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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2007.10.05 18:16

윤석훈 조회 수:692 추천:52

욕조에 물 틀어놓고 변기에 앉아
김종철의 시집 <못에 관한 명상>을 읽는다
욕조에 떨어지는 물소리 듣다가
무심히 욕조 모서리에 붙박혀 있는 거미를 본다
명상에 잠겨있던 그의 몸 위로
물이 차오르자 서툰 탈출 시도하는데
욕조의 벽이 미끄러워 나뒹군다
수십번 반복되는 노력에도 절벽을 오르지 못하자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어디서 못 박는 소리 들리다 이내 조용해진다
두루마리 화장지를 둘둘 감아잘라
생명의 두레박처럼 그에게 풀어주었다
정신 차린 그가
조금씩 움직이더니 무사히 득도得道 하였다
화장지를 펴서 욕조의 턱을 넘겨
세상 밖으로 길을 내 주었다
저항하는 발길은 아름다운가
애써 다른 길 고집하는 여덟 개의 목발에
전등빛이 먼지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욕조 입구의 수직으로 뻗은 반들반들한 문틀을
오르고 오르다가 땀 다 쏟은 그가
욕조에 다시 빠지고 말았다
화장실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리려다가
뒤돌아 서서 손바닥을 물 속으로 집어 넣었다
병아리 가슴털 같은 그의 몸이
손바닥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금요일 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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