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법안' 통과를 기대하면서

2005.11.23 12:39

정찬열 조회 수:284 추천:3

내 어릴 적, 어머니는 김밥을 맛있게 잘 만드셨다. 여럿이 모여 가져온 음식을 함께 내놓고 먹는 자에서 제일 먼저 동이 나는 것은 언제나 우리집 김밥이었다. 그런데 소풍날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김밥은 특별했다. 평소엔 김밥을 잘게 썰던 어머니도 소풍날이면 김밥을 말아 중간을 한 번만 잘라 가방에 챙겨 넣어주셨다. 점심때 그 기다란 김밥을 꺼내어 손에 들고 한 입씩 베어먹노라면 친구들이 "그 '말X 김밥' 맛 좀 보자 잉"하면서 하나씩 달라고 하여 나누어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요즘 이곳 한인사회에 김밥이 화제가 되고 있다. 민속떡협회가 중심이 되어 김밥을 상온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김밥법안'을 통과시키는 일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김밥을 냉장고에 넣어 보관하고 판매해야 한다는 L.A보건국의 규정은 한국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출발한 것이니 밖에 내놓고 팔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안의 내용이다.
현재 보건국은 밥을 잠재적인 유해식품으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에 김밥을 팔 때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냉장고에 넣어두고 팔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냉장고에 넣어서 딱딱하게 굳어져 얼어터진 김밥을 사 먹을 사람이 있을까. 김밥이 홀대받는 것이 마치 교포들이 객지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언짢다. 그러나 법을 고치기 전에는 법을 따라야 하는 게 당연한 도리일 수밖에.

알다시피 미국은 이민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 따라서 세계 각처에서 들어온 각양각색의 먹거리가 있다. 제각기 자기들의 고유한 음식문화를 보존하고 싶어하지만 법은 주민 보건을 위해 엄격한 규정을 두고 있다. 물론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입법 과정을 거쳐 법을 바꿀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지난 2001년에 통과된 '떡의 상온 보관 및 판매법안'은 그 좋은 예다. 그 때도 민속떡협회가 중심이 되어 법안을 상정하였고 한인회, 상공회의소, 한국문화원 등 한인단체들이 지원하여 우여곡절 끝에 통과되었다.
법안의 통과는 당시 한인사회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떡을 상온에서 판매하게 되었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 우리도 힘을 합하면 무언가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되었고, 합리적인 주장은 주류사회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각종 한인단체가 목소리를 높이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 B급 주류허가만 있어도 소주를 팔 수 있도록 당국의 허가를 받아낸 식당협회의 활동은 좋은 예다.

그러나 이번 김밥법안의 통과는 떡과 달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우선 재료부터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결과가 필요하다고 한다. 김밥을 상온에 보관했을 경우 살모넬라균이 몇 시간 내에 생겨 어떻게 번식하는가 등의 시험을 통해 깁밥도 '상온보관과 판매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그리고 계란이나 육류는 조리된 상태에 있어도 상온에 보관할 수 없어서 김밥의 재료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도 한다.
김밥법안의 통과를 위해 한인회를 비롯한 몇몇 한인단체, 그리고 케럴 루 주 하원의원 한인보좌관인 피터 홍씨, 허브 웨슨 주 하원의원 보좌관 마이클 배씨 등, 많은 사람이 노력했으나 이번 회기에 상정되지 못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어졌다. 법안을 상정하기 위해서는 10만 달러상당의 기금이 필요한데다 커뮤니티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므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김밥법안'이 통과되어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그 맛있는 김밥을 어디서나 사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에는 인정받지 못하던 일본의 스시가 지금은 이곳 상류층 사람들이 좋아하는 고급 음식이 되고 있듯이, 우리 김밥도 독특한 맛과 맵시를 개발하여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세계적인 음식이 된다면 더욱 좋겠다.
(2003년 4월 16일자 광주매일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