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하며

2015.01.09 17:23

차신재 조회 수:51

설거지를 하며
                      차신재

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부엌 가득 쌓인 일거리가 싫지 않다
그릇에 묻은 냄새나는 찌꺼기들
스토브에 달라붙은 끈적거리는 것들
수세미로 박박 닦다보면
찌들고 얼룩진 내 삶의 자국들까지
씻겨나가는 듯 기분이 맑아진다

누가 다시 더럽힌들 무엇이 겁나랴
가슴 속에 쌓이는 앙금 없어
깨끗한 물로 한 바탕 헹구어내면
슬픔도 미움도 원망도 질투도
모두 씻겨 나가
다시 해 맑은 얼굴로 웃을 수 있는 걸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고
늘 기쁜 얼굴로 제 몫을 다 하는 것들
누군가의 영혼 그 밑바닥까지 탐내었던
내 외곬의 사랑은
스스로 산산 조각 나
목숨 한 끝엔 늘 눈물이 맺혀 있는데

더러워진 그릇들 깨끗이 씻어
찬장 속에 나란히 놓 듯
내 속의 온갖 찌꺼기들
말끔히 씻어 말려
맑은 별빛 하나로
가슴 속에 올려 놓을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