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를 기다린다
  의자라는 모래, 의자라는 책의 예감
  하루 종일 움푹 파인 그늘에서 책만 읽는 남자!

  그러나 내 앞날이 없으리라는 불길함이 먼저 의자에 앉아 있다
  내가 의자가 아닐까라는 몹쓸 생각에 골몰한 것도 그때,
  가만히 보니 굽은 척추를 약간만 더 굽히면, 결국 부러지긴 하겠지만
의자의 딱딱한 틀과 비슷하고
  연골에 염증이 생겼지만 무르팍에도 살이 조금 남아서
  한 사람의 사색을 부추기는 데 지장이 없을 듯하다
  팔걸이가 필요하다면 내 위에 앉은 이를 가만히 포옹할
이 두 손
  그가 쥐고 싶다면 구름국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 것
이다
  만약 그에게 적막이 필요하다면 내 귓속을 파내어 먼저
내 안의 모든 소리를 죽이리라
  이제 잠들다 깨어나면 나는 의자의 살과 뼈,
의자 속에서 성장하리라
  하여 지금 내가 기다리는 건 이 색다른 의자에 앉을 속
깊은 사람
  그가 읽는 책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그만인 삶



송재학 시집 <진흙 얼굴>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