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2006.03.20 05:40

고대진 조회 수:218 추천:5

 섬진강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용택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란 시에서 ‘당신’이라는 말보다 더 아름다운 말이 세상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건 사랑에 빠진 시인에게나 해당되는 것 같고, 정말 보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말을 여론 조사라도 해서 알아보면 다르지 않을까?  우선 필자같이 결혼하고도 ‘여보/당신’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부부들도 있을 것이고 또 부부나 연인끼리 싸움이라도 한 뒤는 ‘당신’은 욕에 가까우니까 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방을 하대하는 말도 되기 때문에 조심해서 사용하여야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면 나이와 성별에 또 인종과 나라 또 무드에 따라 변하지 않는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필자가 ‘어머니’라고 하면 이견을 내놓을 분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과학적인 여론 조사를 하려면 세상 사람들을 대표할 만한 각 나라 또 각 지방 또 각 연령층과 남자 여자를 균형 있게 섞고 또 시간도 아침 저녁 등 골고루 섞어 조사를 해봐야 하겠지만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비과학적인 조사를 해보았다.  아름다운 말을 많이 아는 사람은 뭐니뭐니해도 시인들일 테니까‘문학의 즐거움’이라는 웹사이트(http://www.poet.or.kr)에 들어가 이 사이트에 수록된 시를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어머니를 주제로 한 현대시를 찾아보니 392개가 나와 있다. 당신을 주제로 한 시는 269개로 어머니를 주제로 한 시의 3분의 2밖에 안되어 내 심증이 굳어졌다. 가만있자. 아버지는 어떨까 해서 세어본 수는 174개. 어머니의 반도 안되는 것이다. 아들과 딸은 합쳐서 124개이니까 아무래도 어머니를 물리칠 주제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사랑’을 주제로 한 시를 보니 놀랍게도 어머니의 아홉 배인 3551개나 되었다.  처음엔 사랑이 없이는 쓰러지는 시인들을 표본(sample)으로 삼은 내가 어리석었다고 생각했지만 더 생각해보니 사랑 중에 가장 고귀한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이므로 ‘사랑’이라는 말에는 ‘어머니’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어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김용택 시인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란 시에서 ‘당신’을 ‘어머니’로 바꾸어 보았다.  어머니,/ 세상에서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그보다 더 따뜻할 수 있는,/ 그보다 더 빛나는 말이 있을 리 없겠지요/ 어머니…/  이렇게 아름다운 ‘어머니날’이 고국에서는 1974년부터 어버이날로 바뀌었다. 본국 정부에서 하는 우스꽝스런 일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이건 아무래도 좀 너무했던 것 같다. 마치 아버지들이 자식들에게 효도를 강요하는 듯한 날을 만든 것같이 들리니까 말이다. 차라리 아버지 날을 하나 더 만들고 말지 어떻게 은근 슬쩍 어머니날에 얹을 생각을 했을까?  그냥 유행가나 동요를 생각해봐도 그렇다. ‘어머니’가 들어가는 노래는 셀 수도 없이 많지만 ‘아버지’가 들어가는 노래는 기껏 해야 “아빠하고 나하고…”라고 시작하는 <꽃밭에서>가 전부 아닌가? 아니면 “아빠 앞에서 짝짜꿍…” 같이 엄마와 공동 조연이 전부인데… 그런 의미에서 흐름을 거슬러 어머니날을 어버이날로 바꾼 남자들(필자의 추측이다)이 조금 치사스럽고 억지를 쓴 것같이 느껴지며 어머니날을 돌려달라고 외치고 싶다.  작은 새끼 다람쥐의 맑은 눈이 자기를 쳐다보는 것을 보면서도 괜히 가슴이 저릿저릿하고 핑그르르 굳었던 젖이 돈다던 나희덕 시인의 시를 보면 우리 남정네들이 모르는 단계가 높은 사랑이 어머니들에게는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에릭 프롬은 어머니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과 가장 비슷하다고 했을까?  그러고 보니 하나님(예수님)도 엄마 앞에선 꼼짝 못하셨다. 가나안 잔치에서 하신, 물을 술로 만드는 첫 기적도 어머니가 부탁해서 하신 것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이번 5월 8일에는 다시 한번 가장 아름다운 말을 소리내어 불러보련다.  어머니, 세상에서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그보다 더 따뜻할 수 있는, 그보다 더 빛나는 말이 있을 리 없겠지요. 어머니… <미주 중앙일보 2002년 05월 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