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잎 클로버

2006.02.15 19:35

정해정 조회 수:344 추천:5

  미국의 서쪽에 '천사의 도시'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에는 부자들만 산다는 '베버리 힐즈'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집 안에서부터 자동차를 타고 나오기 때문에 길거리에는 걸어다니는 사람을 여간해서 볼 수가 없습니다.  
  몇 십 그루인지 몇 백 그루인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쟈카란다 가로수  들이 집채만한 모습으로 위엄 있게 나란히 줄을 서 있고 담들이 없는 집 앞에는  매끄러운 잔디들이 끝간데 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런 동네 어느 부자 집 정원 한 귀퉁이에서 민들레와 클로버가 살고 있었습니다. 잔디밭과 아스팔트 길 틈새 움푹 패인 곳, 햇빛도 잘 들지 않은 데에서 아주 초라하게 말예요.  이 도시는 일년 내내 비가 오는 날이 드물어 모든 나무들과 꽃과 풀들에게 하루 두 번 기계가 자동으로 물을 뿌려 준답니다. 그러나 민들레와 클로버가 겨우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곳은 너무 구석진 곳이라 거기까지 물줄기가 닿지 않습니다. 클로버는 원래 이파리가 세 잎 인 것이 정상인데 잎이 하나 더 달린 네 잎 클로버입니다.
  바로 옆에 서있는 고목이 다된 집채만한 쟈카란다 가로수는 이들에게 다정하고 든든한 이웃입니다. 쟈카란다 나무에는 봄이 되면 온통 보랏빛 안개가 뒤덮인 것처럼 보입니다. 꽃 움이 트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오 월이면 이 고목 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꽃 모양은 보라색 작은 종처럼 생겼고 한 뭉텅이씩 무리 지어 나무 가지가 보이지 않게 뒤덮습니다.    그러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보라색 구름처럼 온 천지를 뒤덮습니다.
  민들레와 클로버에게는 이 계절이 일년 중 가장 행복한 때이지요.
  보라색 꽃이 다 떨어지고 나면 쟈카란다 는 그때서야 여름을 알리는  연두색 이파리를 달기 시작합니다.
  민들레와 클로버는 일 주일에 한번씩 오는 정원사의 눈에 띄지도 않아  잔디 깎는 기계도 이들에게까지는 손이 미치지 않습니다. 만약에 민들레와 클로버가 정원사의 눈에 띄어 잔디 깎는 기계에 걸려들었다면 벌써 이 자리에 살고있지 않겠지요.
   잔디 깎는 기계가 아무리 큰 소리를 내며 잔디밭을 훑고 지나가도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클로버가 묻습니다.
  "민들레야 넌 어디서 왔니?"
  "나는 고운 아침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땅. 멀고먼 나라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바람이 나를 업어다 주었지. 그러는 넌?"
  "내 고향은 넓고 넓은 들판이지. 들꽃들이 모여 사는 들꽃마을 이란다."
  민들레가 먼저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어렸을 적 고향에서  우리 할머니한테서 들은 이야기야. 옛날하고도 아주아주  먼 옛날에. 세상이 통째로 물에 푸욱 잠길 만큼 큰 물난리가 났을 때 얘기란다. 민들레 마을에도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어. 모두들 마을을 떠나 피신을 했지. 그런데 민들레는 땅에 묻힌 발을 미처 빼내지 못해 피신하지 못했지, 제발 살려 달라고 하느님께 간절하게 기도를 했단다. 기도를 하면서도 너무나 겁에 질려 얼마나 울었는지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렸구나. 하느님은 민들레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급하게 민들레 씨에 깃털날개를 달아주셨지. 그리고 바람보고 얼른 업어가라고 하셨단다. 깃털을 단 민들레 씨는 바람에 업혀 멀리멀리 날아가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렸어. 그 뒤 민들레는 하느님의 은공을 잊지 못해 양지 바른 곳이면 어디서나 뿌리를 내리고 노란색 얼굴을 쳐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고 있단다."
  민들레는 이야기를 계속 합니다.
  "우리 할머니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은 그 누구에겐가 이로운 일을 하고 저 세상으로 가야 한다고 했어."    
  클로버가 말을 받습니다.
  "내 고향은 넓고 넓은 들판. 들꽃들이 즐겁게 모여 사는 아주 평화로운 들꽃 마을이었지. 그러나 우리 가족만은 즐겁게 살지 못했어. 개밥에 도토리 같은 신세로 '왕따' 당하고 살았으니... 왜냐면 이유가 있었어. 우리엄마도, 우리 할머니도 모두 네 잎 클로버였거든."
  클로버는 금세 슬픈 얼굴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할머니는 늘 당당 하셨단다. 괴롭고 속이 답답할 때는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라고 하셨지. 누가 뭐라든지 열심히 살아 꽃을 잘 피워내 소녀의 연하고 고운 손가락 위에 하얀 꽃반지로 앉는 꿈을 꾸라고 하셨어"
  "또 우리엄마는 겸손하게 살면서 남에게 상처주지 말고 누구에겐가 행운을 주고 이 세상을 떠나라고 이르곤 하셨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마을이 송두리째 들려서 어디론가 옮겨져 가는 거야 나도 거기에 묻어와 보니 바로 여기였어."
  이때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쟈카란다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니 그때까지 떨어지지 않고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마지막 보라색 아기종 하나가 딩동! 하면서 아래로 떨어집니다. 쟈카란다는 민들레와 클로버에게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착한 아이들아. 너희들의 고운 마음씨도 잘 알고 있지. 그리고 네 잎 클로버는 병신이 아니고 행운이라는 것도......"
  새로 돋아난 쟈카란다 의 연초록 이파리 사이로 뺨이 붉은 노을이 민들레와 클로버를 빼꼼히 드려다 봅니다. 어느새 저녁 때 가 된 것입니다. 민들레와 클로버는 잠잘 채비를 마치고 꿈속으로 빠져듭니다. 둘은 똑같이 꿈을 꿉니다. 누구에겐가 기쁨을 주는 꿈을 꿉니다.
  밤이 가고 아침이 왔습니다. 하느님은 보잘것없는 민들레와 클로버에게도, 결 고운 초록 잔디밭에도, 가로수 쟈카란다 에게도 고루고루 오색으로 빛나는 구슬 같은 새벽 이슬을 선물로 주십니다. 세상은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 되고 만물은 눈을 뜹니다.
  이때 눈부신 황금 햇살은 끝간데 없이 펼쳐진 초록색 잔디 위에서 보석 같은 이슬과 어울려 춤을 춥니다. 민들레와 클로버는 넋을 잃고 구경을 합니다. 우리도 저런 곳에다 뿌리를 내리고 아침햇살과 어울려서 한번만이라도 춤을 춰 봤으면! 초록색 잔디와 하루 만 이라도 몸을 비비며 지내봤으면......
  그런데 이게 왠 일 입니까?
  순간 민들레와 클로버의 눈에 똑같이 들어온 것이 있어 똑같이 깜짝 놀랍니다. 민들레는 결 고운 잔디 속에서 거만하게 목을 쑤욱 빼고 마악 올라온 건강하고 샛노란 민들레를 보았고. 클로버는 크기가 똑같은 싱싱한 세 이파리를 가진 잘난 클로버 가족을 보았습니다.
  둘 은 한없이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가로수 쟈카란다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정원사 아저씨가 왔습니다. 아저씨는 잔디 깎는 작은 자동차에 올라타고 잔디밭을 누빕니다.
  기계가 지나가자 거만한 민들레는 힘없이 쓰러져 버리고, 잘난 클로버 가족은 뿌리째 뽑혀져 나갔지요.
  앉은뱅이 민들레와 네 잎 클로버는 후유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쉽니다. 가난하고 못났지만 그들은 마음 편하게 이렇게 사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을 똑 같이 합니다.
  민들레는 작고 초라한 노란색 옷을 벗고 은빛 깃털 날개를 달고 다른 세상을 향해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 왔습니다.
  착한 친구 클로버와 든든한 가로수 쟈카란다와 영영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젖어있는데 할머니 말씀이 귓전에 맴돕니다.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가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세상에 나가는 것은 세상을 위해 이로운 일을 하기 위해서다"
  민들레는 지금 세상으로 나가야할 때가 온 것입니다.
  민들레의 마음을 알아차린 속 깊은 클로버가 철이든 큰언니처럼 다독거려 줍니다.
  "민들레야 나는 네가 부럽단다. 작아도 너의 노란 꽃은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지 않니?  어디서나 뿌리를 내리고, 아무리 짓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너의 강인함에 용기를 얻고 있었어. 네 꽃대는 가늘고 짧지만 속은 텅 비어있지 않니? 그게 바로 마음을 비우고 사는 너의 마음이야. 친구야. 너는 힘들게 꽃을 피워  항상 넉넉하게 꿀을 준비해 두었다가 벌들과 나비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지 않았니?"
  여기까지 말하고 클로버는 목이 메입니다.
  "그리고 친구야! 너의 씨는 작고 가볍지만 용감한 모험심과용기가 있어 새로운 땅을 찾아가는 모든 이민자 들에게 삶의 희망을 가르쳐 주고 있으니 얼마나 장하냐?"
  민들레는 소리 없이 울고 있습니다. 많이많이 울고 있습니다. 언제나 칭찬과 위로를 해주던 친구 클로버의 착한 마음씨에 감동이 되어서가 아닙니다. 금방 날개를 달고 떠나야할 이별의 시간이라서 울고있는 것도 아닙니다. 민들레는 쟈카란다 에게 이런 부탁을 합니다.
  "쟈카란다 아저씨 저의 친구 클로버는 물마저도 제대로 못 먹고살았어요. 휘어진 허리로 꽃을 피우려고 많이 애썼어요. 겨우 한쪽 꽃이 벙글면 반쪽은 말라 죽어가서 작은 흰 꽃 한 송이도제대로 피우지 못했지요. 평생 소원인 소녀의 연한 손가락 위에 올라앉는 꽃반지 한 송이 피워내지 못한 클로버를 생각하면 너무 슬퍼요."
  쟈카란다는 말했습니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이라고 사람들은 말 하지만 나는 안단다.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이라는 사실을......민들레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어서 떠나렴!."
  민들레는 자기가 친구를 위해서 이렇게 진심으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또 눈물이 납니다.
  민들레는 마악 하늘을 향해 날개 짓을 하려고 고운 깃털을 살며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머리를 길게 느린, 사과 같은 볼을 가진 소녀가, 키가 훤칠한 청년과 함께 이곳을 지나갑니다. 공교롭게도 소녀의 운동화 끈이 풀어졌습니다. 소녀가 풀어진 운동화 끈을 매려고 허리를 굽혔습니다. 소녀는 클로버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소녀는 화들짝 놀라더니 갑자기 크게 소릴 칩니다.
  "야! 찾았어! 행운의 네 잎 클로버,  찾았어. 행운의 네 잎 클로버!!!"
  소녀는 네 잎 클로버를 소중히 두 손으로 감싸쥐고 지긋이 바라봅니다. 소녀 는 또 클로버의 작은 꽃송이를 손가락 위에 반지처럼 올려놓아 봅니다. 소녀의 그런 모습에 청년은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봅니다. 민들레는 비로소 미소를 띄고 은빛 깃털을 폅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바람의 등에 엎혀 서 파아란 하늘로 높이 떠납니다. 그때 가로수 쟈카란다의 새로 피어난 초록 잎새들이 활짝 손을 펴 들고, 웃으면서 떠나가는 민들레를 배웅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