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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뇌에 박히다

2005.09.09 16:39

윤석훈 조회 수:565 추천:30


알루니늄 야구방망이 소리
천지를 쏘았고
눈을 뜨려했으나
세상은 온통 핏빛이었다
마지막 느낌은 오히려 차가운 생각 한 점,
한적한 이국의 거리에서
젊고 짧은 한 생이 이렇게 가는구나
양은 냄비처럼 가벼운 지갑을 위하여.

반년 동안의 코마에서 깨어나던 날
통증만이 내 실존을 증명하던 날
전복처럼 아내는 내게 붙어 있었다

왼쪽 눈을 거세시킨 총알
마침내 의사들도 포기한 녀석은
뇌 속에서 자유롭게 나를 조준하고 있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녀석의 심장
저격을 꿈꾸며
흐를 곳 없는 뜨거운 피
석상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폭탄을 뇌 속에 가두고
기어가는 생이 꼭 달팽이같았다
들쥐처럼 발발거리며
일구어놓은 흙집이 잿빛으로 변해갔다
팽팽하던 근육은 힘을 잃었으나
밤마다 나는 정확한 저격수를 꿈꾸었다

형벌같은 시간은 언제 떠나갈 것인가
나는 언제 그를 마감시킬 것인가

아내와 함께 오른 그랜드캐년에서
작고 연약한 호흡은
새로운 바람이 되어 불어왔다
그 바람은 햇살과 버무려져
뇌속의 총알을 고정시켰다

내려오는 길
이미 가진 것 많은 사내 되어
왼쪽 눈 되어준 아내를
힘껏 안아 주었다
그녀의 어깨는
오랫동안 흔들렸고
그녀의 하얀 치아는
야금야금 내 맑은 기쁨을 나누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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