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 이성복, 김소월, 이육사, 노천명

2006.01.23 02:35

김동찬 조회 수:477 추천:12

*** 96

판자집 유리딱지에
아이들 얼굴이 
해바라기 마냥 걸려 있다. 

내려 쪼이던 햇발이 눈부시어 돌아선다. 
나도 돌아선다. 
울상이 된 그림자 나의 뒤를 따른다.

어느 접어든 골목에서 발을 멈춘다.
잿더미가 소복한 울타리에
개나리가 망울졌다. 

저기 언덕을 내려 달리는
소녀의 미소엔 앞니가 빠져
죄 하나도 없다.

나는 술 취한 듯 흥그러워진다.
그림자 웃으며 앞장을 선다. 

    구상 (1919 - 2004) 「초토의 시 . 1」전문 

지난 5월 11일에 원로 구상 시인을 잃었다. 삼가 명복을 빌면서 님의 
시를 다시 읽는다.
전쟁으로 초토가 된 한 판자집 동네에서는 햇발도 나도 눈부시어 돌아
선다. 하지만 언덕을 내려 달리는 소녀의 앞니 빠진 미소를 보며 희망을 
다시 얻는다. 잿더미 속에서도 꽃을 찾아내던 님이 가셨으니 이제 누가 
이 삭막한 거리에 시를 뿌리고 꽃을 노래하랴.

*** 97

잠든 잎새들을 가만히 흔들어봅니다 
처음 당신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날처럼 깨어난 잎새들은 다시 잠들고 
싶어합니다 나도 잎새들을 따라 잠들고 
싶습니다 잎새들의 잠 속에서 지친 
당신의 날개를 가려주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눈을 뜨면 깃을 치며 날아가는 
당신의 모습이 보이겠지요 처음 당신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날처럼 잎새들은 
몹시 떨리겠지요 

     이성복 (1952 -  ) 「새」전문 

만날 때 떨리던 것처럼 헤어질 때도 떨림이 있었음 좋겠다. "잎새에 이
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 했다"고 노래한 시인처럼 작은 바람에도 괴로워 
할 줄 아는 사람들이 그립다. 사람이 몇 천 명씩 죽어도 눈도 깜짝 않는 
이 시대가 무섭다. 새가 앉았다 날아가는 순간에도 바람은 일고 잎새들의 
마음은 흔들린다. 그래서 나뭇잎새는 늘 떨고있나 보다. 

*** 98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萬壽山)을 나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苦樂)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怜悧)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스랴.
제석산(帝釋山)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의
무덤에 풀이라도 태웠으면!

      김소월 (1902 - 1934)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전문

가곡과 대중가요 구분없이, 김소월 시인의 시들은 대부분 노래로 만들
어졌고 또 한국인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그래서 김소월 시 
한, 두 편을 외우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흔하게 접할 수 있어서 그랬는지, 너무 감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며 그
의 시들을 한 때 던져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그의 시를 
다시 읽으니 어느 하나도 감동 없이 읽을 수 없다. 사랑도, 세상물정도,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내 님도 철이 없던 시절에는 몰랐다. 그러니 시에 
대해서도 뭐 좀 제대로 알 턱이 있었겠는가. 

*** 99

매운 계절(季節)의 채쭉에 갈겨
마츰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 (1904 - 1944) 「절정」전문

이육사 민족시인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었다. 님의 생애를 대충 되
짚어보아도 열열한 조국사랑이 느껴져 감격스럽다. 선생은 의열단원으로, 
국민정부 조선군관학교(일본 장교를 배출하는 만주군관학교가 아님) 1기 
졸업생으로 일제에 대한 저항운동을 쉬지 않았다. 열일곱 번이나 감방을 
드나들면서 그토록 소망했던 광복을 불과 일년 여 앞두고 북경의 감옥에
서 눈을 감았다. 본명인 원록을 두고 즐겨 사용한 필명 이육사도 처음으
로 수감되었던 때의 죄수번호(264)였다고 한다.
님의 100주년 탄생일을 맞아 5월 18일 엘에이에서도 기념모임을 갖는
다. 비록 몸은 조국을 멀리 떠나와 살지만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기원하
는 마음으로 이육사 시인의 정신을 되새겨보는 이 자리에 많은 동포들의 
참석을 바란다. (문의; 고원 시인 818-831-5844 )

*** 100

보리는 그 윤기나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숲사이 철쭉이 이제 가슴을 열었다

아름다운 전설을 찾아 
사슴은 화려한 고독을 씹으며
불로초 같은 오후의 생각을 오늘도 달린다

부르다 목은 쉬어 
산에 메아리만 하는 이름...

더불어 꽃길을 걸을 날은 언제뇨
하늘은 프르러서 더 넓고 
마지막 장미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라 
그리고 폭풍이 불어다오
이 오월의 한낮을 나 그냥 갈 수 없어라

      노천명 (1911-1957)「오월의 노래」 전문

셋째 행의 "고독"은 이제 너무 흔해서 고독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50여 년 전에는 대단히 감각적이고도 현대적인 표현이었을 것 같다. 고독
이란 단어도 그렇지만 그것을 느낀다고 하지 않고 씹는다고 했으니 말이
다.  
노천명 시인의 비슷한 느낌을 주는 시「푸른 오월」에는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란 대목이 나온다. 이렇게 오월을 "계절의 여왕"
이라고 표현한 것도 노 시인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너무 많이 사용해서 너덜너덜해진 죽은 은유가 돼버렸지만 그 
싯귀들은 한 때 푸르른 오월같이 싱싱하게 빛났을 것이다. 그 은유들을 
처음 대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다시 읽어보니, 계절의 여왕 오월이 윤기나
는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