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윤제림

2006.01.18 07:15

문인귀 조회 수:90 추천:7



꽃 피울려고 온몸에 힘을 쓰는 벚나무들, 작전도로 신작로 길로
살 하나 툭 불거진 양산을 쓰고 손으로 짰지 싶은 헐렁한 스웨터를 입고, 곰인형 가방을 멘 계집애 손을 붙들고 아낙 하나가 길을 간다. 멀리 군인트럭 하나 달려오는 걸 보고, 흙먼지 피해 일찍 피어난 개나리꽃 뒤에 가 숨는다. 흠칫 속도를 죽이는 트럭, 슬슬 비켜가는 짐칸 호로 속에서 병사 하나 목을 빼고 외치듯이 묻는다. “아지매요, 알라 뱄지요?” 한손으로 부른 배를 안고, 한 손으론 입을 가린 아낙이 수줍게 웃는다. 금방이라도 꽃이 피어날 것 같은 길이다.

윤제림(1959~) ‘길’ 전문


시골길, 비포장도로변을 딸아이 손을 붙잡고 걷던 아낙네가 흙먼지를 피우며 달려오는 군인트럭을 보고 한쪽으로 비켜선다. 그들을 지나가던 트럭에서 짓궂은 병사 하나가 소리를 지른다. “아지매요, 알라(애) 뱄지요?” 아낙이 한 손으론 부른 배를 만지며 한 손으론 웃음을 가리는 소박한 풍경이다. 얼마를 걷는다 해도 지치지 않을 편안한 길이 이렇게 트이고 있다.

문인귀/시인


미주한국일보<이 아침의 시>2005년 7월14일자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179 " 또또냐, 마누라냐." 정찬열 2006.01.16 84
9178 혼자서도 잘 놀아요 노기제 2006.01.17 62
9177 사랑할 순 없지만, 동정이라도 노기제 2006.01.17 62
9176 미련 강성재 2006.01.17 53
9175 촛 불 강성재 2006.01.17 55
9174 눈 오시는 날 강성재 2006.01.17 56
9173 나무에서 배운다 강성재 2006.01.17 59
9172 사랑 윤석훈 2006.01.17 66
9171 Revolving Cafe 윤석훈 2006.01.18 72
9170 선물처럼/문정희 문인귀 2006.01.18 100
9169 벌레2/김기택 문인귀 2006.01.18 99
9168 적막/안도현 문인귀 2006.01.18 104
» 길/윤제림 문인귀 2006.01.18 90
9166 길 I 김영교 2006.01.18 42
9165 바다가 기침할 때 장태숙 2006.01.18 29
9164 1월 장태숙 2006.01.18 56
9163 소라사냥 이성열 2006.01.19 423
9162 부토(腐土) 김영교 2006.01.19 75
9161 겨울강 유은자 2006.01.20 89
9160 신동엽, 권대웅, 이의, 강중훈, 이상 김동찬 2006.01.20 4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