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로 마음을 옮기며

2005.02.04 05:02

노기제 조회 수:34

012505                대중가요로 마음을 옮기며
                                                        노 기제

        한계점에 다달은 내 능력을 멀거니 본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연주를 세 번이나 했지만, 높은 라 음을 계속 내고 있을 수가 없다.  내 몸의 어딘가에서 강한 힘을 받쳐주어야 되는데 자꾸 풀어진다. 결국 입만 벌린 채 폼만 잡아야 한다. 이젠 은퇴 해야 겠구나.
        노래하는 순간이 가장 순수한 나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고 스스로 행복해 하며 노래하는 기회를 자꾸 만들어 갔다.  교회에선 성가대, 평일에 모이는 합창단이 있으면 어김없이 기웃거리며 입단을 했다.  그러나 쉽게 생각하고 즐길 수가 없다. 곁에 선 사람이 다른 파트를 노래하면 슬금슬금 따라가는 경향이 있음을 숙지한 것이다.
        어느날 예고도 없이 찾아 온 교회 성가대 지휘자가  녹음된  테잎을 내밀었다. 이번 부활절 음악예배에 연주할 곡들인데 열심히 듣고 연습하라고.  그중 한 곡을 맡아 혼자 부르란다. 곁에 있던 남편이 끼어 든다. 솔로는 안돼요. 이 사람 음치에요. 자기 파트 음도 혼자 못내서 곁에 사람 자꾸 따라하는데…..딴 사람 시키세요.
        사실이다. 그렇지만 남편이 밉다. 적어도 지휘자가 부탁을 할 땐 뭔가 가능성이 있으니까 시킬터인데 저렇게 한 마디로 딱 잘라버리니 얄밉단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오기가  화산 터지듯 치밀어 올라 그만 테잎을 받아 들고 해 보겠다고 대답했다. 초등학교 오학년 때도 담임 선생님이 노래 잘하는 강 미영과 나를  앞으로 불러 내서 이중창을 시킨 적이 있었다. 여러 번 시도 했던 소프라노 파트도 알토 파트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자리로 돌아간 경험이 있다. 왜 시켰었을까?  합창을 할땐  목소리가 고운 모양이다.  그래서 노래를 잘  할 것이라는 생각들을 하게 한 것일까?
        이번엔 그냥 자리로 돌아 가는 일을 만들진 않겠다고 단단히 각오도 했다. 그리곤 곧 선생님을 수소문해서 개인 교수를 받기 시작했다.  시티 칼리지 성악과에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노래 공부를 시작했다. 물론 남편에겐 그런 척도 않고 노래공부에 열을 올리며 연습을 해서 결국 그 해 부활절 음악 예배엔  모두들 깜짝 놀랄정도로 훌륭하게 솔로를 해 냈다.
        얄미운 남편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그 후로 계속 된 내 노래 공부는 십 년이 되고 이십년이  더 지난 모양이다.  그 동안 솔로도 가끔 했고 계속해서 합창단에 적을 두고 노래하며 살다보니  그 오래 전 내게 솔로를 시켜 준 지휘자가  내내 고마운 사람으로 남아 있다.  이젠  누가  내 곁에서 노래를 해도 내가 담당한 파트만은 자신있게  소리 내며 노래한다.  
한 사람에게 잠간 인정 받았던 사실이  결국엔 잠자던 유전자를 깨워 못 할 것 같던 일을 해 낼 수 있었던  지난 일을 생각하며 난 누구에게 든지 어떤 경우에라도 용기를주고, 할 수 있다고 격려하고, 칭찬해 주는 일에  후하다.  내게는 사실 노래 잘하는 탤런트는  없지 싶다. 그냥 노래하는 순간이 즐겁고 행복해서 자꾸 노래를 하는 것이지 결코 성악가로서의  소질은  아니라는 결론을 냈다.  피나는 노력으로 합창은 잘 할 수 있도록 된 것이다.
        지난 세월동안 몸 담아 온, 음악가들이 모인 합창단을 떠나 이젠 좀 쉽게 부르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합창단으로  마음을 옮기려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클래식에서 대중가요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작업이다.  베토벤, 모짜르트, 슈벨트, 하이든 등 대가들의 합창곡을 연주하다가 서너페이지에  반복되는 단순한 악보를 보며 편안함의 맛을 혀끝에 느낀다.  어쩜 이 정도가 내 수준일런지도 모른다.  쉬운 악보, 실 생활에서 묻어 나온 가사들, 모두들 뭔가가 채워지지 않아 허한 마음으로 모여든 생활인들.  같은 정서 속에서 같은 것으로 즐거워하고 서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랑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고 끊임 없이 옮겨 간다고 누군가   말했다. 분명 동감이 가는 말이다.  예전엔  거들떠 보지도 않던 대중가요에 내 마음이 옮겨 가고 있응을 또 다시 멍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스폰지에 스며드는 물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듯이 옯겨가는 내 마음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  포근하게  어딘가에  안겨 버리는 느낌일 뿐이다.
        행여 도전해 볼만한 부분이 없어서 일찌감치 싫증이 날 수도 있겠다. 그저 편안해지려는 안일함에 식상할 수도 있겠다.  그러기에 뜨거운 잇슈가 필요하다. 나만 즐기고, 나만 행복 해 지려고 내 마음을 바꾸지 말고, 내가 느끼는 이 안일함과 행복감을   많은 사람들과 나눠 갖고 싶다는  열정이 필요하다.
        밥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팔자 좋게 띵가띵가 베짱이질이냐고 눈쌀을 찌푸릴 메마른 가슴들을 찾아 무공해 식수 한모금 입안에 흘려 넣어주자.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 죽어 가듯 살벌한 재해 재난의 시기에 그래도 가슴에 닿을 쉬운 노래 한 곡으로 살 만한 세상을 맛 보게 하자.
        작은 소망 하나 씩 가슴에 담고 나와서 그 작은 가슴들을 뭉쳐 보자. 곧 커다란 희망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엘 에이 팝스 코랄이 내게로 다가왔다. 비틀즈가  불러 힛트한  예스터데이를 부르며 학창시절도 추억해 보자. 슬픈 가슴 있거들랑 조용한 노래 한 곡 들려 주며 위로해 보자. 함께 즐기자. 함께 행복해지자. 함께 웃자. 그러자. 그렇게 하자.

2월 1일 한국일보 문인광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