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한 수저 두벌

2004.09.11 05:45

강학희 조회 수:76 추천:4






    정갈한 수저 두벌 / 강학희

    매일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식사, 하나 있던 아들마저도 나가고, 그나마
    식구가 줄어 두사람만 남으니 점점 식탁의 음식이 간소화되고 소홀해지기
    시작한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하는 고민도 만만치 않게 부담이 되고,
    먹어도 다 그게 그거고 딱히 먹고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으니 밥상차림이
    쉽지가 않고, 걱정거리가 된다. 특히 둘이서만 식사를 하니 식단을 짜지
    않게 되고, 더구나 나가서 먹는 경우가 더 많아지니 이젠 만드는 것조차
    귀찮아진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식사를 소홀히하게 되면서부터 무언가 식사뿐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 자체가 별로 신나는 일이 적어졌다.
    그리고 서로 대하는 것도 이상하게 식사 습관처럼 각자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흘러가는 느낌이다.

    그럴수록 옛날 친정에서 어머님이 손수 정성껏 차려주신 모락모락 김이나
    는 상차림이 그리워진다. 식후까지도 입에 감칠 맛이 돌던 오이초선,
    미나리 강회, 돛나물 물김치, 조랑떡국, 두부돈전, 쑥버무리, 호박범벅...
    그러고보니 30년 가까이 외국에서 살아 이젠 이름조차도 까마득하고 기억
    속에서만 아련한 음식들....
    바쁘다는 핑게, 다이어트라는 핑게로 점점 더 간편한 야채 샐러드나 생식
    들을 선호하면서 식탁이 더욱 온기가없고 썰렁해졌다.

    무언가 식탁에 정성스러움을 놓고 싶었던차에 8월 아버님 기일을 맞아,
    한국에서 가지고 와서 씻기가 귀찮아 쓰지 않던 은수저를 꺼내어 정갈히
    씻어 밥상에 수저 두벌을 더 놓기 시작하였다. 부모님 몫으로.
    우리와 함께 식사를하시자하며 놓아보니, 밥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엄마! 오늘 이 열무김치 어때?" "글쎄, 그만하면 썩 괜찮다...
    국수말이도 괜찮을 것 같구...." 늘 나처럼 국수를 좋아하시던 엄마가 금방
    뒷전에서 답하신다. 엄마랑 이런 저런 대화가 오가는 사이 식사 준비에
    다시 관심이 쏠리기시작한다. 엄마가 이 걸 어떻게 만드셨더라...
    구절판을 다시 꺼내어 먼저 밀전병을 얇게 부쳐놓고 각가지 소를 구색을
    맞추어 절판을 채우면서 차려주면 먹기만 하던 시절을 떠올려본다.

    나는 아이에게 손가는 음식을 시간이 없다는 핑게로 귀찮아 하기만 했는데..
    그 아이인들 몇번 먹지도 않았으니, 이맛의 다름을 알기나 할까?
    설명조차도 할 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옛날 맛을 그리워하는 건 꼭 그 음식이라기보다는 그
    음식에 얼킨 그 시절을 버무린 맛 때문일 것이다.
    지금에야 아버님이 "이 맛이 아닌데...어머님이 만드신 고들빼기김치는..."
    하시며 고개를 흔드시던 것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건 엄마의 손맛이 틀려서가 아니라 할머님이 만드셨던 그 손맛엔 그 당시
    의 설움과 한이 어울어진 쌉싸름한 맛이 어울어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아무리 부쳐도 엄마의 김치전 맛이 아니듯....

    비가 오는 날이면 시큼하게 익은 김치를 넣고 뻘겋게 부쳐주시던 그
    엄마의 김치전이 이 미국에서 아무리 신김치를 넣고 부친들 그 맛일리가
    있겠는가?...나는 그 맛이 그리워 비가 오는 날이면 꼭 뻘건 김치전을
    부쳐서 아이와 먹었었다. 그래서 내 아이는 비가 오는 날은 코리언 팬케잌
    먹는 날로 기억을 하고, 비가 오면 코리언 팬케잌, 부침개를 그리워한다.
    비가 오면 "맘! 코리언 팬케잌부쳐먹자!"던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하다.

    이번 주말엔 비가 오지 않더라도, 오라고 해서 좋아하는 코리언 팬케잌,
    매운 닭도리탕이나 해줄까? 생각하며 시장을 보러 나간다 .
    그래도 이즈음은 한국 마켓이 이것저것 한국 것들을 제법 구색을 맞추어
    놓아 한국 식품들을 구하기도 수월해졌지만, 예전엔 물냉면에 띄운 배
    몇조각이 먹고 싶어, 한국에 나갔다가 몰래 속옷 속에 감춰가지고 온
    배를 자랑하며 이웃들을 불러 냉면 파티를 했건만...
    더운 날씨에 입맛도 없어, 사가지고 온 메밀국수를 삶아 무우를 갈아 넣은
    간장과 내어놓으니 개운하고 쌈빡한 입맛처럼 마음도 사뿐하다.
    내친 김에 미루던 이불마저 빛살에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말려넣으니
    내 속 까지 뽀송 뽀송하다.

    내일은 무얼 할까? 오이냉국을 해 드릴까? 아니면 오이소배기를 해서
    알찌개와 곁들여 드릴까? 이것 저것 추스려 여름 한철 늘어지던 마음도
    몸도 보신하자 생각하니 벌써 생기가 돋는 것만 같다. 음식을 먹는 것이 꼭
    영양 보충을 하기보다는 삶의 기운을 돋우는 일인가보다.

    신문마다 웰비잉이다하여 음식뿐이아니라 생활의 모든 면에 건강에 유익
    하다는 것에 모든 관심이 쏠리고 있는 요즈음 크게 와서 닿지 않던 이슈들이
    부모님과 식사를 나누려고 생각하다보니 모든 생활을 같이 나누게 되고
    이 것 저것 챙기게 된다. 삶에 훨씬 정감이 돈다.

    내일 장보러 같이 갈 엄마를 생각하며, 커피 한잔을 들고 서재로 들어가는
    등 뒤로 "얘, 저녁인데 커피 먹지 말고 차라리 유자차나 한잔 하지 그러니?"
    다정히 들려오는 소리....다시 발걸음을 돌려 주전자에 물을 올린다.
    유난히 모과차를 좋아하셨던 엄만데, 아마도 여기서 모과차를 구할 수 없는
    걸 아셨는지...냉장고 안에 든 유자차를 꺼내며, "이그, 내가 유자차밖에
    없는지 어떻게 아셨수? " 하고 궁실대다 "아, 엄만 다 볼 수 있지, 근데
    거기 모과차는 괜찮우?" 씩 웃는데...삐-익 물이 다 끓었다고 주전자가
    꼭지를 흔든다.
    따끈한 유자차의 김이 오르는 창에 바람 한점이 걸려 덜컹거리는 저녁,
    그리움과 나누는 차 한잔이 삶을 밀고 간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9 어머님 유산 / 석정희 석정희 2005.08.30 32
158 기다림 2 / 석정희 석정희 2005.08.30 19
157 미주 한인들의 간도 되찾기 운동 정찬열 2005.08.29 25
156 금강산 kyuhoyun 2005.08.28 38
155 이렇게 하루를 살고 싶다 권태성 2005.08.28 30
154 김정란, 이승은, 김종삼, 임창현, 오승철 김동찬 2005.08.28 47
153 흰 머리카락 성백군 2005.08.26 26
152 나무.3 정용진 2005.08.26 28
151 세도나 백선영 2004.09.12 7030
150 그림 새 박영호 2004.09.12 105
149 다시 피는 꽃 박영호 2004.09.12 99
148 다도해 물고기 박영호 2004.09.12 91
147 달 이야기 박영호 2004.09.12 97
146 참조기 박영호 2004.09.12 94
145 숲속의 정사 박영호 2004.09.12 231
144 지금은 등불을 밝힐 때 박경숙 2004.09.11 49
» 정갈한 수저 두벌 강학희 2004.09.11 76
142 철로(鐵路)... 천일칠 2005.02.03 19
141 마지막 통화 백선영 2004.09.09 117
140 내가 그린 그림 김동찬 2004.09.11 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