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그로브에서 캐나다 록키까지(2)

2006.08.30 10:56

정찬열 조회 수:276 추천:5

  고요한 아침, 잔잔한 물 위에 낚시대를 드리우는 저 태공은 신선이다.  아름다운 산과 강이 함께 어울려 누구라도 저 강에다 낚시를 드리우면 그대로 신선이 될 것같다. 이 아침, 나도 저기 앉아 신선이 되어볼까.
  강줄기를 따라 길이 나 있다. 수면에 어린 산 그림자랑 푸른 하늘이 그대로 한폭의 그림이 된다.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한 물 위로 물새 한 마리 먹이를 찾아 날개를 치며 수면을 스쳐간다.  물결 하나 찰랑거리더니 길게 여울져 간다.  
  5번 Fwy를 두 시간쯤 달리다가 잠깐 휴식을 취했다. 다시 출발하여 달리다 보니 93번이 나왔다.  93번 도로에 들어선지 한 10여분쯤이나 되었을까, 계곡이 높아지고 골짜기를 몇 구비 휘감아 돌아 나가더니만 우리들의 눈앞에 장대한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다.  Canadian Rocky의 최고봉이라는 Mt. Robson이 우리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게 아닌가.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우리를 굽어보는 그 위용은 우리를 압도 했다. 곰 조각으로 만든 이정표가 입구에 서 있다.
  오후 1시 정각,  Jasper Down Town에 도착하였다. Voncouver와 이곳은 1시간의 시간차가 있다고 한다. Rocky산 관광의 중심지답게 시내는 세계에서 몰려 온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일행을 모두 시내에 내려주고 주차장이 마땅치 않아서 주택가 한적한 곳에다 차를 세워놓고 시내로 걸어 들어갔다.  아이들이 피자를 먹겠다하여 피자집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점심을 먹는 동안에 몇 군데 선물점을 둘러보았다. 한국인이 주인으로 있는 선물점이 있었고, 식당도 한식점이 두어군데 눈에 띈다.
   기차가 금방 도착했는지 많은 사람이 타고 내린다.  여행 안내서를 구해서 읽어보니 캐나다는 기차여행이 일품이라고 한다.  워낙 나라가 광대하기도 하려니와 각
관광지를 이어주는 기차여행코스가 거의 완벽하게 마련되어 있어서 자동차여행 보다는 기차여행이 더 편리하다고 했다. 언제쯤 기차를 타고 캐나다 곳곳을 여행해보고 싶다.
  점심을 끝내고 우리는 Jasfer북쪽 호수지역 여행에 나섰다. 나무숲 사이를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30여분 갔을까. 언덕을 넘어서니 호수가 나타났다. 달력에서 많이도 보아왔던 그 호수, 호수 한 가운데 몇 그루의 나무가 서있는 작은 섬이 있던 그 아름다운 Medicine Lake다. 일단 이곳은 오는 도중에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호수가로 난 길을 따라서 다음코스인 Malign Lake로 향했다.
  호수를 끼고 길을 따라 돌아가는데 아이들이 염소가 나왔다고 소리를 지른다. 그래서 앞을 보니 과연 산양 몇 마리가 내려와 길을 가로질러 막아서고 있다. 잠시 차를 세우고 염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고 부산을 떨었다.
   잠깐 올라가니 Malign Lake가 나왔다. Malign이라는 말은 불란서 말로 ‘사악한’ 이라는 뜻인데 Canadian Rocky에서 가장 큰 호수라고 한다. 이곳 View Point인 Samson Peak에 내려서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차있는 곳으로 올라오는 길에
보니 언덕에 시계꽃이 모듬모듬 이쁘게도 피어있다. 별을 부어놓은 것 같다. 밤하늘에 빛나던 별이 낮 동안에 언덕에 잠시 내려와 앉아있는 성싶다.
  오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다시  Medicine Lake가 보인다. 이 호수는 가을이 되면 영문도 없이 물이 줄어들어 말라 버리는데, 이러한 현상을 두려워하여 옛날 사
람들은 Magic 또는 Medicine Lake 호수라 불렀다한다.  ‘새는 목욕탕’ 이라고도 불렀다고도 한다.  나중에 이러한 원인을 과학적인 연구를 통하여 알아냈는데, 가을이면 이 호수의 물이 지하로 수 마일씩 Malign Lake호수로 흘러 들어가기 때문에 물이 말라붙고, 봄 여름이 되면 얼었던 빙하가 녹아서 다시금 호수에 물이 넘치게 된다고 한다.  
  어느새 해가 설핏하다. 마음이 바쁘다. 오늘은 특별히 바쁘다. 구경도 많이 해야 하지만 밀린 빨래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빨래는 저녁에 세탁장이 있는 파킹장을 구해서 하기로 하고 우선 해가 있을 때 구경부터 하기로 하였다. Tram Car를 타고 산 정상에 올라가 록키산 전체를 내려다보기로 했다. 걸어서 약 8km의 작은 길로 등반을 할 수도 있다고 하나 우리에게 어디 그런 시간이 있겠는가.
  Jasfer Tramway정류장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2277미터의 휘슬러 산 꼭대기까지 약 7분 동안 올라간다고 한다.  30인승 Tram Car가 운행되고 있는데 우리 일행의 운임이 $130 이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한다. 아래서 볼 때는 울창했던 나무들이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키가 작아진다. 그리고 산정에는 식물이 전혀 자라지 않는 툰드라 지대가 된다고 했다.
  안내원의 설명이 계속된다. 발 밑에 내려다 보이는 한 뼘짜리 소나무가 무ㅍㅡㅍ을 꿇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다.생존을 위해 무릎꿇고 사는 삶을 배운 것이다. 300살은 족히 먹은 나무라고 한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살아있는 모든 것은 저렇게 환경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기름지고 따뜻한 곳에서 자란 저 아래 나무들은 몇 십 년이면 저토록 크고 우람한 재목이 되지만, 춥고 척박한 곳에서 자란 나무는 삼백년을 자라도 한 뼘 난쟁이나무로 남아있다. 허지만 해발 3,000 미터 높이의 수목 한계선에서 자란 나무가 세계적으로 공명이 가장 잘 된 명품 바이올린을 만들어 낸다 하지 않던가. 한 뼘짜리 나무 한 그루가 우리 인간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Tram Car가 산마루에 올라섰다. 모두 밖으로 나왔다. 산 정상에 서게 된
것이다. 몇 십리 밖까지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절경이다. 대동강 부벽루에 올랐던 묵객 김황언이 이런 경취에 취해 그런 시를 지었을까. 장성일면 / 용용수요 / 대야동두 / 점점산이라. (긴 성을 따라 굽이치는 물결이며, 너른 벌판 저 멀리 까맣게 점 찍은 듯 산,산,산,) 이렇게 쓴 다음에 그 뒤를 잇지 못해 울면서 내려가고 말았다지 않던가.  
  산은 병풍이 되어 사방으로 둘러쳐 있다. 산과 산 사이 질펀한 벌판은 나무로 가득 차있다. 파아란 하늘엔 구름 한 점 한가로히 노닐고, 하늘빛보다 더 파란 물줄기가 강을 이루어 산과 나무들을 휘감아 구불구불 돌아내린다.  물이 흐르다 멈추는 곳은 호수를 이룬다. 먼 길을 달려온 냇물이 저렇게 머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리곤 다시 낮은 곳으로 끝없는 여행을 계속한다. 사람도 물도 구름도 움직이는 모든 것은 여행을 한다.
  바람이 차다. 해발 2274미터라니 백두산보다야 낮지만 한라산 백록담보다 높다. 주위를 둘러보니 보이는 것은 바위와 자갈 그리고 바람에 흩날리는 흙먼지뿐이다. 그러나 계단을 내려서 더 가까이 다가가 보면 이름 모를 풀꽃이 바위틈새 양지바른 곳에 피어나 그들만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나무조차 자라지 못하는 이 툰드라 지대에 가냘픈 풀꽃 하나가 생명을 부지하며 저토록 눈물겹게 아름다운 꽃 하나를 피워내고 있다.
   살아있는 것은 환경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지혜롭게 이겨내고 적응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 가녀린 산꽃 하나가 온몸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 놓이고 저기 놓임을 탓하지 않으며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이름 없는 풀꽃 하나로부터 우리는 삶의 진리를 배우게 된다. 힘껏 살아간다는 것은,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모습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저렇게 감동을 준다.
  시간이 꽤 흘렀다 보다.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기다리는 줄이 꽤 길다. 밖은 바람이 불어 차가운데 건물 안에 들어서니 무덥다. 이윽고 우리 차례가 되어 줄을 서서 천천히 움직이는데 주위에 있는 몇 사람이 코를 손으로 내 저으며 냄새를 쫒는 시늉을 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이 모두 손으로 코를 내 젓는다.  누군가 방귀를 뀌었나 보다.  냄새가 고약하다.  좁은 공간에 냄새를 피웠으니 고약할 수밖에.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일행인 어떤 자매님이 냄새를 피웠는데 바로 뒤에 미국인이 손을 내 저어서 하는 수 없이 자기도 따라서 손을 내 저었다고 실토를 하여 모두 한바탕 웃었다. 아마도 김치 방귀 였으리라.
  해가 설핏하다. 서둘러 잠자리를 잡아야 한다. 오늘은 빨래를 빨아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세탁장이 딸린 곳에 자리를 잡아야만 한다. 한참을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세탁장이 없어서 다시 Jasper쪽으로 올라왔다. 어둑할 무렵 #4 Parking Area에 가서 전기가 들어오는 것으로 예약함.  
  어느새 날이 어두워진다.  자매님들은 서둘러서 저녁을 준비하고 우리 남자들 몇은 오늘도 빨래를 세탁할 수 없게 되어 냄새가 날까봐 바람을 쏘여두려고 차 주위에 빨래감들을 풀어 내 놓았다.  우리 바로 옆에 차를 세워놓은 백인 중년부부가 이 모습을 보며 “Unbelievable"하고 불평을 하는 게 아니가. 무안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여 슬그머니 빨래감들을 챙겨서 다시 차 속에 쑤셔 박아버렸다.
  저녁을 먹은 후 컴컴한 밤길을 걸어 샤워를 하고 왔다. 달이 떠오르고, 별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려올 것만 같다. 아이들은 게임도 하고 자기네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로 손 맞는 친구들이 있어서 저렇게 재미있는 여행이 되고 있다. 아이들의 세계는 아이들끼리 만들어 간다. 어른들도 간단히 와인을 한 잔씩 마시고 얘기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내일 아침 일찍 이곳을 출발하기로 하고 오늘은 다른 날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8월 24일 (여섯 째날)

  새벽 6시 기상.  다른 식구들은 잠자리에 든 채로 가만가만 차를 몰아서 6시 30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함.  어둑어둑한 새벽. 산은 어둠 속에 조용히 앉아있다. 밤 봇짐을 싸서 도망하는 사람처럼. 옆 사람들이 깰 새라, 조용히 숲 속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새벽 산의 품속을 빠져 나온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산이 아직 어둠에 쌓여 제 모습을 들어내기도 전에 가만히 산 속을 빠져 나온, 강이 흐르고 있다. 잠 든 산을 남겨두고 강이 혼자서 떠나가고 있다.  
  새벽 강은 새벽에 일어난 사람만이 바라 볼 수 있다. 새벽에 일어나 강을 따라 걸어가 보라. 강물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귀 기우려 들어보아라. 산은 아직 어둠 속에 잠들어 있는데 강은 저렇게 홀로 흐른다. 시간이 지나면 강이 촐랑거리는 소리에 산은 아침잠을 깬다. 뿌옇게 쌓인 안개를 걷어내고 산이 지지게를 켠다. 날이 밝아오고 산은 조용히 제 모습을 드러낸다. 산이 잠을 깨고 나서야 새들이 졸린 듯 눈을 부빈다.  새들이 날기 시작하면, 세상은 천천히 하루를 열기 시작하는 것이다.
  Sunwatta Fall에 차를 세웠다. 가게에 들르니 사람들이 부시시한 눈으로 새벽 커피를 만들고 있다. 커피향이 좋아서 커피 한잔을 샀다. 아이들은 더 자도록 차에 남겨두고 어른들끼리 걸어서 폭포 구경을 갔다. 마침 사슴 한 마리가 아침 산책을 나왔다가 우리에게 들켰다. 놀라거나 도망가려고 하지도 않은 걸 보니 사람들에게 아주 익숙해 있는가 보다. 사진기를 갖다 대어도 조용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법 날씨가 차다. 두꺼운 옷을 꺼내 입었다. 아이스 필드를 보고 루이스 호스를 구경하는 등 오늘도 일정이 바쁘게 짜여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캐나다 록키 관광의 핵심이 된다. 다시 차에 올랐다. 아이들이 잠을 깼다. 날이 완전히 밝았다. 아침 산 기운이 서기롭다. 말로만 들어오던 세계의 명산 캐나다 록키산의 한 중심을 우리가 지금 통과하고 있다.
  길가 양 옆으로 산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제각기 모습을 뽐내고 있다. 바위 하나
가 우뚝 솟아 그대로 산 하나다. 바위 둘이 나란히 앉아 산, 산이다. 바위 셋이 줄줄히 잇대어 서서 그대로 산,산, 산이다. Jasfer의 산은 이렇게 바위 하나가 그대로 산 하나씩을 이룬다.  비스듬이 옆으로 누우면 그대로 누운 산이 되고, 서 있으면 또 서있는 대로 영낙없이 무슨 모습을 닮아있기 마련이다. 잔설을 머리에 이고 저만큼 줄줄히 서있는 바위들이 아침 햇살을 받고 서있는 모습은, 마치 하얀 빵떡모자를 쓴 아이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우리를 반기러 마중을 나와 있는 성 싶다.  
  길 따라 냇물이 계속 흐른다. 냇물을 따라 구비구비 길이 흐르고 있다.  산이 있어 물이 있다. 그리고 물이 흘러 비로소 산은 아름답다. 산을 두고 물은 흘러가지만 결국 물이 머무는 곳은 산의 품속일 수밖에. 산은 의젓하다. 소리내어 촐랑거리는 것이 물이었지 언제 산이 소리친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오른쪽으로 빙하가 보인다. 빙하가 하늘과 맞 닿아있다. 산과 산 사이에 있는 자그마한 산 하나가 온통 빙하이다. 아마도 저 계곡사이로 물이 넘쳐 나오다 그대로 얼어붙어 버린 모양이다. 해발 몇 피트나 될까.
   Ice Field Center에 도착하였다. 시간은 아침 8시 25분을 가리키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아침을 준비하여 간단히 먹었다.  주차장이 넓다.  어제 밤부터 이곳에서 밤을 세웠는지 군데군데 차들이 세워져있다. 밖에 나오니 바람이 세다.  춥다.
  이동인씨가 가서 미리 표를 사왔다.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시간낭비를 줄여야 한다.  Ice Field를 구경하고 돌아오는데 한 시간 반이 걸린다 한다. 우리 일행의 티
켓값으로 $157을 지불하였다.  Center건물이 독특하다. 나무 계단을 여러 개 올라가서 건물이 있었고 그곳에서 버스를 탔다. 여기에서 Ice Field까지는 버스로 가고, 그곳에서 Ice Field를 구경하는 데는 특별히 제작된 버스를 이용한다고 했다.
  일반 버스를 타고 빙하가 보이는 곳 까지 왔다. “ Snowcoach Tours on the Athabasca Glacier”라는 사인이 보인다. 이곳 콜롬비아 대 빙원은 390평방킬로미터로 북반구 최대의 빙원으로 얼음은 365미터이며 매우 단단하다고 한다. 30개의 빙하가 흩어져있는데 그 중에서도 Athabasca Glacier가 큰 축에 든다고 한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흙먼지가 인다. 빙판 위를 달리는 특수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차가 20여대쯤 있다. 바퀴가 무척 크고 실내는 버스와 같은 모습인데 사방이 유리로 되어있다. 수용인원은 일반 버스와 같은 정도로 약 50여명이 된 듯싶다.
  출발하자마자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언덕을 내려간다. 급경사진 이 언덕이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길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이건 언덕이 아니라 절벽이다. 이렇게 특별한 길을 오르내릴 수 있고 빙판을 달릴 수 있도록 고안하여 만들어진 이 차 한 대 값이 칠십만 달러라고 한다. 700,000만 달러라니. 놀란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차는 어느새 빙하 위에 진입하여 서서히 빙산의 꼭대기를 향해 움직인다. 가는 도중에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고 어떤 곳은 구멍에 막대기가 꽂아있다. 저곳이 바로 빙하가 갈라진 곳인데 깊이가 30미터나 된다고 한다. 빙하가 녹아내린 물이 골을 타고 졸졸 흘러내린다.  한참을 올라가니 어름을 반반하게 정리하여 주차장을 만들어 놓았다.
  모두들 차에서 내렸다. 수 만년 세월을 딛고 섰다. 발밑에 쌓인 세월과 그 세월만큼 쌓여있을 많은 사연을 딛고 이렇게 우리는 빙하 위에 서있다. 먼 머언 후일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딛고 또 이 자리에 서 있을 것인가. 그들은 또 어떤 생각에 잠길 것인가. 이렇게 사람들은 제각기 다음 사람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사라져 간다.
  좌우 양쪽으로 산이 있고 그 계곡사이가 빙하로 덮혀 있다. 산마루에 빙하가 녹아 흐르다니 신기하다. 알래스카에서 보았던, 그 바다에 인접한 빙하와는 또 다른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자연은 이렇게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손이 아리다. 누군가 어름 한 덩이를 손으로 집어든다. 바람이 세차고 추워서 서 있기가 불편하다.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기조차 힘들다.  대강대강 사진을 찍고 차에 올라왔다. 으흐 춥다.
  이곳을 설명하는 여행안내서가 한국어를 포함하여 여섯 나라 말로 되어있다. 국력이 그만큼 커지고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성 싶다.  영어, 불어, 독일어, 일어,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가 바로 여기서 통용되는 언어라고 하니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실속 없이 소비만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샤핑을 하고 모두들 차에 돌아오니 어느새 열한시가 되었다.
   지도를 보니 여기까지가 Jasfer National Park이고 이제부터는 Banff National Park가 된다. Jasfer에서 이곳까지는 103Km이고 여기서 Banff까지는 189Km라고 표기가 되어있다. 캐나다 록키산의 구경은 크게 나누어 Jasfer National Park와 Banff National Park로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주변에 Yoho National Park라든지 Mt. Robson Park등이 있고 주위에 이런저런 볼거리가 많이 있지만 Jasfer와 Banff를 관통하면서 둘러보는 코스가 주요한 관광코스가 되고 있다.
  가는 도중에 루이스 호스를 둘러보고 오늘 저녁은 Banff에서 잠을 잘 계획이다.  점심을 먹고 다음 목적지인 Lake Louise를 향해 출발함. 시간은 12시를 가리키고 있다. 두 시간 가량을 달려 루이스호수 부근 관광안내소에 도착함.  잠시 쉬어 개스를 넣고 이 부근 여행정보를 얻었다.
  먼저 Morane Lake를 들렀다. 길이 험하다. 큰 차를 운전해 들어가기엔 길이 너무 좁고 위험하다. 텐픽스산에 둘러 쌓여있다는 이 호수는 물이 너무 맑아서 하늘과 호수가 맞 닿아있다. 주위에 피크닉을 할만한 공간이 있고, 카누를 즐길 수도 있다고 한다.  
  큰 통나무들이 호수 가상으로 밀려와 물에 떠 있다. 아이들이 그 위를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서 이쪽저쪽으로 잘도 건너다니고 있다. 통나무를 건너 뛸 적마다 나무가 빙그르르 돌아가서 약간 위험한 느낌이 없지도 않았지만 아이들은 힘들지 않게 건너다니고 있다.
  그것을 보고 우리 김훈씨도 동심이 발동했을까. 통나무를 딛고 아이들을 따라 저쪽으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뒤뚱뒤뚱 나무들이 어른의 무게를 못 견뎌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몇 발자국 건너뛰지 못하고 물에 퐁당 빠지고 말았다.  다행이 가장자리라 깊지는 않았지만 물에 빠져 흠뻑 젖은 모습이 우스워서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한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는다.
여기서 Lake Louise 까지는 15Km가 된다고 한다.  차를 돌려서 루이스호수로 향
했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아까와는 달리 길이 번듯하다. 오가는 차량도 아까보다 훨씬 많다.
   Lake Louise가 보인다.  Lake Louise를 가리켜 Canada의 자존심이라 한다던가. Canada에서 가장 유명한 자연호수라 했다. 1731미터의 고도에 위치하며 길이는 2.4km이고 폭은 500m, 그리고 깊이는 90m라고 한다. 원래 인디안들이 작은 물고기 호수라고 불렀던 곳인데 빅토리아 여왕의 딸 루이스의 이름을 따서 루이스 호수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은 Canada 최대규모의 스키장이 있어서 겨울이면 또 하나의 장관을 이룬단다.
  물이 맑고 푸르다. 빅토리아 빙하가 녹아서 흘러온 물이다. 빙하에 포함된 자잘한 퇴적물이 햇빛을 받아 저렇게 신비한 청록색 물빛을 이루는 것일까. 하늘이 호수에 그대로 내려와 있다. 산 하나가 호수에 퐁당 빠져있다. 맑은 호수가 하늘의 빛깔과 깊이를 저렇게 가감 없이 담아내듯, 생각이 맑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그렇게 비추어 보지 않을까.  
  호수가 끝나는 곳을 따라 눈을 들어보면 저 멀리 흰 눈을 머리에 인 산 봉우리가
보인다. 그 봉우리가 그대로 호수에 가만히 내려와 앉아있다. 사람들은 호수에 들어 앉아있는 하늘과 산과 나무를, 그리고 그 위를 나는 새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호수에 빠져있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모든 것이 호수로 흘러가서 거기에  머문다.  그 위에 살아 숨쉰다.
  Lake Louise 옆에 호텔이 서 있다.  호수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한번에 천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이 호텔이 호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자연 경관과 최대한 어울리도록 지어져 있다는 느낌이 저절로 든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적응하는 것은 저렇게 아름답다.
  기념사진도 찍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늦으막히 Lake Louise를 출발하여 Banff로 향했다. 차가 달리는 동안 최대한 편한 자세로 모두 각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비스듬히 누워서 책을 읽는 사람, 묵주를 굴리며 기도를 하는 사람, 밖의 경치를 구경하는 사람,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  
   일단 Banff에 가서 잠자리를 먼저 구하는 게 일이다.  Banff로 가는 길 양쪽
으로 가로수가 곧고 질서정연하게 뻗어 있어서 어릴 적 미술시간에 원근법을 배울때의 일이 생각이 났다.
  오후 5시 15분,  Banff에 있는 Tunnel Mountain Canpguound  R.V Park에 도착했다. R.V Park은 언덕 높은 곳에 위치하고 바로 맞은편에 큰 산이 버티고 앉아있다. 앞위 좌우 사방을 둘러보니 산세가 웅장하다. 눈에 보이는 전경이 과연 Rocky를 대표하는 관광지답다는 생각이 든다.
  안내판이 영어와 불어로 되어있다. 꽤 넓어 보이는 이곳에도 세탁장이 없다. 우리는 일단 자리를 잡아놓은 다음 Banff Hot Spring에 가서 온천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식구들이 온천을 하는 동안 김훈씨와 이동인씨가 차를 가지고 Banff시내에 있는 세탁장에 가서 빨래를 해 오기로 계획을 세웠다.
   온천장은 Banff 시내를 지나 낮으막한 산등성이에 있었다. 시내를 지나면서 보니 자그마한 도시였지만 거리는 깨끗하고 군데군데 꽃을 심어 아기자기하게 가꾸어 놓았다. 관광객을 위한 선물판매소와 식당이 많다. 시내를 빠져나가 다리를 건너 언덕을 올라가는데 맞은편에 멋진 호텔이 눈에 들어온다. 달력 사진에 많이 나오던 그 호텔, Banff Springs Hotel 이다. 내일아침엔 저곳에서 커피를 한 잔 하자고 얘기했다.  
  그 유명하다는 Banff 온천장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크지 않다. 이 온천은 1880년대에 캐나다 태평양 철도작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고, 약효가 특별하다고 하여 한동안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무튼 초창기 이 온천을 중심으로 록키산 공원이란 이름이 붙혀 졌으며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공원으로 발전하게 되었단다.  
  온천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옷을 벗고 들어가 목욕을 즐기는 곳이 아니던가. 탈의실에서 옷을 바꿔 입고 온천으로 들어갔다. 시설은 그런대로 잘 되어있었지만 기대한 만큼 그렇게 훌륭하다거나 수질이 좋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우리가 사는 남가주에는 수질이 좋은 온천이 얼마나 많은가.  
   온천장은 아래층 노천에 있어서 위층에서 환히 내려다보인다.  큰 수영장만큼
의 규모인데 많은 사람들이 온천을 즐기고 있다. 피부색깔이 검은 사람, 흰 사람, 그리고 노란 사람. 그야말로 국제 인종 전시장에 온 느낌이다. 한국인도 많다. 남녀노소가 한데 어울려  목욕을 하고 있다.  
  온천장 안에 있는 선물판매점을 들렀다. 주인이 한국인이다. 케나다 관광지의 어디를 가나 한국인 주인이 눈에 띈다. 주인이 아니면 종업원이라도 한국인을 고용하여 반드시 한국인을 끌고 있다. 그만큼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졌다는 얘기도 되겠고, 한국인이 샤핑을 많이 한다는 반증도 될 성 싶다.
  밖에 나오니 한국관광 버스가 들어온다.  많은 한국인들이 몰려온다. 한국에서 단체 관광을 온 사람들인 모양이다.
  온천을 끝내고 주차장으로 걸어 내려오니 마침 시내로 세탁을 나갔던 김훈씨와 이동인씨가 차를 몰고 들어오고 있다. 시내에 나가서 주차할 곳을 찾았으나 차가 커서 주차장을 찾지 못하고 하는 수 없어 한적한 동네 길가에 차를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둘이서 빨래감이 든 비닐부대를 하나씩 짊어지고 세탁장을 찾아 밴프거리를 활보했다고 한다. 빨래를 마치고 저녁거리 장을 봐서 그것까지 함께 두 손에 들고 시내를 돌아다녔다고 하니, 뒤뚱거리며 시내를 활보했을 두 뚱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여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차 안에다 빨래를 모두 풀어놓고 세 자매님들이 한참을 갰다.  사흘 동안이나 밀린 빨래를 해버려서 속이 다 후련하다고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다시는 "Unbeliable"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게 되었다고 누군가 얘기하여 또 한번 웃었다.
  R.V Park으로 돌아왔다. 장소가 넓직하고 시설이 잘 되어있다. 그리고 누구라도 나무를 가져다 모닥불을 마음껏 피울 수 있도록 나무를 수북이 쌓아놓고 있다. 나무 많은 나라답다. 우리가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 텐트 바로 옆에 있는 식당 겸 휴게실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미국인들이 식사를 마치고 우리에게 자리를 비워주고 떠났다. 우리일행은 그곳으로 자리를 옮겨 밤이 이슥하도록 모닥불을 피우고 술잔을 기우리며 얘기꽃을 피웠다.      
  밖으로 나오니 보름달이 밝다. 달그림자가 온 산을 덮고 있다. 멀리 산 위에 덮힌 눈이 희미하게 빛난다.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하는데 R.V안에서 불을 켜놓고 밤늦은 시간에 독서를 하는 노신사의 모습이 창문을 통해 보인다. 모습이 단아하다.
  오늘 저녁은 우리가 밖에서 잠을 자야할 차례인데 김훈씨네가 밖에서 텐트를 치고 자겠단다. 그렇게 하라고 우리는 차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 밤에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서 결국은 밖에서 자지 못하고 저녁에 모닥불을 피웠던 건물 안으로 텐트를 옮겨 거기에서 밤을 지냈다 한다. 차 안에서 자던 사람은 아침이 되기까지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한집에서 얼어 죽고 데어죽고 한다는 말이 나올 만 하다.

  8월 25일 (일곱 째날)

  아침 늦으막이 7시에 일어남. 새소리에 아침잠을 깨어 일어나 보니 눈덮힌 산봉우리가 멀리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평화가 흘러넘친다. "Good Morning" 아침인사에도 행복이 묻어있다. 모처럼 한가한 아침을 맞았다.
  아침밥을 먹고 어제 말했던 대로 Banff Springs Hotel에서 아침 커피를 한잔 우아하게 먹자고 하여 호텔 구경도 해 둘 겸 그쪽으로 향했다. 호텔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생각보다, 그리고 멀리서 바라보았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고 아기자기 했다. 이 호텔의 객실이 777개라고 한다. 행운의 숫자 “7”이 세 개씩 겹치도록 만들어 모든 손님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었나보다.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진다. 기념사진을 하나씩 찍고 나서 커피 한잔을 마셨다. 다음엔 부부끼리 방문하여 이 호텔에서 묵어가자고 얘기했다. 그때가 언제일는지.
  제법 많은 비가 내린다. 차를 타고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사슴 한 무리가 언덕에서 풀을 뜯고 있다. 아이들이랑 모두 내려 사진을 찍고 한동안 시간을 끌었다. 차는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계속 언덕을 내려가고 있다. 운전하는 김훈씨가 골프장 사인이 보이는데 한번 둘러보고 가잔다. 모처럼 유명한 골프장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 싶어 그러자고 했다.
  언덕길을 내려가다 보니 바로 길옆에 사슴 대 여섯 마리가 놀고 있는데 저만치 티 그라운드에서 한 팀이 막 플레이를 시작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사슴의 무리들이 우리 쪽 길옆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여기도 저기도 사슴이 노닐고 있고, 사람들은 그 사슴과 어울려서 함께 골프를 치고 있는 중이다.  천국이 따로 없다.
  내친김에 크럽하우스도 들러보자고 하여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바로 Club House가 보인다. 기념 될만한 골프용품이나 하나씩 사오고 싶어서 들어갔더니 너무 비싸서 그냥 나왔다.  돈 많은 사람들의 천국이다.
  돌아 나오면서 우리 모두 환갑나이에 한번 다시 와 보자고 얘기를 꺼내자 옆에 있던 이동인씨가 농담삼아 딸아이 수현이한테 “다음에 아빠 환갑때 이곳으로 여행을 보내 줄꺼야” 하고 물으니 “O.K" 하고 대답한다. 이 말이 기록에 남아 혹시 따님 덕분에 캐나다 여행을 다시 오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나오는 길에도 계속 길가 숲속에 사슴이 무리를 지어 노닐고 있다. 골퍼들에겐 한번쯤 라운딩 하고픈, 꿈의 골프장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시내로 나가는 길목에 Bow Falls이 있다. 잠깐 내려서 폭포를 구경했다.
  계속 비가 흩뿌리고 있다. 저만큼 젊은 남녀가 비를 맞으며 걸어간다. 나도 누구와 함께 저렇게 빗속을 거닐어 볼까.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Banff 시내구경을 하기로 했다. 어른은 어른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구경을 하
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10씩 나누어 주었다. 각자가 알아서 시간을 보내다 정해진 시간에 돌아오도록 했다. 이를테면 잠깐 해방을 시켜 준 셈이다. 좋아서 야단들이다. 다행이 비가 그쳤다.
  시내는 관광도시답게 잘 구획되고 아기자기하게 아름다웠다. 비가 그치자 물 먹은 바위산이 한 둘씩 햇살에 제 모습을 드러내며 반짝이고 있다. 그 바위산 중턱으로 안개가 띠를 이루더니 빙 둘러 산을 묶어버린다.
  시내는 거의 선물가게다. 서울옥 이라는 한국식당 간판도 보인다. 몇 군데 돌아다니며 샤핑을 하는데 다시 비가 내린다. 관광 기념품이란게 다 비슷하여 고르기가 쉽지 않다. 수푼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 아내는 기념 수푼을 산다. 이번 여행을 끝내면 수푼이 50여개가 될 거라며 수푼 넣어두는 장을 하나 사야겠다며 흐뭇한 표정이다.  비가 오면 움직이는 게 거추장스럽다. 비를 맞으며 처벅처벅 차있는 곳으로 돌아오는데 모두들 그렇게 후즐근한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다.
  Cave & Basin National Histofic Site을 방문하기로 했다. 시내 부근이라서 차로 십 여분을 올라가니 동굴이 나왔다. 동굴은 생각보다 크지 않고 아담하다. 온천은 지금도 땅 속에서 끊임없이 따뜻한 온천물이 조금씩 솟아오르고, 대형 목욕탕 시설이 유물로 남아있다. 지금은 사람들이 온천을 하지는 않고 단지 역사적인 관광지로보존하고 있다.
  한 시간 정도의 동굴과 온천 관광을 마치고 93번 FWY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캐나다 관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캐나다 록키산 관광을 제대로 하려면 근처의 Yoho National Pard이랑 또 이런저런 둘러 보아야 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겠지만 이번에는 일정 때문에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가 운전석에 앉았다. 간간히 빗방울이 뿌리고 있어 길이 미끄럽다. 몹시 조심스럽다. 산길이라 속도를 낼 수도 없고 안전운행을 하면서 천천히 내려간다. 93번을 한동안 내려오다가 Radium Hot Spring 표지판이 나오자 가파른 산이 끝나고 평지가 시작된다. 이제부턴 93번과 95번이 한데 합쳐진다. 모두들 잠이 들었다.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아내도 잠이 오는 눈치이다. 허지만 운전자는 졸음이 올 틈이 없다. 열 두 명의 목숨이 내 손에 달려있지 않는가. 왼쪽으로 넓디 넓은 푸른호수가 나타난다. 아내에게 지도를 보라고 했더니 Columbia Lake라고 한다. 바다 같다.
   호수를 끼고 언덕을 돌아나가니 다시 평지가 된다. 차는 드문드문 지나치고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길 끝이 보이지 않는다. 길은 길로 인하여 끝이 없다. 길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가 아닐까.
  생각이 많았던 때문일까. 95번과 93번이 갈라진 곳에서 95번으로 가야 하는데 한참을 가다보니 아무래도 93번으로 가는 성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던 길을 다시 돌려 한참을 나가야 했다. 그나마 빨리 발견 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다시 방향을 잡아 95번을 타고 한참을 내려오니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에 다달았다.  국경지역엔 환전소와 면세점이 있다. 모두들 내려서 휴식을 취하고 남아있는 캐나다 돈을 모아서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열 두 살짜리 아들 녀석 승이가 면세점이니 Polo 향수를 한 병 사겠단다. 요즘 아이들이란......
  아이들에게 간식을 사 먹이고 국경을 넘어섰다. 이제부터 미국 땅이다.  표지판이
다시 km가 아닌 mile 로 바뀌어 진다. 마음부터 포근하다.
  해가 설핏하다. 양 옆으로 숲이 우거진 좁은 산길이다. 한 시간쯤 지나 산길을 벗어나니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다. 목초를 수확한 밭에 군데군데 목초더미가 나 뒹굴어있다. 누런 밭 잔등위로 저문 해가 붉게 비추인다. 가는 길에 어디던지 R.V표지판이 보이면 들어가자고 했지만 아무래도 큰 도시 부근까지 가야 할 것 같다. 날은 서서히 어두어 지고 마음은 그만큼 바빠진다. 그렇지만 누구도 내색하진 않는다.
  제법 어둑어둑해서야 Sane Point City에 도착했다.  Motel과 R.V Park 시설이 함께 있는 Monarch Motel을 찾아 듬.  수요는 공급의 어머니라 하더니 아마도 우리처럼 이렇게 R.V와 Motel이 함께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형태이리라.  
  이제 잠자리가 해결되었다. 누군가 말했듯이 걱정은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고 하지 않던가. 어느 심리학자에 의하면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것에 대한 것이며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다. 그리고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고, 그 4%마져도 우리가 바꿔놓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걱정거리이다 고 하지 않던가.
   방 하나를 빌려서 식구들 모두가 차례로 샤워를 함. 그리고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이동인씨하고 김훈씨가 근처 샤핑몰에가서 김훈씨 틀이빨을 사옴. 이빨이 빠져서 하루종일 고생했는데 이제사 뭘 좀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하여 모두들 웃음. 그러고 보니 이빨이 성해서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도 큰 복이 아닌가.
  저녁을 먹고 이동인씨가 미국에 건너와 고생하면서 학교에 다닌 얘기를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민을 와서 시간당 $2.70 기본급을 받으면서 일했던 날들. 학교에서 강의를 듣는데 영어가 귀에 들어오지 않아서 수업시간에 교수의 강의를 녹음해 집에 돌아와 다시 틀어놓고 복습했다는 얘기. College를 거쳐서 University를 졸업하여 약사가 될 때까지의 고생했던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김훈씨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그 핏덩이 갓난아이 때부터 아버지와 누나의 손에 의해 자라나면서 겪었던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본인이야 농담으로 웃어가면서 얘기를 하였고, 그것도 주로 아내인 케롤라인 자매님이 보충하여 설명을 하였지만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어머니 없는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본인은 얼마나 방황하였겠는가. 그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렇게 성장하여 한 가정을 훌륭하게 이룬 자식을 보면서 그 아버지는 또 얼마나 대견해 하시겠는가. 저마다 사연 하나씩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게 우리네 인생이 아니던가.
  여행이란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런 만남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스스로를 반성하게 한다.  밤도 이야기도 깊어갔다.
  
  8월 26일 ( 여덟째 날 )
새벽 4시20분 출발함. 오늘은 강행군을 해야 한다. 해가 지기 전에 Portland까지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리를 재어보니 장장 350 mile에 해당하는 길이다. 김훈씨가 처음 운전을 하고 그 다음에 이동인씨, 그리고 그 다음에 내가 하기로 순서를 정했다.
  매번 그랬듯이 마치 야밤도주라도 하는 것처럼, 가만 가만 누가 깰 새라 살그머니 텐트를 걷고 조용조용 짐을 차에 싣고 출발했다. 운전자는 차를 몰아 달려가고 차 안에 사람들은 차체가 흔들리는 대로 흔들거리며 잠을 자면서 새벽길을 달려간다. 그렇게 덜덜거리면서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얼마를 갔을까. 차가 주유소에 서는 성 싶어서 나도 덩달아 잠이 깼다. Spokane부근이었다. 개스를 넣어야 할 때도 되었지만 90번과 395번 그리고 2번 Hwy가 겹치는 관계로 길을 잘못 들어 약간 헤메게 된 모양이다. 그 큰 차를 몰고 동네 좁은길을 몇 바퀴 돌아다닌 뒤에 비로소 큰길을 찾아 들었다.
   90번 Fwy 에 들어서자 차는 알아보게 흔들림이 줄어든다. 그리고 속력은 빨라진다.  이대로 Portland까지 도착한다면 Idaho, Washington, 그리고 Oregon, 이렇게 세 개 주를 하루에 섭렵하는 셈이 된다.
  90번 Fwy가 끝나고 다시 395번 Hwy가 시작된다. 큰길은 빠르고 편안하여 좋긴하지만 역시 여행길은 작은 길을 따라 오밀조밀한 경치를 구경하며 가는 게 제격이다.
  아침 6시 반이 넘었다. 지평선에 아침 해가 떠오FMS다.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아침해는 수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해와 다르다. 이글거리는 파도를 타고 어느 틈에 불끈 솟아오르는 수평선의 해 돚이 와는 달리, 지평선상에 뜨는 해는 종이위에 먹물이 번져오듯이 서서히, 그리고 가만가만 해가 떠오른다. 그 모습이 시시각각 눈에 보인다.  
  해가 떠오르자 주위가 더욱 또렸하게 보인다. 세상은 끝없는 평원이다. 오직 지평선 뿐이다. 대 평원 저 멀리 점점히 박혀있는 것들이 움직여 자세히 보니 소 떼들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목초지에서 소들이 떼를 지어 노닐고 있다.
  자동차길을 따라 철길이 나란히 놓여 있다. 자동차도 기차도 종착점을 향하여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다. 자동차가 언덕을 힘들게 올라간다. 힘들게 올라가는 게 어디 저것뿐이랴.  사람도 사람의 길을 숨가쁘게 달려간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목표를 향해 바쁘게 달려간다. 바쁘게 달려가 목표점에 도달하면 차는 제 역할을 다 하게 되고, 사람은 비로소 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저만치 달려가던 기차가 멀어져 간다. 까맣고 기다란 선 하나가 천천히 멀어져 가더니 마침내 작은 점이 되어 사라져 버린다. 선은 점이 되어 마침내 스러진다.
커다란 저장탱크가 눈에 보인다. 곡물 저장창고인 듯싶다. 우리 농촌에서 가을이면 볏짚으로 엮은 마람을 빙빙 둘러가며 마당 가운에 둥그렇게 만들어 임시로 나락을 저장했던 ‘어리통’이라고 부르던 저장소가 생각이 났다. 가을걷이가 끝난 직후에 곡간에 저장할 자리가 없어 마당 가운데 임시로 벼를 저장해 놓은 것을 우리는 어리통 이라고 불렀다. 그득하던 곡간이 비워져 웬만큼 자리가 나는 초겨울까지 어리통은 마당 가운데 그렇게 버티고 앉아 있었다. 마당 한 가운데 어리통이 떠-ㄱ 버티고 있는 동안은 밥을 먹지 않아도 저절로 배가 불렀었다.  고구마가 많을 때는
땅 속에 굴을 파서 저장하거나 방 귀퉁이에 대나무로 어리통을 만들어 고구마를 저장하기도 했다. 시골의 긴긴 겨울밤을 이야기로 꼬박 지새울 때 어리통 속의 고구마는 우리들의 좋은 요기거리가 되곤 했었다.
  트럭이 끊임없이 반대편 쪽에서 달려오고 있다. 밤을 꼬박 새워 저렇게 내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긴긴 밤을 쉬지 않고 달려와 저렇게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해를 등지고 가는 우리들, 해를 맞으며 오는 저들. 같은 아침을 서로 다르게 맞고 있다.
  Seatle 250mile sign이 보인다. 길은 길로 연하여 끝이 없다.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난 길은 때로 사람을 당혹하게 한다. 생각하면, 나에게 있어서 길이란, 길만이 길이 아니고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바로 길이었다. 길을 가면서 만나는 이정표가 우리들의 지표와 희망이 되듯이,  인생의 길을 가면서 이정표가 되는 사람을 만나면서 내 삶은 그만큼 의미로울 수가 있었다. 아, 나는 앞으로 나의 이정표가 될
사람을 몇 분이나 더 만나게 될 것인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길을 달리면서, 거미줄은 하늘의 신과 지상의 사람을 연결
하는 생명줄이라고 했던 아프리카의 신화를 연상했다.  아침 여덟시가 가까워 오지만 깨어있는 사람은 운전하는 이동인씨와 나 뿐이다.  둘이서 이 아침 풍경을 만끽하며 벌판을 달리고 있다.
  이번 여행은 아이들이 불평 없이 잘 따라 주어서 무엇보다 고맙다. 여행 내내 맨 뒷자리에서 저희들끼리 게임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때론 뒹굴며 어른들이 신경 쓸 필요가 없이 잘 해 주고 있다. 뒷자리는 요동이 심하여 앞자리보다는 훨씬 불편할 터인데도.
   “좋은 생각” 잡지를 꺼내어 읽었다.  한국에 계신 어떤 분이 3년 전부터 잊지 않고 꼬박꼬박 보내주는 이 잡지를 읽을 때마다 나는 그분에게 감사를 한다. 그분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매월 이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페이지도 빼지 않고 읽고 있다.
  포도밭과 옥수수밭이 질펀하게 끝도 갓도 없이 펼쳐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아침밥을 먹을 장소로 예정했던 Pasco City에 도착하였다. 자그마한 마켙 마당에다 차를 세우고 아침을 먹었다. 찰떡을 구워서 아침을 먹는데 별미다.
  마켙에서 이런저런 필요한 물건을 사면서 혹시 이 부근에 한국인들이 살고 있는지 물어 보았더니, 저 건너편 Texaco Gas Station 주인도 한국인이고 어느 쪽 큰 리커스토 주인도 한국인이고 또 무슨 마켙 주인도 한국인이라면서 여러 사람을 말해준다. 가는 곳 마다 우리 한국인이 뿌리를 내리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하다.  
커피를 한잔씩 마시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395번 S.를 거쳐 84번 W. 30번 도로를 따라 가다보니 어느새 Colombia River가 나왔다. 강을 경계로 하여 북쪽은 Washington주고 남쪽은 Oregon주다.  우리는 강을 건너서 남쪽 강변을 따라 간다.
  길은 강을 끼고 물과 함께 흐르고 있다. 강은 구비 돌아 흐르고 길도 그렇게 휘돌아 이어지고 있다. 물줄기를 따라 길이 완만하게 휘어지는가 싶더니 어느 틈에 물과 함께 길도 뚝 떨어진다.
  강은 맑고 고요하다. 물결하나 일지 않은 잔잔한 강에서 태공이 낚시를 드리우고 있다. 강 가운데 작은 낚시 배를 띄우고 앉아 찌를 바라보는 태공의 모습은 신선이다. 아직 아침 안개가 물에 서려있고 수초 사이로 띄엄띄엄 신선들이 물 위에 앉아 있다. 이 아침, 호수는 인간의 세계가 아닌 신선의 세상이다.
  산은 민둥산. 나무숲이 보이지 않는다. 강 건너 저 쪽도 마찬가지이다. 산등성이를 따라 난 가르마 같은 길로 차들이 오가는 모습이 멀리 건너다보인다.
  댐을 막아서 발전소를 만들어 놓은 곳을 지나자 쉼터가 나왔다. 우리 일행은 그곳에 내려 잠시 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스라히 먼 곳에 하얗게 눈덮힌 Mt Hood가 우뚝 솟아있다.
  다시 길을 재촉한다. 길고 긴 강을 따라 흘러가면서 풍물을 구경한다. 강을 따라 커다란 배가 농산물을 비롯한 물자를 실어 나르고 있다.  ‘Tidewater'라는 배 이름이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아마 저런 배가 미국 개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증기선인가 싶다. 바람을 이용한 범선이 수상 교통수단의 전부인 시대에 증기선의 출현은 그야말로 하나의 경이였을 터이다. 물길 따라 사람은 물론 각종 곡물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증기선의 출현은 미국 국민들에게 꿈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증기선들은 마크트웨인의 소설에서부터 시작하여 ‘쇼 보트’에 이르기까지 미국문학의 주요한 소제가 되지 않았던가.
  낭만이 서려있는 강을 길 따라 함께 내려가면서 어릴 적 읽었던, 그리고 지금도 기억 속에 살아있는 소설 ‘허클 베리 핀의 모험’을 생각한다. 그 신나고 재미있던 이야기가 양 둑 사이로 강이 흐르고 증기선이 오가는, 이런 풍경을 배경으로 쓰여졌다고 생각하니 물살을 일으키며 강을 거슬러 오르는 증기선의 모습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Portland 가 가까워지자 나무가 많아지기 시작한다.  아까보다 훨씬 더 큰 발전소가 보이고 강 주변엔 유람선이 떠 있다. 창문을 모두 열어 재치니 강바람이 시원하다. 경관도 수려하다. 상쾌한 바람 따라 마음도 경쾌하다. 빼어난 일급 드라이브코스다.
  낮 두 시 반경 김훈씨 누나네 가게에 도착했다. 세탁소를 하고 있는 누나와 매형이 반갑게 맞아준다.  피자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그리고 음식이랑 사시미랑 찌개거리까지 차에 실어주었다. 오늘 저녁은 사시미 안주에 소주한잔을 걸치며 또 얼마나 재미있는 시간을 가질 것인가.  
  한참을 쉬었다가 오늘저녁 묵을 장소인 바닷가 쪽을 향해 출발하였다. 일전에 장마태오 형제가 게를 잡았다고 말했던 그 바닷가 부근에 오늘저녁은 둥지를 틀기로 작정 한 것이다. 혹시 아는가, 밤새 게를 너무 많이 잡아서 먹고 남은 것은 아이스박스에 담아 두었다가 여행 중에 두고두고 먹게 될른지.
   Lincoln City라는 자그마한 바닷가 도시에 도착했다. 먼저 R.V Park을 정한다음 바닷가 구경을 나갔다. 바람이 세다. 게 잡는 그물을 빌려 준다고 하는걸 보니 이 지방이 게가 잡히기는 하는 모양이지만 장마태오씨가 그토록 많이 잡았다는 그곳이 어딘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바닷가에서 돌아와 아이들은 이동인씨가 인솔하여 보트를 태워주고, 나머지 사람들은 밥을 지으면서 오후를 여유롭게 보냈다.
  저녁을 먹고 사시미 안주에 소주잔을 기우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오늘의 화제는 각자 부부들이 결혼을 하게 된 사연이다. 연애결혼을 한 김훈씨가 장인으로부터 결혼 허락을 받아내기까지의 흥미진진한 얘기도 들었고, 이동인씨가 한국에 나가서 당시 직장에 근무하던 아내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기까지의 잔잔한 사연이 이어지고, 끝으로 결혼 적령기를 넘겨서 서로에게 은인이 되었던 우리 부부의 얘기까지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밤이 이슥했다.  
  한사람이 다른 한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은 기막힌 인연이요 하느님의 섭리로서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아이들이 세탁을 한다고 하여 그렇게 하도록 했다.  밀린 빨래를 저희들끼리 의논하여 깨끗하게 세탁해 왔다. 아주 즐거운 모습들
이다. 무언가 역할을 주고 그것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어른 아이를 불문하고 사람을 신나게 하는가보다.

     * 8월 27일 (아홉째 날)

  오늘은 Red Wood 가는 날.  나무를 보러 가는 셈이다. 미국에서 제일 큰 나무는 세코이아라는 상록 침엽수다. California  와 Oregon에 있고 특별히 세코이아 국립공원의 것을 California Redwood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오늘은 오레곤 쪽에 있는 Redwood를 보는 날이다.
   5시 30분에 일어나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함. 김훈과 이동인씨가 새벽운전을 맡아 하기로 했다. 다른 식구들은 모두들 잠자리에 든 채로 차가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며 그렇게 내려간다. 차가 커브를 돌 때는 사람들도 잠결에 몸이 그렇게 따라서 돌아가며, 행여 급정거를 할라치면 또한 그렇게 차 속의 사람들도 함께 급정거를 하며 일순에 몸이 앞으로 쏠리게 된다. 차가 움직이는 동안에는 잠들어 있는 사람들도 그 만큼은 깨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차가 하도 천천히 가기에 살짝 눈을 뜨고 창 밖을 내다보니 사방에 안개가 자욱하다. 바닷가를 따라 나 있는 101번 도로가 온통 안개에 휩싸였다. 20여분을 그렇게 안개 속을 더듬어 가더니만 드디어 바다가 바라보이는 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중세기 작품 같은 웅장하고 멋진 돌다리가 앞에 나타난다. 언 듯 이름을 보니 Historic Bridge 라고 쓰여 있다. 그만한 이름 정도라야 이 다리에 걸 맞는 이름이 될 수 있겠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도를 보니 이곳이 Reed Sport City 이다.  
  시가를 약간 벗어나자 호수가 나온다.  물이 맑다. ‘명경지수’ 라는 말은 바로 이런때 쓰는 단어가 아닐까.  물위에 떠있는 연꽃이 곱다. 어린시절 시골 방죽으로 연꽃을 꺾으러 갔었던 일이 생각난다. 연꽃을 꺾어오면서 ‘부들’ 도 함께 꺾어왔던 일, 그리고 논두렁에서 큰 물뱀을 만나 몹시도 놀랬던 일 까지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릴 적 일은 왜 이렇게 오래 잊혀지지도 않을까.
  오른쪽으로 바다를 끼고 목재소가 보인다. 굵은 통나무들이 야적장에 그득히 쌓여있다.  Coos Bay 라는 글이 보인다.
   썰물 때인지 뻘등이 멀리 뻗쳐있다. 질퍽질퍽하고 검은 진흙으로 덮혀 마치 죽은 땅처럼 보이는 갯벌,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갯벌은 온통 살아있는 것들 투성이다. 물이 빠진 갯벌에는 게, 고동, 갯지렁이들이 수없이 꼬물거리고, 바지락, 동죽, 꼬막같은 조개들이 지천으로 깔려있다. 낙지, 뱀장어들도 갯벌에 숨어서 산다. 우리의 밥상에 오르는 해산물의 3분의 2가 갯벌을 터전으로 삼고 있다.
   지금은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고향에서의 아련한 기억들. 물때에 맞추어 맛이나 게를 잡으러 썰물 따라 오가리를 가슴에 튜브처럼 꼭 껴안고 개옹을 물오리처럼 동동 떠내려가던 아가씨들.  바람이 불면 파도처럼 넘실거리던 보리밭이랑, 그 꼬불꼬불한 길을 동백아가씨나 섬마을 선생을 합창하면서 작은 오가리를 머리에 이고 걸어가던 고향 가시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갯벌은 “자연의 청소부” “자연의 콩팥”이라고 할 만큼 우수한 정화기능도 가지고 있다. 강에서 들어온 오염물질을 걸러내어 환경을 오염으로부터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101번 Fwy를 따라 R.V Park이 사인이 많이 보인다. State Park 사인이 이따끔 눈에 띈다. 바다와 산과 계곡을 따라 각종 편의 시설들이 적재 적소에 잘도 마련이 되어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냇물이라던가 띠엄띠엄 들어 서있는 농가, 그리고 그 사이에 올망졸망 둘러 서 있는 창고건물들 까지 모두가 평화스럽다.
  배가 출출하다. 밥 때가 되어 가는가 보다. Bullerdis State Park으로 들어가 차를 세우고 아침을 먹기로 하였다. 강가가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웠다. 울타리 넘어 저쪽 선창에는 낚시를 가는 사람 그리고 새벽낚시를 갔다가 돌아오는 사람들이 배를 띄우거나 들어올리며 제법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날씨가 약간 흐리고 아직 이른 탓인지 아직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다. 레인저
만 이따끔씩 시선을 주고 지나간다.
  산 속을 걸어서 모처럼 호젓한 아침 산보를 했다. 다람쥐 녀석이 장난을 걸어온다. 산 속엔 말 타는 사람들을 위한 길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강가로 나왔다. 아마 들 물인가 보다. 통통배를 타고 아들과 아버지가 낚시를 떠나는 모습이 보인다.  30분 정도나 걸었을까.
아침밥이 준비되어있다. 운동을 하고 난 다음이라 그런지 유난히 맛있다. 아이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다.
  아침 커피 한잔이 일품이다. 다시 길을 재촉했다. 바닷가를 따라 아름다운 해안풍경이 펼쳐진다. 때로는 바다에 연하고 때로는 산길을 돌아가며 길은 길로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간다. 그렇다. 이런 길을 달릴 땐 길을 음미하며 천천히 달려야 한다. 산과 바다, 계곡과 능선, 그리고 바닷가의 굴곡을 따라 그대로 휘어지고 애돌아 나간 길은 어쩌면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인간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길은 굽어지고 휘어지며 바닷가를 돌아 넘실거리며 이어진다.  
찻길을 군데군데 땜질을 해 놓았다. 덜컹하니 움푹 패였다 다시 이어지는 길 모습을 보니 아마도 지진으로 갈라진 부분을 때워 놓은 성 싶다.
  내가 운전을 하면서 가는데 길이 제법 험하다. 길이 험할수록 경치는 그만큼 더 아름답기 마련이다. 산길을 구부정하게 휘 돌아가는데 약간 과속을 했던지 차가 내 차선을 넘어서 상대편 차선을 반 이상 침범하였다. 운전대를 힘주어 돌려도 도무지 마음대로 원래의 차선으로 돌아와 주지를 않는다. 순간, 등에서 땀이 오싹함을 느꼈다. 이런 순간에 바른편 차선으로 차라도 불쑥 나타난다면 영낙 없이 충돌사고가 나는 게 아닌가. 아, 이런 순간에 사고가 나는구나.  큰 차일수록, 길이 험할수록 조심하여 속도를 지켜 운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크게 깨달았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고개를 넘고 나니 다시금 바다가 보이고 길이 편해졌다. 찰떡을 구워 먹었다. 맛이 일품이다. 허긴 이런 여행길에 뭘 먹어도 일품 아닌것이 있겠는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Crescent City에 도착했다.
  Redwood National and State Park Visitor Center를 찾아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아직까지 자고있는 아이들을 깨워서 아침 겸 점심을 먹였다. 점심 메뉴는 카레가 나왔다.
  날씨가 약간 흐리다. 안내서를 보니 해안선을 끼고 도는 이 부근 자연의 아름다움과 낚시,골프. 서핑, 연 날리기, 그리고 각종 맛갈나는 해산물등, 여러 가지 관광거리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름 그대로  Redwood가 많다. 나무, 나무는 우리 인간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에서부터 시작되어 일상생활에 관계된 생활용품은 물론이고 죽을 때 관 속에 묻히는 것 까지 온통 일생동안 나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살아간다.
오후엔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나무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온통 하늘을 찌르는 아람드리 나무숲 사이로 길이 나 있다.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래 그런지 제법 어둑어둑 하다. 차들도 왕래가 드물다. 한참을 가다보니 “ The world's tallest trees."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샛길을 따라 올라가니 엄청나게 큰 나무가 떡 버티고 서있다. 높이가 92m라고 한다. 100m 가까운 키가 아닌가. 100m를 땅위에 선을 그어놓고 달린다면 한참을 달려야 할 터이다. 그런데 그 거리에 해당하는 키를 가진 나무가 있다니.  이 세상은 이렇게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들이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 큰 나무 옆엔 “Secreat of Survival"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약 1,500살을 먹은 이 나무가 그 동안 숲을 휩쓸어 버렸던 몇 번의 큰 화재에도 꿋꿋히 견디어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얘기였다.  
  하도 멀어서 나무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바람 소리만 가지 사이로 스쳐갈 뿐.  강
한 생명력과 내화력으로 천년 세월을 견디어 온 이 나무가 우리들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다. 내 나이의 300배가 넘는 세월을 살아온 이 거목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한다.
  산책로가 나 있다. 1.5mile 가량 된다는 이 산책길을 다녀오기로 했다. 쭉 뻗은  나무들이 하늘을 덮고 있다. 키 큰 나무들이 끼리끼리 모여 있는 지역이라 이 부근의 나무들은 키가 모두들 300피트가 넘는다 한다. 나무들 사이로 구불구불 길이 나 있다. 키 큰 나무아래를 걸어가는 인간들이 왜소하기 그지없다.  
  우뚝 우뚝한 나무들, 저들은 수 십년 혹은 수 백년을, 아니면 천년이 넘은 세월을 저렇게 서로 마주보며 지내면서도 불평한마디 없이 살고 있다. 기껏 몇 십 평생을 살아가면서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헤어지고 하는 것이 인간이다.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우리 일행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아이들도 저희들끼리 장난을 치며 재미있게 따라오고 있다. 산책길을 한바퀴 돌아오니 다리가 제법 뻐근하다.
차를 몰아 101번 쪽으로 나오는데 큰 목제소가 보인다. 나무가 많은 지역이라 현지에서 나무를 제재하여 밖으로 실어 보내는가 보다. 운전을 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