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한칸(2)

2005.09.04 05:55

박경숙 조회 수:435 추천:6

                          [4]

벽 너머 부엌에서 그릇을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장지문 안으로 뿌연 아침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어느 결에 잠이 들었던가. 아니면 스스로의 괴로움에 혼절했다가 저절로 깨어났는가. 머릿속이 몽롱했다. 얇은 흙벽 너머의 부엌에서 아침을 짓는 올케에게 뭐라고 참견을 해대는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 사이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음성은 마치 파리 한 마리가 내 귓전에서 왱왱대고 있는 것처럼 멀어졌다 가까워졌다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작게 들렸다 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잠이 덜 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어머니의 가시 같은 손이 어느 새 내 볼을 쓰다듬고 있었다. 어머니가 언제 허리가 구부러진 몸으로 그렇게 빨리 부엌에서 방으로 건너올 수 있었던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오래된 집이라도 어머니의 편리를 위해 억지로 입식부엌으로 개조를 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어머니가 옛날처럼 바닥이 깊은 부엌에서 뒷방 문턱을 짚고 올라와 이 안방까지 돌아오자면 수월찮은 시간이 걸렸으련만 이제는 방 높이까지 평평해진 부엌에서 그냥 뒷방을 돌아 안방으로 들어오는데는 아무리 기운 없는 몸이라도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일어나 아침 먹자! 어제는 여독에 입맛이 없다며 저녁밥도 뜨는 둥 마는 둥하더니...... ”
나는 대답대신 어머니의 껄끄러운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어머니의 퀭한 눈이 장지문을 뚫고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가득 담은 채 물기에 어려있었다.
“그래도 아직 곱다! 내 자식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아직도 이쁘구나! 지난 번 느이 오래비가 전화했을 때 좋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면서? 그래 그 사람이 누구냐? 웬만하면 고운 때가 가시기 전에 좋은 인연 시작하거라. 느이 외할머니 청상과부......  아이고! 생각만 해도 넌더리가 난다. 청상과부 분풀이를 딸자식인 나를 끼고 살면서 다하지 않았겠냐? 사람이 한이 쌓이면 못쓴다. 적당할 때 한풀이를 하고 넘어가야지.”
어머니의 마른손이 헐렁한 자리옷 밖으로 나온 내 어깨를 쓰다듬고 있었다.
“좋은 사람이 있긴요. 오빠가 하두 캐묻기에 그냥 귀찮아서 해 봤던 소리예요. 좋은 인연이 기다리고 있다면 어련히 나타나려고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개 장롱에 넣었다. 무심한 척 움직였지만 가슴이 서늘해왔다. 마이클을 의식하고 무심코 오빠에게 내뱉었던 말이 어머니에게까지 번져있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그 대상이 한국 사람이 아닌 미국 남자라고 말한다면 아마도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당장에 숨을 거두고 말 것이다.
세수를 하려고 자리옷 차림으로 마당 수돗가로 나갔다. 어제 저녁 해거름 녘에 어슴푸레 하던 집의 모양새가 아침 햇살에 낡은 몰골을 그대로 드러냈다. 오빠네 내외가 거주하는 아래채 지붕엔 낡은 기왓장 사이에서 풀들이 제멋대로 자라나고, 지난 날 주로 아버지가 손님을 맞으시던 사랑채는 지붕 한끝이 아예 주저앉은 채 방문 앞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백 여평의 흙마당 끝에는 얕은 시멘트 담장이 곧 허물어질 듯 불안하기만 했다. 나는 얼른 그 담장 언저리로 눈길을 던져 목련나무의 자취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곳엔 키 낮은 풀들이 여기 저기 자라고 있을 뿐 목련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수돗가에서 세수를 마친 오빠가 수건으로 목 언저리를 닦으며 내게 다가왔다.
“뭘 그렇게 두리번거리고 있냐? 집 꼴이 너무 흉하지? 이 동네에서 이렇게 오래된 집은 우리 집 뿐이다. 그래도 이제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해마다 집 건사를 잘 하셨던 덕분이란다. 그 분이 돌아가신 후론 내가 통 집을 돌보지 않았으니 지금 이 꼴이 당연하지. 나는 언젠가부터 새 집 지을 생각만 하고 있었거든.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요즘 세상에 이렇게 살기 불편한 재래식 집에서 사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거다. 서울의 새 며느리가 한번씩 내려오면 그 불편해 하는 모습이 안쓰럽더구나. 하긴 화장실부터 시작해서 불편한 게 어디 한두 가지래야지. 부엌이야 아버지 생전에 억지로 입식으로 고쳤다만 나는 사실 그때도 못마땅했단다. 아예 새 집을 짓지 뭣 땜에 해마다 저렇게 돈을 들여 오래된 집을 고치시나 하고 말야. ”
오빠는 집을 돌보지 않았음을 변명하며 아직도 담장 밑을 두리번거리는 내 눈길을 쫓고 있었다.
“오빠! 저기 담장 밑에 있던 목련나무, 어디로 갔지? 안방에서 방문을 열면 마주 보이던 그 목련나무 말야.”
나는 마당을 가로질러 담장 밑으로 걸어갔다. 오빠의 발걸음이 나를 따라 담장 밑까지 왔다.
“아 여기 있던 목련 나무? 그거 저절로 죽었어.”
“언제? 아버지 돌아가신 다음에? ”
나는 아버지가 떠나신 뒤 통 집을 돌보지 않은 그의 게으름을 책망하듯이 물었다.
“아니다! 목련나무 죽은 지는 오래되었어. 아마 너 떠나고 몇 해 지나서 였지.”
목련의 죽음을 확인하는 내 가슴이 왜 그런지 서늘해져 왔다.
“왜 죽었는데? ”
다그치는 내 물음이 의외라는 듯 오빠는 아직도 물기가 남은 얼굴로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왜긴? 그냥 죽었지. 그 목련나무가 사실 언제부터 이 집에 있었던지 생각도 안 난다. 제 명이 다 되어서 그랬던지 그냥 비실비실 말라가더니 어느 날 보니 죽어 있더구나. 목련은 왜?”
나는 그의 물음에 머쓱해졌다. 하긴 그 밤에 목련을 보고 내 가슴에 알 수 없는 갈망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니, 그는 그 목련에 대한 내 유난스런 관심을 짐작할 턱이 없었다.
“그냥 물어봤어. 갑자기 생각이 나서...... 목련이 그냥 죽었다면서? 나도 그냥 물어봤어.”
장난처럼 얼버무리는 내 말에 초로의 오빠가 중년의 여동생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마당을 가로질러 툇마루로 올라섰다. 뱃살이 제법 불룩한 그의 모습은 뒤에서도 허리께가 무거워 보였다. 나는 무심히 오빠의 늙어 가는 모양새를 바라보다가 그가 방안으로 사라지자 그때서야 수돗가로 걸어갔다.
흙마당에서 한 자 정도 시멘트를 쌓아올린 2평 정도의 수돗가는 예전에 우물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메꾸어져 흔적도 없는 자리엔 커다란 고무함지박 안에 올케가 담가 놓았는지 빨래감들이 물에 잠겨 있었다. 양은두레박을 한참 던져 내려야 겨우 물 샘에 닿을 수 있던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여름이면 대낮에도 대문을 잠그고 목욕을 하시던 외할머니, 우두커니 서서 할머니의 벗은 몸을 신기한 듯 볼라치면, 물을 끼얹으며 저리 가라고 호통을 치시던 외할머니의 늘어진 젖가슴, 껍질만 남은 피부 위로 아코디온처럼 드러나던 갈비뼈 밑의 가느다란 허리, 그 허리 밑에서 두 다리가 갈려나간 자리에 드러앉은 검은 그늘을 이미 다 보고 난 뒤 나는 킬킬대며 뒷마당으로 도망가곤 했다.
수돗물을 틀어 세수를 하려다 아버지가 또 억지로 만드셨다는 아래채 모퉁이의 목욕탕을 돌아보았다. 더운물에 몸을 씻고 싶었다. 그러나 어쩐지 그 모퉁이를 돌아 목욕탕으로 걸어  들어가기가 마땅치 않아 플라스틱 대야에 물을 받아 얼굴을 씻었다. 여름이 시작되는 때였지만 이른 아침이라서 인지 물은 섬뜩할 정도로 차가웠다. 밤새 온갖 생각이 뒤엉키던 머릿속이 갑자기 말개지는 듯 했다. 그 차가운 물에 얼굴을 씻어낼수록 지난 12년의 세월이 씻겨져 나가는 것처럼...... 한결 개운해진 기분으로 얼굴의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내며 수돗가에 선 채 집 안채를 올려다보았다.
만지면 금방 바스러질 듯한 낡은 기와가 얹혀진 지붕엔 아래채보다도 더 심하게 잡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전 날 어머니가 콩기름을 먹여 반들반들 가꾸던 툇마루는 니스 칠이 벗겨지고 툇마루 끝에 달려있는 덧문의 뿌연 유리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반투명함을 발했다. 옛 모습 그대로인 것은 화강암으로 깎아 만든 토방 위의 댓돌뿐이었는데, 그 댓돌 위에 비스듬히 벗어놓은 오빠의 슬리퍼가 없었더라면, 집은 꼼짝없이 빈 흉가처럼 보여질 것이었다. 내가 얼굴의 물기를 닦으며 이리 저리 집을 살펴보고 있을 때 오빠가 또 집에 대한 무슨 변명이나 할 듯이 담배를 빼어 물고 방에서 나왔다.
“너는 그 때 태어나지도 않아 모르겠지만, 6.25 사변 때 폭탄이 하나 이 집 지붕에 떨어졌었지. 다행히 불발탄이었어. 그래도 그 충격으로 대들보가 금이 갔던 것을 너 어릴 땐데...... 생각 나냐? 네가 중학교 땐가 온통 지붕을 걷어내고 대들보를 바꾸었지. 그때 아버지가 그 해 년도와 날짜를 붓으로 써서 대들보 위에 새기셨는데, 집을 헐게되면 그 대들보에서 아버지 글씨를 볼 수 있을 거다.”
그는 어느새 내 옆에 서서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나는 오빠의 말을 처음 듣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은 아버지가 대들보 위에 붓글씨를 새기던 그 장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6.25 때 금이 간 대들보를 이제서 바꾼다고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까지도 귀에 생생했다. 마당 안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던 일꾼들, 여기 저기 널려있던 건축 도구들.... 그 사이로 젊은 어머니는 부엌일을 돕던 동네 아낙들과 함께 부지런히 일꾼들의 새참을 준비하고 계셨다. 어머니의 살집 좋은 아랫도리를 휘감고 있던 하얀 행주치마, 어머니의 얼굴엔 희망 같은 것이 감돌았고 외할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신 즈음이었다.
“4.19 때는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아들 땜에 불안한 부모님을 글쎄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친구 놈들이 위협하며 이 집 담장을 넘어들었다더라. 아버지가 자유당 말기에 정치에 관여하셨던 것을 핑계 삼아 그놈들이 시비를 걸었던 거지. 이래저래 사연도 많았던 집이다. 외할머니가 집을 나간 외삼촌을 포기하지 않고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리던 집이기도 하니까.”
타월을 목에 두르고 툇마루로 올라서는 나를 따라 오빠는 느린 걸음을 떼며 피다만 담배꽁초를 마당 한가운데로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어림도 없을 오빠의 그 짓거리가 공연히 이 집을 박대하고 있는 듯 했다. 마치 지긋지긋한 옛 세월의 자취가 어서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하긴 오빠에겐 집을 통한 그 막연한 기다림이 있을 리가 없었다. 기다림이란 단어는 본래부터 여인들의 것일 뿐 남자에겐 어울리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외할머니의 기다림, 그 기다림은 은연중에 어머니에게로 세습되었고, 이제 그 기다림은 아예 이 옛집의 흔적과 함께 자취를 감추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애끓던 외할머니의 기다림을 지금도 환히 기억하고 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핏덩이였다던 어머니의 하나 뿐인 동생, 애지중지 길렀건만, 이 집에서 아홉 살이 되던 해 홀연히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그를 한평생 기다리던 할머니..... .

                                           [5]

우리 집엔 가끔씩 보살이란 이름을 단 여인들이 드나들었는데 그 보살이 항상 같은 사람이었던지 아니면 올 때마다 다른 사람이었던지는 나는 지금도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할머니는 이따금 그런 여인들을 불러들여 돌아오지 않는 외삼촌에 대한 신통수를 물어보곤 하였다. 아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어 언젠가는 이 집으로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얻기 위해 할머니의 눈매는 늘 눈물이 글썽하였다.
외할아버지가 관청에서 일하셨던 때문에 관사에서 살던 할머니는 갑자기 남편을 잃고 두 자식과 함께 셋방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외할머니의 친정에서 할머니를 위하여 마련해 준 집이 바로 이 집이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어린 동생과 유년의 몇 년을 보내다가 동생이 어디론가 떠난 뒤 외할머니와 단 둘이서 이 집에서 살고 있던 때 출가했다. 청상과부의 딸이기에 지체 높은 집안의 며느리가 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어머니는 중농 집안의 차남인 아버지와 결혼을 하였다. 다행히 아버지는 촌에서는 드물게 고등교육을 받은 덕분에 평생 융통성도 없는 공무원 노릇을 하며 이 집을 잘 지켜내었다.
재산을 불리는데는 관심도 없이 한량 기질을 지닌 아버지는 이 집에 살면서부터 집 마련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어머니와의 결혼 생활은 평탄한 듯 했지만 웬일인지 어머니에겐 첫 자식인 오빠를 낳은 후 15년 넘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늦게서야 겨우 낳은 것이 나였다. 그러니까 여러 식구가 살아왔어도 이 집에서 태어난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뒤 고향으로 내려온 오빠네 자식들도 이 집에서 자라긴 했어도 태어나지 않았다.  
나의 어린 시절, 서울서 공부하던 오빠가 떠난 집엔 항상 어머니와 할머니가 도란도란 옛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너 동생 얼굴 기억이나 나냐?”
늘 눈물이 그렁거리던 외할머니의 눈매가 콩나물을 다듬느라 고개를 숙인 어머니의 이맛전을 살폈다.
“그럼요! 어머니! 내가 그 때 열한 살이나 되었었는데..... 그 애 참 잘 생겼었지요. 영리하기도 했고..... 그런데 왜 집을 나갔을까?”
늘 대꾸해 오던 말이라 말의 높낮이도 없이 대충 말을 꿰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외할머니의 눈물이 더 그렁그렁해 졌다.
“모든 게 조화 속이지. 아니면 사람이 아는 게 얼마나 있다고...... 그 놈은 아마도 사람이 알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던가 보다. 그래서 사람들 속에서 살 수가 없었던 게지. 한 많은 조상귀신이 쓰였던지, 객귀가 쓰였던지, 그것도 아니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아야 할 놈이 태어났던지 멀쩡하게 크던 놈이 딱 일곱 살 되더니 말이 없어지고 밥도 먹지 않던 것 생각 나냐? 생쌀에 뭐든지 생식만 하더니 통 에미인 내 곁에도 오지 않더구나. 그러더니 아홉 살 되던 해 봄이었어. 그렇게도 내 곁에 안 오던 놈이 그날 밤은 웬일인지 내 팔을 베고 누워 눈물을 철철 흘리지 않겠냐? 나는 이놈이 왜 이리 우냐고 하면서 그냥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아줬지. 그게 마지막이었어. 그 다음날 새벽에 집을 나가버렸지. 어린놈이 갔으면 어딜 갔으랴 싶어 사람을 풀어 찾아보고 곧 돌아오려니 하고 기다린 게 몇 십 년이구나. 그렇게 나가기 전에 푸닥거리라도 한 번 해볼걸. 그렇게라도 해 주었으면 제 속을 못 삭혀 집을 나가지도 않았을걸.”
어머니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 없이 콩나물을 다듬는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두 분 사이에 앉아 그렁거리는 할머니의 눈매와 고개를 숙인 어머니의 이맛전을 번갈아 보며 어린 가슴속에 그 얘기들을 다 새겨두었다.
“혹시 나 죽은 다음에라도 찾아올지 모르니까 이 집에서 떠나지 말고 너라도 그 놈을 기다려라. 지가 살던 집이니 그래도 이 집은 기억할 것 아니냐?”
할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울먹거리며 이어졌다.
“예 어머니! 기다리고말고요. 사실은 이 집도 따지면 동생 집이지요. 내가 잠시 어머니 모시고 살고 있지만요. 엄연히 어머니 아들에게 물려 줄 집이지요.”
어머니는 하도 반복해서 아무 느낌도 없는 말을 다시 중얼거리며 여전히 콩나물을 다듬었다.
“그러니까 나 죽더라도 집 건사 잘해라! 행여 집 모양새가 바뀌면 그 놈이 어떻게 제 집인 줄 알고 찾아오겠냐? 아범더러 나 죽고 난 다음에라도 집을 고치는 거야 도리 없다만, 아예 허물고 새로 짓지는 말라고 해라. 그놈이 찾아왔다 가도 집을 못 알아보고 그냥 가면 어쩌냐? ”
할머니는 기어이 치마꼬리를 들어 눈물을 찍어내었다.
“어머니! 건넌 말에 용한 점쟁이가 있다는데 한번 불러서 다시 물어 보실래요?”
어머니는 눈물에 젖어드는 할머니의 치맛자락 위로 한숨을 날리며 고개를 들고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물어보고 또 물어봐도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구나. 누구는 사람의 형상이 아닌 원숭이 같은 모습으로 산천을 떠돌며 살고 있다고 하고, 누구는 어느 산골 암자에서 도를 닦고 있다고 하고...... 아무튼 꼭 여길 찾아 올 거란다. 나는 못 보고 죽더라도 너 살아생전에야 찾아오겄지.”
눈물에 젖은 치마꼬리를 들어 코끝에 매달린 콧물을 훔치며 할머니는 긴 숨을 내쉬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를 따라 공연히 울먹거리며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었다가 그대로 낮잠이 들기도 했는데 레코드 테이프처럼 반복되던 두 분의 대화는 어느 결에 내 기억 속에 선명히 자리잡게 되었다. 때문에 가끔은 얼굴을 알 수 없는 외삼촌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고 누군가 낯선 사람이 우리 집을 기웃거리게 되면 그 사람이 외삼촌인 듯 싶어 눈을 깜박이며 자세히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어린 시절부터 외할머니와 어머니와 함께 외삼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낡은 자개경대 앞에서 멍청히 생각에 빠져있을 때 아침밥을 먹으라고 부르는 올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대충 로션만 문지른 화장기 없는 얼굴로 재래 부엌을 돋구어 억지로 만들어 낸 주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떠나던 그 때는 분명 바닥이 움푹 들어간 부엌 바닥에 야트막한 부뚜막이 무쇠 솥을 껴안고 있던 그 자리에 금속의 싱크대와 개스랜지가 놓여있고, 서양식 식탁 위엔 신경을 쓴 듯한 아침 밥상이 차려져있다. 어머니의 얌전한 상차림을 그대로 전수한 듯한 올케가 오랜만에 고향에 온 나에게 베푼 배려였다. 사실 어머니의 상차림은 유난히 음식에 까다로우시던 외할머니의 양반적 전통을 전수한 것이었고, 처음에 시집을 와서 허둥대기만 하던 올케는 그 세월 사이 어머니의 상차림을 그대로 배워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외할머니의 상차림이 지금 그대로 아버지가 억지로 만들어낸 이 옛집의 신식 주방에 차려져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옛집에 온통 어른거리는 것은 외할머니의 그림자였는데, 할머니의 그 애끓던 기다림을 이어받은 어머니가 떠나시고 나면 올케가 음식 솜씨를 이어받듯 그 기다림조차 상속해 줄지 의문이었다. 기다림이란 단어가 남자에겐 통 어울리지 않음을 실감하듯이, 오빠는 그저 옛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싶어 이 집을 허물어버리지 못한 타박을 그 IMF란 경제 괴물에게 해대고 있다. 올케 역시 여자니까 기다림이란 단어만이라도 자신의 가슴속에 새겨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나는 여독으로 깔끄러운 입안에 밥을 떠 넣었다.
아침밥을 먹고 오빠가 자신의 생업인 건축 자재상으로 출근을 한 뒤 늘 벌레처럼 쪼그라든 시어머니의 말을 받느라 힘들어하던 올케는 내가 있음을 빌미로 오빠를 따라 나가버렸다. 적요하고 낡은 집엔 어머니가 툇마루 끝에 앉아 아침볕에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멍청하게 허공에 시선을 띄운 어머니의 퀭한 눈매를 보노라니 가슴이 아파왔다. 나는 어머니의 시선을 벗어나기 위해 안채의 모퉁이를 돌아 뒷마당으로 들어섰다. 앞마당의 반은 됨직한 뒷마당엔 외할머니가 그토록 애지중지 하던 옹기항아리들이 장독대 위에서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 쓴 채 줄을 맞추고 서 있었다. 지난날엔 할머니나 어머니의 손길에 항시 반들반들 윤이 나던 옹기항아리들이다. 그 장독대의 오른쪽 귀퉁이에 그늘을 만들고 있는 키 큰 대추나무, 그 옆엔 몇 그루 감나무가 있었는데, 지금은 늙은 대추나무만이 고적하게 서 있다. 왼쪽 모퉁이 포도나무 넝쿨이 뻗어 올라간 옆에 키 작은 석류나무는 아직도 그대로였다. 그 세월 동안 자라지도 못한 채 자그마한 키 그대로 서 있는 석류나무와 포도 넝쿨 사이로 언뜻 지난날의 장면이 하나 스쳐갔다.
  
동네가 떠나갈 듯 한 고함을 지르며 사랑을 고백하던 명구가 밤사이 그 패기로 아버지의 결혼 허락을 받아내고 난 다음날 한낮이었다. 왜 그랬던지 집엔 그와 나 둘 뿐이었는데 집을 둘러본다면서 뒤뜰로 들어섰던 그는 다짜고짜로 나를 포도넝쿨과 서류나무 사이로 밀어 넣고 키스를 퍼부어 대었다. 그때 그의 입술에선 간밤의 술 탓이었던지 시큼하고 역겨운 내음이 풍겨왔다. 그의 입내음이 싫었던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싫었던 때문인지 나는 그를 밀어내느라 포도나무 가지에 손등을 긁히며 피를 흘리기까지 했다. 사랑의 행위가 사랑의 감정을 동반하지 않을 때 그것은 얼마나 추잡한 것이 되었던가. 명구에게 있어서는 애틋한 추억의 한 장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아직도 개운치 못한 기억의 한 장면이었다.
명구에게 정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그와 결혼을 하고 나서였다. 나는 앞으로 삶의 행로를 같이 해야 한다는 운명에 대한 순응성에서 그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서 그토록 역겹던 그의 입술을 받아들이고 낯선 그의 몸짓을 통한 욕망을 받아들이며 그의 아내가 되어갔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으므로 나는 그에게 적응했고, 그와 헤어지고 난 뒤엔 다시 그가 없음에 적응해 갔다. 그러나 이 옛집은 이상하게도 내가 그 동안 적응해왔던 삶의 모든 것들을 흔들어 놓는 알 수 없는 힘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세파에 적응해 온 지금의 내 모습에서부터 이 옛집에서 태어나고 자라던 내 티 없던 모습을 찾아내게 하는 것이다. 마치 다가온 운명에 쉽게 적응해 버렸던 것이 잘못이었던 것처럼......  
다가온 운명을 거부할 줄 아는 반란성이 인간다운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왜 그 봄밤 명구를 사랑하지 않는 내 마음을 더 명확히 표현하지 못 하고 그렇게 쉽게 순응해 버렸을까. 내가 찾던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고, 나는 마침 어둠 속에서 하얀 얼굴을 유혹적으로 쳐들고 있던 목련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갈망 속에서 나의 깊은 내면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참이라고 왜 말하지 못 했을까. 내가 사랑해야 하는 것은 더 알 수 없는 것, 더 멀리 있는 것, 어쩌면 외할머니의 그 길고 긴 기다림만큼이나 아스라한 그 무엇이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사람이 알 수 없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어린 나이로 집을 나간, 얼굴을 알 수 없는 외삼촌처럼 나도 그렇게 알 수 없는 것을 지금 막 갈망하기 시작했다고, 왜 말하지 못했던 것일까.
생각해 보면 명구와의 헤어짐은 당연한 귀결이었던 지도 모른다. 나는 사랑의 감정을 동반하지 않고 행위만으로 그 자리를 지켰던 그의 여자였다. 어쩌면 그와 살아가던 세월 내내 나는 그 봄밤, 하얗던 목련의 얼굴을 남몰래 붙잡고 알 수 없는 것을 늘 갈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온통 그런 갈망에 감싸인 내 몸은 그의 욕망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종족 번식의 본능은 거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 깊은 내부의 명령에 의해 나는 그의 생명의 씨들을 내 몸 밖으로 밀어내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와의 헤어짐은 당연한 결과였다. 사람들은 사건의 겉모양만을 판단하여 자신이 피해자이거나 가해자라고 규정지어 버리지만 사실은 그 반대일 경우가 있다. 명구와 이혼하자 사람들은 나를 피해자처럼 바라보았지만 사실 피해자는 명구였다. 긴 세월 동안 알 수 없는 곳만 바라보며 자신의 정액을 거부해왔던, 그 수많은 사랑의 행위를 단지 욕망의 행위로만 받아들였던 나로부터 삶을 조롱당한 피해자는 정작 명구였다.
        
“여기서 뭘 하고 있냐?”
어머니는 등이 굽은 몸을 힘들게 움직이며 뒷마당으로 들어섰다. 까맣고 초라한 몸 위에서  보라색 꽃무늬가 그려진 하얀 린넨의 홈웨어가 어머니와 어울리지 않게 화사했다.
“여기 있으니까 어릴 때 생각이 나서요. 외할머니가 그렇게 반들거리게 닦으시던 장독들인데 이 먼지 좀 보세요.”
내 투정 같은 말에 장독대 앞까지 와 항아리에 내려앉은 먼지들을 쓸어내는 어머니의 가시 같은 손이 가늘게 떨려왔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래도 내가 몸이 성해 장이라도 담글 때는 이 장독들이 쓸모가 있었지. 내가 몇 년 전부터 통 아무 일도 못하고부터 이 장독들은 텅텅 비었다. 모두 쓸데없는 물건들이 되고 말았지. 느이 올케는 바쁘다는 핑계로 고추장이고 된장이고 전부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 놓고 먹지 않냐? 하긴 좋은 세상이지. 우린 옛날에 뭣 땜에 그렇게 허구 헌날 일에 치여 살았던지? 이 집이 헐리면 이 장독들도 다 없어지게 될 거다. 느이 오래비가 이 쓸모없는 물건들을 얼른 없애지 못해서 안달이지. 하긴 쓸모없는 것들은 당연히 없어져야지.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이 늙은이도 어서 없어져야 될텐데.....”
어머니는 마른손으로 연신 장독의 먼지를 닦아내다가 퀭한 눈에 서글픈 웃음기를 담더니 시선을 먼 곳으로 돌렸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외삼촌은 누가 기다리라고요? 사실은 이 집도 외삼촌이 차지해야 할 집이라면 서요? 외할머니가 나 어릴 때 그러셨죠. 집은 고치더라도 아예 허물지는 말라고요. 혹시 외삼촌이 찾아 왔다가도 집을 못 찾고 그냥 갈까 봐 걱정이라고요. ”
어머니의 공허한 눈빛을 위로한다고 내뱉은 내말은 어머니의 마르고 검은 얼굴 위로 쓴웃음을 만들었다.
“너는 아직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구나. 다 소용없는 노릇이지. 찾아오긴 누가 찾아와? 느이 외할머니는 그 기다리는 힘으로 한 평생을 사셨다. 그 기다림 때문에 그 노인네는 숨을 거둘 때까지 실수 한번 없이 자신을 지키셨지. 기력이 쇠해 가시긴 했어도 얼마나 정갈하게 자신을 지키셨던지 이불 위에 오줌 한 방울 흘리지 않으셨다. 나는 그 노인네 따라가려면 어림도 없지. 사실 느이 외삼촌 기다린다는 것, 나는 포기한 지 오래다. 어딘가 살아 있다면 찾아와도 벌써 찾아왔지. 그 양반의 낙이 그 기다림이었으니, 내가 그냥 그렇게 수긍했던 거지. 사실 난 한번도 기다려 본 적이 없다. 내가 아직도 느이 외삼촌을 기다리고 있다면 이 집이 헐리게 되었는데 가만히 있겠냐? 다 소용없는 짓이지. 사람이 이치대로 살아야지. 세상이 이렇게 변해가고 있는데 이 귀신같은 집을 그냥 끼고 살면 뭐하겠냐? ”
어머니는 말씀하시는 동안 숨이 차는지 군데군데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체념 조로 말했다. 그 퀭한 눈언저리로 모여든 물기가 햇살에 반짝거렸다.
어머니의 기다림이 그렇게 일찍 체념되어 버렸다는 것은 조금은 놀라운 일이었다. 어머니는 벌써부터 그 허망한 기다림을 접어버렸으면서도 외할머니의 기다림에 동조하는 것처럼, 그 기다림을 세습하는 것처럼 살아오셨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어린 시절에 귀동냥으로 들어 이미 내 안에 깊숙이 배어버린 그 기다림의 설화는 빈껍데기인 어머니를 통과하여 오직 내 안에서만 자리 잡고 있는 걸까. 그 목련이 피던 밤, 어쩌면 나는 내 안에 깊숙이 숨어있던 그 불가사의한 기다림을 자각했던 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 기다림의 형체를 헤아리기도 전에 하필 그 순간 명구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내 삶을 떠밀고 가버렸고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알 수 없는 기다림과 다가온 삶에의 순순한 적응 사이에 서서 어느 것 하나 충실하게 살 수 없었던 것인가.
  “엄마가 외삼촌을 기다리지 않고 사셨다는 얘기는 의외인데요? 항상 할머니 앞에서 그러셨잖아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라도 기다리겠다고요. ”
어머니는 다시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다 느이 할머니 청상과부 한풀이였지. 딸자식 된 내가 그 비위 안 맞추어 주면 어쩌겠냐? 나는 그래도 너희 남매 낳고 네 아버지랑 한세상 그럭저럭 살았다. 한 때 느이 아버지가 난봉이 나서 내 애간장을 끓였다만, 나한테는 어릴 때 집 나간 동생 기다리는 일보다는 너희들 잘 키우는 일이 중했고 느이 아버지 난봉기 붙잡는 게 더 큰일이었지. 느이 할머니가 젊은 내 얼굴에 분첩 한번 못 대게 했고 색깔 고운 옷 한번 못 입게 하면서 살림하는 여편네가 조신해야 된다고 하긴 했다만, 온갖 향내를 피우는 기생 년한테 너의 아버지가 홀딱 넘어가니까 조금 생각을 달리하시는 것 같더라. 내가 정말 여자로 산 것은 그 노인네가 세상을 떠나고 부터였다. 고운 옷도 해 입고 입술연지도 발라보고 동네 여자들하고 계모임도 해보고......”
어머니는 정작 외할머니의 기다림보다도 그 기다림 때문에 시퍼렇게 날이 서 있던 외할머니의 서슬에 눌려 살던 자신의 젊은 날이 억울했음을 말했다.
어머니의 귀뚜라미처럼 검게 말라붙은 몸으로부터 이상한 배신감 같은 것이 내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기다림을 떨구어 버린 어머니의 육신이 저렇게 초라하게 졸아붙은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애가 끓던 외할머니의 기다림을 저버리고 오직 삶에 대한 애착으로 일관해온 어머니의 육신은 어쩔 수 없이 흉하게 몰락해가고 있었다. 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소망을 포기한 삶의 댓가...... 그러면 나는 이미 어머니가 던져버린 그 허망한 기다림을 붙잡고 이제까지 내 삶을 조각내고 있었던가. 어머니의 삶 안에서 실재하지 않았던 기다림이 어떻게 내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각인 되어 왔던지.
여름을 시작하는 햇살이 따가웠다. 그 햇살을 그대로 받으며 연신 장독 위의 먼지를 쓸어  내리던 어머니의 가시 같은 손이 스르르 멈추어 지더니, 어머니는 굽은 등을 돌리며 뒤뜰을 나갔다. 집 모퉁이를 돌아서는 어머니의 린넨 홈웨어 자락이 잔 바람결에 흔들거리며 흰 바탕 위에 그려진 보랏빛 꽃무늬를 떨구어 낼 듯 휘청거렸다. 이 집을 지켜낸 외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엔 늘 백색 무명 치마저고리 차림이던 외할머니의 기다림과 채색된 옷을 입은 어머니의 체념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그 기다림과 체념의 맞섬 사이에서 두 분의 대화를 들으며 성장했던 내겐 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끈질긴 기다림과 삶의 안온한 영위를 위한 현실적 체념이 어느 결에 웅뚱그려져 박혀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현실의 아픔 때문에 끈질기게 이어졌던 할머니의 기다림, 그 기다림을 떨구어 내버렸던 어머니의 현실에 대한 몰입, 누구의 삶이 현명했던 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조각들이 지금 혼란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지금도 할머니와 어머니가 마주 앉아 또 그 보살인가 하는 여인을 불러다 앉혀놓고 벌이던 해괴한 한 장면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밤인 듯 싶었다.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운 내가 자꾸 하품을 했던 것을 보면 아마도 장지문 밖이 이미 새까매진 깊은 밤이었던 같다. 그 즈음 서울에 있는 오빠가 대학을 다녔던지 아니면 이미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던지 그것은 기억에 확실치 않다. 아마도 아버지는 또 기생방에서 삶을 즐기느라 어머니의 가슴을 끓게 하던 그런 밤이었을 것이다. 보살인가 하는 여인은 지그시 눈을 감고 손안에 무엇인가를 쥐고 앞뒤 사방으로 흔들어 대더니 앞에 놓인 양은쟁반 위에 쩔렁-하고 펼쳐놓았다. 그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옛날 엽전들이었는데, 양은쟁반을 후려치는 금속성의 파열음에 나는 소름이 끼쳐 어머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분명히 살아있구만요. 꼭 찾아옵니다. 백두산 천지에서 불로초를 먹고 아이의 형상으로 살고 있지요. 새 세상이 올 때 꼭 이 집을 찾아 올거구만요. 집 떠난 뒤 오래되었어도 아직도 혈육의 인연은 잊지 않았구먼요. 기다리세요. 꼭 찾아옵니다.”
여인의 목소리는 마치 뚝배기가 깨지는 것처럼 굵고도 답답했다. 꼭 목이 잠겨 말을 못하는 사람이 억지로 내뱉는 목소리처럼...... 그 때 얼핏 바라본 할머니의 얼굴에서 환하게 피어오르던 눈물어린 미소,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할머니를 따라 가만히 웃어보았다. 어머니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것이 다만 할머니를 위로하기 위한 행위일 뿐이었다니, 할머니의 희망을 따라 웃어보았던 내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무색해 왔다. 아마도 어머니는 곱게 화장을 한 기생 품에서 잠이 든 아버지를 생각하느라 그 자리에 건성 앉아있었던 지도 몰랐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동생을 기다리는 허무한 행위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지키는 가장의 부재가 어머니에겐 당연히 절실했던 것이다. 그렇게 오랜 밤들을 할머니가 슬픈 희망으로 잠을 설치고 있을 때 어머니는 웃음과 눈물마저도 외할머니의 시퍼런 서슬에 차단당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 반란을 꾀하며 아버지를 돌아오게 할 궁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가 지난날이었던지 분명치는 않았지만 어머니는 애써 모아온 눈물을 아버지의 점심상 앞에서 쏟아놓았고 어린 딸이 영문 모를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 앙앙 울어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어머니를 따라 울어댔지만 장지문 밖에서 어른대던 외할머니의 꼿꼿한 그림자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는 어머니의 눈물을, 괴성에 가까운 서러운 통곡을 그날만은 묵인하셨고, 과연 아버지는 거짓말처럼 기생놀이를 청산하고 어머니에게로 돌아왔다. 늘 묵묵하던 어머니의 돌연한 변화에 분을 덕지덕지 바른 기생에게 느낄 수 없던 진실한 여성다움을 어머니에게서 더 느꼈던 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가 자신의 감정을 유감없이 발산하여 아버지를 돌아오게 하고 난 뒤 몇 해가 지나서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숨을 거두시는 그 순간까지도 대문 밖으로 눈길을 돌리기 위해 방문을 못 닫게 하시던 할머니는 끝내 어린 시절 집을 떠났던 하나뿐인 아들과의 해후를 이루지 못 하고 돌아가시고 말았다. 섦게 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에서 나는 당연히 그 기다림이 내재되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때 겨우 열두 살이었던 나는 조문객들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그 사람들 중에 혹시 얼굴도 모르는 외삼촌이 있을까 하여 황망히 둘러보곤 했다. 할머니의 3일장을 치르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집을 드나들며 십장생 병풍에 가리워진 할머니의 시신 앞에 재배를 하고나서 차일을 치고 멍석을 깐 마당으로 내려서서 뿌연 막걸리를 밤새 마셔대며 화투장을 휘두르다 갔지만 아무도 외삼촌이라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어느새 그렇게 외할머니의 기다림을 상속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떠나신 후 어머니의 옷 빛깔이 고와지고 외출도 잦아졌지만 표정만은 늘 웃음기가 없었다. 겉모습은 할머니를 거슬러 바꾸어 보아도 오랜 세월 동안 습관이 된 그 무표정만은 바꾸실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적어도 어머니의 그 표정이 없는 얼굴에 할머니의 기다림이 각인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그만 그 기다림을 잊어버리고 이 옛집을 떠나 도시로 나가 공부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왔던 그 봄 밤, 알 수 없는 설레임 같은 것에 하얀 목련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어쩌면 그 기다림을 다시 자각했던 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이 이제는 당연히 어머니의 몫이기에 감히 그 기다림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알지 못했을 뿐이다.
어쩌면 할머니의 한평생 내내 이 집을 채웠던 그 기다림의 기운이 그 밤 그렇게 나를 부르고 있었던 것만 같다. 어머니로부터 버려진 채 이 옛집에서 함부로 나뒹굴던 기다림이 안착할 곳을 찾아 나를 부르고 있었을 지도 몰랐다. 화사하게 아름답던 목련의 하얀 얼굴을 통해서....  이 옛집의 기다림을 안고 명구를 따라간 미국에서의 생활,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파국은 처음부터 예상되었던 것이다. 이미 불가사의한 것으로 가슴을 채워버린 여자를 안고 아이를 만들기 위해 밤마다 땀을 흘리던 그의 행위는 무의미한 짓이었다. 아이는, 적어도 생명의 잉태는 결코 성행위만으로 이루지 지지 않는 것이란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우주의 기운이 동조를 하고 행위를 이루는 음양의 조화가 우주의 기운과 맞아 떨어져야만 생명이 태어날 수 있다는 거룩한 진리를 나도 사실은 실감하지 못했다.
명구를 향해 빗장을 지른 나의 마음은 도저히 우주의 기운과 조화를 이룰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마치 아이를 얻기 위해 나와 결혼했다가 아이가 생기지 않자 돌아서는 사람처럼, 다른 처녀의 뱃속에 자신의 아이를 심었지만 나는 그가 외로웠던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결국 그가 나에게서 돌아서게 만들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손바닥으로 먼지를 쓸어낸 장독대 항아리의 자리마다에 어느 틈엔가 몰려온 잿빛 구름 속으로 몸을 숨겨 가는 햇살의 음영이 어른거려 왔다. 여릿해진 햇살은 항아리 위 먼지와 윤기의 얼룩을 선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삶의 그늘과 환희의 교차처럼....... 아니면 같은 집에서 늙어간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의 대비처럼......  갑자기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빗방울은 항아리 뚜껑에 난 먼지와 윤기의 경계선을 지우며 더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맞섬이 지워지고 있었다. 아! 어느 순간 환희 같은 것에 젖어보던 삶과 캄캄한 어둠에 젖던 절망의 순간들이 함께 지워져 갔다.

                                        [6]

돌아갈 날을 앞두고 다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늘 상사의 잔소리를 염두에 두면서 마이크 앞에서 말을 꿰어 맞추어야 하는 나의 직업, 어느 순간 잠시 삶의 외로움에 방심했던 사이 내 침대를 몇 번인가 파고들더니 이제는 나의 24시간을 다 간섭하려 드는 마이클....  장지문 사이로 늦은 오후의 여릿한 빛이 스며드는 방안에 웅크리고 앉은 내 머릿속에서 한인타운의 직장과 백인족 애인 마이클이 내 삶의 잣대를 타고 시소질을 하고 있다.
나는 돌아가야만 했다. 이 옛집은 이미 내가 머물 수 없는 곳이었다. 집 자체도 이곳에 더 이상은 서 있을 수가 없이 곧 땅 위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는데, 이 집은 어머니 뱃속에 생겨나고 자란 나를 더 이상 수용해 주지 않았다.
부엌에선 올케가 저녁을 짓는지 벽 너머로 그릇을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예의 어머니의 간섭이 간간이 울려왔다. 해가 지고 있는 어스름 녘의 방안은 아직 불을 켜지 않은 탓에 침침함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속에 몸을 또아리 틀고 있다가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장지문을 활짝 열어제쳤다. 마당엔 얇은 어두움이 깔린 채 아직 빛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어디선가 몰려온 잿빛 연기가 사방에 들어 찬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동네의 어느 집에선가 볏짚을 태우느라 몰려온 연기가 마당에 들어 찬 것처럼 자욱한 느낌이었다. 그  속에서 곧 쓰러질듯 허술해 보이는 낮은 담벽에 둘러싸인 마당 구석의 수돗가에서 덜 잠긴 수도꼭지가 똑- 똑-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나는 가만히 몸을 일으켜 툇마루를 거쳐 토방을 짚고는 마당으로 내려섰다. 고적한 마당 가운데에 서 있으려니 부엌 쪽에서 간간이 새어나오는 어머니가 목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고, 눈물처럼 떨어지는 수돗물 소리 속에 마치 안개인 듯 연기인 듯한 자욱함에 갇힌 저녁 풍경은 내 가슴속에 이상한 신비감 같은 것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천천히 마당을 거닐기 시작했다. 앞으로 뒤로, 왼쪽으로 오른 쪽으로......  사방으로 몇 발자국을 걸으면 다시 되돌아 걸을 수밖에 없는 제한된 공간의 한계성에 답답함을 느끼다가 대문간으로 가 칠이 벗겨진 초록색 철대문의 빗장을 열었다. 아무리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해도 빗장은 금속성의 탁음을 질러대며 철커덕 열렸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신작로에도 안개 같은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길가의 어둠 속으로 가만히 걸음을 내딛었다. 저녁 무렵의 거리는 인적이 드물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어슴프레한  길을 건넜다. 나는 신작로 건너편으로 가서 몸을 돌리고 어둠이 내려앉는 옛집의 모양새를 올려다보았다. 내일 아침 떠나면 다시는 보지 못 할 옛집의 모양새를 가슴 깊이 새기려는 것처럼 그렇게 그윽이 집을 바라보았다.
누가 언제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외할머니가 이 집에 들 때는 일제시대였다. 청상과부 할머니가 두 자식을 데리고 외롭게 삶을 시작했던 집, 또 애지중지 키우던 귀한 아들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낸 할머니의 집이었다. 출가했던 어머니가 아버지와 오빠를 데리고 들어와 살며 할머니의 기다림을 위로하던 집......  그 사이 이 시골에도 6.25 전쟁의 피해가 만만치 않았던 때 폭탄세례를 받고도 집은 살아남았고 아버지는 평생 동안 허술한 집을 이리 저리 고쳐가며 어머니와의 삶을 지켜내었다. 4.19 학생의거 때는 이념도 분명치 않았던 청년들로부터 돌팔매까지 받았던 집, 그렇게 세상의 크고 작은 일들과 할머니의 기다림이 들끓던 이 집 속에서 내가 잉태되고 태어나고 자라났다. 그리고 평범한 삶에 순응치 못할 자질을 이미 잠재우고 떠났던 집...... 이제는 잠시 돌아와 조각난 삶의 모습을 누더기처럼 걸치고 나는 다시 떠나기에 앞서 이 옛집 앞에 서 있었다.  
짙어지는 어둠 속에서 우두커니 집을 올려다보는데 웬 여인 하나가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초로의 그 여인은 어둠 때문인지 옴팡해 보이는 눈을 들어 힐끗 나를 쳐다보았다. 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기는 했지만 뚜렷하게 기억이 나는 얼굴도 아니었다. 여인의 나일론 치맛자락이 밤기운 속에서 번들거렸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치맛자락을 꿀렁대면서 팔자걸음으로 내게서 멀어져 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난 날 여름이면 남의 날품을 팔아 생활하다가 겨울이 되면 밥을 구걸하러 다니던 여인들을 생각해 냈다.
세끼 밥만 해결이 되어도 자신이 가난하지 않다고 족하던 시절, 동네 집들은 노래기가 들끓도록 썩어버린 초가지붕이었고 집집마다 야트막한 토담에 싸리대문은 있으나마나했다. 그 때는 동네에서 홀로 번듯이 기와를 얹고 있던 이 집이 그렇지 않아도 동네 사람들의 선망이었는데 해마다 새롭게 개축해 가는 집의 모양새는 당연히 사람들을 이 집 앞에 기웃거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세월 사이 세상은 변해 버렸다. 한 겨울이 되어도 밥을 구걸하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고, 동네의 초라한 오막살이들은 도시인들이 밀려왔던지 대부분 반 절충식 양옥으로 바뀌어 있다. 지금 이 옛집은 동네에서 다시 생소하게 홀로 옛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이 집을 눈여겨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집집의 대문은 굳게 잠기고 서로들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저녁 무렵이면 하릴없이 동네를 서성이던 노인들은 텔레비전 앞에서 꾸벅 꾸벅 졸고 있을 테고, 사방치기 하던 아이들도 전자 게임기를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배고픈 사람이 없는 좋은 세상이 되었지만, 이 동네엔 정체를 알 수 없는 허전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변해버린 세상의 모습에 어울리기 위해 금방 헐려져 자취를 감출 뻔했던 이 옛집이 그나마 조금 더 그 모습대로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무절제한 배부름 뒤에 찾아온 위경련 같은 경제난국 덕이었다. 이 경제적인 위경련에 배를 뒤틀며 뒹굴던 사람들이 그 처방을 찾아 굳게 닫힌 저 문들을 빼꼼히 열고 길가에 누가 서 있는가를 살펴볼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을런지.   지난 날 내게 사랑을 고백하던 명구의 고함소리에 슬금슬금 이 옛집 앞을 기웃거리던 그때처럼, 그 옛날 한 많은 과부가 살다 죽어간 그 집이 이제 자취를 감출 위기에 있다는 것이 그들의 관심거리가 되기나 할런지. 이 옛집에 아직도 감돌고 있는 기다림의 정체가 외할머니를 그나마 기품 있게 늙게 했고, 이제 조각난 나의 삶까지도 구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아주기나 할런지. 나는 어쩌면 이 집에 맴돌고 있는 그 기다림을 통해 내 삶을 구원받기 위해 이곳까지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새 짙은 어둠이 사방을 메웠다. 마치 검은 바다의 거센 물결처럼...... 연기처럼 어스름했던 얇은 어둠 속에서 쉽게 길을 가로질러 집 건너편까지 왔지만 막상 밤바다처럼 꽉 메운 짙은 어둠을 헤치고 길을 건너 돌아가려니 가슴이 답답해 왔다. 마치 깊은 바다의 거센 수압을 헤치고 가야하는 것처럼......  천천히 발걸음을 떼어 길을 건너보았다. 절벽 사이에 놓인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절박한 심정으로 길을 가로질러 열려있는 대문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알 수 없는 안도감에 긴 숨이 내쉬어 졌다.
어쩌면 쉬워 보이는 삶의 행로는 방심하면 의외로 힘겨운 일들을 만나게 되고 도저히 더는 갈 수 없을 것 같은 삶의 어둠을 가만가만 건너다보면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리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이 옛집을 둘러싼 어둠을 가만 가만 건너와 무사히 집안으로 들어왔듯이 지금 내 삶의 짙은 어둠 앞에서 조심스레 삶의 행로를 걷다보면 오히려 산다는 것이 쉬워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컴컴한 마당을 아슴푸레 비추고 있었다.
“어서 저녁 먹자! ”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어느새 툇마루 끝에 서 있었는데 방안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등지고 어두운 마당을 향해 있는 모습이 훅 불면 날아가 버릴 듯한 그림자 같았다.

옛집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오던 첫날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나는 오두마니 쪼그리고 앉아 이미 콜콜 코를 고는 어머니의 잠 든 모습을 바라보았다. 태아처럼 몸을 웅크린 어머니의 검은 모습은 내가 오던 첫날보다도 더 쪼그라든 듯했다. 간간이 몸을 뒤채며 볼품없는 종아리로 허공을 발길질하는 시늉을 하는 것이 아마 다리가 몹시도 저리신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껍질만 남은 종아리에 가만히 손을 얹어보았다. 까실한 살비늘이 그대로 손바닥에 느껴졌다. 어머니는 이제 곧 세상을 떠나실 것이다. 이 집이 먼저 헐리게 될지 아니면 어머니가 먼저 떠나게 될지, 그것은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집이 헐려버려도 이 집이 서 있던 땅은 그대로 남아있게 될 것처럼, 어머니가 떠나셔도 나는 어머니의 한 조각으로서 세상에 남아있을 것이다. 외할머니의 조각들이 어머니 안에 남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머니의 등뼈처럼 휘어버린 낡은 벽에 등을 기대며 무심히 쪼그려 앉은 내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어느 결에 나는 할머니의 앉음새를, 어머니의 앉음새를 그대로 흉내 내고 있었다. 두 다리를 오무려 무릎을 가슴께로 붙이고 두 손을 그 무릎 위에 올려놓은 모습이 영락없이 할머니 살아생전의 앉음새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가만히 그 마른 손등을 누르면 오랜 세월동안 참아왔던 한숨이 한없이 새어나올 것 같던 할머니의 모습처럼 쪼그려 앉은 내 모습 속에서도 긴 한풀이가 새어나올 것만 같았다. 갑자기 서러움 같은 것이 가슴속으로 복받쳐 오름에 나는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아! 이제는 내 안에 숨어있던 할머니의 그 긴긴 기다림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할머니의 생을 지켜준 그 기다림은 사실은 생사불명인 외삼촌을 기다리던 그 자체가 아니었던 지도 몰랐다. 사람이 알 수 없는 것을 알아버려 더는 사람의 세계에서 살 수 없었던 외삼촌의 그 불가사의한 세계를 할머니는 끊임없이 동경하며 애끓는 모정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를 살게 했던 것은 사람이 다 헤아릴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초월적 염원이었다.
그 초월적인 염원을 통해 투영된 하나의 세계가 이제 내 안에서 끓어오르고 있었다. 아직 아무의 손길도 닿지 않은 처녀의 세계, 나 자신조차도 아직 들어 가 보지 않은 밀림처럼 푸른 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선 처녀림의 세계가 보였다. 그 푸른 나무들은 오래 전부터 싱그러움을 머금고 거기 서 있었지만, 아무도 자각하지 못하는 그 싱그러움은 사실 이제까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먼저 나 자신이 그 세계를 자각하고 문을 열어야 했다. 그러면 누군가 그 곳으로 들어와 내 싱그러움의 수액을 마시고 삶의 활기를 얻어가지 않을까. 나누어줌으로써 처녀림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꾸어 질 수가 있는 것인데...
얼굴을 감쌌던 두 손을 내려 내 몸의 이곳저곳을 더듬어 보았다. 여위긴 했어도 나는 아직 젊고 싱싱했다. 삶을 꺾어 반 토막을 내본다면 아직 내가 가보지 않은 나머지 토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갑자기 내 몸 안에서 물씬한 생기가 솟아오는 듯 했다. 나는 감히 마음속으로 외쳐 보았다.
나는 처녀다! 라고......  
명구의 욕망이 수없이 내 몸을 스쳐갔고 몇 번인가 마이클의 욕망이 지나쳐 갔지만 나는 단 한번도 그 욕망들에 순응하지 않은 처녀였다. 마치 먼지 속을 뒹구는 하나의 빛나는 결정체가 단지 먼지로 인해 그 빛남을 손상당하지 않듯이, 내 삶은 결코 그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았던 것이다.
할머니가 향했던 그 초월적인 염원이 쪼그려 앉은 내 모습 안에서 강하게 고동을 쳤다.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든 어머니는 낮으막히 코를 골다 다시 살 껍질이 늘어진 가느다란 다리를 들어 허공으로 발길질을 하며 몸을 뒤채었다. 어머니의 몸에서 풍겨오는 좀약 냄새 같은 체취 속에 삶의 허무가 어머니와 함께 뒤척이고, 어두운 밤을 가리운 장지문에 조각달의 그림자가 히끄무레 어려왔다.    

                                           [7]

얇은 흙벽 너머 부엌에서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직은 아침 햇살이 들지 않은 마당의 침침함이 저녁처럼 장지문을 타고 방안에 내려앉아 있었다. 언뜻 내가 잠을 잔 것인지 아직 시간이 저녁에 머무르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깊은 수면에 들지 않았던 것 같은 데도 몸이 가뿐하게 일으켜졌다. 돌아갈 시간을 앞두고 팽팽한 긴장감이 내 몸을 가볍게 했던지, 아니면 간밤의 깊은 상념에서 내 삶의 희망들을 설정해 보았던 때문인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어머니는 어느 새 잠자리의 이불을 걷어 장롱 속으로 치우고 내 이불이 깔린 자리만을 빼놓고 방바닥에 걸레질까지 마친 모양이었다. 마당의 수돗가에서 어머니가 걸레를 빠는지 수돗물 소리가 쏴- 쏴- 들려왔다. 밤새 그렇게 다리가 저려 몸을 뒤챘으면서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부지런을 떠는 어머니였다. 얼른 이불을 개 얹고 마당으로 나가보았다. 가시 같은 손으로 걸레를 주무르던 어머니가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았다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머니의 퀭한 눈은 벌써부터 이별에 대한 슬픔을 가득 담고 아직 볕도 들지 않은 아침 기운 속에서 그렁거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생을 더는 담아낼 수 없는 초라한 몸이 조만간 그 운동을 중지하고 하나의 물체가 되어 땅에 눕혀져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뻔히 보이는 어머니의 운명을 알면서도 그냥 이렇게 기다려 줄 사람도 없는 남의 나라 땅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땅, 이 집의 공간 안에 내가 머무를 곳이 없다는 것을. 밤사이 손에 잡히지 않는 희망 같은 것이 내게 살포시 내려앉았다고는 하지만 내 삶의 피상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것은 내가 한 일도 없이 인생을 반이나 살았다고 한탄하다가 시점을 바꾸어 아직도 많은 일들을 해 볼 수 있는 인생이 반이나 남았다고 다시 생각하는 거나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희망은 다만 인식의 차이 일 뿐이었다.
어머니는 꼬부라진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가늘고 거친 손에 쥐어진 걸레를 힘겨운 듯 비틀어 짰다. 물에 젖은 무채색의 헝겊 뭉치로부터 물기가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니가 일찍 떠나야 한다고 해서 오늘 아침은 내가 좀 서두르라고 했다. 내가 언제 너를 다시 보겠다고... 내일 갈지 모레 갈지 모르는 판국에 너 아침이라도 잘 해 먹이려고 내 오늘은 일찌감치 일어났다. 하긴 늙으니까 자꾸 새벽잠이 없어져서......  그 동안은 일찍 눈이 떠지면 너 잠든 얼굴 바라보던 게 낙이었는데 이제는 어쩔거나? ”
어머니의 목소리는 이미 꼭지가 잠겼지만 똑- 똑- 떨어지고 있는 수돗물 소리와 함께 서글프게도 내 가슴을 때려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어머니의 검고 마른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저기 알 수 없는 곳을 바라보세요. 우리가 알 수 없는 먼 곳을 말이에요. 내가 떠나야 함이 하나도 어머니를 슬프게 하지 않을 거라고요. 어머니는 한평생 내내 너무 만질 수 있는 것에만 집착하셨기 때문에 몸이 그렇게 흉하게 찌그러지신 거예요. 당신도 이제 만져 볼 수 없는 세계를 선망해 보세요. 거기에서 어쩌면 삶의 생기를 얻을 수 있을 지도 몰라요. 난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왜 그렇게 꼿꼿하셨던가를......  운명에 삶을 유린당한 할머니가 못 견딜 아픔 때문에 지향했던 그 세계가 오히려 할머니를 살게 했었다는 것을 이제야 나는 알 것 같아요. 어머니는 그래도 행복하셨지요. 행복한 사람은 삶의 반대편 세계에 대해 헤아려보는 능력을 스스로 말살시킨답니다. 나도 이제야 조각난 내 삶을 통해 그 알 수 없는 세계에 희망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또 한풀이라고 말하시겠지요. 너희 외할머니 청상과부 한풀이라고 하셨듯이 말이에요. 그러나 어머니! 나는 지금부터는 그렇게 살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시작하지 않으면 나는 어머니를 이렇게 떠날 수도 이 집을 떠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멍하니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때 마당 가운데로 여릿한 아침 햇살이 말갛게 스며들었다. 어머니는 휘청휘청 굽은 몸을 움직여 걸레 꾸러미를 든 채 힘겹게 토방을 짚고는 툇마루로 올라섰다. 휘청거리는 어머니의 작은 몸이 바람에 날려 가는 헝겊조각 같이 느껴졌다. 마치 사람의 몸이 들어있지 않는 꽃무늬의 홈웨어 한 벌이 바람의 힘에 밀려 툇마루로 올라서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와 올케가 유난히 정성을 들여 차려낸 아침상에서 나는 다른 날보다도 더 밥술을 뜨는 둥 마는 둥 했다. 닷새 만에 화장기를 붙인 내 얼굴을 어머니가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먼길 가는데 좀 더 먹고 가라. 니가 밥이나 잘 먹는 것을 봐야 그래도 내 맘이 편하지. 너 밥 먹는 모습 내가 언제나 보겠다고? ”
어머니의 퀭한 눈에서 그 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어머니 걱정이나 하세요. 늙으신 어머니가 젊은 딸 식욕을 걱정하시다니..... ”
오빠가 어머니를 나무라듯 퉁명스런 한마디를 내뱉었다. 어머니는 식탁에 놓였던 냅킨을 들어 눈 꼬리를 찍어 누르며 콧물을 훌쩍였다. 나는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 울어 버리고 싶은 아이 같은 마음을 억누르며 된장국에 말은 밥을 묵묵히 입에 떠 넣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오빠! 새 집 지으면 말이야 내 방 한 칸 들여 줄래요?”
순간 숟가락질을 멈춘 그의 시선이 슬며시 나를 향했다. 싱크대 앞에서 물 컵을 챙기던 올케도 손을 멈추고 뒤돌아보는데 냅킨으로 눈물을 찍어내던 어머니만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계속 코를 훌쩍거렸다.
“왜? 여기 돌아와서 살려고?”
오빠가 멈췄던 숟가락질을 계속하며 물었다. 그의 표정은 대수롭지 않은 일을 만난 듯 담담해 보였지만 깊은 수심이 어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돌아오고 싶을 때 언제고 돌아 올 수 있게 내 방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요. 우리 어머니 나 기다리는 희망으로라도 오래 사시게 말야. 그리고 나도 언제고 돌아 갈 곳이 있다는 희망이라도 갖고 그곳에서 살게....... ”
딴엔 건조하게 말을 해버리려 했는데 끝을 맺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가 아직도 무슨 소리인지를 몰라 퀭한 눈빛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숟가락을 놓아버린 오빠가 아이를 달래듯 어머니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어머니! 금지가 여기 돌아와서 살겠대요. 그러니까 기다리시라고요. 금지가 돌아올 때까지 오래오래 사시라고요. 새 집 지으면 어머니 방 옆에 금지 방을 하나 들여놓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오늘 보시는 게 마지막이 아니니까 울지 마시라고요.”
오빠의 말에 어머니가 다짐을 받는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금지 다시 보고말고! 새 집 지으면 내 방 옆에 금지 방을 들이겠다고? 그래! 그래! 내가 기다리마. 금지옥엽 같은 딸이라고 느이 아버지가 이름도 금지라고 지었지.”
어머니의 꺼칠한 손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나는 끝내 어머니의 가시 같은 손에 얼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