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살아지다 2
2014.10.22 06:20
바람과 함께 살아지다 2
이월란 (2014-10)
나의 아버지는 바람이었다
누군가는 아비가 종이었다고
또 누군가는 공산주의자였다고 했지만
나의 아비는 바람이었다
그분이 지나갈 때마다 꽃이 흔들흔들
뿌리 없는 것들은 휘익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기도 하였다
그분이 지나갈 때마다 이마가 서늘해졌고
눈 밑에선 고드름이 자랐다
세상이 흔들리면 그분이 지나간 거였다
물정 모르는 햇살이 비칠 때면
가벼워진 어린 것들은 담벼락을 붙들고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엄마의 혼잣말이 늘어 가면
바람이 지나간 거였다
지붕아래 냉기가 돌면
바람이 잠시 머물다 떠난 거였다
바람 한 점 없던 날
엄마는 점이 되어 바람을 기다렸다
허황히 떠돌던 그 바람이
풍선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것처럼
높이높이 사라졌을 때
점이 되어 기다리던 엄마가 바람이 되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라고 읽고
바람과 함께 살아지다, 라고 쓴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0459 | 어느날 오후 | 차신재 | 2014.10.16 | 279 |
10458 | 황제 펭귄 | 정해정 | 2006.02.15 | 278 |
10457 | 설날, '부모님께 송금'하는 젊은이를 생각하며 | 정찬열 | 2006.02.05 | 278 |
10456 | 세월 | 홍인숙(그레이스) | 2004.08.04 | 278 |
10455 | 가든그로브에서 캐나다 록키까지(2) | 정찬열 | 2006.08.30 | 276 |
10454 | 당신의 첫사랑 | 박경숙 | 2005.06.08 | 276 |
10453 | 꽃씨 강강 수월래 | 김영교 | 2010.12.06 | 275 |
10452 | 멍청한 미국 샤핑몰 | 오연희 | 2004.08.09 | 273 |
10451 | 홍인숙 시의 시인적 갈증(渴症)과 파장(波長)에 대하여 / 이양우(鯉洋雨) | 홍인숙(그레이스) | 2004.07.30 | 268 |
10450 | 인생의 4계절 | 박경숙 | 2005.06.04 | 267 |
10449 | 고래 | 풀꽃 | 2004.07.25 | 267 |
10448 | 짜장면을 먹으며 | 오연희 | 2005.04.08 | 266 |
10447 | 가을이 지나가는 길 모퉁이에 서서 / 석정희 | 석정희 | 2006.01.10 | 265 |
10446 | 11월의 우요일 | 박경숙 | 2004.11.11 | 264 |
10445 | 마음은 푸른 창공을 날고 | 홍인숙(Grace) | 2004.08.17 | 264 |
10444 | 기도의 그림자 속으로 | 조만연.조옥동 | 2004.07.28 | 264 |
10443 | 그 거리의 '6월' | 박경숙 | 2005.06.19 | 263 |
10442 | 베고니아 꽃 | 곽상희 | 2007.09.08 | 261 |
10441 | -도종환의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를 읽고- | 오연희 | 2006.08.09 | 261 |
10440 | 한정식과 디어헌터 | 서 량 | 2005.09.10 | 2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