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현대시문학사를 공부하면서 역사의 진통을 겪는 과정에서도 문학은 그 맥을 끊임없이 이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방 이후 남북분단의 아픔과 민족전쟁인 6.25를 거치면서 사회는 그야말로 온갖 역경을 겪는 수난의 연속이었다. 독재와 부정부패에서 벗어나 억압의 사슬을 끓고 자유민주주의 정치를 염원하며 유혈의 4.19의거를 통해 민주혁명이 시작되는 60년대를 맞이했다. 정치, 사회가 이런 아픔을 겪을 때 한국의 문학은 어떠했을지 살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우리 시를 기술하고자 한다.


2. 순수시, 참여시로 대립되는 60년대의 문단

1950년대부터 60년대를 경유하면서 문화적 총량은 가속적으로 증대되었으며 시대를 추진시키는 대중들의 각성도 광범위하게 확대되었다. 문화의 공유로 인해 이루어지는 공감대는 사회적 통제가 허용하는 한계를 넘을 정도로 확장된 셈이다. 1960년대 시는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사회적 기능을 지녀야 하며 사회의 선도적인 비판적 지성이 되야 한다는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전환점이 되는 시기로 유치환, 조지훈 등 생명파 시인들도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의 저항의식을 시로 형상화하였다.
"눈은 살아있다/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김수영의 '눈'의 일부로 상징적 의미를 전달하면서 사회의 부조리와 많은 병폐들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말하지 않는다고 눈조차 없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60년대 초 자유 민주주의의 한계와 민중을 말하고 있으며 모든 외세를 거부하면서 이 땅의 흙을 주장한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에서도 시대정신을 살펴볼 수 있고 4.19 정신의 문학적 표현이란 의미와 함께 참여시의 한 중심에 있다고 본다. 김수영은 엔솔리지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참여하다가 참여시 운동의 선두주자로 나서게 된다. 현실의 질곡과 고통을 직시하면서 현실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이웃들과 연대성을 확인하고 사랑과 용기로서 낙관적인 미래를 노래한 이성부는 개인의 고통도 역사적 공동체의 시련이라는 연장에서 참된 의미의 힘을 지닐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어령, 김수영을 중심으로 한 순수 참여 논쟁과 65년에 창간된 <창작과 비평>에서 이론적 주장의 뒷받침으로 인해 공감대를 크게 확장하게 된다. 참여시가 세인의 주목과 사회적 관심의 대상으로 확대되었다고 해서 언어예술의 시는 어떻게 형상화되어 있는 가의 성패를 좌우하는 순수시 또는 전통시의 세력이 문단전체에 광범위하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60년대 문학의 주류를 이루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순수시 전통은 시의 사회적 기능보다도 미적 기쁨과 감동을 통한 예술적 본질을 더 강조하면서 현실 불만의 도식성과 획일성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라는 측면을 지녔다. 순수시 계열에서 각기 편차는 다르지만 서정주, 유치환, 조지훈, 박목월, 김춘수, 전봉건, 김구용 등의 시단의 중추시인들이 각기 독자적인 세계를 탐구하고 있었으며 문단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60년대 순수시 운동은 내면탐구라는 기치를 들고 '현대시' 동인들이 주축이 되어 서정과 주지적 사고를 결합하여 새로운 시의 지평을 넓혀보려는 동인들의 지나친 사물과 언어문제를 집착해 난해시를 유발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한 반면 참여시 못지 않게 왕성하게 추진된 60년대 시적 노력을 기울여온 허만하, 주문돈, 박의상, 이수익, 이혜령, 마정하, 이유경, 오탁번, 김종해, 이승훈 등이 모여 우리 시를 살찌우는 버팀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각별한 것이다.
50년대 성찬경, 황동규와 60년대 김영태, 정현종, 정진규, 오규원 등은 '현대시' 동인 외의 독자적 행보를 하면서 내면 의식과 언어실험에 대한 관심이 개성적으로 표출되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고, 황동규의 '풍장'을 보면 "내 세상 뜨면 풍장을 시켜 다오/섭섭하지 않게/옷은 입은 채로 전자 시계는 가는 채로/손목에 달아 놓고/아주 춥지는 않게/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군산(群山)에 가서/검색이 심하면/곰소쯤에 가서/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배가 육지 허리 대는 기척에/잠시 정신을 잃고/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손목시계 부서질 때/남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살을 말리게 해 다오/어금미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바람과 놀게 해 다오."와 '비가' 연작은 순수와 참여를 아우르며 독자적 모습으로 살아남은 60년대의 비극적 절창이라고 할 수 있다. 김형태의 <유태인이 사는 마을의 겨울>에서 의미전달보다는 이미지와 음악성의 요소에 주력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실험해 보이고 있고, 현대시 동인에서 탈퇴한 정진규는 불 가시적인 존재에 대한 막연한 탐구는 필연적으로 아무것도 만나지 않은 만남과 같은 결말을 보이고 있다. 정현종은 시에 근본적인 동력을 공급하고 있는 것은 죽음과 삶의 양면적인 긴장관계로 형이상학적, 역사적, 현실적인 것이든 세계의 의미가 공허하고 고통스럽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오규원의 시에서는 서로 생각해 온 것들이 상당부분 해체, 변형되고 재조직, 재구성되면서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기보다 일상적인 언어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4.19를 전후한 상황의식의 외면화와 내면화를 통틀어 우리시의 폭과 깊이를 확충한다는 점에서 사회와 현실로 나아가지 못한 시적 충동이 내면적 자의식으로 향함으로서 참여시와는 다른 방향에서 난해시가 시도되기도 한다. 한편 60년대는 근대화로 인해 전근대적이며 전원적인 농촌경제가 무너져 갈 때 김광섭은 파괴되는 자연과 인간성 상실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단순, 소박한 언어로 자유와 평화의 사상을 그렸다. '성북동 비둘기' 는 현실상황을 바라보면 대립과 투쟁이 아니라 너그러움과 사랑을 통해서만 참다운 삶의 길을 갈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수많은 신인들이 등장하지만 발표지면은 좁아지면서 '60년대 사화집' 도인, '현대시'동인, '신춘시', '시단', '사계', '시와 시론' 등 동인지 시대의 개막이 열리게 된다. 69년에는 최초의 시전문지 '현대시학'이 전봉건의 주재 하에 창간되었다. 60년대의 시는 해방 전의 현대시를 기반으로 해방공간과 6.25체험의 50년대 시를 징검다리로 살았으며 본격적인 현대시가 전개되어 식민지 체험시대의 우리시가 한글세대의 본격적인 현대시로 전환하게 되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3. 1970년대 산업화 시대의 시적 대응

70년대는 민중시가 산업시대의 그늘진 애환과 더불어 전형을 이루게 된 것은 사회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탈바꿈하는 과정으로 균형적 발전보다 급격한 변화로 농촌 인구는 점차 대도시의 산업현장으로 흡수되기 시작한 때이다. 60년대 시문학을 순수와 차별하는 것으로 상징되었다면 70년대는 이 양분된 두 갈래가 세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시의 서정성보다는 시의 사회적 대응이 깊게 각인되면서 서정에서 현실로 부각되는 시기였다.
60년대의 참여시 운동은 70년대에 와서 신경림, 고은, 이성부, 최하림, 조태일, 김지하 등으로 이어지면서 리얼리즘시의 성가를 높였다. 농촌의 공동화 현상에 주목한 신경림은 이용악, 백석, 오장환 등에 의해 40년대에 성취된 리얼리즘적 서정성을 70년대의 과제로 부각시킨 문학사적 이정표로 삼고 있을 때 김수영의 비판적 계승자인 김지하는 권력의 비리와 부정을 비판하여 세인의 주목을 받으며 담시 '오적'을 통해 삶의 고통을 외면하고 민중을 억압하면서 부정부패와 호화사치 생활을 누리는 부당한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조태일은 억압당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시를 통해 억눌린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거짓을 타파하고 진실의 길로 나아가려는 시적 순수성의 표현일 것이다. 승려시인인 고은은 70년대에 들어서 자연과 변환 속에서 삶의 허무나 원리를 밝히는 초월주의 적인 면모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으나 80년대에는 민중적 삶의 바탕을 둔 사회 역사적 현실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다. 정희성은 절제된 언어 속에 민중의 감정을 용해한 민중시의 모범으로 경직화된 70년대 후반 민중시에 반성적 징표가 된다. 황동규는 사회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부정과 비판을 주요한 시적 주제로 삼으면서 시대의 고통스러움을 절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정현종은 시대적 어둠이 자극하는 고통에서는 자유롭지 않으며 '편지'라는 소통의 형식을 은밀한 통신으로 생각하고 있다. 허무적 감정을 강렬하게 각인시킨 강은교, 서정적 감각의 시인인 최하림 역시 시대의 아픔을 시인의 아픔으로 객관화시킨 당시의 시인들의 공통적인 감성이었다.  
<70년대 젊은 시인들>에 수록된 감태준, 김광규, 김창완, 나태주, 노향림, 송수권, 이성복, 이성선, 이하석, 정호승, 조정권 등 17명의 시인들의 기질이나 개성의 편차는 있어도 이들의 시상에 깔린 좌절과 어둠이 주조 음이라는 정신적 상황을 공통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정신의 가치와 물신의 추구가 아니라 인간성의 옹호를 강조하는 김현승의 청교도적 금욕주의는 물질과 권력만능의 시대에 정신적 가치를 가식 없는 목소리로 일깨워 주고, 전봉건의 시에서는 비정한 적대감을 인지할 수 있으면 70년대 시의 동력선인  이양극단에 놓일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조정권의 '근성'을 통해 어둠의 상황을 고통으로 파악하고 인내와 초극의 의지를 제사하면서 '벼랑끝'을 보면 "그대 보고 싶은 마음 죽이려고/산골로 찾아갔더니, 때아닌/단풍 같은 눈만 한없이 내려/마음 속 캄캄한 자물쇠로/점점 더 벼랑끝만 느꼈습니다/벼랑끝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가다가 꽃을 만나면/마음은/꽃망울 속으로 가라앉아/재와 함께 섞이고/벼랑끝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라며 시를 통해 첨단적인 위기의식은 시대적 의기의식의 저변을 표현하면서 70년대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70년대는 산업시대의 몰입은 물신주의를 극대화 시켰으며 메마르고 비정한 정신상황이 지배했던 시기로 고통과 어둠, 위기로 인식되어 전진하려는 시대의 힘은 강제적으로 통제하려는 유신정권이 시대를 관류했기 때문이었다. 신대철은 독자적 어법과 신선한 감각은 전통적인 서정시의 영역을 새롭게 확장한 것으로 주목되지만 현실의 압력이 가중되고 민중시의 추진력이 시단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지향점을 상실한 것이 커다란 아쉬움이다. 정호승은 서정성에 민중성을 가미한 시인으로 개인의 집착을 넘어서는 슬픔은 사회적 힘을 갖고 있으며, 나태주는 간결한 시어의 가락이 서정적 여운을 동반하고, 송수권은 전통 지향성의 시보다 비평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김소월, 박목월, 박재삼으로 이어지는 전통적 서정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김광규는 참여시의 격앙된 구호나 순수시의 난해성을 극복해 낸 균형 잡힌 시정신의 신진으로 평가를 받는다.
7.4공동성명을 이 남과 북의 운명공동체라는 것을 확인한 역사적 의미로 산업화를 통해 자체 역량을 축적하면서 자기 성장의 한 단계를 스스로 확인하는 지점으로 고통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김명인의 '동두천 4'의 혼혈아를 통해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변두리 삶이란 당대 한국인 전체가 가진 자의식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장영수의 '메이비'는 풍요와 힘의 상징이었던 미국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의 자각은 분단현실에 대한 우회적인 접근이 우리가 서 있는 사적 위치를 명백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70년대 시단의 특징은 시론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염무웅, 김현, 김치수, 김병익, 김주연 등의 평론활동과  오생근 김흥규, 김종철, 조남헌, 권영민, 김재홍, 김인환 등 신예평론가들이 등장해 의욕적인 활동을 벌였다는 점이다. 국내외적 상하좌우를 투시하는 복합적 시각을 가질 때 우리는 1970년대의 문학사적 의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4. 1980년대 시 억압과 상실의 시적 변증법

80년 5월 광주민주화 항쟁으로 70년대의 문학을 주도하던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이 강제 폐간이 문단에 가한 충격에서 깨어남으로부터 시작되어 부정기 간행물 무크지의 대응하는데 미술, 연극, 주변 장르로 확산되고 장르 해체론에 직면하게 된다. 기존 권위에 대한 부정과 새로운 시의 실험이라는 방식으로 과격하고 급진적이며 집단적으로 젊은 시인들의 시대였다. 문학사적 시각에서 정리하면 하나는 이성복에서 기형도로 이어지는 모더니즘 지향의 시들과 김정환에서 백무산으로 이어지는 리얼리즘 지향의 시들로 구분된다.
리얼리즘 지향의 시적 흐름 속에 곽재구는 서정과 현실을 적절히 결합시켰다는 점으로 주목해야 하고 박노해와 김용택의 경우 김명인이 지적한 것처럼 노동자 농민을 위한 지식인의 시가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의 힘에 의해 쓰여진 민중시로 시단 전위적인 중심부터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익명의 노동자들의 자각은 소수에게 독점된 전문 시인이라는 특권적 명칭이 광범위한 다수에게 펼쳐 나가게 되는 것으로 사회, 문화적 현상의 반영임에 틀림없다. 김용택의 경우 토방에서 목메게 부르는 부모는 대지에 뿌리박고 사는 농민들의 애정 어린 진실이 베어있는 목소리임을 느끼게 하며 곽재구는 사랑과 그리움에서 자유와 역사, 현실을 향해 나가지만 이름 없는 이웃에 대한 풋풋한 사랑은 시적 원동력이 된고 있다.
80년대 모더니즘 지향 시들의 개막은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959년'의 시를 보면 "그 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봄은 오지 않았다 복숭아나무는/채 꽃 피기 전에 아주 작은 열매를 맺고/不姙의 살구나무는 시들어 갔다/소년들의 性器에는 까닭 없이 고름이 흐르고/의사들은 아프리카까지 移民을 떠났다 우리는/유학 가는 친구들에게 술 한잔 얻어먹거나/이차 대전 때 南洋으로 징용 간 삼촌에게서/뜻밖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놀라움도 우리를 無氣力과 不感症으로부터/불러내지 못했고 다만, 그 전해에 비해/약간 더 화려하게 절망적인 우리의 습관을/修飾했을 뿐 아무 것도 追憶되지 않았다/어머니는 살아 있고 여동생은 발랄하지만/그들의 기쁨은 소리 없이 내 구둣발에 짓이겨/지거나 이미 파리채 밑에 으깨어져 있었고/春畵를 볼 때마다 부패한 채 떠올라 왔다/그 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우리는 봄이 아닌 倫理와 사이비 學說과/싸우고 있었다 오지 않는 봄이어야 했기에/우리는 보이지 않는 監獄으로 자진해 갔다"라고 하듯 개인적 독백처럼 들리지만 황폐한 현실에 대한 공통적 인식을 예민한 감성으로 포착하며, 황지우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뒤돌아보면서도 검은 탄가루가 묻은 손으로 전진하는 80년대 막장으로 모더니즘 지향의 전위적 해체시의 선택으로 시적 언어의 활달함은 풍자적 정치성을 발산할 때 진가를 발휘한다. 박남철은 철저하게 자의식 적이며 고정관념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며 강력한 비평시를 기술하게 된다. 이런 해체시는 가치관이 무너지고 생활양식이 바뀌면서 감정의 질까지 달라지는 상황에 예민하게 대응하는 방법의 하나로 기계문명과 자본주의적 모순에 남다른 성찰을 보여주는 최승호와 김승희 시인이 있다. 89년 유고시집으로 간행된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은 억압의 시대를 상징하면서 억압을 깨트리고 나가는 섬세하고 유연한 감각으로 인해 80년대를 뛰어넘어 90년대의 젊은 세대에게 길고 지속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이처럼 80년대는 파쇼적 힘의 권위는 있었지만 부성의 힘이 존재하지 않는 기성의 권위가 흔들린 시대로 농촌사회의 해체와 타락한 도시문화의 거대화로 새로운 세대들이 믿고 의지할 전통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월북작가의 해금이나 통일논의에 대한 개방은 통제되었던 사회적 제약을 어느 정도 자유스러워졌음을 뜻하기도 했다. 개방적 조치들은 한국문학사의 정통성을 바로잡고 온전한 문학사로 서술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5. 나오면서

우리의 현대시문학사를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시인들을 중심으로 시를 살펴보았다. 앞 시대로부터 이어온 전통과 맥의 흐름이며 새로운 변모를 꾀하였다고 하나 그것은 정치, 사회가 가져다 준 산물에 불과하며 서정시에서 모더니즘으로 변천하고 순수시와 참여시의 대립을 겪으면서 70년대의 산업화 시대는 정치적 혼돈과 노동자 농민의 해체를 겪는 수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가의 불행은 시인에게 행복(國家不幸之 詩人幸)이라는 문구를 보더라도 선구자적 역할과 문학이 대중에게 정신사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80년대에 한국문학사의 정통성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해금을 하게 된 것은 오랜 아픔과 고통의 터널에서 잉태한 산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