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전쟁

2006.02.10 20:32

정해정 조회 수:258 추천:5

  개미나라와 비둘기 나라는 바로 이웃 에 있습니다.
  두 나라 경계선이라 보여지는 나지막한 언덕에는 집채보다 더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우람한 모습으로 떠-억 버티고 있습니다.
  느티나무는 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알고 있지요. 마을의 터주대감  이니까요.
  비둘기의 털 속의 벼룩은 개미의 방귀 가스만이 없앤다는 사실도 느티나무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개미와 비둘기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습니다.
  소슬바람이 단 냄새를 풍기고 지나가자 느티나무는 이파리로 살랑살랑 부채질을 합니다.  
  털 속에서 살고있는 벼룩이란 놈 때문에 가려운지 비둘기는 몸을 비틀며 트위스트 춤을 춥니다. 그 꼴을 본 개미는 잘록한 허리에 손을 얹고 호호 웃으니 엉덩이가 더 통통해 집니다.
  개미는 아주 조그맣고 약하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은혜를 아는 의리 있는 미물로 세상에 살고 있지요.
  비둘기는 몸매가 고운 새로, 항상 사람과 가까이 있으면서, 평화를 전달합니다.  

  개미가 잘록한 허리에 손을 얹고 말합니다.
  "우리 증조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인데 말이야..."
  개미는 심각하게 말해도 눈에는 웃음기가 가득합니다.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 말을 잇습니다.
  "옛날에. 아주 아득하게 먼 옛날에 하늘에서 무지무지 아름다운 선녀가 하나가 은하수를 타고 땅에 내려 왔대. 그 선녀는 세상의 모든 것이 신기한 땅에서 살면서 큰 나무 신에게 반해버렸지 뭐야."
  개미는 손으로 이마를 내려온 머리카락 한올을 한번 걷어올리고 말합니다.
  "선녀는 큰 나무 밑을 날마다 서성거리다가, 큰 나무 신의 정기에 취해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았다 는 구나. 그 아들의 이름을 목 도령이라고 불렀지. 목 도령이 무럭무럭 커갈 무렵이었어. 세상에는 엄청난 물난리가 난 거야."
  개미는 잘록한 허리에 손을 얹고 잠깐 뜸을 드립니다. 그리고 얘기를 계속합니다.
  "그 바람에... 이걸 어쩌지. 큰 나무도 비바람에 그만 쓰러지고 말았대."
  개미는 무슨 커다란 사건을 자기만 알고있는 것처럼 으시대며 옆에 앉아있는 보라색 들꽃에게 눈길을 줍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비둘기는 연신 몸을 털고 있습니다.
  "목 도령 은 큰 나무를 타고 떠내려가면서 막 물에 잠길 뻔한 한 무리의 개 미 떼와 목 도령 나이또래의 사내아이를 구해주었지. 그리고 함께 떠내려 가다가 그만 지쳐서 모두 정신을 잃었단다.
  얼마쯤 갔을까 일행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섬에 와 있는 거야.  
  개미는 모두가 자기에게로 시선이 집중되자 잘록한 허리에 더 신경을 쓰며 귀엽게 말을 이어 갑니다.
  "그 섬에는 딸 하나 데리고 사는 노파 밖에는 아무도 살지 않아 무인도나 다름없었어." 개미는 침을 한번 꼴깍 삼킵니다.
  " 그런데 말야. 어느새 나이가 든 두 청년들은 노파의 딸을 놓고 사랑에 눈뜨기 시작 한 거야. 목 도령 이 구해준 청년은 체격도 훨씬 크고 기운도 훨씬 센 청년이었지."
  점점 이야기가 재미있는 쪽으로 흐르자 모두들 이쪽을 향해 귀를 귀우립 니다. 비둘기도, 느티나무도, 모든 풀꽃들도. 바람까지도......
  작은 이 섬에 온 뒤에 목 도령 과 청년은 힘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산에 가서 나물도 해오고 밭을 갈아 곡식도 가꾸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큼직한 재목을 베어 목 도령과 두 사람이 기거할 조그만 집도 지었어요.
  목 도령은 바람이 자고 바다가 잔잔한 날 바닷가에 나가 모래밭에 앉아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은빛 바다를 보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럴 때 목 도령의 눈빛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처녀는 목 도령의 이러한 모습을 좋아했습니다. 청년은 처녀와 노파의 살림에 힘이 되어 주려고 많은 애를 썼으나 처녀의 마음은 목 도령에게 가 있었지요.
  비바람이 거센 날, 청년은 처녀 집의 지붕이 날아갈까. 아니면 담이 무너질까 염려되어 미리 손을 보아주었어요. 그래도 처녀는 목 도령만을 좋아했지요. 청년은 목 도령을 질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청년이 꾀를 내어 백사장에 좁쌀을 쫘-악 뿌려놓고, 목 도령에게 이런 제안을 했어요.
  꼭 노파의 딸과 결혼하고 싶으면 한나절 안에 모래가 섞이지 않게 원래대로 좁쌀만 모아 놓으라고 했습니다. 모래가 한 알이라도 섞이면 안된다구요.
  옆에서 듣고있던 비둘기가 몸을 털어 대니 개미의 말이 잠깐 끊겼습니다.
  " 바로 그 때였어! 어디선가 나타난 수많은 개미 떼 들이 좁쌀을 물어 나르니 순식간에 원래대로 돼버린 거야. 물론 목 도령은 노파의 딸과 결혼했고, 그래서 아기를 낳으니 그것이 인류의 시조가 되었단다."
  보라색 풀꽃이 앙증맞은 얼굴로 개미를 바라봅니다.
  "오늘까지도, 우리 개미들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살고 있지. 집의 구멍을 막거나 줄지어 행진하여 곧 닥쳐올 장마를 알리고, 또 담을 쌓거나 진을 쳐서 가뭄에 비가 오실 꺼 라는 정보도 미리 알려주기도 한단다."
   비둘기는 동그랗고 모양새 좋은 머리를 까닥일 때마다 두 가지색으로 윤기 나는 털이 목덜미에서 움직이니 마치 비단 목도리를 두른 것  같습니다.
  개미의 이야기를 듣고 난 비둘기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의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야. 천재지변도 미리 척척 알아내는 기계를 만들었거든,"
  "그래 맞아. 우리 개미들은 몸보다 몇 십 배나 더 큰짐을 모두 협력하여 옮기면서 사람들에게 질서와 협동심을 알려주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무슨 필요가 있냐고 하면서 머리만 잘 굴리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잘 살수 있다고 믿고 있지. 그 행복이란 뭘까?"
  개미는 한숨을 포-옥 쉽니다.
  비둘기도 따라서 한숨을 포-옥 쉬고, 또 몸을 텁니다.
  "우리 비둘기들이 인삼을 먹고 날아가다 똥을 싸면 그 자리에서 돋아나는 것이 산삼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벌서 잊었을 꺼야."  
  개미와 비둘기의 이야기를 듣고 느티나무도, 앙증맞은 풀 꽃 들도 서로보고 웃습니다. 개미와 비둘기의 이야기가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 비둘기는 말야. 일년에 두 번 정도 아기를 낳거든. 그럴 때 아내와 남편이 번 갈라 가며 알을 품지. 유난히 부부의 금실이 뛰어나 짝을 만나면 바람은 절대로 안 피운단다. 그래서 인간들에게 윤리와 도덕을 가르쳐 주기도 해."
  느티나무는 비둘기의 말이 옳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소슬바람이 지나 갑니다. 비둘기는 말을 계속합니다.
  "사람들은 비둘기가 평화의 사신이라는 것을 막연하게 인정을 하지. 신이 우리 비둘기를 만들 때 특별히 발달한 날개를 주셔서 700마일 정도는 왕복 할 수 있고, 깜깜한 밤에도 시속 60마일 속도로 날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중요한 편지를 다리에 매달고 배달부 역할을 충실하게 했지 뭐야."
  비둘기는 못 견디겠다는 듯이 몸을 털어 댑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화라는 걸 만들어 내더니. 지금은 말야, 팩스라는 것. 더 놀라운 것은 이메일이라는 무서운 기계를 만들었지. 편리. 편리. 그 놈의 편리가 사람들의 진을 모조리 빼가고 인간성을 증발시키고, 사악한 찌꺼기만 남았는데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참!"
  "어디 그 뿐이니? 깨닫지 못한 것은 고사하고 더 편리한 것이 어디 또 없나 하고 눈에 불을 켜고 살고 있지 않니.?"
  "우리 증조 할머니가 그러는데 신이 세상을 만들 때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더불어 살아가라고 만들었다는데 그것이 언제,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인간의 끝없는 욕심 때문 일거야. 자기만 좋으면 된다는 이기심이지. 자기보다 약한 것은 사정없이 밟아버리고 돈과 명예를 위해서는 인간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양심까지도 헌 신짝처럼 버리고... 어디 그 뿐 이겠니?"
  "그런 인간들이 신이 무서울까? 무섭지 않을까? 아니면 무서운 게 따로 있을까?"  
  "무서운 것이라고 했니? 서로가 무서운 거야. 서로가 믿지 못하고, 하물며 자기를 낳아준 부모 형제들까지 서로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고... 쉴새없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일으키고... 결국 서로 욕심을 충족하지 못해서 그런 거지."
  비둘기는 말을 하면서도 계속 몸을 터느라고 정신이 없어요. 개미는 긴장을 하니 잘록한 허리가 더 잘록해 집니다.
  늙은 느티나무는 소슬바람 편에 마른 이파리 몇 닢을 떨구어 버립니다.

  그 후 얼마가 지나서였습니다.
  개미 나라와 비둘기 나라는 전쟁을 하기로 했습니다.
  개미 나라에서 는 회의를 열었습니다. 비둘기들과의 전쟁에 대비해서 잘록한 허리 밑 통통한 엉덩이에 독가스를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개미들이 장 청소를 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각자가 자기의 아랫배에 열심히 가스를 저장했습니다.
  비둘기 나라에서도 회의를 열었습니다. 털 속에서 자리잡고 날마다 번식하는 벼룩 놈들 때문에, 회의 중에도 파다닷. 푸다닷 날개를 털며 춤들을 추느라 회의장은 시끌벅적 요란합니다.
  이 전쟁은 어찌 보면 비둘기가 개미를 주둥이로 쪼아 버리고 발로 밟아버리면, 비둘기 나라 승리는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개미 떼의 질서 있는 조직을 이용해 개미가 비둘기의 몸에 잽싸게 붙어, 눈이랑 숨통을 막아버린다면 개미 나라의 승리는 맡아놓은 당상입니다.
  드디어 전쟁하는 날이 왔습니다.
  늙은 느티나무가 공정하게 손을 번쩍 들어 '전쟁시작' 신호를 알립니다.
  풀꽃들은 숨을 죽이고, 개미 나라와 비둘기 나라 양 쪽 다 응원할 준비를 합니다.    
  비둘기 떼들이 먼저 커다란 파도처럼 쏴-아- 하고 밀려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개미 나라 대장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개미들은 일제히 펑! 퍼벙! 펑! 하고 뱃속에 가득히 채워놓은 가스를 방귀뀌듯 내뿜습니다. 꼭 데모대를 막는 최루탄처럼 말입니다.
  비둘기들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개미들이 내 뿜는 가스 속에서 재빨리 몸을 털어 냅니다.
  "개미 이겨라!!!"
  "비둘기 이겨라!!!"
  앙증맞은 풀꽃들의 응원이 열띱니다.
  비둘기들은 쌔게 몸을 흔들며 트위스트 춤을 추고, 개미 떼를 공격하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개미 방귀만이 비둘기 털 속의 벼룩을 잡을 수 있으니까요. 비둘기 털 속의 벼룩들은 개미방귀에 맥을 못 추고 털 밖으로 떨어져 나갑니다.
  개미는 또 어떤가요. 개미들은 몸 속에 가스가 차면 몹시 괴롭습니다. 가스를 빼어버려야 몸이 가볍고 일도 더 잘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가스를 내 보내야만 개미의 뱃속이 말끔히 청소가 되지요. 그런데 개미는 뱃속에 자기 힘으로 가스를 채울 수는 있지만 빼낼 수는 없답니다. 다만 비둘기가 세차게 날개 짓을 해 주어야 가스를 빼낼 수가 있데요.
  비둘기가 세차게 날개 짓을 하면 비둘기 몸에 있는 털들이 한꺼번에 고추 일어서기 때문에 벼룩들은 개미의 독가스를 쐬게 됩니다.
  비둘기들은 벼룩을 모조리 털어 버리고, 개미는 더부룩하던 장을 깨끗이 청소하여 둘 다 몸과 마음이 개운해 졌습니다.
  " 아! 시원하다--"
  " 아! 시원하다--"
  개미 나라와 비둘기 나라의 전쟁을 지켜본 늙은 느티나무는 오래 만에 기 지게를 활짝 펴고 더 넓은 그늘을 만듭니다.
  땅 위의 보라색 풀꽃이 먼저 손을 들자 오만가지 색깔의 풀꽃들이 일제히 파란색 하늘을 향해 만세를 합창합니다.
  비둘기 나라와 개미 나라의 재미있는 전쟁을 구경하던 소슬바람은 더 단 냄새를 풍기고 조심히 자리를 떠나면서 이렇게 속삭입니다.

                  -- 사람들은 왜 서로 손해보는 전쟁만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