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거리의 '6월'

2005.06.19 05:28

박경숙 조회 수:263 추천:4

수지는 오늘 아침도 전면 유리창을 닦고 있다. 이 웨딩샵 ‘쥰(June)’에서, 거리를 향한 저 커다란 유리는 정말 큰 역할을 한다. 길을 지나던 처녀들이 그 유리를 통해 들여다보이는 수많은 웨딩드레스에 눈을 빛내며 발걸음을 멈추곤 하니까.

몸이 가녀린 수지가 유리창을 닦고 있는 모습이 조금 안쓰럽다. 수지가 내 가게에서 일을 시작한 것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별로 예쁘지도, 그렇다고 세련되지도 않은 그녀가 웨당샵의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 왔을 때, 나는 뭔가 애원하는 듯한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꼭 일자리가 필요해요. 웨당샵은 처음이지만 다른 옷가게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어요.”

그녀는 웨당샵의 주인이 여자가 아닌 잘생긴 남자라는 사실에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어눌하게 말했다. 나이는 고작해야 스물여섯쯤으로 보였으나 알고 보니 서른한 살이었다. 거기에다 그녀는 아이까지 하나 달린 미혼모였다.  

“그럼 웨딩드레스를 입어 본 적 있어요?” “아니요…….”

수지는 내 물음에 힘없이 대답했다. 나는 그 애달픈 눈을 들여다보며 그녀를 당장 고용하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큰길가 웨딩드레스 가게 앞을 지날 때면 조그만 내 손을 꼭 잡은 채 늘 걸음을 멈췄다.

"참 이쁘기도 하지. 나는 언제 저런 드레스 한 번 입어보나.”

어머니는 쓸쓸히 미소를 짓다 그 자리를 떠나곤 했다. 젊고 아름답던 어머니는 그 드레스 가게 앞에 발걸음을 멈추며 차츰 늙어갔다.

언제부턴가 나는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를 만들어 어머니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고교를 졸업하고 재봉사로 일을 시작했던 나는 서른 살이 넘어 마침내 웨딩드레스 디자이너가 됐다. 그러나 어머니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내가 첫 번째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동안 어머니는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유품으로 남긴 어머니의 비밀상자 속엔 평생 이렇게 저렇게 모은 돈과 인물이 훤칠한 남자 사진이 한 장 나왔다. 나와 거의 비슷하게 생긴 그 사진 속 남자는 아주 오래 전 어머니를 버렸다는 내 아버지였다.

나는 아버지의 사진을 찢어버리고, 어머니가 남긴 돈으로 이 웨딩샵을 열었다. 어머니는 6월에 태어나 6월에 떠났고, 나는 어머니의 열아홉 번째 생일 날 그러니까 6월의 밤에 잉태됐다. 내가 태어나고 어머니가 스무 번째 생일을 맞던 그 이듬해 6월까지는 아버지가 곁에 있었다고 했다.

나는 개업을 하며 단번에 이 가게 이름을 ‘쥰(June),이라 했다. 내가 잉태된 6월, 아버지가 날 버린 6월, 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6월이었다. 그보다 더 소중한 건 어머니가 태어났던 6월의 의미였다.

지난 8년간 이 ‘쥰’에 많은 여자들을 고용했다. 내가 내세운 조건은 절대로 어머니처럼 예쁜 여자여서는 안 된다는 것, 또 어머니처럼 웨딩드레스를 입어보지 않은 여자라야 했다.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보다 예쁜 여자를 질투하게 마련이다.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기를 쓰는 예비신부들이, 드레스를 입혀주는 아름다운 종업원과 함께 거울 앞에 선다면 그만 다른 가게로 가버릴지 모를 일이었다.

또 이미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해 버린 여자를 고용한다면, 꿈이 시들해진 종업원은 건조하고 상투적인 눈길로 예비신부들을 대할 게 뻔했다. 나는 웨딩드레스의 꿈을 가진 여자를 원했다. 그 선망과 꿈이 타고 있는 눈길이어야만 드레스를 사러 온 예비신부들을 꿈으로 안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예상은 적중했고 지난 8년간 가게는 잘 운영돼 왔다. 처녀들은 미남 사장인 나를 보며 알지 못한 교태를 부리다가, 그저 그렇게 생긴 여종업원의 안내에 실컷 거드름을 피우며 드레스를 골랐다. 그리곤 거울 앞에 선 예비신부의 하얀 드레스 자락을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짓는 여종업원의 눈빛을 의기양양하게 바라보다 그 비싼 드레스에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이 가게를 거쳐 간 여러 종업원들 중엔 더러 나와 관계를 맺었던 여자들도 있었다. 여자들은 나와의 관계가 시작되면 웨딩드레스를 바라볼 때마다 더 눈을 빛냈다. 그 타는 듯한 눈빛은 적잖게 가게 운영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그녀들이 결혼을 요구하면,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했던 것처럼 냉정하게 그녀들을 버렸다. 여자들은 때론 울며, 욕을 하며 떠나갔지만 곧 다른 여자를 고용하면 가게는 잘 굴러갔다.


수지는 유리창 윗부분에 팔이 닿지 않아 걸레를 들고 깡총 뛰어오른다. 힘겹게 높은 유리면을 스치는 걸레조각을 바라보며 나는 느긋하게 모닝커피를 즐긴다. 지난 주말 나와 단 한번 잠자리를 같이 했지만 여전히 수지는 종업원일 뿐이다. 그래도 왠지 마음이 편치 않다. 뭔가 애처로워 보이는 저 여자를 고용한 게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끝내 수지와는 잠을 자지 않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부터 수지가 끌어올릴 매상을 가늠해 본다. 그렇지 않아도 웨딩드레스를 바라볼 때면 애원의 빛을 띠는 그녀의 눈이 얼마나 더 황홀해질지 기대가 된다. 예비신부들은 겸손하고 나긋나긋한 수지의 태도에 만족해하다, 그녀의 꿈을 꾸는 듯한 눈을 바라보며 드레스를 사갈 것이다.

밖에서 유리창을 닦던 수지가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예쁘지도 밉지도 않은 그녀는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추스르며 나를 바라본다. 조금 슬퍼 보이면서도 교태가 물씬 풍기는 눈길이다. 문득 그녀와 함께 보낸 지난 주말의 밤이 떠올라 몸이 확 달아오른다. 나는 재빨리 그녀를 외면해버린다.

여자들은 모두가 똑 같다. 적어도 나에게 여자는 모두가 같은 의미일 뿐이다. 수지라고 해서 특별할 건 없다. 나는 앞으로도 이 여자와 관계를 지속할 것이지만, 만약 결혼을 요구한다면 다른 여자들처럼 내 가게에서 내쫓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수지의 눈길에 가슴이 뻐근해오는 건지. 어쩌면 나도 이제는 지쳤는지도 모른다. 지난 세월 ‘쥰’을 이런 식으로 이끌어 온 내 삶에 대해…….

아침 햇살이 가게 안으로 깊숙이 비쳐 들어올 즈음 첫 번째 손님이 들어온다. 체격이 늘씬한 처녀는 몹시 세련된 타입이다. 그녀는 가게 안에 진열된 드레스들을 둘러보다 다른 처녀들처럼 나에게 야릇한 눈길을 건넨다. 마침내 맘에 드는 디자인을 고른 그녀가 드레스를 품에 안은 수지를 따라 드레싱 룸으로 들어간다. 수지가 처녀에게 최신 디자인의 웨딩드레스를 입히는 동안 나는 망연히 거리를 내다본다.

또다시 6월이 피고 있다. 가로수는 푸르러지고 여자들의 옷차림은 노출이 시작됐다. 사내들은 햇빛에 드러난 여자들의 어깨나 깊이 파인 가슴을 흘긋거리며 지나가고, 거리는 묘한 기운으로 흔들린다. 이 표현할 수 없는 6월의 유혹 속에 내가 잉태됐던 걸까. 나는 또 그 생각을 하고 있다.

드레싱 룸의 문이 열린다. 브이 네크 디자인의 심플한 실크 드레스는 처녀에게 썩 어울린다. 하지만 처녀의 표정이 웬일인지 좀 뾰로퉁해 보인다. 처녀 뒤에서 수지가 걸어 나오는 기척에 무심코 바라본 나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만다.

수지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다. 내가 어머니에게 선물하기 위해 처음으로 만들었던 그 드레스이다. 나는 그것을 어머니의 수의대신 입히려했으나 썩지 않는 소재를 수의로 택하는 게 아니라는 주변의 만류에 그만두었던 것이다.

수지는 그 드레스를 어디서 찾아낸 걸까. 드레스는 그녀에게 품이 좀 커 보지만 그런대로 잘 어울린다. 어머니를 만족시키기 위해 유난히 레이스를 많이 넣어 만들었던 드레스……. 가녀린 수지의 목 주변을 품위 있게 에워싼 하얀 레이스는 유럽의 왕비복장을 연상케 한다. 평소에 단 한 번도 예쁜 여자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던 수지의 자태가 너무 아름답다. 그녀는 필경 지난 3개월 동안 이 가게 안에서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드레스를 고르고 있었나 보다. 어느 날엔가는 기필코 입어보리라며…….

내가 넋을 잃고 수지를 바라보는 동안, 처녀는 골이 난 듯 몸을 휙 돌려 드레싱 룸으로 도로 들어간다. 그녀는 금세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나와, 재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게를 나가버린다. 수지가 의기양양하게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생긋 웃음을 머금는다.

그 순간 나는 뭔가가 어긋나 버렸다는 걸 안다. 내가 8년간이나 버티어온 이 ‘6월’의 저주가 와르르 무너지는……. 문득 어디선가 풍겨오는 어머니의 향기가 내 코밑을 간질이고 있다.(*)

              -미주한국일보 2005년 6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