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씨의 시집 '사랑이라 부르는 고운 이름 하나' 를 읽으며

                       강현진 (전 한국학교교장)


  홍인숙씨의 '사랑이라 부르는 고운 이름 하나' 시집을 읽다보니 40년 전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시인 모윤숙씨가 쓴 '렌의 애가(哀歌)'를 읽은 기억이 생각난다.
  나는 그 시집을 수업 시간에 보다 선생님에게 들켜 벌을 받은 적이 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감정의 변화가 많던 청소년 때에 '렌의 애가'가 너무나 사랑의 표현이 멋지고 감동적이었던지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어서 세월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 시의 일부를 외울 수 있다.
  
  "시몬, 그대는 들리는가 낙엽 밟는 소리를/ 나는 당신과 함께 낙엽이 떨어진 산길을 걷고 싶소/ 시몬,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는 오솔길에서 낙조를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이던 그 곳을 다시 걷고 싶소/ 시몬, 그대가 떠난 어딘가는 / 나는 그대의 발자취를 따라 먼 길을 가고 싶소.."
  
  이런 로맨틱한 시는 내가 철없이 짝사랑하던 그 때의 나의 사랑을 호소하기 위하여 '렌의 애가'를 흉내내어 어느 소녀에게 보냈던 그 한 구절이 지금도 나의 가슴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우습기도 하고 부끄러운 일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젊은 날의 아름다운 추억과 원대한 이상이 지금까지도 조금이나마 남아 있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지 않는가 라고 자위도 해 본다.
  
  나는 젊은 날에는 위대한 문학가가 되고 싶었고 멋진 시를 쓰고 싶어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문학과는 거리가 먼 생활 속에서 사무치는 것은 시를 잊고 산 지난날의  아쉬움이 나를 괴롭힌다.
이런 고독속에서 홍인숙씨의 시집을 읽다보니 나의 답답한 마음을 쉽게 달래 볼 수 있었고 또 그의 시를 통하여 나의 마음속에서 젊은 날의 고민과 이상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홍인숙씨의 시를 몇 편만 소개한다면 첫째로 [캘리포니아의 겨울]은 누구에게나 공감을 줄 수 있는 시였다.
  
  "사는 것이 답답하여 울고플 땐/ 가슴 속 별밭에 누워/ 별을 헨다/..중략../갈곳 없이/ 어머니가 그립고/ 자는 아이라도 깨우고픈/ 하얀 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그가 답답해하는 마음이나 내가 답답해하는 괴로움이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시간보다 고난의 시간이 더 많고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더 큰데 작가는 그 인고의 세월들을 얼마나 답답해했으면 자는 아이라도 깨워 그 고통을 하소연하고 싶었을까 하고 말이다.
  
  두 번째로는 "사랑은/ 길어내도 길어내도 마르지 않는 / 정갈한 샘물 같은 것.."이라고 노래한 사랑의 시이다.

  사랑이란 샘물처럼 푸고 또 퍼도 마르지 않는 영원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했다. 그 샘물 같은 사랑을 남편과 자식, 그리고 이웃에게 골고루 주고 싶은 사랑, 그런 휴머니즘 같은 사랑을 말이다. 그 사랑은 메말라 가는 우리 가슴 속에 정말 인정이 넘치는 서정시였다.
  
  마지막으로 감명 깊은 시는 [공원 벤치에서]였다. "힘든 세상 걸어가다 / 잠시 쉬고플 때/ 누가 내게 어깨를 내어 줄까/ 긴 여정에 지쳐/ 풀잎처럼 가벼울 때 / 누가 내게 가슴을 내어 줄까.."

  사람이 살아가는 생활 속에는 수많은 고통과 슬픈 사연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고통을 받아 줄 수 있는 마음, 시인은 안락한 의자처럼 모든 이의 안식처가 되고 싶어한다. 또 한편으로는 그 벤치가 남편, 이웃, 우리 모두가 될 수도 있다고 할 때 그런 벤치가 수없이 많았으면 좋겠다.
  
  홍인숙씨의 시들은 모두가 솔직하고 진실한 사랑을 노래했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써 놓았다. 그리고 시 속에는 냉철한 이성(理性)과 지성(知性)을 바탕으로한 날카로운 시를 썼다.
  정말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는 시였다.


        2002년 3월 27일

        미주 한국일보
       강현진 칼럼 [글 두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