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2013.01.01 09:01

이영숙 조회 수:0



나이 탓이다.  돋보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책을 읽을 때도, 신문을 집어 들어도 돋보기부터 찾는다.  컴퓨터라도 열라치면 먼저 돋보기를 끼고 난 다음 전원을 켠다.  아주 가끔이지만 피아노 앞에 앉을 때도 있다.  그러나 돋보기가 없으면 결코 피아노를 칠 수 없다.  원래 시력이 좋지 않은 나는 안경을 낀다.  책이나 신문을 읽기 위해 안경을 벋고 돋보기를 끼고, 읽는 일이 끝나면 다시 안경을 바꾸어 껴야 하는 일이 몹시 번거롭다.  집에서는 그래도 덜하다.  나가있는 시간은 아주 불편하다.  공부를 하거나 모임이 있을 때에 글을 읽는 시간과 앞의 진행자를 보기위해 번갈아가며 돋보기와 안경을 끼고 벗고 하기를 계속 반복해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 안경은 밑에 돋보기를 넣은 다 초점이다.  처음 안경을 맞추었을 때는 괜찮았는데 나이가 더 많아진 이제는 그게 돋보기만큼 잘 보이지 않는다.  결국 안경과 돋보기를 번갈아 껴야 편안하다.  
  오늘 아침에 신문을 펼침과 동시에 텔레비전을 켜놓았다.  신문을 읽다 귀에 띄는 뉴스가 들려오면 얼른 안경을 바꿔 끼고 텔레비전을 보고, 끝나면 다시 돋보기를 끼고 신문을 읽었다.  안경과 돋보기를 끼고 벗고 해야 함이 불편하여 끼지 않는 안경을 머리위에 얹어 놓았다 바꾸기를 연속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마지막으로 무얼 하다 끝났는지 모르겠다.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는 순간 혼자서 크게 웃었다.  눈에는 안경이, 머리에는 돋보기가 걸려있는 모습이 몹시도 우스꽝스러웠다.  그 또한 나이 탓인지 정신이 깜빡깜빡한다.  그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게다.  만약 거울을 보지 않고 밖에 나갈 일이 있었다면 그 모습으로 나가서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겠지.  거울이 나를 도왔다.  잊고 있던 내 모습을 보여준 거울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 동안은 화장하기 위해서나 머리를 빗기 위해서 거울을 보는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고마운 거울.  하긴 고마운 것이 어디 그 거울뿐이겠는가.  또 다른 거울이 나에게 여럿 있다.  오늘 아침 내가 본 거울은 나의 겉모습을 잘 보여준다.  때로 내 딸아이를 보면 나의 속 모습이 보인다.  유난히 음성이 커서 가끔 여기저기서 여자 소리가 너무 크다고 핀잔을 들어왔는데 안타깝게도 내 딸이 나를 닮아 음성이 크다.  아이의 음성이 높아지면 깜빡 잊고 있던 나를 발견하고 놀란다.  맞아, 내가 저렇지.  내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어떤 때는 몹시도 유약하다가, 엉뚱한 곳에서 다혈질적으로 변하는 성격도 바로 나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나를 닮은 탓일까?  딸은 내 속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가까운 사람들을 봐도 내 모습이 보인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지내다 시간이 흘러 좀 더 가까운 이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나와 공통된 점이 많다.  내가 처음부터 그 사람과 나와의 공통점을 알고 가까워진 건 결코 아니다.  어쩌다보니 남들보다 더 친해진 것뿐이다.  그런데 결국은 나와 닮은 사람이 내 곁에 있음을 본다.  말도, 성격도, 행동도, 좋아하는 것도 나의 모습이다.  내가 왜 그와 가까이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는데도 말이다.  
  우리 집을 봐도 내가 보인다.  여느 여자들은 집을 가꾸고 음식을 하느라 부엌에는 여러 가지 조리기구들과 냉장고에는 음식이 가득하다.  나는 그렇지 않다.  여성스럽지 못한 모습이지만 부엌에서는 내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저 기회가 되면 이것저것 배우느라 만들고, 그리고 하는 소모품들이 집안 여기저기 지저분할 뿐이다.  
  내 외모도 당연히 나를 나타낸다.  옷이나 핸드백이나 구두 등 외모를 가꾸어주는 장식품들은 우리 집에 많지 않다.  옷을 입거나 헤어스타일을 보고 답답하다는 말을 곧잘 듣는다.  친구들은 나이가 들어도 세련되게 옷을 입고, 헤어스타일도 현대인다운 모습을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딸의 말에 의하면 난 아직도 60년대 사람이란다.  우아하게 다듬지 못하는 그 모습.  조금은 촌스럽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모습이 바로 거울에 비추어진 거짓 없는 내 모습인 것을 어찌하랴.  
  누군가가 말했다.  사람은 결코 자기를 볼 수 없다고.  거울을 통해서만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의 내가 어떤 모습인지 거울이 아니면 알 수 없다.  고맙게도 내 주위 여기저기에 거울이 가득하다.  깜빡 잊고 있던 나를 보여주는 거울들이.  때로 장점을 보여주어 자신감을 갖게도 하고, 가끔은 부끄러운 모습 때문에 나 자신을 돌아보고 고치고 다듬기도 한다.  주위에 널려있는 거울을 보며 느끼고 만들기를 반복해 왔다.  그렇게 긴 시간 보냈지만 아직도 거울 앞에 서면 나는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