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병섭, 조옥동, 이정환, 김용택, 지인

2006.05.16 04:37

김동찬 조회 수:79 추천:7

*** 101

그 때 그대들이 / 민주의 횃불 들고 / 외치고 항거할 때 / 캐나다 이곳에서 / 소파에 앉아 TV로만 / 그 일 보고 있었던 나를 / 그래도 / 그대들 용서하겠는가 // 그 횃불 군화에 짓밟힐 때 / 그대들 상했고 / 그대들 총칼에 죽어 / 그 횃불 꺼지고 / 아! 그 칠흑의 긴긴 밤에 / 아이고! 아이고! / 호곡 한번 못하고/ 그대들 위한 / 뜨거운 시 한 줄 / 쓰지 못했는데 / 그래도 / 그대들 나를 / 용서하겠는가 
         
       반병섭 (1924 -   )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일부  

  이제는 그만 5.18을 잊어버리고 국민 화합의 차원에서 덮어두자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또한 그렇게 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잊어버리고 용서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어느 날 영문도 모르고 싸늘한 가족의 주검을 보아야 했던 분들의 몫이다.
  5.18의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직접, 간접으로 책임이 있다. 그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잊어버리자고 할 것이 아니라 똑바로 기억하고 진실을 밝혀 역사책에 정확하게 기록해 둘 일이다. 다시는 그런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그리고 무턱대고 용서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앞에서 인용한 시에서처럼 용서해달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또다시 찾아올 5.18을 조금이나마 덜 부끄럽게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 102

내 손끝 하나 닿지 않아도
울리는 소리
은은한 떨림으로 음계를 누른다
뼈마디 마디마다
비바람 궂은 날을 

마른 잎 삭풍을 울리는
계절이 오면
겨울 생소나무 가지 눈덩이 매달 듯
무겁고 무겁게
뼈 속 깊이 저려오는
음울한 안단테 칸타빌레 

내 뼈 속에는 악기가 있어
아픔과 슬픔을 조율하는 

     조옥동 (1941 -   ) 「내 뼈 속에는 악기가」일부

   몇 년 전 조옥동 시인이 낙상 사고로 수술을 몇 번 받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때 악기를 뼈 속에 집어넣은 줄은 몰랐었다. 그 악기는 아주 좋은 것인가 보다. 손끝 하나 대지 않아도 비바람 궂은 날, 삭풍이 부는 날엔 노래하듯이 천천히 음계를 연주할 뿐만 아니라 아픔과 슬픔을 조율하기까지 한다고 한다. 그 악기의 이름을 '세월'이라 붙여 두자.


*** 103

에워쌌으니 아아 그대 나를 에워쌌으니 향기로워라 온 세상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온 누리 향기로워라 나 그대 에워쌌으니 

    이정환 (1954 -   ) 「에워쌌으니」전문

   이정환 시인의 <원에 관하여>란 시집을 읽어보니 연시조나 사설시조 없이 오직 80여 편의 단시조 뿐이다. 이 짧은 45자 내외의 시조 형식 속에서 언어의 절제야말로 시조시인이 계율처럼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라는 걸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데 이 시는 제목까지 포함해서 에워싸다는 단어가 여섯 번이나 반복된다. 그야말로 에워싸다란 말이 에워싼 시다. 온 세상, 온 누리에 사랑하는 사람으로 에워싸인 듯한 느낌 속에 사로잡혀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의도적인 파계인 셈이다. 바람도, 구름도, 햇빛도, 꽃도 오직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사랑을 해본 사람은 이런 경험을 가진 적이 있을 것이다. 상대방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온누리가 향기로 에워싸이게 된다.  


*** 104


그 여자가 꽃 같은 열 아홉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집 
내 마음속에 지어진 집 
눈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가 
있던 집 

           김용택 (1948 - ) 「그 여자네 집」부분 

   김용택 시인의 시집 <나무>에 "2002년 초봄"이라고 쓴 김 시인의 필적을 보니 그를 만난 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김 시인이 국민시인이라고 불려질만큼 유명해진 덕분에 덩달아 유명해져 김 시인 만의 고향이 아니라 모든 한국인의 고향이 돼버린 진메마을에 다녀온 적이 있다. 정찬열 시인이 친구인 그를 찾아가는 길에 동행한 참이었다. 요즘이야 차로 쑥 들어가지만 옛날에는 오지라고 불렸음직한 외진 농촌 마을이었다. 그곳에는 물론 김 시인의 어머니가 아직도 살고 있는 집도 있었고, 아직 도시의 매연과 소음이 침범하지 못한 그 여자의 집도 있었고, 내 고향집도 있었다. 그러나 그 때 전국을 뒤덮고 있던 황사를 그 시골 마을도 피하지 못하고 덮어쓰고 있었다. 진메마을 앞으로 흐르는 조그만 강을 보며 환경이 배수진을 치고 있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 105
여우같은 여름날 내 남편을 홀려 춤을 추며 간을 빼먹는 여우를 잡기로 했다 지금 관악산에서 둘이 김밥을 먹고 있으니 마음상하지 말고(더 이상 상할 마음도 없겠지만) 비디오 카메라를 준비하고 기다리라고, 김국장 한테서 연락이 왔다. 오늘은 기어코 잡고야 말리라 피를 말리며 기다리는데 여우비가 쏟아지고 다시 연락이 왔다.
관악산에서 내려와 롯데백화점으로 들어간 여우의 꼬리를 놓쳐버렸다고 내일은 꼭 잡겠노라고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먹고 물처럼 그냥 흘러가라고 그러나 나는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몰라 여의나루에 나가 흘러가는 강물만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붉은 저녁 노을 속으로 강을 건너가는 여우와 내 남편이 보였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지인 (1948 -   ) 「여우비」전문

연속극과 주간지에서 신물나게 보는 불륜 이야기가 왜 이렇게 슬프고 아름다운 여운으로 남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무엇을 얘기하는 가가 아니라 어떻게 얘기하느냐에 따라 시가 되기도 하고 포르노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여우비는 내리고, 붉은 저녁 노을 속으로 여우는 남편과 강을 건너갔다. 여우비 잠시 왔다 사라지는 것처럼 사람의 만나고 헤어지는 일도 그렇게 꿈인 듯 스쳐가는 것일까. 그들이 실제로 건너갔는지 알 수 없지만 화자의 마음속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겪는다. 돌아오지 않는 강 건너로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있는 마음이 되어본다. 무겁고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