아 있다가 돌아왔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느라 마을을 떠나면서 갑돌이와 갑순이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그 날 저녁 풍경을 떠 올리면 잔잔한 웃음이 피어오른다. 벽에 걸린 그 바가지가 오랫동안 걸려있어, 가난했지만 정답고 사랑스러웠던 고향의 아련한 추억들을 사람들에게 되살려 주었으면 좋겠다. <2007년 1월 17일 광주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