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처방

2012.07.06 11:02

노기제 조회 수:0

20120704                황당한 처방

   밥 안돼요. 현미밥도 안돼요. 잡곡밥도 안돼요. 야채하고 생선, 고기만 잡수세요. 옥수수가 몸에 좋잖아요. 브로커리도 좋으니까 많이 드시구요. 커리훌라워는 몸에 나쁘데요. 단것들 물론 안되구요. 밀가루 음식 절대로 안돼요. 몸이 아주 안 좋으시네요. 혈이 막혀서 뚫어야 해요.
  
   늦깍이 카이로프랙터가 되어 상경추만 전문으로 진료한다는 친구와 점심을 하다가 합석하게 된 분이 감성 진료를 무료로 해 주겠단다. 평생 내가 어느 과에 속하는지 모른채 살던 터라 솔깃했다. 과연 난 이과에 가까울까  문과에 가까울까. 그것이 갑자기 알고 싶어 졌다. 게다가 공짜라는데 진료 한 번 받아보자.
  
   친구와 오피스를 나눠 쓰는 분이니 친구 오피스로 따라 갔다. 진료용 베드에 똑바로 누워서 다리를 세우고 한 쪽 다리를 들고 자신의 지시에 따라 힘을 주면서 저항을 하라는 주문이다. 여러 차례 똑같은 주문을 몇 차례 하더니 이과네요. 매번 배 위에 뭔가 올려놓으며 “자아 힘 줘 보세요.” 처음엔 제법 저항을 하며 내가 이기는 듯 하더니 뭔가 배위에 올려놓은 후엔 다리나 팔이나 전혀 힘을 쓸 수가 없게 되곤 했다.
  
   이과에 속한다는 판정을 받고, 그럴 리가...난, 여러 정황으로 보아 문과 생으로 살고 있는데...“이과세요. 그렇게 나오는데요. 잠간 시간 있으시면 몸 전체에 어디가 나쁜지도 금방 알 수가 있는데...” 설마 그것도 공짜는 아닐테고, 얼마냐니까 석 달에 350불,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진료 받고, 그에 따른 비타민 값은 따로 지불하란다.
  
   그러게 그러게 공짜 좋아하다 딱 걸린 걸, 어쩌겠나. 그냥 돌아 나올 수가 없으니. 결국 다시 진료용 베드에 눕고 똑 같은 방식으로 팔씨름 하듯 힘주고, 힘 빠지고를 거듭하더니 처방을 내린다. 오늘은 비타민이 다 없으니 다음 주에 진료하고 비타민을 받아 가란다. 왜 이럴 때 난, 아무 저항도 못하며 시키는대로 350불 카드로 긁고 그 다음 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또 찾아 갔다.
  
   첫 날 진료는 한 15분은 걸린 듯 했는데, 이번엔 단 3분 정도 첫 날과 같은 방식의 진료로 필요한 비타민이 여섯 종류에 합이 34알. 날마다 세끼 식사 후에 복용하라며 오늘 점심치는 아예 여기서 먹으라고 병을 뜯어 쉴 틈도 없이 이건 세 알, 이건 다섯 알, 합계 12알을 건넨다. “어디 수술 한 곳 있죠. 거기 바이러스가 생겨서 아주 안 좋으네요.” 수술한 적 없다니까, 제왕절개로 애기 낳았죠? 바로 거기란다. 정상 분만도 안 해 봤는데 제왕절개라니. 한 알은 그곳에 매일 세 번씩 바르란다. 제왕절개가 아니면 애기 낳는 곳, 거기에 바르면 된다나. 날마다 먹는 종합 비타민 한 알도 어떨 땐 목에 걸려 잘 못 먹는데 이걸 어떻게 먹나......“잘 넘기시네요. 난 한 알도 못 넘기는 데. 비타민 값 72불입니다.” 또 카드 긁었다.
  
   일주일 동안 곡기 끊고, 야채만 먹으라고 해서 옥수수, 호박, 감자, 고구마등 배 채울 야채들 먹어 보니 무지 달더라. “안돼요. 옥수수, 호박, 감자, 고구마, 당근, 가지 뭐든 단 거는 먹지 마세요. 고기, 생선 많이 잡수세요.” 고기 생선은 원래 잘 안 먹는 식성이라 안 먹으니 도무지 뭘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을 판이다. 무슨 근거로 이런 처방이 나왔는지 알려달라 했다.
   “
   내가 어떻게 알아요? 검사 결가 그렇게 나오는 걸.” ???????????????
   난 바본가? 이쯤에서 반기를 들어 따져야 하는데 또 돈 주고 비타민 6병 받아 왔다. 며칠을 열심히 처방대로 그 많은 비타민들을 복용하며 배를 곯았다. 그러다 비타민 병들을 주욱 꺼내 놓고 첨가물을 찬찬히 읽어 봤다. 아니. 이러니 저러니 이런 저런 먹지 말라던 것들이 첨가물에 있다. 설탕도 쏘이도 심지어 콜레스테롤까지 있다. 콩종류도 안되니 두부도 먹지 말라더니.
  
   안되겠다. 더 이상은 끌려 다니지 말자. 다시는 진료 받으러 가지 말자. 아직 남편에게 말도 못했지만 알릴 수도 없다. 당장 불호령이 떨어질 터. 양의도 아닌, 한의도 아닌 저들에게 멍청하게 돈 주고, 비타민도 아닌 건강식품으로 분류 된 알약들을 잔뜩 먹고 있는 사실이 들통 나면 약사인 남편이  잘 했다 할리 없다. 남편 핑계를 대고 나머지 진료비는 환불을 부탁했다. 닷새나 답이 없더니 친구에게 확인을 했는지 몸이 아주 건강 해 지실 기회를 포기하셔서 많이 아쉽고 안타깝다는 부언과 함께 환불을 받았다.
  
   그제야 정신이 좀 들면서 약병 겉에 찍힌 날짜며 회사며 자세히 읽어 봤다. 어라? 이거 다 기한이 지났잖아?  6/13/L1111, 4/14/1213, 2/14/L2111, 01-14L1112, 03-14L212,12-13L1111.
  
   기한이 지났다는 확신과 함께 소비자 고발 센터에 신고 했다. 알약들 남은 것 반환하고 진료비도 몽땅 환불을 원했다. 다시는 바보짓 하지 말리라 다짐도 했다. 결국 다리가 됐던 친구는 내 전화에 답을 안 한다. 다만 오피스를 같이 쓰고 있는 사람 때문에, 이렇게 물거품이 되야 하는 40 년 지기 친구였나? 그런 사람들이 기한이 지난 약들을 팔 리가 없다. 환불 주장할 용기를 얻기 위해 잠깐, 내가 헛것을 읽었던 걸게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물론 돈 422불 날리고 친구를 택했다. 연락을 해도 답을 안 하는 친구는 무슨 마음일까. 공교롭게 꼬여가는 세상에 얽히지 않고 살 재간은 없다. 어찌 살아야 옳게 잘 어울려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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