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 고향 마을의 설날 풍경이 떠올랐다. 설빔을 차려입은 꼬마들이 신이 나서 골목길을 뛰어다니던 모습, 돈 벌러 도시에 나갔던 젊은이들이 모처럼 만나 함께 어울려다니느라 동네가 떠들썩하곤 했던 광경들이 눈에 선하다.
  대부분의 농촌이 그랬듯이 내가 어렸을 적, 우리 마을도 전기나 전화가 들어오지 않았다. 저녁이면 호롱불을 밝혔고, 버스가 없었으므로 읍내까지 20리 가까운 길을 걸어다녀야만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가지 못해 집안 일을 돕는 아이들이 많았다. 여자아이를 중학에 보내는 집은 참 드물었다.
 그렇게 가난했던 시절, 아이들은 집집마다 많기도 했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그들을 껴안고 살아가는 집도 있었고, 외지로 내 보내는 집도 있었다. 보냈다기보다는 자식들이 스스로 집을 떠났다. 먹고살기 힘든 때 입 하나라도 더는 게 부모를 도와주는 길이었고, 도시에 나가 공장 직공이나 점원 등으로 취업을 해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려는 목적도 있었다.
 자식들이 집을 떠나간 후 몇 년이 지나자, 집을 나간 아이들이 돈을 벌어 고향집에 부쳐주고 물건을 사서 보내주는 등, 외지에 간 아이들이 있는 집은 형편이 눈에 보이게 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벌어다 준 돈으로 논밭을 사는 집도 늘어갔다.
  보도를 보니 해외에서 활동중인 여성 프로골퍼들이 일년에 벌어들이는 외화가 자동차 4만대를 팔아서 얻을 수 있는 수입과 맞먹는다고 한다.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동포들이 한국으로 송금한 액수도 재외동포재단의 발표에 따르면 연 50억 달러를 넘는다.
  이렇게 외국에 나가 우승상금으로 벌어오고, 해외동포들이 고국으로 송금을 한 돈들은 외화 가득율 100%인 돈이다. 고스란히 남는 돈인 셈이다.  
  외국으로 나가 살려는 젊은이들이 늘어난다는 뉴스를 보았다. 인재들이 자꾸만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걱정스럽고, 사람만이 아니라 돈도 함께 빠져나가므로 근심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분석기사도 있었다. 교육환경이나 실업률을 비롯한, 우리 젊은이들을 외국으로 나가게 하는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들을 지적했는데 공감이 갔다.
 이런 보도를 보면서 옛날 일들이 생각났다. 시골 아이들이 도시로 일거리를 찾아 집을 떠났듯이, 그리고 그것이 자신들은 물론 고향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왔듯이,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떠나간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좁은 나라에서 일자리를 다투지 않고 넓은 세상에 나가 꿈을 펼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연어는 알에서 깨면 강줄기를 따라 바다에 나가 살다가 큰 고기가 되어 모천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연어는 떠났던 고향을 위해 제 몸을 보시한다. 해외로 나가는 젊은이들도 고국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사정이 있어 해외에 남게되는 사람들도 결국은 조국의 든든한 울타리가 될 것이다. 중국의 경제부흥에 화교들이 큰 몫을 해내는 것은 좋은 예다.
 며칠 전, 은행에 들렸다가 설을 맞아 고국에 계신 부모님께 송금하러 온 젊은이를 만났다. 많은 한국의 청년들이 이곳 미국으로 들어와 일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설날이면 그들이 더 많은 돈을 보내드리고, 우리들의 고향이 더 신나고 들썩거리는 명절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2006년 2월 1일 광주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