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 시집 '내 안의 바다'를 읽으며


    강현진 < 전 새크라멘토 한국학교 교장>



    며칠 전 산호세에 살고있는 홍인숙(그레이스 홍)여사가 '내 안의 바다' 시집을 보내
    왔다. 나는 그 시집을 단숨에 읽으면서 홍 시인의 모습과 시의 세계를 마음속으로
    그려보았다.

    홍 시인의 시를 읽어 보았거나 대화를 나눈 사람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그녀의 조용
    한 성품과 인자한 말소리는 전통적인 한국의 여인상을 풍기는 '천상여자'라고 평한
    다. 나도 한국일보 필진 사은의 밤에 홍 시인을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부
    드러운 말소리와 후덕한 모습을 볼 수 있었기에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평하는 참뜻
    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시를 읽으면 그렇게 조용하고 마음 여린 여자가 무슨 힘으로 거친 파도를
    막아 낼 수 있었고 또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을 가슴속으로 받아낼 수 있었는지, 그
    것도 부족하여 그 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괴로움을 필화로 달구었는지 이해할 수 없
    도록 신비로운 느낌을 가지게 한다.

    홍 시인의 시를 읽노라면 어느 청순한 소녀가 센티멘탈한 감상에 젖어 멀리 떠나버
    린 소년을 보고파하는 그리움을 리얼하게 표현하여 나도 모르게 젊은 날의 방황과
    사랑에 빠졌던 그 시절의 아쉬움을 되새겨보게 만든다.
    특히 인상깊게 읽은 것은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시였다.
    시 속의 한 구절 "...횡단보도 저 편에서 사람들을 헤치고 달려와 그리웠다고 말해줄
    사람/ (중략)/ 긴 날을 너의 그리움에 묻혀 살았다고 말해줄 사람(생략)..."이 시를
    읽으면서 먼 옛날 내가 사랑했던 소녀가 내 곁을 떠난 후 그 소녀를 잊지 못해 방
    황하던 때가 그림처럼 떠오르게 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 눈앞에 스쳐가는 것처럼 홍인숙씨의 시의 세계는 미국의 서
    정시인 겸 소설가 허만 멜빌의 시상과 일맥 상통하는 느낌을 가졌다. 청춘도 외롭
    고 노년도 외롭다는 멜빌의 말처럼 50대 중반에 접어든 홍 시인의 가슴속에 간직된
    10대의 외로움이 지금까지도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새삼 엿볼 수 있었다.
    그녀의 시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잊혀져 가는 자신의 재발견, 자아를 상실한 현대인
    의 고민, 어차피 자연으로 돌아갈 인간 내면의 세계를 자신과 이웃과의 조화, 사회
    와 자신과의 조화,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켰다. 그래서 그녀
    의 시는 마치 잉태한 여인이 새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는 것 같은 시들이다.

    홍 시인은 누구보다도 인간 내면의 갈등과 숨겨진 마음의 세계를 솔직하게 썼기 때
    문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는다. 나도 그런 시상을 흉내내고 싶은 마음 간
    절하다. 그는 정말 많이 울고 많이 괴로워하면서 찬란한 내일을 기다리는 시를 썼
    기 때문에 모든 독자들의 그리움을 반추하는 것 같아 누구나 한번 읽어볼 만한 시
    다.


    < 한국일보 9.8.04 / 시평 > < 중앙일보 9.11.04 독자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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