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호(雅號)에 대하여

2005.09.13 17:45

김영교 조회 수:361

                                  
     서울서 오신 친구의 시아버님 서관 선생님은 많은 사람으로 부터 존경을 받는 덕망 있으신 서예가이시다. 올해가 미수에 드셨는데도 어찌나 보행이 고르시고 자세가 곧으신지 비가 오면 가슴에 먼저 맞는 옛날 마카오 신사를 방불케 한 멋쟁이시다.
     음식도 꼭꼭 씹으셔서 한식, 양식 골고루 잘 드시는 식성이 좋으신 어른으로 많은 젊은이들의 부러움을 사신다. 대화의 토픽도 다양하시어 재미있는 어른으로 주위엔 늘 사람이 따른다. 무엇보다도 그 어른께서 몸과 마음의 장수축복을 받으신 까닭은 항상 웃으시는 탓이 아닌가 여겨진다. 낙천적인 품성이 빗자루가 되어 근심걱정을 세상 밖으로 몽땅 쓸어내시고 금방 손을 깨끗이 씻으신 듯 단정한 매무새는 우리의 경탄을 자아내게 해주신다.
     슬하에 전문직의 목사와 의사 등의 여러 자녀들을 두셨다. 아직도 넉넉한 경제력으로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으시고 베푸는 입장에 계신다. 평생 서도를 하시며 유교사상에 심취하시여 평생 골수 유교 신봉자이셨는데 기막힌 사연인즉 느즈막에 만난 예수와의 인격적 교제 때문에 주로 요사이는 성경을 쓰시며 이를 아주 좋아 하시고 즐기시고 계신다는 점이다.
     어린 나무일수록 옮겨 심으면 잘 자라 주는 것과 같은 이치로 고목이 되어 영혼의 토양갈이를 감행하기란 힘들고 뿌리내리기에 남보다 더 많은 시간과 애정을 투자하시었다. 일생동안 익숙해진 신념의 궤도수정은 용기있는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서관선생님은 의미있는 동기부여로 해내실 수 있으셨다. 기독교에 귀의하신 데는 생명의 영원성, 즉 부활을 믿으신 게 획기적인 계기였다. 확실히 놀라운 변화였다.
     작년 11월 마침 손녀 결혼식 참여 차 이곳에 체제하신 몇 주 동안 그 분을 만나 뵐 기회가 있었다. 식사를 하며 덕담을 나누는 가운데 글 쓰는 사람이 아호가 없어서 허전하다 하시며 내 친구 숙은 소정(昭庭), 의사 아드님은 계산(桂山)이란 아호가 이미 주어져 있었다. 나는 그 분으로 부터 며칠 후 시 쓰는 친구와 나란히 아주 좋은 아호를 선물받았다. 옥계(玉溪)는 친구에게,  남정 (南汀)은 나에게 주셨다. 햇빛이 남쪽으로 돌아 하루 종일 밝고 따뜻하듯 내 성품이 또한 그렇다 하여 널리 불리워지기를 원하셨다. 여러 가지 나의 인적상황을 참작하시더니 글도 내 삶도 물처럼 유연히 흐르기를 축원해 주셨다. 작명하시어 고이 적으셔서 전해 주셨을 때 아호를 받은 것만도 황송한데 친필로 써 주시기까지 해서 기쁨이 몇 배가 되었던 걸 나는 소중하게 기억한다. 그 자리에서 아호와 내 마음을 같이 접어 마음속깊이 간직하였다.  
    엘니뇨 우기 끝에 봄이 초록을 옷 입은 3월 초순, 넘실대는 꽃향기에 취한 내 몸은 생명의 경이에 감격하고 있을 때 나를 전율케 하는 그 분의 서찰 하나를 받았다.

남정(南汀) 김영교(金英敎)
/彩霞石壁 閒山城/南海靜汀白沙周/月夜淸明夢似際/玉*추三聲過仙舟/
/채색노을 돌 성벽 한산의 성/남녁 바다 잔잔한 물가 모래도 맑다
/청명한 달밤 꿈같은 경치/옥피리 두 세 소리에 신선배가 지난다.
*추-피리 추
     아호를 넣어 한시를 한지에 적으시고 설명 시에도 낙관을 찍어 마무리 한 다음 곱게 접으셔서 구겨질세라 받히게까지 곁들려 조심스레 봉투에 알맞게 넣어 보내주셨다. 큰 봉투라 영어주소는 아예 붓으로 그리시어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거기에도 또 하나 있었다. 성의와 배려를 하신 것이 역역하였다. 가슴이 뭉클했다. 나를 살펴보게 해주셨다.
    몸이 고단하다는 핑계로 또 바쁘다는 구실로 정성 들이지 않고 살아 온 인스탄트(Instant)식 내 삶이 부끄러웠다. 그날 밤 가슴을 찔러오는 반성의 채찍을 피하지 않았다. 획 하나 점 하나, 한 글자 한 글자에 그 분의 모아진 정성과 배어있는 숨결이 내게로 옮아오는 듯했다. 단아하시고 곧으신 그분의 모습을 그리며 눈을 감고 한동안 주신 -남에게 따뜻한 햇볕같은 사람이 되라-던 그 말씀을 되새겨 보았다.
      오래 오래 건강하시어 그 좋은 솜씨로 한시도, 성경구절도 적으셔서 주위의 많은 분들에게 기쁨을 나누어 주는 서예의 싼타 할아버지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표구사에 들려 알맞는 크기의 흰 비단여백으로 표구를 의뢰했다. 아호가 걸릴 방은 온통 남해바다이다. 교교한 달빛으로 가득, 벌써 설레는 파도자락이 되어 고향 바다를 철석인다.
     햇볕이 항상 쏟아지는 남녘의 물가<남정>. 서관선생님처럼 주위의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맑은 물로 살아가고 싶다. 동양에선 군자의 사귐은 달지도 쓰지도 않은 맑은 물 같아야 한다고 했고, 성서에선 세상 헛된 물을 길어 올리던 한 여인에게 건네준 나사렛 청년의 생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아호는 또 다른 <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호에 합당하게 내 삶의 ‘천’을 짜야 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으로 남는다.
     내 아호를 오래 오래 간직하며 서관선생님의 만수무강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