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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 저수지 관리인

2009.07.01 22:07

윤석훈 조회 수:359 추천:55

수면이야 오랫동안 잔상으로 글썽거리겠지만
저수지가 큰 외눈 천천히 닫아거는
저장의 이 한때가 나는 좋다
방죽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캄캄해지기를 기다려야 비로소 하루가 마감되는
이런 무료라면 직업은
향기에 향기를 덧보태는 일,
기껏 손바닥만 한 저수지나 관리하는 일과라지만
천품을 헤아려서 주어진 것

아침부터 철새 떼가 내려앉았으니 지금은 늦가을
저수지는 털가죽보료를 펼쳐
구름들을 주워 담는다 고요한 일렁임이
기슭을 깨울까말까 수면을 뒤덮고 가지만
나는 또 물비늘 거슬러 오르는 상류 쪽으로 자전거를 끌고 가서
물결무늬가 안심하고 갈대숲에 드는 것을 지켜본다
밤은 누구에게도 발설되지 않은
저수지의 사원이 저를 일으켜 세우는 시간

바닥에 가라앉은 하루치의 경배가 수많은 등잔을 그어
빛의 풍경을 흔들어대지만 웅숭깊어진
어제의 고요까지 불려나오지는 않는다
하여 전설로나 빚었을 토기들이
일제히 주문呪文을 쏟아버리는지
저수지는 갑자기 별나라 수군水軍들로 수런거린다
누구나 고여 있는 것은 죽음인 줄 아니까 저수지의
침묵을 제 뼈마디에 얹어보면

물 밑에서 일렁이는 그날그날의 인광燐光, 그 어둠까지
잠재운 적막이 비로소 와 닿는다
나는,저수지가 왜 시시로 끓어 넘치는지
순한 짐승이 되는지, 어느 순간부터 깊은 잠에 빠져드는지
그 경계를 알고 있다
별자리 목동처럼 오래고 외로운 관찰이
마침내 그것을 일깨워주었다