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꼬부부 / 석정희

2006.01.10 02:47

석정희 조회 수:243

잉꼬부부 / 석정희


   시간의 흐름은 빠르기도 하다.  이곳에 온 이래 강산도 여러 번 바뀌었다.  결혼을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훌쩍 이곳으로 날라 왔던 초기에는 생존을 위한 안간힘만으로 지탱을 해왔던 것 같다.  피와 땀이 있었고 거기에 눈물까지 엉켜 범벅이 돼있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제 땀 같은 것은 웬만큼은 식었고 눈물 같은 것은 지난날 한때의 추억정도로 생각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그러기까지에는 견딜 수 없는 아픔도 있었고 갈등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높아져가는 가을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삼십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그이는 나라는 사람과 하나뿐인 딸아이를 위한 자기희생을 아끼지 않았다.  마음은 물론 몸을 사리지도 않았다.  나에게는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남편으로부터 보호와 아낌만을 받는 데에는 익숙해 있었지만 베푸는 일에는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자책을 해 본다.  한 남자의 아내요 한 아이의 엄마로서의 몫을 해내고 있는지에 대하여도 ‘그렇다’라고 대답을 할 자신이 없다.  삶을 살아가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나에게는 축복이겠지만 나는 이런데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해본 것 같지도 않다.
   가정에 대한 그의 정성 또한 지극하다.  특히나 하나뿐인 딸아이에게 쏟는 그의 사랑에 대하여는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어느 부모인들 자식사랑에 차별을 둘 사람이 있을까마는 가히 눈물겨웠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다.  그런 아이를 출가시키고 난 아빠로서의 마음은 얼마나 허전했을까.  나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아이가 떠난 이후 텅 빈 것 같은 집안에는 말수가 적어졌다.  저녁나절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며 무엇엔가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 그이의 모습을 바라다 볼 때면 그에 대한 어떤 연민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얼마나 외로울까.  그의 빈 가슴을 무엇으로 채워줄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잉꼬부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주변에서 우리를 이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서로 간에 금슬이 좋은 부부를 이렇게 부르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부럽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듣기에 기분 나쁜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듣고 있으려면 거북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나에 대하여는 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도를 넘는 칭찬은 오히려 모욕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모욕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한마디씩의 말들은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보려는 노력을 해 보겠다는 의지를 심어주기도 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그런 말을 듣기에 앞서 그런 부부, 나 스스로가 그런 가정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는 의지가 생긴다고나 할까.  그런데 부부사이가 어느 정도가 돼야만 잉꼬부부라는 말을 들을 수가 있을까.  이런 말을 듣게 될 때면 어디에 기준을 두고 우리를 그렇게 봐주게 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 부부가 과연 잉꼬부부라는 말을 들을 만큼 화목하고 행복한 부부로 보여 졌을까.  우리가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금슬이 좋은 부부로 보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뒤척이기도 한다.  어느 가정에서나 생활을 해 나가며 아주 사소한 일을 두고도 티격태격 다투고 서로 불만을 늘어놓으며 토라지기도 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우리 집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안팎을 들여다보고 나서도 우리에게 잉꼬부부라는 호칭을 붙여줄까 싶기도 하다.  부부싸움을 ‘칼로 물 베기’로 비유를 하는 사람도 있고 부부사이를 ‘평생 원수’로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법한 이야기이다.  아침에 심한 말싸움 끝에 역정을 내고 나설 때는 또다시 마주칠 것 같지 않다가도 저녁에 돌아오면 ‘언제 이런 일이 있었더냐.’는 듯 까맣게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니 칼로 물 베기라는 비유가 틀린 것 같지가 않다.  그러다가 또다시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아웅다웅 다투게 되니 ‘평생 원수’라는 말이 나올 법 같기도 하고.              
   남편에게 늘 감사하는 것은 이 가정에 칼로 물 베기 식의 모양새를 지켜준다는데 있다.  겉으로든 속으로든 우리 사이가 ‘평생원수’로 치부 된다 해도 원통하거나 속상해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된다.  ‘잉꼬부부’라는 말을 듣지 못해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둘 중에서 누구든 간에 문 밖에 한번 나갔다 들어오면 금방 칼로 물 베기 식으로 한마음이 될 터이니 말이다.  ‘평생원수’라 할지언정 한번 뛰쳐나갔다가는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 가정이고 부부간의 관계인 것 같다.  그러한 관계.  이런 경우도 ‘잉꼬부부’라고 치부를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