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펭귄

2006.02.15 20:00

정해정 조회 수:278 추천:3

  지구의 맨 남쪽을 남극이라고 하는데 아주 추운 지방입니다. 작년에 내린 눈도 녹지 않고 얼음이 얼어서 사방 어디를 둘러 봐도 하얀 눈과 얼음 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추운 곳이겠어요.
  이렇게 추운 남극에 펭귄들이 살고 있습니다. 바다 속에서 짧은 날개로 어느 물고기 보다 더 헤엄을 잘 치지만 물고기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짧은 날개로 훨훨 날수도 없으니 새 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습니다.
  펭귄은 종류가 많습니다. 생긴 모습이나 생활 습관은 같아도, 키가 4피드 정도나 되고 몸무게도 65파운드나 되는 배가 유난히 하얀, 잘 생긴 펭귄을 '황제 펭귄' 이라고 합니다. 황제펭귄은 남자펭귄 수 가 여자 펭귄 수보다 적기 때문에 짝 짖기를 할 때 남자펭귄의 콧대가 높답니다.
  이곳에 아주 잘생긴 펭귄이 있었지요. 이 펭귄은 어느 펭귄보다 말수가 적고, 의젓하며 앞가슴이 유난히 희어서 어디에 있으나 눈에 잘 띄었고, 아가씨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 펭귄은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날씬한 아가씨 펭귄과 사귀어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 펭귄에게 놀라운 소식이 왔습니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폐가 너무 나쁘다는 것이었어요. 그러자 아가씨 펭귄은 병든 펭귄을 멀리하고 다른 행복을 찾아서 가 버렸어요.
  오래 전부터 청년펭귄을 짝사랑하던 마음씨 착한 아가씨 펭귄이 있었습니다. 이 아가씨는 청년의 아내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그 청년의 병까지도 사랑했으니까요. 이들은 곧 결혼을 했고, 사이좋은 부부가 됐지요.
  펭귄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수도복을 깨끗이 입은 수녀들의 집단을 생각나게도 하고, 또는 턱시도를 근사하게 차려입은 고급신사들의 파티  장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남극의 겨울은 5월부터 시작이 됩니다.
  겨울이 되면 섭씨로 영하60도를 넘는 추위가 계속되고 시속 100마일이 넘는 눈보라가 몰아 칩니다. 이러한 추위 속에서 펭귄들은 겨울을 난답니다.
  남극의 펭귄들은 바다 가까운데서 떼를 지어 살고 있지요. 그러나 추운 겨울이 오면 바다에서 육지를 향해 이동을 합니다. 왜냐하면 겨울에 알을 낳고 그 알에서 아기가 나올 때까지 아빠 펭귄이 품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이좋은 황제펭귄 부부도 다른 펭귄들과 함께 육지로 들어갑니다. 아빠 펭귄들이 알을 품어야 할 육지는 바다에서 10리나 떨어진 곳이지요.
  아빠 펭귄은 뒤뚱뒤뚱 걸어가면서 "콜록! 콜록!" 밭은기침을 수도 없이 합니다. 엄마 펭귄은 걱정스럽게 말합니다.
  "여보. 의사 선생님 말이 폐가 너무 나빠졌다고 하던데 어떻게 하지요? 두 달씩이나 먹지도 못하고 추위 속에서 알을 품고 서 있어야 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 미치겠어요."
  "콜록! 콜록! 걱정 말아요. 별일이야 있을라구... 우리들의 아기를 만드는 일인데... 콜록! 콜록!... 걱정 말아요. 콜록! 콜록!..."
  아빠 펭귄은 말끝을 맺기도 전에 기침을 계속합니다.
  "여보 우리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요?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이름으로 하고 싶어요."
  "이름? 내가 생각했던 이름이 있어. '뒤뚱이'. 뒤뚱이가 어떻소?"
  "뒤뚱이... 그것참 예쁜 이름이네요."
  엄마는 아빠가 다른 어떤 이름을 댔어도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남편을 무지무지 사랑하니까요.
  사이좋은 황제 펭귄 부부는 온통 하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남극의 들판을 뒤뚱뒤뚱, 다정하게 갑니다. 언덕진 곳에서는 가슴으로 미끄럼을 타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복하게 갑니다.
  먼저 온 수많은 펭귄들이 마치 유명한 인기가수의 콘서트에서처럼, 와글와글 법석입니다.
  여기에서 엄마들은 아빠의 발등에 알 하나씩 낳아 놓습니다. 그리고는 알을 깨고 아기가 나올 때까지 약 두 달 동안 이별을 하지요. 엄마들은 오던 길 을 되돌아서 바다로 갑니다. 바다에 가서 음식을 먹고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서 지요. 이렇게 영양분을 섭취해서 돌아와 아빠와 교대로 아기를 기른답니다.
  뒤뚱이 엄마도 아빠의 발등에 커다란 알 하나를 낳은 뒤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합니다. 다른 엄마들은 바삐 바다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벌서 들판을 떠나서 아스라하게 보이는 엄마도 있습니다.
  뒤뚱이 엄마는 폐가 아주 나쁘다는 의사의 말이 귓전에서 맴돌아 남편 곁을 떠날 용기가 나질 않습니다.
  "내 걱정말고 어서 가... 늦기 전에 어서 가라니까... 콜록! 콜록!......"
  뒤뚱이 아빠는 말 한마디하고 콜록! 콜록! 또 한마디하고는 콜록! 콜록!"
  "내에 걱정 마알고......어서 가아."
  다른 부부들의 "안녕. 빠이빠이!" 기운이 넘치는데 뒤뚱이네 부모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여보. 사랑해요. 내가 돌아올 때까지 몸조심해야 해요. 사.랑.해.요. 당신"
  뒤뚱이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무거운 발길을 돌립니다.

  이제부터 남편 펭귄들의 어렵고 어려운 삶이 시작됩니다.
  아내들이 발등에 낳아놓은 알을 배꼽 밑으로 돋아난 폭신하고 부드러운 털로 감싸고 두 달 동안 그대로 서 있어야 합니다. 발등의 알이 살짝이라도 떨어지면 금방 얼어 깨져 버리니까 움직이지도 못하고 서서 그냥 버팁니다.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고 행여 알이 떨어질까 신경을 발등에 모으고 있어야 합니다.
  거기다가 시도 때도 없이 알을 훔쳐 가려는 침입자들이 노리고 있어 그것도 막으려니 보통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아빠들은 같이 모여 서서 태어날 아기를 상상하며 어려움을 이겨냅니다.  
  밤이면 눈보라가 시속100마일 이상의 속도로 몰아치니, 펭귄들이 날아갈 정도랍니다.    
  그러나 오로지 '아빠사랑' 하나에 가슴을 녹이며 아기가 생긴다는 희망 하나로 선체로 이겨 나갑니다.
  그야말로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추운 날 밤이었지요. 아빠 펭귄들도 얼어붙은 것 같아요.
  그 넓은 하늘에 별들만 가득 차 금방 얼음 구슬이 되어 우수수 쏟아져 내릴 것 만 같은 춥고도 추운 밤입니다.
  이런 밤에는 알을 훔쳐 가는 도둑 새 들이 영락없이 노려보고 있습니다.
  "콜록! 콜록!" 뒤뚱이 아빠는 꼼짝 못하고 서 있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듭니다. 그래도 표시를 내지 않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뒤뚱이 아빠 머리위로 커다랗게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 졌어요.  깜짝 놀라 고개를 젖히니 알도둑 마귀 새입니다.
  "누. 누. 누구 얏?"
  마귀 새는 엉큼하고 조용하게 말합니다.
  "야. 너 병들었다며? 그것도 폐병이라며? 살아있는 동안 뭐니뭐니 해도 건강이 제일이야. 나한테 알을 넘기고 너는 아내한테 가는 게 어때? 바다에는 먹을 것도 많고, 또 아내를 누구보다 사랑하잖아?"
  "뭐. 뭐라고? 이 알 은 내 생명이야.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이 알은 안 돼.   안 돼."
  "너는 헤치지 않고 알만 조용히 가져갈게.".  
  "차라리 나를 가져가라. 이놈아 이 알만은 안 돼,"
  "그런다고 내가 알을 못 가져 갈 줄 알았냐? 폐병 든 주제에......"
마귀 새가 날개로 펭귄의 목을 후리치니 뒤뚱이 아빠는 맥없이 뒤로 벌렁 넘어졌습니다.
  알에 온 신경을 쓴 탓인지, 아니면 하느님의 특별한 보살핌  인지 알은 땅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고, 배 위로 굴러와 짧은 날개로 알을 감싸 안고 대굴대굴 굴렀습니다.
  놀란 다른 펭귄들이 끼룩끼룩 소릴 지르니 마귀 새는 살그머니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밤 이었습니다. 소리도 없이 마귀 새가 왔습니다.
  "아니 너. 왜 또 왔어?"
  뒤뚱이 아빠는 저번에 있었던 충격 때문에 많이 허약해졌고, 떨려서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어요.
  마귀 새는 작전을 바꾸었는지 호들갑을 떱니다.
  "흐흐...근데 말야. 너희들 같은 바보가 세상에 또 어디 있니? 세상에서 제일 고등동물이라는 '사람들' 말인데 요즘 '아버지 위치'가 어떻게 변했는줄 아니? 자식들은 아버지와 대화할 시간이 없단다.
  아버지는 '돈' 벌어오는 기계 이상도 이하도 아냐. 미국의 한 조사에 의하면 요즘 아이들이 아버지와 하루에 대화하는 시간이 식사시간을 빼고 일 분 이내라는 조사발표가 났어. '가족' 이라는 단어가 아예 사라졌는지 몰라."
  마귀 새는 날개를 한번 펄럭이더니 말을 잇습니다.
  "심지어는 <돈>이라는 괴물 때문에 아버지를 해하는 일도 있다더라. 그런 데 너희들은 뭐가 아쉬워서 자기 몸을 축내고 죽을 고생을 하면서 이 짓거리냐. 나중에 대우도 못 받을 것이 뻔한데...
  아직도 늦지 않았어 발등에 있는 그 알을 나를 주고 너는 네 인생은 즐기려무나."
  "잔소리말고 써-억 꺼져! 이 마귀 새야. 콜록! 콜록!... 이 알은 내 생명이
야. 써-억 꺼져."
  뒤뚱이 아빠는 이제 기침 소리도, 마귀 새한테 하는 소리도 지쳐서 쇤 소
리가 나 들리지도 않습니다.
  춥고도 추운 날이 계속되고, 아빠 펭귄들은 서서만 버티었으니 체중이 반
반으로 줄었습니다. 더구나 뒤뚱이 아빠는 기침을 할 때마다 발 등 에서
알이 떨어질까 남들보다 몇 배나 더 힘이 들었어요.

  알에서 아기 펭귄들이 나올 날이 다 되었습니다.
   엄마 펭귄들은 그동안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해서 아기를 키우려고 육지
로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식도와 위 사이를 벽으로 막고 먹이를 저장해서 아빠랑 교대를 한답니다.
  그런데 큰일이 났습니다.
  뒤뚱이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 날. 뒤뚱이 아빠는 목숨을 걸고 죽을힘을
다해 버티었는데, 눈앞은 안개가 서린 듯 부옇고 몸에는 풍선에서 바람이 빠
져 나가듯이 자꾸만 주저앉아 지려고 합니다. 이날 따라 기침을 더 심하게
합니다.
  뒤뚱이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고. 뒤뚱 아빠는 하얀 눈밭에 새 빨간
피를 쏟으며 픽! 쓰러졌습니다.
  하늘나라로 간 것이지요. 옆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친구가 말합니다.
  "쯧 쯧쯧...조금만 참았더라면. 아니 병든 몸에 두 번씩이나 마귀 새의 충격
만 아니었더라도. 그렇게도 사랑하는 아내를 보고 갔을 텐데... 쯧 쯧쯧. 뒤뚱
엄마가 올 때까지 우리가 돌 볼 테니 잘 가게. 하늘나라에서 만날 때까지"
  알을 깨고 나온 뒤뚱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다른 아기들과 섞어서 걸음마
도 배우고 잘 놉니다.
  뒤뚱 엄마는 병든 남편 때문에 한시도 마음이 편하지 못했지요.
  식도에 충분한 영양분을 저장하고 마음이 급합니다. 모두들 떠나고 있는
속에 섞여 뒤뚱뒤뚱 걸어갑니다. 빨리 가자. 빨리 가......하고 말입니다.
  "우리 뒤뚱이가 누굴 닮았을까? 얼마나 예쁠까? 아빠를 닮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남편의 병은?  빨리 보고 싶다. 어서 가자. 어서..."
  뒤뚱이에게 먹이를 줄 것을 생각하니 그렇게 행복 할 수가 없습니다.
  엄마 펭귄들이 돌아왔습니다. 모든 엄마들은 끝도 없는 얼음 들판에서 수
없이 많은 군중 속에서 끼룩 끼룩 울음소리로 자기 남편을 찾지요.
  엄마들 중에서 식도 속에 저장해 온 먹이를 아기가 먹지 못할 형편이면
자기가 삼키지 않고 토해 버리고, 자기 몸에 있는 기름기를 뽑아서 아기에게
지쳐서 엄마가 죽는 수도 있답니다.

  뒤뚱이 엄마는 남편의 목소리가 아무데서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한참만
에야 알았어요. 그것을 안 순간 얼음판은 더 춥고 몸은 터 떨렸지요.
  밤새도록 남편의 목소리를 찾아 미친 듯이 울면서, 울면서 헤매었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너무 지쳐서 인지......
  아! 아!  들립니다. 사랑하고, 사랑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끼룩. 끼룩' 아무리 많은 펭귄들 속에서도 별 같이 많은 하늘에서도,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있는 귀에 익은 남편의 목소리...그 소리...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그 소리를 찾았어요.
  찾고 보니 그 목소리는 남편을 빼어 닮은 뒤뚱이의 목소리였습니다.    
  어느새 먼동이 틉니다
  파아란 하늘과 새하얀  땅에 분홍색 새벽 노을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뒤뚱이와 엄마는 바다를 향해 떠날 채비를 서둘고, 엄마는 겨울이 시작할
무렵 남편이랑 이 길을 사랑하면서 왔던 기억이 방금 일인 것도 같고
어쩌면 아스라하니 먼 옛날일 인 것도 같습니다.
  하얀 눈밭에 찍힌 큰 발자국 두 개, 조그만 발자국 두개.        
  마침 지평선 저 너머에서 얼굴을 막 내민 햇님이 이 네 개의 발자국에 따스하고 밝은 빛을 한없이 비춰 주며 웃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