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사냥

2006.01.19 00:26

이성열 조회 수:423 추천:6

<단편소설>                    소라 사냥

  그냥 냉장고 열고 알아서 드시고 싶은 거 찾아서 드시고 하세요, 삼촌. 우리 집 대접은 늘 이렇수.
형수가 출근을 하며 이렇게 말한다.
알고 왔어요, 전 신경 쓰지 마세요.
이따가 저녁은 초대가 있으니 그리 아세요. 있잖아요, 근처에 사는 제니퍼 네-. 그 집에서 저녁을 낸다고 하니까요.
아침이면 형님네 식구들은 각자 일어나서 눈 비비고 직장, 학교 나가기에도 바쁘다. 이곳 주립대학의 공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형님은 군소리 없이 슬그머니 일어나서 세수하고 식탁에 나와서는 사기대접에 설탕 성분 없는 시리얼 한 그릇 담고 거기에 탈지우유를 섞어서 몇 숟갈 떠서 먹으면 그만이다. 중년이 되니 이제 몸 생각을 해서 설탕도 삼가고 또 지방흡수도 억제하려니 맛없는 것만 골라 먹는 모양이다. 그리고 막내딸 앤지는 굴러다니는 바나나 하나 까서 입에 물고 학교로 향하고, 형수는 얼굴에 뭐 좀 바르고는 빈속으로 직장으로 떠난다.
모 개인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형수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수 직종이라 오히려 형님보다 벌어드리는 돈도 많고, 하는 일도 많아 집안 살림은 아예 내놓다시피 했어도 아무도 불평 한마디 못하고 사는 게 이 집 집안사정이었다.
식구들이 다 밖으로 나가고 내가 부엌으로 와서 막상 냉장고를 열어보니 먹을 거라곤 우유와 시리얼 뿐이다. 바나나 같은 과일도 다 떨어지고 없다. 혼자라도 아침이면 뜨거운 음식을 먹어 버릇하던 나는 좀 난감해 하며 냉장고 문을 닫았다. 조금 후 밖으로 나가 매식(╪Γπ▌)을 하면 돼지 뭐, 하며 나는 스스로를 달랬다.
식구들이 다 나간 텅 빈집에 있던 나는 혼자 밖으로 나가 이곳에 있는 호수를 끼고 한 바퀴 걸어서 돌았다. 호수래야 자그마하여 인공적인 낌새가 짙었지만, 그래도 물은 마르지 않고 늘 고여있어 이 마을의 이름인 콜리만 서클의 명맥을 유지해 주고 있었다. 이 마을은 이 호수를 끼고 빙 둘러서 지어 놓은 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집들 중 하나가 형님의 집이었고, 또 하나가 오늘 저녁에 식사초대를 했다는 제니퍼네 집이었다. 제니퍼 하면 내가 지난번 여기에 왔을 때 한 번 초대되어 가 본적이 있는 이웃이었다. 연말이었고 망년회인가 하는 날이었던 것 같다. 한국여성이 잭이라는 미국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제니퍼라는 딸 하나를 낳고 살고 있는 집이었다.
얼마 후 나는 걸어서 그 집 앞을 지나고 있었다. 그 집도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모두들 일들을 나갔는지 조용했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평화롭고 고즈넉하게 서 있었다.
한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오니 가볍게 걸었을 뿐인데도 등골에 땀이 흠뻑 찼다.
아침부터 플로리다주의 습도라니-. 체감온도가 높아 실제 온도는 그리 높지 않아도 헉헉대기 일쑤였다.
진종일 식구들이 벗어 던진 옷가지들 기계에 넣어 돌리고 말리는 것만도 한 사람 몫의 일이라구! 하며, 언젠가 형수가 하던 푸념이 생각났다. 이곳 사람들은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푹 젖은 옷을 벗어 던지고 풀장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이 하나의 관례였다. 오죽 더우면 몸에 걸친 실오라기 하나도 덥다고 느껴진다고 하겠는가. 그러니 열대에 사는 사람들이 옷을 벗다시피하고 사는 것도 이해가 가고, 아울러 그 성이 문란해지고 마는 결과도 탓할 일이 못될 성싶었다. 그런 곳에서 속수무책의 천형과도 같은 에이즈라는 성과 관련된 전염병이 창궐하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나는 옷을 벗어 던지고 가볍게 샤워를 했다. 그리고는 티 하나에 반바지 차림으로 차를 몰고 밖으로 나왔다. 잠시동안 만이라도 한결 상쾌했다. 열대림 같은 숲길을 지나 주택가를 빠져 나오니 작은 상가들이 나오고 식료품점이 있고, 조금을 지나니 식당 â대니즈ä가 있었다.
나는 차를 세우고 그곳에 들어가서 커피와 팬케익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식사 후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내를 돌아 다녔다. 이런 곳에는 큰 도시에선 맛볼 수 없는 자그만 타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가 늘 있었다. 서둘지 않는 사람들, 싸구려 옷가게들이나 잡화상들이 여기저기 심심찮게 있고, 그 밖에 헌 책방이라든가 골동품 상회, 또는 레코드 가게 등등을 둘러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다.
오전 내낸 그럭저럭 돌아다니다 나는 식료품 점에 들러 간단히 과일과 빵 등을 샀다. 아침에 냉장고를 보니 별로 먹을 거라곤 없었다는 걸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앤지가 학교에서 벌써 와 있었고, 내가 들고 들어간 식료품 봉지에서 싱싱한 바나나를 보자 반기며 대들어 두 개를 뜯어다 먹고 있었다.
삼촌, 바나나가 싱싱해서 너무 맛있어요.
그래, 네가 맛있다면 사 온 나도 기분이 좋다.
삼촌, 나하고 나가서 바스켓 볼 해요.
이 더운데 나가 바스켓 볼을 하자고? 아, 이따가 해 진 다음에 하면 어떨까?
해 진 다음에는 제니퍼네 가기로 했잖아요.
그렇지... 그래도 글쎄 지금은-, 나는 노 탱큐인데-.
앤지가 무료함을 달래기가 어려운지 시무룩해서 차고로 나가더니 장갑 낀 손에다 햄스터를 들고 들어왔다. 자신이 기르는 애완용 쥐였다. 그 쥐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앤지의 손안에서 머리를 요리조리 움직이며 무언가를 찾는다.
쥐 과 에 해당되는 동물이긴 하지만, 색깔이 노래서인지 전혀 쥐처럼 혐오감이 들질 않는다. 혐오감은커녕 오히려 귀여웠다. 왠지 나는 생각해 보았다.
그 귀여운 이유는 색깔 뿐 아니라 꼬리가 쥐처럼 길지 않고 토끼처럼 짧거나 아예 없으므로, 그 징그러운 긴 꼬리가 없다는 데도 있을지 몰랐다.
그렇다면 꼬리와 색깔이 그들의 운명을 지금처럼 바꾸어 놓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그 많은 세상 어린이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걱정 없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디즈니 월드를 제외하곤 검은 쥐를 애완용으로 기르는 아이들은 보질 못했으니까.
앤지가 그를 책상에 올려놓자 가장자리로 기어간다. 나는 그 놈이 저렇게 기어가다가 아래도 떨어지지나 않을 까 걱정을 한다. 그러나 놈은 가장자리로 가면서 속도를 줄이고 조심을 하더니 되돌아 가운데로 돌아온다. 앤지가 가지고 있던 홍당무를 입으로 잘라서 몇 개로 만들어주니까 하나는 먹고 나머지는 두었다 먹으려고 옆의 볼 따귀 속에다 두둑하게 저장한다. 그는 저축할 줄도 아는 놈이다.
앤지의 말에 의하면, 제 집에 넣어 놓으면 한 시도 쉬지 않고 쳇바퀴를 돌리며 운동을 한단다. 물도 혼자 찾아 마시고, 운동도 할 줄 아는 부지런한 동물-. 쥐가 영리하다더니 햄스터도 아주 영특했다. 부지런하고, 똑똑하고, 복 많은 햄스터-. 그런데 역시 쥐 과에 속해서 그런지 그 번식력이 대단해서 암 수 한 쌍을 붙여놓으면 그 수가 금방 바글바글 대가족이 되는 바람에 아무도 놈들을 쌍으로 기르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조롱에 든 새 대가리만도 못한 팔자라 늘 갇혀서 고독하게 살아가야만 하나보다.    
얼마가 지나자 식구들이 퇴근해서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한다. 4시가 좀 지나 형님이 먼저 들어왔고, 한 시간쯤 지나자 형수도 돌아 왔다. 그들은 이 사회에서 기반이 잡혀서 고소득은 물론 하는 일도 그렇게 고돼 보이진 않았다.
형님은 집에 들어 올 때 무언가를 들고 들어왔다. 알고 보니 제니퍼네 가지고 갈 포도주였다. 그걸 보고 형수가 말했다.
여보, 당신은 역시 준비성이 있구려. 난, 까맣게 잊고 왔는데...
우리는 곧 저녁을 먹으러 제니퍼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한 동네에 사는 이웃이라 그 집은 스스럼없긴 해도, 그래도 빈손으로 갈 수만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형님은 와인 병을 사들고 들어왔던 것이다.
이웃이라 차를 몰고 갈 필요도 없어 술 취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우리는 호수를 끼고 걸어서 그 집에 당도했다. 형수가 초인종을 누르고 있는 사이, 나는 형님을 따라 곧장 뒷문을 이용해 뒷마당으로 들어갔다. 뒤의 후원에서 연기가 오르고 바비큐 굽는 냄새가 났기 때문에 누가 거기 있을 거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제니퍼 아빠인 잭이 반바지에 반소매 티 차림으로 고기를 굽고 있었다. 벌써 한 잔 걸쳤는지 얼굴은 매우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우리를 보자 팔을 들어 어서 오라는 듯 환호했다.
환영합니다. 우린 준비가 되었다구요!
감사해요, 또 이렇게 초대해 주다니, 여기 이렇게 마실 와인을 가져왔소!
아, 레드와인-, 제 아내가 좋아하지요. 그냥 빈손으로 와도 되는데요. 알코올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잭이 대수롭지 않게 형님과 악수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도 형을 따라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전에 만난 적 있지요? 아틀란타에 사는 내 동생인데 어제 왔습니다.
암요, 우린 구면이지요. 하며 그가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벌써 한 잔 걸쳤구려. 형님의 말이었다.
그렇소, 위스키 한 잔 했지요. 내 이름이 잭이니까 잭을 마셨지요.
좋은 고객이군요, 모든 잭이 다 잭 다니엘 위스키를 마신다면 말이요.
그렇소, 잭은 잭을 마시게 돼 있지요.
그도 형님의 농담을 받아 넉살을 떨었다.
집은 전에 왔을 때 본 바나 다름이 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거실로 통하는 페디오가 전과 달리 낡고 퇴락해 있었다. 이곳은 습기가 많아서 그런지 불과 얼마 만에 보는데도 칠한 페인트가 벌써 벗겨지고 나무가 삭아 수리를 요구하고 있었다. 잭은 그때에도 망년회를 한답시고 우리를 초청해 놓고 이 페디오에 나와 고기를 굽고 술을 마셨었다. 그러다가 자정이 가까워오자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M-1 소총을 꺼내다가 하늘에 대고 마구 긁어대었었다. 그는 미 해병 출신이라 했던가. 거기서 단련된 다부진 몸매가 마치 램보를 연상시키는 그를 바라보던 우리는 겁에 질려 유구무언으로 그의 광기를 관망만 하고 있었다. 밤이라 총구가 토해내는 벌건 불을  보고 있노라니 무섭고 황당해서 온몸으로 진저리를 쳤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말로만 들어왔던 이런 풍습이 말하자면 인디언들과 싸워 이기고 살아남기 위한 개척민인 미국인들의 오래 된 전통이라는 것이었다. 망년회를 이들은 그렇게 술로 마시며 보내고, 새로 다가오는 해를 울부짖는 총소리로 맞았다.
그런가하면 동방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인 우리들은 어떤가? 그믐이면 눈썹에다 밀가루로 흰 칠이나 해서 놀려먹고, 부럼이나 깨서 질병을 쫓는다는 어처구니없는 평화로운 풍습-. 이들과 비교할 때 서로는 너무도 다른 문화적 차이를 가지고 동과 서로 나뉘어 살아가고 있었다.
안으로부터 형수가 전기 밥통과 김치 병 등을 들고 나왔고, 그 뒤로 제니퍼 엄마가 씻은 야채며 주방기구들을 들고 나오며 나를 보고 싱긋 웃고 고개를 끄덕여 반가운 체를 했다. 그녀는 피부가 희어서 노출에 자신이 있다는 듯 하얀색 짧은 핫팬티와 몸에 꼭 끼는, 가슴만 가리는 탱크 톱을 입고 있었다.  가슴은 아직도 싱싱하게 살아 출렁거리고 있었고, 과히 짧지 않은 다리는 건강하고 곧았다. 그녀의 옷차림을 보자 아무리 더운 지방이라 해도 좀 야한 기분이 들었다. 하긴 외국인들과 사는 여자들의 공통적 매력은 어딘가 모르게 자유분방하고 대담하고 야한데 있긴 하였다.
다시 뵙게 되니 반가워요. 언제 오셨어요?
네, 어제 왔습니다. 그 동안 안녕 하셨죠?
늘 그렇지요. 그녀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준비를 단단히 했어요, 이 김치까지 사 온걸 봐요. 우리들을 위해서-.
형수의 말이었다.
뭘 요, 준비한 것도 없어요. 늘 우리가 먹는 고기에다 밥하고 김치만 사온 거죠. 라고 제니퍼 엄마가 맞받았다.
시장하시지요, 모두들?
시장이라니요, 아직 저녁 먹기엔 이른 시간인데-.
형수는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나는 배가 몹시 고팠다. 아침에 밖에 나가 â데니스ä에서 팬케익으로 아침을 때우고 아직까지 아무 것도 먹은 것이라곤 없는 탓이었다. 형님은 어떤지 가지고 온 와인은 내버려두고 근처에 있는 쿨러에서 맥주 캔 하나를 집어 마개를 따서는 홀짝거리고 있었다. 얼음이 담겨진 아이스 통에는 잭이 마시는 위스키, 잭 다니엘, 맥주 캔 몇 개, 그리고 콜라, 쎄븐 업 등 소다가 채워져 있었다.
곧바로 테이블 위에 음식이 차려졌다.
우리 식으로 밥통에서 밥이 퍼져 테이블에 놓이고 깨끗이 씻은 상추가 가운데 있으며, 잭이 구운 갈비를 날랐다. 김치가 병에서 꺼내져 접시에 놓이자 잭이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저 걸 사러 내가 멀리 한국 식료품 점에까지 갖다 왔지요. 저거 하나를 사러 말이에요.
오 마이 갓, 탱큐! 왜 그랬어요 제니퍼 엄마는 김치도 잘 만드는데-.
형수의 말이었다. 하긴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못하는 음식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워낙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고, 또 남에게 대접하기를 좋아해서 잭이 다니는 직장에까지 소문이 자자하다는 것이다.
해마다 잭이 생일을 맞는 날이면 음식을 장만해 놓고 직장 동료들을 부르던가, 아니면 직장으로 찾아가서도 대접을 하곤 했다. 그래서 그녀의 갈비찜요리나 케익 굽는 솜씨는 잭의 직장에서도 아주 유명하였다.
오, 노우, 내가 만들지 못하게 했지요. 김치 만들면 제 와이프가 매우 바쁘고 또 마늘냄새가 집안에 진동하지요. 그래서 못하게 했지요.
그는 한국인 아내와 살고 있어도 한국음식만은 아직도 좋아하질 않는 모양이었다. 좋아하기는커녕 우호적이지도 않았다.
너무 들 많이 먹지 말아요, 배탈이 나면 그 때 나는 책임을 안 집니다.
당신은 그런 쓸데없는 염려는 하지 말아요. 한국 사람들 김치 먹고 배탈 났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으니까.
제니퍼 엄마가 날카롭게 쏘아 붙였다.
한국사람들의 위장은 특별합니다. 나는 조금만 먹어 봐도 배가 아픕니다.
그거야 지가 모자라니까 그렇지! 왜 다른 사람을 자기 기준에 맞추려고 해!
제니퍼 엄마가 갑자기 한국말로 얼굴까지 붉히며 잭을 나무라는 바람에 주위에는 찬바람이 일었다. 우리는 끼어 들기도 뭣하고 해서 잠자코 식사에만 열중했으나 형수는 듣기가 거북했는지 참견을 하려고 했다.
너무 그러지 말아요, 제니퍼 엄마, 잭이 다 우리를 염려해서 하는 말 아니겠수?   그러자 제니퍼 엄마가 다시 남편인 잭을 비난하는 투의 말을 했다.
괜히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남을 얕잡아 보는 끼가 있으니까 그러지요. 내가 살면서 화가 치민다니까요. 괜히 우쭐해 가지고 잘난 척하기는......
그녀가 계속 한국말로 자신을 비난하자 잭은 자신이 알아듣지 못하는 데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감까지 겹쳐 얼굴까지 붉히며, 왓? 하고 소리쳤다.
사태가 악화될 조짐이 보이자 보다 못한 형수가 끼어 들어 영어로 사태를 얼버무리려 했다.
잭, 당신 와이프가 아마 오랫동안 김치를 못 먹어서 화가 났나 봐요, 이해해 줘요.
그래서 내가 멀리 있는 한국식품점까지 가서 그걸 사 왔잖아요?
그건 알아요, 그러나 잭이 좀 더 이해를 해주고 그래야죠. 아내를 사랑한다면,
......
그가 형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지 어깨만을 들먹였다.
그 때 형이 끼어 들어 맥주 캔을 들며,
어이, 잭, 듭시다! 다시 한번 이렇게 초청해 줘서 고맙구요, 그 얘기는 이제 그만 합시다! 하며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 잭도 마지못한 척 위스키 잔을 들어 올렸다.
그 때 안에 있던 앤지와 제니퍼가 나와서 식탁에 합세하였다.
제니퍼는 우리 일행을 보자 눈도 들지 않고 형식적으로, 하이! 하고 입만을 벙긋하더니, 자신의 접시에 갈비 몇 점만을 집어 부지런히 먹고 있다. 전과는 달리 이제 제법 자라나서 앤지 보다도 큰 사춘기 소녀였다. 혼혈이라 아빠나 엄마 누구 하나를 닮았다기 보다는 서부영화에서 흔히 보는 인디안 처녀처럼 보였다.
나는 부지런히 식사를 하고 나서 조심스레 분위기를 살폈다. 잭은 다시 화로로 돌아가 바비큐를 굽느라 열심이었고, 애들은 음식을 조금 입에 대는 듯 하더니 어느덧 벌써 수저를 놓고 다시 저희들 방으로 돌아갔다.
김치 화제 때문에 좀 분위기가 머쓱해진 것만은 틀림없었다. 나는 이젠 김치도 외국인들이 어느 정도는 그 우수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잭이 그토록 김치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예상 밖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젊었을 때는 나도 미국 음식이야말로 우리가 꿈에도 동경해 마지않는 이상적이고도 과연 세계최고의 음식으로 간주했었다. 그 높은 칼로리와 영양가 많고 풍부한 맛, 그리고 그 간편함과 편리함 등은 우리가 음식으로서 갖추어야 할 건 다 갖춘 기능성 음식처럼 인식되었었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에서도 가장 잘 살고 있다는 미국인들이 어떤 면에서는 가장 건강치 못하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은 그 원인을 그들이 먹는 음식에 돌리는 결과가 되었다. 어떤 자료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구 2 억 중 수 백여 만 명을 뺀 나머지 인구가 모두 어느 면에서든 건강치가 못하다는 사실에 나는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던 일이 있었다.
세상에 자연을 훼손하여 만든 그 어느 것 치고 우리에게 해롭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러고 보면 기능적 또는 과학적이라는 것이 반드시 우리에게 이로운 것들은 아니며, 반대로 원시 재래식으로 만든 것들이라 해서 반드시 우리가 배척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차라리 그것들을 보전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가 자연에 더 가까이 친화되어 사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가 사는 우주와 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재래식 음식들도 그 설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특히 김치야말로 그 냄새를 제외하고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야채식품이라는 자부심을 나로 하여금 갖게 만들었다.
  미국인들의 음식문화라는 것이 사실 따지고 보면 뭐 그리 크게 내놓고 자랑할 것이 있는가? 물론 음식문화도 그 나라의 역사와 무관할 수야 없겠지만, 이들이 즐기는 스테이크와 샐러드라는 것만 봐도 결국 동물을 잡아 날고기를 그 즉석에서 굽고, 그리고 들에서 나는 야채를 뽑아서 씻어 놓은 것 외에 무엇인가? 그걸 조금 더 맛있고 편리하게 발전시키다 보니 인체에 해로운 첨가제를 넣게되고 마침내 그 균형을 잃게 되어 우리에게 결국 해로운 독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 아닌가.  
미국 음식에 비해 김치의 우수성을 나는 잭에게 장황하게 설명이라도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 분위기가 그럴 기회를 나에게 허용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실 그가 우리를 위해 사왔다는 김치는 익지도 않고 맛이 없어 나를 비롯한 형님의 가족은 별로 거들떠보지도 않는 음식이 되었고, 오히려 제니퍼 엄마가 오랜만에 맛보는 김치 맛이라 그런지 다른 음식을 다 제쳐놓고 그것만 대들어 먹는 바람에 잭이 보다 못해 다시 그녀에게 와서 이렇게 퍼부었다.
내가 재차 경고하겠는데, 오늘 밤 당신 위장이 뒤집히고 말 거야, 만일 그렇게 많이 김치를 퍼먹는다면......
그 말을 듣고 제니퍼 엄마는 아예 기가 막힌 지 숟갈을 입에 문 채로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더니 형수에게 얼굴을 돌려 말하기를, 저렇게 날이 갈수록 나를 가지고 간섭을 하니 내가 어떻게 살겠어요? 요즘은 제니퍼까지 자라나서 저희 애비와 사사건건 맞장구를 친다니 까요- 라며 푸념 조로 하소연했다. 그러자 잭이 다시 도전적으로, 당신이 한국말로 뭐라 하는지는 난 상관할 바 아니야. 하지만 난 진정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야! 하고 되풀이했다.
오케이, 알았어요 당신이 말하는 뜻을! 그러나 난 김치를 먹어도 아무 이상 없으니 참견이나 말아요, 그게 나를 위하는 길이니까!
제니퍼 엄마는 먹던 숟갈을 팽개치며 영어로 남편에게 소리쳤다.
알았으면 진정해, 진정하라고, 난 가족의 건강을 위해 말했을 뿐이니까.
나는 그들이 다시 언쟁으로 분위기를 어둡게 할까봐 조마조마 겁을 먹었으나, 더 이상은 위태롭게 되지 않았다. 그래도 손님들 앞이라 아마도 서로는 조금씩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태도는 그들의 분별 있는 처신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잭은 어느 정도 술이 취해서인지 여전히 안하무인 막무가내로 해댈 것처럼 보였다.
의견차이와 부부싸움이야 어느 집안인들 없을까마는 우리 모두는 한국사람이었고 그녀는 미국인과 살고 있으므로, 적어도 우리를 불러놓고 그 앞에서는 금실이 좋은 것처럼 행동해 주길 우리는 내심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 부부도 손님을 불러다 놓은 자리에서조차 여느 부부처럼 티격태격하기는 예외가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 밤을 보냈다. 주로 형수는 제니퍼 엄마가 사는 이야기며 그녀의 푸념을 들어주는 편이었고, 형님은 잭과 어떻게 여름을 재미있게 보낼까 하는 것 등의 의견을 나누며 술을 마셨다. 형님이 자신이 좋아하는 낚시에 대해 이야기하자, 곁에서 듣고 있던 제니퍼 엄마가 끼어 들었다.
우리 다음 주말에 배타고 바다로 낚시나 가죠. 어떨까요, 잭?
나더러 배를 빌려 오라고?
당신 친구 중에 요트 가진 사람 있잖아요.
쓰지 않는다면 빌릴 수야 있겠지.
내일 중으로 전화해서 알아봐요, 손님이 와서 그런다고.
그녀는 손님을 내세웠다. 아마도 손님은 나를 두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녀의 제안에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언제라도 흰 돛단배를 타고 푸른 바다를 항해하는 건 어려서부터 늘 마음속에 품었든 동경 중에 하나였으니까.
그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형수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제니퍼 엄마가 삼촌을 좋아해요. 그래서 저렇게 우리를 초대도 하고 바다에까지 가자고 하는 것 같애요.
그 말을 듣자 나는 안 할 짖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몹시 당황했다.
아, 형수님도 웬 그런 가당찮은 소리를 하세요? 바다야 형님이 낚시소릴 해서 그런 거지.
아니 삼촌, 좋아하는 감정이야 누가 말리겠수? 그거야 타고 난 양심의 자유가 아니유? 그 전엔 아무리 낚시 이야길 해도 제니퍼네가 자진해서 가자고 하기는 이번이 처음인 걸-.
에이, 당신 쓸데없는 소리 집어 쳐!
듣다 못한 형님이 형수에게 통박을 주었다.

나는 아내와 별거이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혼자 형님이 살고있는 플로리다엘 자주 오곤 했다.
물론 형님이 살고 있어 온다고는 하지만, 나는 아름다운 플로리다를 좋아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사는 애틀랜타로부터 장장 차로 달려 7 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를 무슨 이유로 자주 오겠는가?
애틀랜타로부터 미국의 남과 북, 각 주를 연결해서 달리고 있는 75번 국도를 타고 메이컨과 카터 미국 대통령이 태어났다는 프레인즈 등 남부도시를 거쳐 그곳에서 외길로 뻗은 지방도로 319번을 갈아타고 시골길을 내려오면 곧장 형님이 살고 있는 플로리다의 â텔라하시ä라는 도시에 도달하곤 하였다. 조지아 주 남부까지는 지루한 평야, 다른 지역과 별반 다를 것도 없고 산이라곤 하나도 없는 평범하고 광활한 벌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지방 하이웨이 319 번을 들어서서 플로리다 주로 접어들기만 하면 무엇이 지정학적으로 다른지 주위 풍광은 대번에 남국적이고도 이국적으로 바뀌고 만다.    기후는 갑자기 후덥지근해지고 펼쳐진 농장에서는 오렌지며 자두 등 과일들이 뒹굴고 들에는 남국의 꽃들이 지천에 깔려있다. 온갖 낮선 곤충 벌레들이 환영이라도 하듯 달려들어 출발하기 전 말끔히 닦아놓은 승용차의 유리창은 그 부서진 벌레들의 잔해로 범벅이 되어 더럽혀진다.
처음 이 땅을 발견한 스페인의 â후안 폰스딜레온ä이 꽃들이 들에 하도 많이 만발하여 꽃이라는 뜻의 플로리다라고 명명했다던가. 아무튼 누구든 이 땅에 들어서기만 하면 식물들의 분포부터가 확연하게 달라진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게 된다. 하와이나 캘리포니아를 제외한 다른 주에서는 볼 수도 없는 팜트리들이 오렌지 나무들과 사이좋게 같이 서기 시작하고, 몇 백년을 묵었는지 알 수 없는 고목들에 이끼나무들이 치렁치렁 매달린 광경을 보노라면 마치 원시의 지구 신비를 보는 것 같고, 곧 타잔이라도 나타나 나무 사이로 뛰어 다닐 것 같은 동심에 휩싸이기도 한다.
가는 곳마다 하얀 모래 탓인지 흙빛조차 하얀 색이다. 가끔 산중턱에 벌려져 흐트러저 있는 이곳의 흰 모래흙은 마치 흐트러진 옷매무새 사이로 보이는 여자의 속살처럼 엉뚱한 내 성감을 유발하곤 했다. 흙 전체가 바로 바닷가 흰 모래였다.
플로리다는 원래 바다로 잠겨 있던 해안지역이었다. 그러던 것이 물이 점점 얕아지면서 육지가 되었단다. 그리고 언젠가는 지구의 온난화 현상으로 물이 다시 늘게 될 때 제일 먼저 바다로 잠길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것이다.
하얀 모래 빛 때문인지 그 위에 고여있는 바다 물은 녹색, 에메랄드의 신비 그 자체였다. 지천으로 깔린 오렌지와 레몬 농장, 그리고 숲과 늪, 거기에 서식하고 있는 희귀한 어족들과 악어, 낮선 새들로도 볼거리는 충분했다.
다음날도 나는 식구들이 다 일가고 없는 사이 혼자 이런 풍경들을 보러 다니며 소일했다. 주립공원으로도 유명한 â와쿨라 스프링스ä에 가서 새들과 물고기와 악어들의 생태를 구경하며 하루를 보냈고, 또 형님이 일하고 있는 주립대학에 들러 점심을 함께 먹은 뒤 그가 드나드는 체육관에 가서 라켓볼을 치기도 했다.
더위로 다니기가 싫어진 날은 아무도 없는 집의 뒤 뜰 잔디밭에 공기총을 들고 나가 잔디에 배를 쭉 깔고 엎드려 매달아 놓은 깡통을 향해 쏘아 댔다. 그리곤 뒤뜰에 있는 토끼들을 쫓아 뛰다가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날 나는 에어컨으로 시원한 집안에 앉아 동물비디오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제니퍼 엄마가 밖으로부터 흰말을 타고 들어왔다. 내가 말을 잡고 그녀가 껑충 뛰어 내렸다. 어느 덧 그녀와 나는 벗은 나체가 되었고, 우리는 나란히 수영장 풀 가로 갔다. 갑자기 그녀가 나를 포옹했다. 나는 잭이 오지나 않을까 두려워, 형님이 돌연 들어오지나 않을까 두려워, 그녀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그러나 그녀는 완강했고 나는 힘없이 그녀에게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몽정을 하다가 놀라서 언뜻 선잠에서 깨었다. 땀이  질펀하게 흘러 내렸고, 맥은 빠지고 피곤이 엄습했다. 나는 혼자 사는 내 삶을 원망했다. 그리곤 별거중인 아내를 원망했다. 나는 내심으로 결심했다. 일요일엔 집으로 돌아가리라, 다시 애틀랜타로 돌아가리라.
그 날도 역시 플로리다의 날씨는 찌도록 더운 날이었다.
결국 우리들은 주말을 기다려 바다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배를 빌리는 데는 성공했으나 멀리 바다로 나가야 하는 낚시는 허락이 되질 않았다. 배 주인이 혹시 멀리 나가서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부담을 염려했으므로 우리는 배를 빌린 것만도 감지덕지 해야만 했다. 대신 우리는 얕은 근해에서 스캘럽(가라비조개)을 잡으러 떠나기로 했다.
배를 띄우기로 한 바닷가 포구까지는 형님 집으로부터 약 100 여 마일이나 되었다. 떠날 때 길을 아는 형님이 핸들을 잡고 그 옆에는 형수가 앉았으며 뒷좌석엔 앤지와 내가 앉았다. 즐거운 하루가 될 성싶었다. 우선 주유소에 들러 차에 개솔린을 채우고 마실 음료수를 사서 트렁크 쿨러에 넣은 후 곧바로 목적지를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제니퍼네 가족은 이미 떠난 후였다.
싱그러운 플로리다, 나무들이 아직도 미개간지인 플로리다의 섶 지대를 푸르게 덮었다. 팜트리 나무숲에 간간이 소나무들이 섞여서 자라고 있는 것이 낯설었다. 그러고 보면 소나무야말로 지구 땅덩이의 주인이 아닐 수 없다. 가는 곳마다 소나무가 없는 곳이란 없는 성싶었다. 오렌지 농장이 여기저기 나타났고, 농장이 있는 곳엔 틀림없이 'Sunkist'의 회사상표가 문패처럼 달려 있다. 마치 긴 플로리다가 온통 'Sunkist'의 단독 소유라도 되는 것처럼.
바다에 가까이 오니 별장처럼 생긴 2 층집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집들이 모두 원두막처럼 아래층이 비어있다는 거였다. 이상하게 생각한 내가 형에게 물었다.
왜죠, 이곳의 집들은 아래에 기둥만 서 있고 텅 비워 있는 게?
집이 아니라 별장이야. 허리케인, 또는 토네이도가 심해서 사람들은 살수가 없고 가끔씩 휴가를 와서 보내곤 하는 곳이지. 허리케인이 와서 물이 범람해도 밑으로 빠지면 그만이니까.
하긴 그랬다. 이곳의 허리케인, 토네이도야말로 여름만 되면 극성이라는 걸 미국사람이면 모르는 이가 없다. 시즌만 되면 그것들은 해적들 같이 플로리다와 텍사스 해안으로 상륙해서 북미 대륙에서의 겁탈과 살육을 일삼는다. 그것들에겐 귀신도 잡는다는 미 해군병력이나 해병대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목적지에 도달해서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배가 정착하고 있는 부두로 나갔다. 수영복들은 이미 착용하고 왔으므로 차안에서 겉옷만 벗으면 준비는 다 되었다. 우리는 얼굴에다 선탠 크림을 바르고 준비해 가지고 온 스노클을 가지고 배로 오르기 시작했다. 형님은 준비해 온 아이스박스를 배에 싣고, 모두 승선이 확인되자 어느덧 잭이 선장이라도 된 것처럼 뱃머리에서 키를 잡고 배를 몰아 갔다. 그는 그 역활에 완벽하게 어울렸다. 배는 일반 보트보다는 컸지만 취사 실이나 탈의실 같은 시설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배가 서서히 선착장을 빠져나가는 동안 나는 갑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뱃길을 제외한 물이 깊지 않아 마치 시골의 논가를 지나는 것 같았다.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바닥엔 수초들이 무성했다. 이곳은 바다라기보다 차라리 늪 지역에 불과했다. 뱃길을 따라 조금을 나가던 배가 섰고, 그리고 잭이 소리쳤다.
자, 모두들 물로 뛰어내려 스캘럽을 건져요! 버켓으로 하나가 되면 집으로 돌아 갈 테니까.
모두는 스노클을 쓰고 준비에 바빴다.
스캘럽이 어떻게 생겼어요?
처음 따라 온 나는 뭐를 잡을지 몰라 형에게 물었다.
일종의 조개인데 껍질에 구멍들이 몇 개 있고, 보라색을 띠는 것만 주우면 되는 거야. 거 왜 중국요리 먹을 때 동그란 조개 해물 먹어봤을 텐데.
나는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따라 스노클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물로 내려가 얼굴을 바닷물에 담그고 수초사이를 들여다보았다. 물은 계속 허리춤을 넘는 깊이였고, 그곳을 한참이나 개구리처럼 떠 다녀 보았으나 아무 것도 눈에 띄는 것이란 없었다. 나는 실망한 나머지 그 자리에 발을 딛고 서서 배에다 대고 소리쳤다.
도대체 스캘럽이 어떻게 생긴 겁니까?
이리 와 보세요. 여기 잡아 온 것을 보세요!
배에 남아 있던 제니퍼 엄마가 소리쳤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한 두어 발짝 옮기는데 돌연 발에 무언가가 밟히는 게 있었다. 나는 엎드려서 그것을 주워 올렸다. 무언지 몰라도 무슨 어패류였다. 사람들에게 보였더니 그것이 바로 우리가 찾고 있는 스캘럽이라는 거였다. 그제야 나는 처음으로 스캘럽이 어떤 모양인지를 알게 되었고, 천천히 그 놈을 찾아 물 속을 헤매기 시작했다.
근처를 휘젓고 돌아다니며 대여섯의 스캘럽을 건져 배로 돌아가니, 형수와 제니퍼 엄마가 큰 모자를 뒤집어쓰고 배에 남아 있었다. 등이 벌써 햇볕에 발갛게 그을러 얼얼해 왔다.
그 때였다. 제니퍼 엄마가 나에게 하얀 티셔츠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냥 돌아다니면 어깨, 목, 등이 다 타서 고생하게 되니 이걸 입으세요.
나는 받기도 쑥스러워, 괜찮습니다. 하고 사양했다.
지금은 괜찮아도 후에 고생하게 되니 입으세요. 그녀가 재차 권해왔다. 나는 티를 건네주는 그녀의 손이 흔들리고 있다고 느꼈다. 옆에 있던 형수가 눈을 찔끔하며 받으라고 권하였다.
나는 그걸 받아서 입었다. 여자용 인 듯 나에겐 팽팽했다. 나는 혹시 어디서 잭이 바라다보지나 않나 해서 사방을 살폈다. 다행이 그는 물 속에서 스캘럽 건지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안심을 하고 다시 물로 내려왔다.
처음에는 그걸 입고 물질을 하자니 타이트하고 불편한 듯 했으나 점점 길이 들여져서 괜찮아졌다. 나는 다시 스캘럽을 주우러 물에 얼굴을 박고 앞으로 나아갔다.
한참을 나아가니 수심이 깊어지며 바닥에 수초가 사라지고 깨끗한 모래바닥이 나왔다. 발을 딛고 일어서보니 물이 목까지 차 올랐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 헤엄을 치며 돌아 다녔으나 스캘럽을 구경하기는 쉽지 않았다.
잠시 후 나는 물에서 노는 커다란 꽃게 한 마리를 발견했다. 놈을 생포하리라 마음먹고, 모래 속에 숨은 놈을 따라 물 속으로 자맥질해서 손으로 덮쳤다. 놈은 어느새 내 손을 집게로 살짝 꼬집으며 빠져 나와 도망쳐서 다시 모래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놈은 하나도 아닌 두 개씩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나는 장난꾸러기 아이처럼 아픈 손을 비비며 놈을 어떻게 잡아 보려고 궁리를 해 보았으나 놈의 무기를 당해낼 아무런 방도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차고 있던 스노클을 벗어 들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게가 숨어 있는 모래 둔덕을 스노클로 덮쳤다. 놈은 옆으로 잽싸게 빠져 나와 제법 여유까지 보이며 나에게 공격할 채비를 하였다. 공격에 실패한 나는 다시 물만 먹고 밖으로 나와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놈을 잡기란 불가능하였다. 이곳은 그 놈의 영토였고 우리는 나그네였으며 도대체 물이 깊고 연장이 없으니 어찌해 볼 방법이 없었다. 놈은 마치 전성기의 케시어스 클레이가 링 위에서 패터슨을 공격하듯 물에서 서투른 나를 얕잡아 보는 듯 했다. 덤빌 테면 덤벼 보라는 식으로 멀리 도망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놈을 따라 한 참을 소일하다 나는 그만 손을 들고 말았다.
다시 물에다 얼굴을 묻고 헤엄을 쳐 조금을 움직였는데, 모래바닥 위에 커다란 이끼덩이가 서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 자가 넘는 커다란 물체였다. 겁은 났지만 기이하게 생각한 나머지 나는 손으로 슬쩍 그 물체를 건드려 보았다. 물체는 몸을 움츠리며 자리에 꼼짝 않고 머물었다. 나는 다시 좀 세게 그 것을 밀어 보았다. 그러자 물 속에서 그 것이 자빠지며 그 정체를 드러냈다. 커다란 소라였다. 수말이나 코끼리 같은 큰 동물에서나 본 굵고 붉은 성기처럼 소라는 자신의 알몸둥이를 감추려고 껍질 밖으로 나온 부분을 잔뜩 움츠렸다. 그 껍질엔 위장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연륜을 말해 주는 건지 이끼뿐만 아니라 수초까지 뒤덮여 마치 위장한 전사처럼 그 형체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나는 그 것이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다는데 안심하고 그놈을 손으로 집어들었다. 제법 무게가 나가는 큰 소라였다. 나는 그걸 들고 물에다 흔들어 껍질에 붙은 물때며 이끼를 씻어 낸 다음 그놈을 들고 걸어서 배로 돌아왔다.
나는 뜻밖에 얻은 소라 때문에 흥분되어 마음을 진정 시키고 있었다. 우리가 그때까지 잡은 조그만 스캘럽의 수 백 배도 넘는 큰놈의 사냥이 아니던가? 나는 그 놈을 들어 모두가 보란 듯이 배 위에 올려놓았다. 배에는 마침 잭이 돌아와 있었고, 형수와 제니퍼 엄마도 역시 아직 배에 있었다.
어, 콩크(소라)!
잭이 소리쳤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배의 갑판 구석으로 그것을 옮겨 놓았다.
왓 포(뭐 하려고)? 하고 그가 물었다.
이츠 마이 캐취(내가 잡은 거요)! 내가 말했다.
왓 포? 그가 다시 같은 말을 되풀이했고,  좀 한심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더 이상 가타부타 말이 없이 어깨만을 들썩해서 그의 질문을 묵살했다. 그의 손에는 위스키를 담은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
다시 물로 갔다가 얼마 후 내가 배로 돌아 왔을 때, 그 소라는 오 간데 없이 배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마침 옆에 있는 앤지에게 물었다.
소라 어딧어?
살려줬어요, 삼촌.
누가?
제니퍼 아빠가-.
그 소리에 나는 그만 낙담하고 말았다.  언제고 나는 그 커다란 소라껍질만 보면 한 번 가져보고 싶어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 가격을 보면 결코 만만치가 않아 지갑을 만지작거리며 솟구치는 내 욕망을 누르곤 했던 것이다.
어디다 놓아준 줄 아니, 앤지야?
저쪽이야. 하며 앤지가 배의 뒤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스노클을 쓰고 그리로 내려가 다시 물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물 속을 들여다보며 조금을 헤엄쳐 나가니 소라는 거기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소라는 역시 일종의 달팽이였고, 달팽이는 걸음이 느렸다. 나는 미안했지만 다시 그 놈을 건져 배로 가져왔다. 마침 배에서 제니퍼 엄마가 그 광경을 보았다.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 온 기념으로 이걸 가져가고 싶은데요.
그러면 그렇게 하세요. 하더니 그녀가 자신의 짐에서 비닐봉지 하나를 꺼내서 소라를 넣고 묶었다. 그런 광경을 배에 있던 잭이 보았다. 대낮부터 위스키 탓인지, 아니면 볕에 그을려서인지 얼굴이 벌갰다.
그건 뭐 하려고 그래?
알 필요 없어요! 제니퍼 엄마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살려 줘!
그녀는 아무 대꾸 없이 소라를 묶고 있었다.
놓아주라니까, 그건 자연과 생명파괴야!
재차 잭이 말하자, 제니퍼 엄마가 쏘았다.
자기가 잡는 스켈럽은 생명보호고, 어쩌다 소라 하나 잡는 건 생명파괴, 자연파괴란 말이군!
살려 줘-, 그런 것 잡는 건 야만인들의 짓이란 말야!
참견을 말아요! 뭐든지 자기들 하는 짓은 문화인 짓이고, 남들이 하는 짓은 야만인들 짓이라니. 그래서 그렇게 많은 죄도 없는 소, 돼지들만 잡아먹고도 문화인이라고 자처하시는군.
그렇지 우리는 소고기는 먹지-, 하지만 개를 잡아먹거나 하지는 않거든!
아, 그래요, 위대하시군! 인디언들을 잡아죽이는 것 같은 자신들이 하는 짓은 다 합당한 짓이고, 남들이 하는 짓은 다 야만인들의 짓이니까......어쩌면 저렇게 뻔뻔한 위선자들이 있을까.
그들은 다시 언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잡아 온 소라 때문이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애써 건져온 소라를 다시 놓아주어야 할지, 아니면 가져가야 할지를 몰랐다. 그렇다고 또 줏대 없이 도로 달래서 물에다 방생하기도 뭐했다.
입장이 난처해진 나는 슬그머니 배에서 내려와 물 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소라는 제니퍼 엄마의 손에 있었고 이제는 그녀의 처분에 달려 있었다.
한 참을 지나서야 이제는 모두가 철수하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소리가 들려 왔다. 뭍으로 나와 배에서 내릴 때 제니퍼 엄마가 비닐에 쌓인 뭉치를 건네주었다. 나는 아무 소리 없이 받아서 차의 트렁크에 넣었다. 속으로는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때의 분위기가 그런 말조차 나오질 않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승용차의 핸들은 내가 잡기로 하였다. 벌써 오후 7 시가 넘었다. 여름에야 일곱 시가 되어도 해는 중천에 있었으므로 자칫 저녁시간을 놓치기가 쉬웠다. 하루종일 놀았으므로 몸들이 지칠 데로 지친 데다, 떠나기 전 또 싸서 가지고 왔던 음식들을 잔뜩 배불리 먹었으므로 몸들이 천근의 무게로 늘어지기 시작했다. 운전을 하는데 눈이 자꾸 감기고 머리가 아둔하게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옆에 앉아 있는 형님은 벌써 잠이 들어 고개를 꾸벅 꾸벅 했고, 뒤에 앉은 형수가 내가 운전 중에 졸 거라는 노파심에서 자꾸 무어라 말을 걸고 있었다.
  제니퍼네 저렇게 돌아가서 계속 싸움질이나 안 할지 몰라. 아까 배에서도 크게 말다툼하며 싸우던데. 내가 배에 돌아오니까 제니퍼 엄마가 삼촌 편만을 들었다구 뭐 어쩌구 하며 싸우고 있더라니......그 삼촌이 잡아온 소란가 뭔가 때문에 말이유. 제니퍼 아빠 성격이 워낙 과격해서 말이지......
......
형님은 계속 떨어진 잠으로 고개만 주억거렸다.
잭이 올 데 갈데 없는 와이프를 배려해 주기는커녕, 질투를 하지 않나......와이프를 약자로 보고 얼마나 괄시를 하는지......살수록 말 못한다고 무시하고.짐승 취급하는 걸......
형수는 지껄이고 형님이 자느라 대꾸가 없으니 하는 수없이 내가 거들었다.
그들은 어떻게 만났어요 처음에?
8군에 다니는 친구 소개로 서울에서 만났다고 하던데, 그 자세한 내막이야 우리가 어디 알 수 있수? 따라 다녀 본 것도 아니고.
형수의 말에 의하면, 당시에 그녀는 미국사람이라면 다 배우 록 허드슨은  아니라도 어쨌든 멋있다는 환상을 가졌으므로, 그를 성격이 맞는지 아닌지 알아보지도 않고 쉽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멋없고 실용적이기만 한 미제물건에 금세 환멸을 느끼듯, 기대하던 환상은 금세 깨어지고 말과 문화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해 그 갈등을 일과 삼아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게다가 과격한 남편의 성격 때문에 사사건건 부딪치고 그럴 때마다 이곳의  엄격한 사법제도와 풍습으로 신체적으로 위해는 받지 않는다 하나, 그 비슷한 위협은 늘 느끼며 살고 있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그러면 이 넓은 땅에 오도 가도 의지할 곳도 없으니 무척 외롭고 서럽겠네요.
서럽다마다, 하나 뿐인 딸 제니퍼도 어릴 땐 안 그러더니, 이젠 말 못하는 엄마, 차이니스 같이 생긴 엄마가 창피하다고 제 엄마 알길 우습게 알죠. 친구들과 어울려 저희 엄마를 꼭 인디안 취급하는 걸 뭐. 창피하다고 학교에서 엄마 데리고 오라고 해도 제 멋대로 부르지도 않고......
그, 그래요? 한 가족인데 그러면 어떻게 살아요?
그러니 서럽죠. 가끔 나한테 와서 하소연하는데, 듣기에도 딱하더라구요. 식구래도 말 잘 통하지 않죠, 먹는 식성 다르지요, 문화 차이로 좋아하는 거 다르지요, 예를 들면 듣고 즐기는 노래 같은 것도 다 다르니......제니퍼 엄마 저렇게 맘 못 부치는 거 다 이해가 가요......툭하면 도망이나 가고싶다고 하는데......그렇다고 다 늦게 어디로 도망칠 수도 없고......처음에 미국에 와선 세월이 가면 다 배워지고 좋아지겠지 생각하고, 세상 부러운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세월이 가도 실력 느는 건 없고 오히려 나이 먹으면 모든 능력이 떨어지지요......이젠 유학생 부부들만 보면 저렇게 말이 같은 제 나라 사람끼리 사는 게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것처럼 부러운 게 없다고 하데요. 옆에서 보기에도 딱하긴 해요.
차는 깜깜한 플로리다 밤길을 짐승처럼 달리고 있었다. 낮같으면 도처에 널려 있는 오렌지 농장도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가끔 벌레들만이 차창으로 달려들어 가미가제식 자살을 감행해 몸들을 박살냈다. 형수는 계속 무어라 말하고 있었지만, 피곤이 몰려 막무가내로 잠이 쏟아져 내렸다. 이대로 어떻게 무사하게 집으로 달려 갈 수 있을지 조차도 모를 일이었다. 형님의 코고는 소리가 형수의 말소리를 압도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형님의 가족을 따라 교회에 갔다. 교회는 미국사람들이 다니는 교회였고, 미국목사의 설교는 웬만큼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는 그 뜻이 쉽게 들어오질 않았다. 형수는 목사의 설교 도중 고개를 돌려가며 제니퍼네 식구들을 찾았다. 그들도 이 교회를 다닌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집회가 끝나도록 그들은 교회에 나타나질 않았다.
나는 예배가 끝나고 아파트가 있는 애틀랜타로 향해 떠났다. 그리고 그들의 소식을 들은 건 며칠이 지난 후였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다음날 제니퍼 엄마는 계속된 언쟁 끝에 잭의 총에 희생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형수가 제니퍼를 통해 알아낸 바에 따라 전해 준 그 전말은 다음과 같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잭은 진종일 소비한 위스키 때문에 차 운전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제니퍼 엄마가 운전대를 잡고 시내를 빠져 나오는데 술 취한 잭이 계속 횡설수설하더니 돌연 한다는 소리가, 뎀 퍽킹 유 러브 힘, 던츄?(너 그를 사랑하지, 그렇지?) 라고 마음속에 두었든 말을 하였다. 그 말이 말 같지 않다고 생각한 그녀는 아예 아무 말대꾸 없이 계속 차를 몰아가고 있는데, 그는 다시, 솔직히 말해! 아니면 둘 다 내가 죽여버리고 말 테야! 하는 것이었다. 화가 난 그녀가, 그래, 그렇다, 죽일테면 나 먼저 죽여봐라! 하고 대들자, 잭은 냅다 주먹으로 그녀의 면상을 후려쳤고, 그 바람에 차는 옆으로 비틀대다가 서버리고, 당황한 그녀가 마구 크랙슨을 눌러 울려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차안에서 계속 옥신각신하게 되었고 그런 와중에 돌연 밖으로부터 전지 불이 비치는 바람에 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왔는지 정복 경찰 두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이 문을 열고, 무슨 일입니까? 하고 물었다. 울고 있던 제니퍼 엄마는 몇 대 얻어맞은 얼굴이 이미 멍들고 부어 있었으며, 잭은 남이 보기에도 술에 취해 험한 몰 꼴을 하고 있었다.
잭은 그 자리에서 배우자 폭행죄로 연행되었다. 그리고 그날밤을 경찰서 구치소에 들어가 보내야 했다. 앞으로 재판을 거쳐 실형을 살게 될지도 모를 그는 다음날 상당한 보석금을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의 감정의 앙금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고, 오히려 잭은 보복심에서 집에서도 언쟁과 폭력을 일삼다가 집에 보관해 둔 총을 꺼내 아내를 살해하게 되었다는 거였다.   그 끔찍한 소식을 들은 후 나는 허탈해져서 공연히 껍질로 남은 소라를 쳐다보았다. 혹시 그날 저것 사냥이 아니었다면 아까운 한 생명이 희생되는 불상사는 없지 않았을까 하고 부질없는 생각들을 하다가, 그녀의 하얗고 깨끗한 탱크셔츠와 반바지를 아쉬운 듯 머리 속에 떠올린 건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그 소라껍질을 가져다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끝)
(계간) 리토피아 2005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