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릴 다시보기 시리즈 1: 수필이란 무엇, 어떻게 쓸까(제목순번 22)

수필 다시보기 시리즈 2: 낯설게 하기, 형상화(제목순번 23)

수필 다시보기 시리즈 3: 나의 수필창작 관습 (제목순번 33)


지난 연초, 2회에 걸쳐 <수필, 다시 보기 수필>에서 일반적인 수필 총론 및 수필창작의 문제들을 살펴본바 있다. 이번은 순전히 개인적인 수필 견해와 창작관습을 말하고자 한다.






1). 소재(素材)선택과 정관(靜觀)



먼저 나의 글쓰기 시발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마디로 아무 것이나 쓰지 않는다. 소재는 찾으면 많다. 특별한 체험이나, 사물을 꼼꼼히 살펴보았거나, 또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에서나, 인정기미에서 느낌이 닿는 소재와 접했을 때 비로소 나의 글 싹은 튼다.



그러나 덥석 글부터 쓸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나의 창작 순서는 그 글감을 어찌 보았느냐에 따른 유형정리가 먼저다. 그것을 토대로 글로 쓸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가늠해본다. 이를테면 그 글 소재는 현실적인 요구에 부합하는가? 폭 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재인가? 나에게도 절실한 그 무엇이 있는 것인가를 반문한다. 또한 그 소재의 글이면 수필의 품격이 유지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상당히 마음을 쓰는 편이다. 이런 저런 가능성과 호의적인 반응 그리고 쓰고 싶다는 충동, 즉 뜸이 돌아야만 나는 본격적인 글쓰기에 들어간다.







2). 주제(主題)와 제목(題目) 달기



나의 글쓰기는 집을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집짓기에서 처음 할 일은 자료 확보다. 사올 수 없는 자료, 자급자족해내는 자료를 말함이다. 그것은 연상 작용이란 시동을 걸어 얻어낼 수밖에 없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소재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연상들을 하나하나 메모 등으로 붙들어 모은다. 그 자료들을 모아놓고 보면 어느 장소에 어떤 모양의 집을 짓는 것이 좋겠다는 감이 잡힌다. 그 집이 구현하고자 하는 목적의식이 바로 내 글의 주제정신이다. 그것이 상식선에 머문다면 탄력을 기대할 수 없다.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인과나 요점을 찾아내어 혼을 부어넣는데 전염한다. 그것이 글 속에서 문장의 흐름을 주도하며 어떤 언질을 내보이는 것이 주제인 것이다.



말하자면 주제는 그냥 소재에 따라 붙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주제는 내 속에서 탄생시키는 문학정신이고 중심사상인 것이다. 그런고로 주제를 어떤 방법으로 풀어나가야 공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궁리한다. 간혹 먹음직스런 과일로 익어서 호감을 받았을 때도 있었지만, 설익어서 그렇지 못한 때가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 볼 수 있는 한계만큼, 그리고 내 인간됨의 깊이와 넓이밖에 쓸 수 없음으로 그것에 늘 고뇌한다.



주제를 이끌어 내놓고 보면 제목도 어렴풋 윤곽을 내보인다. 제목은 주제 정신을 함축해있고 또한 상징적이고, 참신한 것이기를 원한다. 독자의 흥미를 끌어당기면서도 내용과 격이 맞는가를 재검한다. 나도 그러하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먼저 책의 목차부터 쭉 훑어보며 읽을거리를 집어낸다. 그러나 과대포장처럼 내용이 불실하거나 글 근간과 동떨어진 제목에는 금방 눈치를 채고 전 글제까지 시선을 거둔다는 것에 유념한다. 특히 품격이 요구되는 수필의 제목에 천박한 표현이나, 저질스런 인터넷 용어가 끼어들지 않기를 경계한다.







3). 수필창작의 A,B,C



수필창작에 앞서 정리해 둘 것이 있다. 허구문제이다. 수필이 사실만 쓴다면 그게 문학적 창작품이 되느냐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없는 사실을 꾸며내 쓴다면 수필다운 진정성을 잃게 되고 만다. 대신 수필도 소재와 주제에 근거한 연상 작용으로 얼마든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고 가정법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문제로 왈가왈부 할 당위성이 없다고 본다.



흔히 수필을 자조문학(自照文學)이라고도 일컫는다. 대체로 1인칭작품이 많기는 하다. 나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지만, 더러 3인칭 수필도 있고, 짧은 4단락 수필도 있다. 수필가는 천편일률적인 한 가지 스타일로만 글을 쓰기보다는 여러 가지 형태의 글을 써보는 실험적 시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수필의 지평을 넓히고 자기 발전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글쓰기는 기승전결(起承轉結)법을 선호한다. 집을 지을 때의 설계도처럼 먼저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문장구성의 밑그림을 그린다. 거기에는 지배적인 대상과의 알맞은 거리와 글의 환경과 소품까지 포함시킨다. 그리고 주제정신에 합당한 글의 분위기를 미리 정한다. 또 글의 속도감을 높이고 군더더기를 없이하기 위해 단문문장으로 단락을 구성하고 이어가려고 한다. 그런 전제와 바탕에다가 연상 작용에서 얻은 자료들을 하나하나 밑그림의 적소에 옮겨 놓는 것이 내 글쓰기의 대략이고 골격이 되는 셈이다.



서두는 글의 총의를 나타내고 예고와 전개기능을 예비하면서도, 독자의 시선을 꽉 붙잡고 나가야 함으로 그것을 위한 참신하면서도 간결한 문장 만들기에 골몰한다. 독자는 한 두 줄의 서두 글을 읽어보고 글의 전체적 개요와 글의 품격을 알아차리는데, 서두가 산만해보이거나 진부하거나 시시 꼴꼴한 인상을 주면 누가 그 글을 더 읽으려하겠는가? 서두가 잘 뽑히면 그 다음 문장들도 비교적 쉽게 풀려진다.



이음문장에 대해 언급한 사람은 별로 있지 않다. 서두가 그 길을 잘 터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이후 글의 앞뒤 내용이 자연스럽지 않아서 끙끙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더러 무리 없는 접속문장이 찾아질 때도 있으나 어떤 때는 그것이 들어감으로서 오히려 전체 글이 이상해지기도 했다. 그럴 때는 여백 한 칸을 띄우는 방법을 쓴다. 그것은 문장의 흐름에는 단절의 느낌이 있겠으나 글 의미는 계속 통해질 수 있는 것에 유념한다.



본문에선 글의 지배적 줄거리는 세밀하게 드러내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언급 정도로 뒷받침만 되게 한다. 다른 데서 따온 지식은 충분히 내속에서 소화시킨 육화(肉化) 과정을 거쳐 재구성되었는가와 간혹 있는 인용문 처리는 누가 봐도 구분이 명료한가를 확인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수필을 풀이의 문학, 소설을 묘사의 문학, 시를 은유의 문학이라고 특징짓기도 한다. 그러나 본래 수필의 태성이 퓨전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지 않는가. 때문에 탄력 있는 문장구성과 장황하지 않는 절묘한 비교급 묘사라든지, 짧은 말 깊은 의미의 함축 어로 본문을 채웠으면 하는 여망을 나는 갖고 있다. 또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



결미는 마치 종소리가 잦아졌다가 한 번 더 크게 울린 후 여운 속에 잠기듯, 글의 흐름에서 멈칫 한 호흡 쉬었다가 번쩍 새 정신이 들게 하는 암시 같은 문장을 찾는데 고심한다. 특히 서두와 결미는 작품의 성패가 좌우되는 분수령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이 대충 형체를 갖추었으면 상당기간 퇴고과정을 거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수필로 해석된 의미들의 형상화에 무리가 없는지 와 문장들이 간결, 평이, 정밀, 솔직하게 써졌는가를 주로 점검한다. 그렇게 되어야만 글이 맛깔스러워지기 때문에 퇴고는 제2의 창작으로 불릴 만큼 그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2007년 8월 12일. 미주한국문협 ‘수필 토방’ 오피니언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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