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2014.05.28 06:30

이월란 조회 수:8

길고양이


이월란(2014-5)


가끔씩 나를 탐닉하는 눈빛들을 본 적이 있다
어슬렁거리는 시간을 빼앗고 싶은지도 모른다
유기된 자유가 잠시 그리운지도 모른다
짐승만도 못한 현실을 네 발로 짚어보고도 싶을 것이다

허기로 밀도 높은 나의 영역은 눈물겹다
버려지는 것이 많을수록 바빠지는 네 발
헤밍웨이의 육손 고양이들이나 미코노스 섬의
배부른 길손을 떠올리는 것은 벽이 될 뿐이다

천 일에 가까운 짧은 수명으로도
나는 저 두 발 위의 눈빛들보다 더 뜨거운 동물이다
저토록 시린 땅을 견뎌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군침만 도는 겨울의 입도 저들보다는 따뜻하다

포획된 하루가 로드킬 당한 주검을 보며 돌아선다
장난이 운명이 되는 음습한 악령의 동물
노련해지거나 명랑해지는 것조차 치열함의 일부이다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길이 숨을 쉰다

중성화된 하루가 어제는 암컷처럼 오늘은 수컷처럼 뛴다
태어난 곳이 길이라면 서 있는 곳도 길이 되었다
친구 하나가 어느 애묘인에게 간택을 당해 떠나간 그 날
생존의 본능이 절도가 아닌 길임을 깨달았다

고아처럼 웅크린 밤과 하이에나처럼 눈뜬 아침
장식장 위에 깃발처럼 꽂혀 있던 집고양이들의 네모난 길처럼
어둠이 길을 먹고 세상이 모두 길이 되는 밤마다
나는 길들여지고 싶었다

꼬리로 슬쩍 휘감아보는 낯선 길에서 서름한 눈빛과 마주쳤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반짝, 내장 같은 길이 빛난다
길 위에서 길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