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엄마

2004.12.01 10:10

정찬열 조회 수:454 추천:8

                            
                                                          
  가을이면 기러기가 한 줄로 늘어서 북쪽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게된다. 수컷 기러기가 새끼들에게 쏟는 정성은 각별하다고 한다. 그래서 자녀를 영어권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사는 가장을 '기러기 아빠'라고 부르는가 싶다. 그렇다면 새끼 기러기를 데리고 낯선 땅에서 홀로 살아가는 엄마를 '기러기 엄마'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통계청은 최근 4년 간 자녀교육을 위해 외국으로 거주를 옮긴 기러기 엄마가 약 3만 명이라고 보도했다. 교육부 자료에 의하면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초, 중등학교 유학생이 2만 여명이라니 기러기 엄마의 반 정도는 미국에 거주하고 나머지는 캐나다를 비롯한 다른 영어권 국가에 흩어져 살아가지 않은가 싶다.    
미국에 온 엄마들의 상당수는 LA인근에 살고 있다. 그래서 필자도 자연스럽게 기러기 엄마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로부터 이런저런 어려움을 전해듣고 있다.
   미국생활  3년째에 접어든 Y여사도 그 중 한 사람이다. "한국에서 잘 나가던 직장을 포기하고 기러기 엄마를 자청했을 때는 최소한 영어 하나는 건질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영어가 생각처럼 쉽게 늘지 않았다. 아이는 학교에 들어갔지만 엄마는 선생님과의 면담도 자유롭지 못하고 학부모 모임도 나갈 수가 없었다.  반면에 처음에 힘들어하던 아이들은 금세 영어를 익혀 미국생활에 빠져들고, 영어와 미국식 사고방식을 익히면서 자기 일은 스스로 처리하려고 노력을 했다. 엄마는 아이들 학교나 데려다주는 존재로 전락했다.
  남편도 한국에서 혼자만의 자유로움에 잘 적응해 가는 듯 싶었다. 아이들 잘 가르쳐 보겠다는 욕심으로 소중한 가정을 담보로 '과부 아닌 과부'가 되어 이 땅에 온 나는 무엇인가. Y여사는 심한 우울증과 탈진상태에 빠져 요즘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기러기 엄마들은 대부분 중, 상류층의 고학력자다. 오로지 자녀교육을 위해 자신의 커리어는 물론 모든 사회관계를 접고 미국에 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처음 Y여사처럼 영어의 벽에 부딪친다. 그리고도 '외로움'과 '정체성 상실' 이라는 문제가 남는다. 외로움을 못 이겨 탈선하는 경우도 생기고, 아이를 기숙사에 넣고 엄마 혼자 귀국하는 경우도 있다. 엄마가 흔들리면 아이들도 덩달아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물론 아이들이 학교 가는 사이에 성인학교에 나가 영어를 배우거나, 이런 저런 방법으로 경제활동을 하면서 억척스레 살아가는 엄마도 많다. 그러나 그들 역시 더 나은 미래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뼛속 깊은 외로움과 경제적 어려움까지 참아내야 한다. 몸과 마음은 멍들어 간다.
  애당초 '기러기 가족'붐은 부유층에서 시작됐다. '원조 기러기' 들은 오히려 부작용이 덜하다. 미국생활에 익숙해 영어도 유창하며 아이들 사교육비를 부담 없이 충당하고, 한국과 미국을 수시로 오갈 수 있는 경제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험도 경제력도 없이 무리하게 미국행을 결정한 '보통 기러기'들은 '뱁새가 황새 좇아가려다 다리가 찢어진 모양'이 되고 있다. 이곳생활 5년이 넘은 K여사는 "한국에 돌아가자니 아이들이 적응을 못 할 테고, 남편은 이민을 원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대학 갈 때까지 기다리자니 돈도 문제지만 내 인생은 뭔가 하는 답답한 생각이 든다"고 토로한다.
  일본에서도 2,30년 전에 이런 형태의 조기 유학이 유행했다. 그 후,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면서 서서히 그 열풍이 가라앉았다. 일본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볼 일이다.  
  아내가 준비한 저녁 식탁 앞에 식구가 함께 둘러앉았다. 식사를 하면서도 '기러기 가족'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자식이란 게 뭔가. 자녀교육을 위해 부부가 생이별을 한다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그것이 최선의 길인가.    창 밖을 내다보니, 단풍 한 잎 툭 떨어진다. 이 가을, 밥상 앞에 혼자 앉은 '기러기 아빠'는 또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  
< 2004년 10월 27일 광주매일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