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축복을 비는 마음

2005.01.06 19:21

조만연.조옥동 조회 수:338 추천:14

                         새해의 축복을 비는 마음

                                                            조옥동

새해 아침이 되었다. 새해를 선물로 받고 크고 작은 소망들을 하늘 높이 띄워 보는 아침, 마음도 상쾌하다.
어수선한 흔적들을 여기저기 남겨놓고 연말이란 회오리바람이 스쳐간 자리에 낮게 드리워진 회색 하늘 밑으로 묵은 해는 떨어지고 동녘 하늘 위로 새해가 솟아오른다. 한 해를 마감하고 결산하는 종점에 서면 아쉬움과 청산되지 않은 미결의 사건과 최선을 다하지 못한 자책감과 회한의 무게로 짓 눌렸던 날들 그 끈을 놓아 버린다. 다행이 삶은 단막극이 아니기에 새 무대의 막이 오를 때마다 언제나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에 마음을 조린다. 지난 무대가 비록 상실과 슬픔의 얘기로 끝이 났다 할지라도 희망이란 간절한 기도의 촛불이 소생력을 만들어 준다. 새 해 달력을 꺼내 걸고 정월 첫 장을 열 때는 마치 새 무대의 막을 들어올릴 때와 같이 기대와 바램으로 설레게 된다.  

성탄절과 새해가 다가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까운 가족을 비롯하여 멀리 있는 친지에게 사랑의 메시지나 선물을 보낸다. 미국에서만 년 말에 배달되는 선물 상자의 총 길이가 지구둘레를 세 바퀴하고도 반을 돌릴 정도라 하니 전세계에서 각 곳으로 배달되는 우편물은 가히 천문학적 숫자일텐데 그 중에도 제일 많은 것이 카드이다. 카드마다 적혀 진 사연은 조금씩 달라도 그 속의 메시지엔 사랑과 소망이 한결같이 담겨 전달된다.
감사하는 마음, 복을 빌어주는 마음, 받는 사람의 건강과 행운을 간절히 기원하며 따뜻한 마음을 서로 전하는 일에서 계속 세상의 웃음과 사랑이 피어남을 어쪄랴. 자기를 염려해주고 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기쁨은 세상의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다는 서러움과 외로움에 맺혔던 마음의 응어리를 녹여 풀어주고 주저앉았던 다리에 힘을 솟게 한다. 퍼내어 아무리 나누어도 마르지 않을 사랑의 샘물을 새해는 더 깊이 파야겠다.
잊었던 사람 또는 미지의 사람에게서 온 사랑의 메시지나 선물은 한층 기쁨을 더하고 고요했던 마음의 수면에 한없는 사랑의 파장을 일으켜 주는 힘이 있다. 미움과 갈등과 오해로 깨져있던 감정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감사와 눈물겨움으로 부드럽게 다듬어진다. 오랜 동안 꺼내 놓지 않은 마음의 거울에 자신을 비쳐보는 계기가 된다. 옹졸했던 마음, 시샘과 질투 때문에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피 흘리게 만들었던 영혼의 부끄러움을 깨닫는 일은 받는 사랑이 나를 승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해는 커다란 선물이다. 나도 사랑의 빚을 많이 지고 있어 이 아름다운 새해아침 이웃들의 복을 빌어 줄 마음이 가득 차 이름들을 찾아 리스트를 만든다.

갈피 갈피마다 사랑의 훈기와 아름다운 마음의 향기를 담은 성탄절카드나 서양인의 연하장에는 틀림없이 '해피 뉴 이어'라는 말이 들어있다. 우리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과 같다. 덕담도 나라마다 특징이 있어 독일사람들은 '구텐 루치!(Guten Rutsch)'하고 새해 인사를 한다고 한다. 이 말은 '잘 미끄러지세요'라는 뜻인데 아마도 새해에는 원하는 일마다 미끄러지듯 순조롭게 잘 되라는 덕담일 것이다. 또한 너무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현대인들의 입맛에 착 붙을 인사이긴 하지만 중국사람들이 좋아하는 새해 덕담은 '궁시파차이(恭 發財)' 라는 말인데 돈 많이 벌어 부자가 되라는 뜻이다. 이웃 일본인들이 연초에 하는 인사는  '아케마시떼 오메데토우 고자이마스 (あけまして おめでとう ございます.)'로 '밝은 것을 축하드립니다' 라고 해석돼는 데 새해가 밝다 는 토시가 아케르(としが あける) 에서 새해라는 주어가 생략된 인사말이다. 표현하는 말은 달라도 신년을 맞는 모든 이의 마음속엔 서로의 축복을 비는 사랑이 그득하여 이 한해를 보내는 동안 샘솟듯 마르지 않으면 좋겠다.
여하간 좋은 형편을 모두 포함하는 뜻의 함축성 있는 우리의 덕담을 나는 좋아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중앙일보 2005년 신년호 <여자의 세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